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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차 백두대간 종주기 (백두산 정상에 서다)
◦ 일시 : 2011년 8. 28(토) ~ 8. 29(일)
◦ 날씨 : 변화무쌍(비바람과 장대비 그리고 간간히 햇빛)
◦ 동행 : 대구 푸른솔 부부산악회 회원2명(손인목, 김해숙)
찬조동행 : 조양재, 김성희, 조민규, 손종배 대구 코&씨 여행사참여 동행자
기타40명
◦ 종주구간 : 백두산 서파(1일차), 북파(2일차)
◦ 산행시간 및 내용 : 총 3시간 정도. 걸은 거리 4km 가량
8/27일(토) 22:20 = 대구공항 출발
23:50(현지시간) = 중국 길림성 장춘시 롱자(Longjia)공항 도착(2시간30분소요)
공항 → 장춘시까지 이동(1시간 정도 소요)
8/28일(일) 01:20 장춘시 화원호텔 체크인
05:30 기상 = 호텔 조식, 호텔 체크아웃, 07:30 출발
서파산문 입구 도시 송강하 도착, 중식후 출발 14:00 백두산 입구 도착
15:20 백두산 서파 주차장 도착, 셔틀버스로 환승, 주차장까지 이동 16:30 서파산문에서 1246계단을 올라 마침내 백두산 정상(5호경계비)에 서다
17:00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원시림 속을 지나 금강 대협곡 관람
19:10 북파산문으로 이동 이도백하 도착
19:30 조선족 할머니 운영 강원식당에서 저녁식사 후
20:30 장백산 호텔 체크인
8/29일(월) 07:30 장백산 호텔 출발, 백두산 북파산문 입구 도착
09:50 셔틀버스로 이동, 주차장 도착, 비를 맞고 장백폭포로 도보 이동
10:40 = 장백산 폭포아래에 서다,
11:40 = 백두산 소천지와 녹원담 폭포를 감상하며 둘러보다가 산장에
있는 식당에서 중식
12:50 = 드디어 햇빛이 나온다.
13:20 = 주차장으로 내려와 짚차에 승차, 천문봉으로 이동
14:00 = 천문봉 아래 주차장 도착
14:20 = 드디어 천문봉 정상(2,600m )에 서다
천지를 보았다. 바람에 걷힌 안개는 비단 같은 천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15:30 = 섭씨 42℃의 백두산 유황온천에 전신을 녹이다
16:40 = 주차장으로 내려옴
18:40 = 고려식당에서 저녁 식사을 먹고 장백산 호텔에 입실
8/30(화) 08:30 호텔 체크아웃
08:40 = 길림성 연변주 이도백하현 출발
09:30 = 도로변 양봉, 토종벌 판매대 쇼핑, 로얄제리 1통 구입
10:40 = 라덱스 상품 판매점 eye 쇼핑
11:30 = 북한 그림, 사향 등 판매점 eye 쇼핑
13:20 = 용정시 도착
13:40 = 용정시 혜란강 옆 식당에서 중식
14:30 = 윤동주 시인의 모교 대성중(현 용정중)학교 관람
15:10 = 도문시, 두만강 광장에 도착
15:40 = 뗏목을 타고 두만강을 약 100여 미터 타다,
17:50 = 연변주 연길시(주도) 도착, 연변역 앞, 대주 호텔 체크인
18:40 = 북한 유경식당에서 저녁
20:30 = 호텔로 돌아와 도보로 부르하통하까지 왕복 산책
8/31(수) 08:30 대주 호텔 체크아웃
09:10 = 연길 시내 보이차 쇼핑
12:10 = 연길⇔장춘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서 중식
15:20 = 장춘시 도착
16:20 = 장춘 시민공원, 문화광장 들러봄
18:00 = 저녁을 먹기 위해 교포식당에 들림 19:30 = 발 맛사지 받음.
21:00 = 장춘시 룽지 공항으로 이동
9/1(목) 00:30 = 마침내 발권을 마치고 대구행 아시아나기를 타다
04:10 = 대구공항 도착, 해산
ㅇ 들머리에서
지난 2005년 10월29일 백두대간 남한 구간 종주(천왕봉⇒진부령)를 마친지 꼭 6년10개월만에 하마부부는 마침내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중국 장춘행 특별 전세기에 몸을 싣고 지금까지 걸어온 백두대간, 오늘 그 대미를 장식하기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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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세계육상 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리고 이 대회에 참석한 중국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대구를 방문한 중국 관광객을 태운 항공사와 특약을 맺은 A 항공사에서 대구와 장춘을 전세 비행기를 띄우는데 백두산관광객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사무실 게시판에 올라왔다.
혹시나 놓칠세라 선착순으로 신청 해 놓고 있다가 부산 동서에게 연락하니 혼쾌히 승낙하고 동서 아들마저 간다니 하마 아들놈이 가야 짝이 맞는 형국이라 졸지에 하마의 비상금+비자금(?)은 바닥이 나게 생겼다.
그럭저럭 올 여름은 다 지나가가고 휴가는 이대로 물 건너 갔다하고 있는데 졸지에 생각도 못한 백두산 등정이라 마음은 급한데 후다닥 한 열흘이 지나고 내일이 출발 날이라 그제서 가방을 꺼내놓고 짐을 꾸리는데 하마 내외는 치열한 냉전이 오가고 딸래미가 겨우 중재를 하여 기 싸움은 끝나고 각자 짐 보퉁이를 검사하고 간식을 챙긴다, 밑반찬을 준비한다, 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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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일 오후에 부산 동서네 식구들이 도착하고 부랴부랴 저녁을 해 먹고 공항까지 택시를 잡아타고 가보니 아직 티켓팅 시간은 많이 남았다.
21시가 넘어서야 발권을 하고 집을 부친다음 2층 출구로 올라가니 로비에 해양사진전이 열리는지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잠시 사진을 구경하다가 탑승 시간이 되어 입구로 들어선다.
올해는 복도 많지 해외를 두 번씩이나 나가게 되었다.
올 봄에 유럽(독일, 스위스)을 다녀오고 물론 공식 출장이었지만 또다시 중국 여행이라니 하여튼 여권에 스템프 잉크가 마르기전에 기회만 있으면 이 좁은 땅에서 더 넓은 세계로 탈출........해야 되.........
이윽고 비행기는 장춘을 향해 이륙을 하게 되고 고도를 높이는데 잠시 스튜어디스가 주는 쥬스 한잔에 스넥 한 봉지 먹고 나니 중국 장춘 공항에 벌써 다 왔다(?)고 기내 방송이 나온다.
내 참 중국(장춘)과 한국이 비행기로 두어 시간도 체 안 되는 거리에 백두산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이렇게 가까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두고서 그동안 찾지 못했다니.........
몸은 이미 한국시간으로 꿈나라에 가 있을 시간이 한참 지난지라 자꾸만 눈꺼풀이 잠기고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지겹다.
장춘공항은 이미 예정된 비행시간도 끝나고 유일하게 우리가 타고 온 비행가 마지막 인지 만만디 중국 입국심사대는 한 없이 느긋하다.
마침내 단체 비자로 입국한 일행 46명(28명+18명)은 두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롱지에 공항을 빠져나와 장춘시내로 들어가는데 주위가 깜깜하여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어렵다.
거의 1시간여 이상을 달려 호텔에 도착을 하니 시계는 01시가 넘어가고 한국 시간으로는 2시가 훨씬 지났다.
배정된 방으로 들어와 씻고 자리에 누우니 금방 스르르 잠이 몰려오고 꿈결에 여기가 유렵인지 중국인지 내 집 안방인지 천지분간이 안될 정도로 단잠에 빠져있는데 그 놈의 모닝콜은 어김없이 피곤한 나그네의 육신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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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일)
중국 장춘의 아침은 우중충하다. 한국 날씨나 중국 이곳 날씨가 비슷하나보다. 비까지 뿌려되니 첫날부터 우비나 우산을 지참해야 되겠다.
4성급 호텔이라 하지만 내부시설은 꽤 오래되었는지 그동안 리모델링은 없었나 보다. 샤워 꼭지를 트니 누런 녹물이 콸콸 나온다.
호텔 아침식사는 후진 유럽식이다.
대충 때운 후,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밖을 나온다.
호텔 맞은편 도로가 이층집 주택은 꼭 성냥곽 처럼 보인다.
지나는 삼륜차에 경운기 엔진을 달고 다니는지 소음이 요란스럽다.
일행 모두는 버스에 모두 올라타고서 백두산 서파산문으로 출발이다.
어젯밤에 보이지 않았던 차창가 풍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온통 옥수수 밭이다. 들판이 무지하게 넓고 자그만 야산 구릉지대가 크다.
저 많은 옥수수를 누가 다 먹고 어떻게 수확하는지 새삼 걱정(?)스럽다.
우리는 손바닥만한 땅덩어리를 가지고 서로 내꺼니 네꺼네 하면서 아웅다옹하는 처지라 너른 벌판을 보니 마냥 부럽기만 하다.
서파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네 국도 같은 고속 도로룰 벗어나고 굽이굽이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도로변에 휴게소는 없고 체내에 쌓인 오물(?)들을 내야 되는데 적당히 쉴 곳이 없다보니 그냥 마을 구멍가게 앞에서 차를 세우는데 화장실이 보인다. 약간 경사진 곳으로 내려가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남녀 입구는 다른데 내부는 한 통로(?)이다.
그래서 시차를 달리하여 보는 수 밖에 , 남자들이야 온 들판이 소변장소(?)라 그대로 갈긴다.
우리네 60년대 어디쯤 시골마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마침내 다섯 시간여를 달려 송강하에 도착, 점심을 먹기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1층에서는 무슨 회갑연을 했는지 시끌벅적하고 바닥이 무척 어지럽다. 2층 식당의 식탁에는 기름에 뽁은 음식 접시와 찰기없는 밥이 담긴 냄비가 있다. 회전식 유리판을 돌려 먹을 량을 접시에 담는데 맛은 엉망이다. 대충 먹고 나오는데 다시 비가 뿌린다.
파출소 유리는 깨어지고 서파산문 송강하는 지금 한창 개발 붐이 일어나는지 높다란 건물들이 신축중이다.
한족들은 대부분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며 배가 많이 나왔고 그걸 드러낸다.
다시 차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 백두산 서파산문에 들어서니 원시림이 시원스럽게 길옆으로 뻗어있고 곧게 난 도로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시 데크를 지나 주차장의 셔틀버스를 타고 서파 산문 계단아래 도착하니 비와 구름이 앞을 가려 올라가는 그 유명한 1246 계단이 흐릿하게 보인다. 우의를 입고 계단을 올라선다.
한 발, 두발, 돌계단 나무계단 번갈아 올라가는데 중간에 멈추자니 더더욱 힘들어 계속 오르며 속도를 늦춘다.
주위에는 허연 화산재 토양에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나 있고 비바람에 깍이고 파인 산허리는 도랑이 되고 길이 되어있는데 수목한계선을 지나서는 작은 나무 한 그루 없고 풀마저 드문드문 나 있다.
가마를 멘 인력꾼들이 힘들어 할만도 하다.
우리 돈 12만원정도 왕복요금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한족들의 장사가 없었다면 노모를 데리고 여기까지 와서 백두산을 못 오르게 될 것이다.
저만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과 한 곳에 몰려있는 곳이 보이는데 마지막 이를 악 물고 올라서니 드디어 서파 정상에 섰다.
마침내 내가 백두산에 올랐다. 그토록 염원하던 백두대간의 종착역, 여기까지 오는데 남한구간 대간종주 마치고도 꼭 6년10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천지는 안개속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고 세찬 비바람만 몰아친다.
혹시나 안개가 그칠까 서성대며 조・중 경계비를 사이에 두고 서성대는데 천지는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천지분간(?)이 안 된다는 말이 여기(?)를 두고 한 말인지 이제야 알았다.
천지야 !, 천지야! 제발 모습을 열어라 너를 보러 이곳까지 내가 왔다.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토록 ♬ ♬ ♬
암만 불러도 대답은 없고 빗발은 거세진다.
내일 북파를 기약하며 눈물과 빗물을 머금은 체 하산을 했다.
차를 타고 하산 길에 금강 대협곡을 보기위해 좌측으로 방향을 다시 튼다.
아담한 주차장에 들어서니 대협곡 입구가 보이고 원시림 속에 데크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잠시 깊은 숨을 들이쉬며 10여분 걸어 내려가니 저 만치 그랜드케년 처럼 생긴 깊은 계곡사이로 물이 허옇게 흘러내린다.
바위형상이 기기묘묘하고 계곡 건너편은 계속 산사태가 일어나 원시림이 흙과 함께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협곡 구경을 하고 원시림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벌써 어둑어둑하다. 우리 일행들이 가장 늦게 백두산을 나온 것 같다.
다시 한 시간여를 이동하여 북파 산문 이도백하시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장백산 호텔에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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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월) 아침, 일어나니 창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도백하 시내, 호텔 식사를 마치고 로비에 내려와 도로를 바라보니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다시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백두산 북파산문으로 들어선다.
입구를 지나 매표소에 들어서니 시야에는 웅장한 백두산 북파의 위용이 들어오고 장백산 폭포 물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북파 산문 코스가 그래도 가장 많이 개발되어있다는 가이드의 말마따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빗속에서도 많이 올라왔다.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 오르니 다시 원시림 숲속 입구에 다다르고 다시 매표소를 지나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서니 장백산 폭포가 시야에
가까이에서 확실히 들어온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오전 날씨로는 백두산 북파 정상에서도 천지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우선 폭포와 소천지, 녹원담을 둘러보기로 결정하고
장백산 폭포로 향하는데 빗속에서도 중국 관광객들의 요란스런 말투 속에서 한국 관광객들도 한몫 끼여 오르막길이 비좁다.
천지 달문에서 떨어지는 장백산 폭포의 위용은 대단하다
저 너머 천지는 오늘도 잘 있겠지 잠시 후 부디 모습을 보여 주게나.......
폭포는 수량이 얼마나 많은지 흘러내린 물이 일송정 혜란강을 만들어 만주 벌판을 적신다니 새삼 반갑기 그지없다.
천지 물을 마시며 사진도 찍고, 내려오며 허연 수증기와 함께 유황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지대를 지나 유황 용천수에 담근 달걀도 사먹고
그러나 세차게 퍼 붓는 빗줄기에 어느새 신발은 물이 들어가 질퍽하고 소천지라고 하는 자그만 연못에 올라서니 작은 화산 활동으로 생긴 천지 아들(?) 쯤 되 보이는 자연 정원이 곱게 펼쳐져 있다.
우측에 자그만 동굴이 보이는데 백두산 산신령을 모신 암자가 있다.
한족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니 돈을 내란다.
우리는 한국 돈을 넣고 빌었다.
백두산 신령님 오후에는 제발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
다시 녹원담으로 내려갔다.
급한 경사에 계단이 위태롭게 받쳐있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폭포 두 줄기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대단하다.
석회암에서 녹은 물이라 빛깔이 새파랗고 데크가 잘 만들어져 포토 존이 멋지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중식을 먹는데 제법 큰 식당에 들어간다.
뷔폐식인데 나물 위주라 모처럼 거하게 먹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였다.
눈이 부실정도로 햇볕이 내려 쪼이고 맑고 청명한 하늘이다.
백두산 신령님이 소원을 들어주셨나 보다.
가이드는 우리들을 급히 셔틀버스에 태우고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가 백두산 천문봉으로 오르는 짚차를 타게 한다.
일행을 태운 짚차는 갈 짓자 오름길을 굽이굽이 얼마나 세게 달리는지 몸은 지그재그로 움직이고 차창 밖 풍경은 저 아래로 만주 벌판이 위로는 풀조차 보이지 않는 화산지대가 펼쳐져 있다.
마침내 해발 2600m 백두산 북파 정상에 섰다.
날씨는 구름에 쌓여 천지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내 바람이 천지에 몰려있는 가스를 몰아내자 그토록 갈망한
천지가 보인다. 인파들이 함성을 지른다. 다시 가스 속에 천지는 묻혀버리고 정상에서 인파들은 천지를 주시하다가 바람 속에서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는 천지를 함성을 지르며 계속 보려고 한다.
날씨는 계속 우중충 해 오고 더 이상의 관망은 어렵고 비까지 뿌려 다시 주차장으로 하산한다.
이도백하 시내에 있는 조선족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잘 먹고 장백산 호텔에 다시 들어갔다.
신발을 말리기 위해 드라이기를 신발 속에 넣어두고 화장실 문을 잠그는데 드라이기 소리가 얼마나 센지 마치 발전기(?)돌아가는 소리처럼 요란하다.
그 소리에 양 옆방, 윗방에서도 이에 질세라 새벽까지 신발 말리는 드라이기 소리에 새벽잠을 설쳤고 아마도 그날 밤 장백산 호텔 드라이기 과다 사용으로 전기세가 꽤 나왔을 꺼다.
8/30(화)
장백산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탄다.
오늘은 연길시까지 가야된다.
백두산 북파를 벗어나는 도중에 길옆에 위치한 양봉 판매점에 들린다
토종벌꿀, 로열제리, 양봉 등을 간이 판매대에 올려 놀고 사란다.
마누라는 로얄제리 한통을 사고 처제는 꿀과 로열제리를 싸서 선반위에 올려놓고 가는 도중에 꿀 병이 떨어져 아까운 꿀들이 쏟기고 ........
그리고 또 용정 가는 길옆에 북한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사향, 그림 등)을 둘러보고 어디 쯤 가다가 라택스 용품가게 쇼핑점 들러보고 청산리 대첩 장소를 가리키는 가이드의 설명에 차창 밖으로 내다보고 용정시에 도착한다. 혜란강이 옆에 흐르고 일송정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용정시, 우리 민족이 일제시대 활동거점이 되어 만주 벌판을 말 달리던 이곳, 지금은 한창 개발 중인지 오래된 가옥들과 건물들이 철거 중이다.
식당에 들러 중식 후, 윤동주 시인의 모교 대성중학교(현 용정중학)에 들어가 기념관을 관람하였다.
설명을 듣고 방명록에 서명을 한 뒤 발전기금(?)도 냈다.
백두산 사진 큰 그림 두장을 구입하고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왔다.
다시 두만강이 있는 도문시로 이동한다.
끝없는 만주평야, 그리고 옥수수 밭, 방목하는 소, 말 들
두만강 푸른물이 아닌 황톳물을 가로질러 북한땅 함경북도 남양시가 바로 지척에 있고 이 길을 따라 북한 탈북자들이 다니고 있다니 무슨 비극도 이런 비극이 있는지 .......
두만강을 옆에 끼고 달린지 두어 시간
마침내 도문시로 들어서고 한중 철교를 옆으로 지나 두만강 광장, 나룻터에 도착했다. 광장은 넓게 잘 조성되어있고 강가 수양버들 아래에 조선족 할머니 들이 모여 노랫가락을 뽑으며 춤을 추며 놀고 계신다.
그런데 뗏목 배 타기 전에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퇴임하신 장장님을 여기서 만나다니 놀랍다.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잘 보내시라 인사하고 작별했다. 그런데 건강이 좋지 않아 보여서 안타까웠다.
두만강 뗏목을 타기위해 선착장으로 내려선다.
북한군인들 던져 주려고 종이 가방에 즉석라면 4봉지, 건빵 2봉지, 소주 1명을 넣고 뗏목 배에 탔는데 거리가 좀 멀었다.
뗏목의 사공은 “얼마 전 김정일 수령이 남한 동포들 많이 태우고 저기 다리까지 실어다주라고” 했단다.
그라문 북한 땅에 납치 해 갈라고 ........
바라보이는 풀숲 속에서 북한군 한명이 불쑥 튀어 나오더니 손가락질을 하는데 아들놈이 사진은 찍었다.
그런데 가방에 넣은 물건을 던질 수가 없네, 너무 멀어서 .....
다시 강물을 따라 내려와 하선하고 광장을 둘러보고 버스에 탑승. 다시 연길 시로 출발했다.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한국편 비행기 티캣을 일년전에 예약해야 될 정도로 우리나라와 방문이 잦은 연길시에 들어서니 온통 간판이 이중으로 표기되어있다. 특히 우스운 간판내용은 임산부를 “뚱보 아줌마로”, 정형외과를 “뼈마디과”로 표기한 것이 재미있다.
저녁에는 코엔씨 여행사에서 북한인들이 운영한다는 유경식당에서 북한식을 먹었다. (각종 쟁반요리와 냉면까지)
잠시 후 서빙하던 북한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와 공연을 한다.
“반갑습네다”와 옛 가요, 그리고 “봄이 왔네 ”를 하고 잠시 몇 곡을 부르다 이내 마친다. 공연치고 너무 싱겁게 끝난다.
호텔에 돌아와 자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배도 부르니 도보로 시내관광을 할 겸 부르하통하(연길시를 가로지르는 강 이름) 다리까지 가잔다.
여섯명이 연길시내를 지나 하천변에 있는 야간 놀이광장 까지 약 30여분을 걸어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8/31(수)
일정 마지막 날이다. 연길시를 출발, 시내에 있는 중국 찻집에 쇼핑을 하기위해 들린다. 뜨거운 보이차를 졸지에 실컷 마셨다.
다시 시내를 빠져나와 장춘행 고속도로를 진입한다.
도중에 우리나라 휴게소 비스무리한데 음식점에 들러 중식을 해결하고 가이드에게 주문한 중국 농수산물 보따리를 확인한다.
참깨, 흑깨, 말린 송이, 목이버섯, 북한 명태포, 잣 등 가지가지다.
참깨 5kg에 30,000원. 흑깨 5kg에 35,000원, 말린송이 20,000원, 목이버섯 10,000원, 명태 10,000원 .............
다시 장춘시를 향해서 출발이다.
끝없는 만주 벌판,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을 합친 면적이 한반도의 8.8배라니 이 넓은 땅덩어리가 그 옛날에는 우리나라 것 이였는데..........
이 땅 만큼 우리가 지켰더라면 오늘날 세계 부국, 특히 농업강국이 되었을 것을 아깝다 .....................
인구 6백만명이 거주한다는 장춘시, 길림성 성도(城都)이면서 크고 작은 대학이 200개나 있다니....
도착하니 날씨는 완전 구름에 가려 마치 밤중처럼 어둠침침하고 (가이드 말로는 공장지대가 많아 매연이 많다고 함) 비는 금방이라도 뿌릴 태세이다. 시민공원을 들러보기 위해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지나 울창한 숲속이 있는 입구를 들어섰다.
마치 항주의 서호 만큼이나 큰 호수가 600만명의 장춘(길림성 성도)시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단다. 연꽃이 판 호수가에는 나들이객들이 많이 보인다. 대충 둘러보다가 다시 차를 타고 문화광장으로 갔다.
문화광장의 웅대함이 마치 천안문광장 만큼이나 널찍하다.
광장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 광장 탑을 지키고 있는 나신의 남자 조각상 앞에서 사진 찍는 등 넓은 공간에서 바라다 본 중국의 장춘은 대륙의 도시답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버스를 타고 교포 한식당에 들렸다.
우리나라 유명 텔런트(이홍열, 김정렬 등 )들의 사진이 계단 복도에 붙여진 걸로 봐서 꽤 유명한 한식집인 것 같다. 모처럼 한식으로 잘 먹었다
여행 일정에 포함된 맛사지를 받기위해 골목길로 차가 몇 번 접어들더니 제법 규모가 큰 맛사지 샵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난 나흘간 고생한 발들이 호강을 한다.
특히 나는 조서방과 함께 들어간 2인실에 발바닥 부항까지 떠주니 호강을 더 한 것 같다. 팁 2천원을 주니 좀 적었나 싶다. 하지만 가이드의 부탁으로 더 이상 못 주겠다. 이제 장춘공항으로 출발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전세기라 티켓 발매가 늦어져 공항 바닥에 제법 많은 인파들이 앉거나 서서 기다린다.
드디어 발매가 시작되고 까칠한 입국 심사대를 지나 출국장을 들어서니
밤늦게 출국하는 손님들에게 면세점은 거의 불은 꺼져있고 일부 몇몇 작은 가게들만 있는데 별나게 시끄러운 아줌마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봤더니 뒷 차에 탔던 아줌마 한 분이 면세점 여직원의 불쾌한 응대가 그동안 쌓인 스트래스 폭발대상으로 보였는지 애꿎은 중국 여직원을 잡고 있다.
9/1(목)
트랩을 올라 자리에 앉은지 1시간 50분만에 장춘을 떠난 비행기는 대구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한 숨도 못자고 뜬 눈으로 맞은 9월초하루
한국시간 새벽 04시,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피곤이 겹겹이 쌓였다.
동서내외는 피곤한데 집에 들어가 한숨자고 가라했더니 기어이 차를 몰고 부산까지 내려간단다.
조심해서 가라고 배웅하고 아파트 현관을 들어서니 딸래미가 잠결에 일어나 튀어나온다.
샤워를 마치고 그대로 쓰러져 아침 09시반 까지 자다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늦게 먹고 다시 자다 일어나니 오후. 이렇게 하루를 피곤에 절다 보냈다. 금년 하계휴가는 이렇게 마쳤다.
백두산 정상 정복을 하고 백두대간은 이제 여기서 마감이다.
훗날 북한 쪽 백두대간 길은 아들놈에게 인계하려는데 그때까지 가능하겠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