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명으로 풀어본 한국사
● 영등포구의 유래
━선박이 출연하던 중심 포구, 방아곶이길━
신길동 47번지 영등포여자고등학교 옆에는 조선 시대부터 영등포永登浦에서 바로 서울 마포麻浦로 들어가는 방학호진放鶴湖津, 즉 '방아곶이 나루'가 있었다.『동국여지승람』금천현衿川縣조에
〈현縣북쪽으로 25리 되는 곳에 암곶岩串이라는 포구가 있다.〉
고 하였다
방학호진은 오늘날 영등포구 구區명칭의 유래가 된 곳으로 추정해 본다. 영등포는 이 지역이 포구浦口, 즉 강변에 선박이 출입하는 곳이었던데서 연유된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 말기의 문호文豪로 개성에서 수시로 한양을 왕래하던 목은牧隱이색李穡은 그의 글에서
(이 암곶岩串포구에는 남쪽에서 오는 조운선이 다 모여들어 1천 척이나 되는 배의 노 젓는 소리가 요란하다.)
고 하였다.
그리고 고산자古山子김정호金正浩의『대동지지大東地志』 진도조津渡條에는
(방학호진이 있는데, 그 방학호放鶴湖나루터는 곧 서울 마포로 가는 길이다.)
라고 하였다. 이로써 바위곶이 → 방아곶이 → 방학곶이 → 방학나루로 명칭이 변천하여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영등포 포구 이름의 유래는 신길동에 있던 암곶 또는 대곶(확곶確串), 방학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영등포 여자중학교 정문 옆 고개를 밤고지 고개라 하는데 이는 방학고지 부근에 있다 하여 방학고지 고개로 불리다가 음이 변하여 밤고지 고개가 된 것 같다.
방학고지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
한다. 먼저 예전에 한강가 귀신 바위 근처에 방학정放鶴
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며, 두 번 째로 이곳의 옛 지명인 상방하곤上方下串이 줄어서 방학고지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신길동은 1914년 일제에 의해 경기도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어 상방하곤리라 하였다.
세 번째 유래는 한강 어귀에 있던 이 마을에 흰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고 언덕에 소나무가 무성하여 경치가 빼어났기에 학이 놀다 가는 곳'이라 하여 방학동放鶴洞이라 부르다가 방학고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며 마지막으로 예전 도성으로 실어 나르는 곡식을 빻는 방앗간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방아고지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영등포라는 지명이 사서史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고종실록』이다 1876년(고종 13) 정월 18일 조에
<삼군부三軍部에서 계啓하여 염창항방수鹽倉項防守는 이미 계품啓稟드린 바와 같이 여의도汝矣島로 이주시킨바 있으나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용접容接하는데 불편하다 하오니 그 근방의 영등포로 옮기게 하면 어떠하온지 라고 한데 대해 상上께서 윤허하셨다.>
라는 기록이 보인다
한편, 김정호의『대동지지』에 보면 시흥 산천조에서 방학호를 대곶이라고도 하였으니, 이 방학호진 나루터는 옛 마을 형태로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등포의 명소와 지리』에서도 영등포란 명칭이 조선 시대에 마포나 노량진으로 건너가는 방아곶이나루, 즉 방학호진에서 유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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