비슷한 단어의 구별 / 김소연
중요하다 : 소중하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 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해지는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은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 세상 애인들은 서로가 소중하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이미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중요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는 의욕이 있는 한, 버려지지는 않을 것이란 각자의 믿음이 있다.
각자의 자기 역할에 대한 믿음을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착각하면서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만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가면서, 중요한 것만을 챙기는 삶이 보인다. 그 삶의 끝에서 우리가 짓게 될 표정과 결론은 너무 뻔하다.
행복하다 : 기쁘다
행복은 스며들지만, 기쁨은 달려든다. 기쁨은 커다란 알갱이들로 후두둑 채워진 상태이다. 기쁨은 전염성이 강하지만, 행복은 전염되기 힘들다. 남의 기쁨에는 쉽게 동조되지만, 남의 행복에는 그렇지가 않다. 약간의 질투와 약간의 모호성. 그것이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남에게서 전염된 기쁨은 그러나 오래가지도 않고 자기 것이 되지도 않는다. 금세 잊는다. 그렇지만, 남에게서 전염된 행복은 오래가기도 하거니와 자기 것이 된다. 그만큼 느리고 꼼꼼하게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얻은 기쁨과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빠르고 간단한 것들은 느리고 꼼꼼한 것만 못하다.
소망 : 희망
소망은 지니고 태어나고, 희망은 살면서 지니게 된다. 소망도 희망도 우리의 힘만으론 이루기 어렵다. 희망은 행운이 필요하고 소망은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 때로 소망은 가랑비에 젖는 옷처럼 어느 결엔가 우리 곁에 와 있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은 이루어냈다는 자각이 크지 못하다. 다만, 다른 소망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에 예전의 소망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에 비하면, 희망은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의 자각이 분명할뿐더러 희열을 가져오기도 한다. 희열이 가라앉은 후, 내내토록 품어왔던 희망을 이루고 난 후, 이제는 어떤 희망으로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희망은 그래서 독한 허무와 무기력을 자식처럼 품고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평안하다 : 편안하다
우리는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편안한 사람, 편안한 공간, 편안한 시간…. 편안하다는 것은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손끝에 있고 모든 것이 입안의 혀와 같다. 그리고 어떤 욕구도 없이 이완되어 있다. 평안하다는 것은 평화롭고 안정적이란 뜻이다. 평화도 안정도 소용돌이 속의 작은 정지이므로,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우리 몸은, 평안한 상태에서는 조금의 의욕을 남겨놓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조금의 의욕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평안함은, 스스로가 속해 있는 관계와 장소, 시간 따위를 잘 영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어떤 욕구도 없이 이완된 편안함은 스스로가 속해 있는 관계와 공간과 시간 등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나의 편안함의 배면에는 다른 사람의 불편함이 따라다닌다.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대가로 치르지만, 나의 평안함은 누군가와 함께 누리는 공동의 가치가 될 수 있다.
처참하다 : 처절하다 : 처연하다
처참함은 너덜너덜해진 남루함이며, 처절함은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괴로움이며, 처연함은 그 두 가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했을 때의 상태이다. 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 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뜨고 볼 수도 있고, 손을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손길도 효력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처참함은 입맛을 잃어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처절함은 밥솥을 옆구리에 끼고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지경이며, 처연함은 한 그릇 밥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지이다.
누군가가 우리를 처참하게 했을 때, 우리는 행동할 게 없어지고 말이 산적해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처절하게 했을 때, 우리는 말이 없어지고 처신할 것이 오롯이 남는다. 누군가 때문에 우리가 처연해진다면, 그때는 말도 필요 없고 행동도 필요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처참함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지만, 처절함 때문에 우리는 이 악물고 살고 싶어진다. 처연함은 삶과 죽음이 오버랩 되어서 죽음처럼 살고, 삶처럼 죽게 한다.
정성 : 성의
정성에는 의도가 없지만 성의에는 의도가 있다. 정성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지극함이지만, 성의는 예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래서 정성은 '담겨있다'고 말해지고 성의는 '표시 한다'고 말해진다.
정성어린 선물은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주고받는다. 선물이라는 물건 자체보다 감동을 선물한다. 성의가 담긴 선물은 판단하게 만든다. 성의를 봐서라도 받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요구가 있다. 정성은 내키지 않으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것이고, 성의는 내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가 있다.
동정 : 연민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팔을 뻗어 손을 내민다.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연민보다는 동정을 해야 옳다.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 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하는 주체는 객체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인식하게 된다면, 연민하는 주체는 객체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인식하게 된다.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한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지라도 내용만을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은은하다 : 은근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람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결론을 아름답게 맺는다.
축하 : 축복
축하하기는 쉬워도 축복하기는 어렵다. 축하는 연루되지 않아도 행할 수 있는 객관화된 폭죽 터트리기라면, 축복은 연루된 관계에 대한 주관화된 폭죽 터트리기이다. 축하는 이미 얻은 것에 대한 박수라면, 축복은 앞으로 얻을 것들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축하는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행해지고, 축복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두고 행해진다. 축하는 축하 받는 사람과 축하하는 사람의 자의식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축복은 그 둘 사이가 포개어졌을 때 존재한다. 축하는 좋은 일에만 반응하는 것이고, 축복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어느 때라도 우러나오는 것이다.
유쾌 : 상쾌 : 경쾌 : 통쾌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하중을 줄일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
유쾌함은 복잡함을 줄인 흔적이, 상쾌함은 불순물을 줄인 흔적이, 경쾌함은 무게를 줄인 흔적이, 통쾌함은 앙금을 없앤 흔적이 남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유쾌해지고, 좋은 공간에 놓였을 때 우리는 상쾌해지며, 좋은 컨디션일 때 우리는 경쾌해지고, 지리한 장마처럼 오래 묵은 골칫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단박에 해결될 때 우리는 통쾌해진다. 불의를 행한 자의 불행을 구경하며 우리는 유쾌하거나 상쾌하거나 경쾌해질 수는 없지만, 때로는 통쾌해지기도 하는 것을 보면 통쾌하다는 것의 쾌감은
위험한 수위에서 찰랑대는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 (김소연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