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엄현옥
도둑고양이가 말썽이었다. 녀석들의 만행은 교사회의에서까지 거론되었다. Y선생이 퇴근하려고 계단을 내려오면 기다렸다는 듯 지키고 있었다. 고양이를 유난히 무서워하는 그녀의 비명소리도 여러번 들었다. 외벽에 걸린 유아들의 작품을 할퀴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조리사가 몇 번 큰 소리로 내쫓았더니 그녀를 뚫어질 듯 쳐다보며 두세 마리가 시위하듯 지나간다고 했다. 주방 앞을 느리게 지나는 녀석들의 눈초리가 끔찍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겨뤄 보려는 심산일까.
그들 중 주동자로 지목된 녀석은 우리에게 '네로'라 불리는 검은 고양이였다. 정신적 피해자들만의 현장검증 후 내린 결론은 '이대로 놔둘 수 없다'였다. 무엇보다 유아들이 생활하는 곳인지라 해결이 시급했다.
누군가가 구청에 신고하면 도움을 준다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문의해 보니 구청에는 '유기견' 업무를 담당하는 이가 있었다. 세분화된 행정시스템에 감탄한 것도 잠시, 방황하는 동물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여해 간 덫에 고양이가 걸렸을 때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렇다면 잡은 고양이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덫'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운운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썩 내키지도 않았다. 그 문제를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유기견 응급구조센터'에서 데려간다고 했다. 또한 덫에 걸린다 해도 고양이에게 상처가 나거나 울지 않으며,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모두 해결해 준다며 안심하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내 앞에서 험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안도했다. 동물 관련 TV프로그램에서는 야성을 잃은 동물들에게 본성을 되찾도록 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구조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전문가들이니 네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제공해 주겠지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대여 받은 덫은 두 사람이 들기에 만만찮은 무게였다. 구멍이 숭숭 뚫린 긴 직육면체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유아들 눈에 뜨이지 않은, 네로 일행이 수시로 출몰한다는 후문 계단 아래로 덫을 설치했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덫의 안부를 살피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안에서 네로가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다. 뜻밖에 생선은 흔적도 없고 덫은 비어 있었다. 야식으로 가로챈 것이 분명했다. 순간 녀석은 어디선가 우릴 비웃었을 것이다. 네로의 1승을 인정하고 다음 경기를 위해 고등어 머리를 더욱 단단히 매달았다.
이튿날 아침에도 덫을 놓은 곳으로 먼저 달려갔다. 조용했으나 주변에 긴장감이 서렸다. 네로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고양이였다. 덫에 갇힌 녀석의 호피무늬가 우아해 보였다. 눈만은 바라보지 않았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마주치고 말았다. 이미 때는 늦었다. 녀석은 나에 대한 원망을 쏘아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섬뜩했다. 완변한 원의 큰 눈동자는 유리구슬을 연상케 했다. 베이지색의 꼿꼿한 수염에 닿기라도 한다면 생채기가 날 것 같았다. 촘촘히 세운 사선의 수염은 심리전에 주효한 고성능 무기였다.
열 살 무렵이었다. 방학을 맞은 외갓집 나들이는 즐거웠으나 그곳에는 늘 고양이가 있었다. 사촌어니는 고양이와 나를 한 방에 두고 방문을 잠그었다. 부들부들 떨며 녀석의 눈을 피하며, 문을 열어 달라며 두드렸을 때 고양이는 발톱을 세우며 주변을 맴돌았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극심한 공포심을 느꼈다. 고양이와의 불화를 예견하는 사건이었다. 그때 노려보던 점점 커지던 그 눈동자가 떠올랐다. 녀석들의 영악함을 보고 들을 때면 '고양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을 섬겨야 하다는 정설을 깨트리려 세상에 왔다.'는 말이 떠오르기까지 했다.
신고한 지 30분 후 '야생동물 유기견 응급 구조'의 붉은 활자가 선명한 흰색 차가 달려왔다. 녀석을 덫에서 옮기는 과정은 차마 볼 수 없어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노란색 자루에 담긴 녀석은 이리저리 뛰었다. 그 속에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호피 무늬보다 먼저 들어 있다고 했다. 돌발상황을 맞은 녀석들로 인해 자루는 장애물 경기에 출전한 듯 널을 뛰었다. 운전자는 움직이는 자루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트렁크에 싣고 떠났다.
네로를 위한 덫은 아직 유효하지만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잠잠하다. 녀석들은 덫 주변뿐 아니라 주방이나 계단 부근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새로 매단 고등어 머리로 녀석들을 유인하기는 그른 모양이다. 생선을 덫이 아닌 바닥에까지 놓아 주었으나, 입질의 기미도 없다. 이곳을 위험구역으로 선포한 것이 분명하다. 언제부턴가 고양이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네로가 어디선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을 노렸으나 동료를 잡아간 것에 대한 원망을 키워 가고 있으리라. 차에 실려 간 호피 무늬의 눈망울도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그들이 자루에 담겨 실려 간 후 어찌되었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늘도 몇 번씩 덫을 확인한다. 기한 없는 숨바꼭질은 허탈하다.
이제 덫을 거두어야겠다. 무언가를 잡으려했던 대상에게 도리어 잡히고 말았던,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든 일은 허다하다. 나타나지 않은 네로, 나야말로 녀석의 덫에 걸려든 것은 아닐까.
첫댓글 어떤 부분을 참고하면 더 좋을까요?
자문까지 답해주세요^^
미영샘! 반가워요.
제가 여기 올리는 작품은 그냥 보시고 괜찮은 부분이 있으면 참고하시라는 정도입니다.
음~~제가 보기에 서두가 좋았구요. 서두 한 문장이 뭔가를 암시해주고 있어 독자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ㅎ낚시밥 역할요.
두 번 째로 서사수필을 잘 보여주고 있구요.
세 번 째로 덫이라는 제목인데
제 생각엔 고양이의 덫을 얘기하고 있지만,
작가는 수필화자를 통해 자신이 겪은 직접 말할 수 없는 어떤 이야기를 고양이 덫 놓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놨다고 봅니다.
@수선화(김귀선) 아~ 친절한 선생님
선생님의 생각이 늘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