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동체아카데미의 첫 강의를 맡은 오지혜님이 먼저 읽어보면 좋겠다고 빅이슈(잡지)에 연재했던 글중에 몇편을 뽑아서 보내주셨습니다. 이런 고마운 강사가 있을까요! 강의에 못오시더라도 읽어보시고~ 읽고 강의에 올 맘도 생기셨으면~
빅이슈 2012년 10월 연재분
‘직장맘’. 이 단어엔 참으로 많은 편견과 성차별적 의미가 들어있다. 맞벌이 부부는 이제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일을 하는 여자들의 애환은 여전하다. 현실의 문제점이 개선 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생각의 전환이다. 가치관의 전환없이 어떻게 제도가 바뀔 것인가 말이다. 법과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도 퇴근하면 모두가 이 땅 어디에선가 아들 놀이 딸 놀이 남편 놀이 아내 놀이를 하는 것이 분명하거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제도는 바뀌지 않으며 설령 바뀌었다 해도 실천으로 이어지지가 않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직장파’라는 말은 왜 없는 걸까. 일하는 엄마,에 대한 고민들은 많이 하면서 왜 ‘일하는 아빠’라는 말은 없는 걸까. 남자가 일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일하는 남자,가 아니라 일하는 ‘아빠’, 말이다. 언젠가 이 지면에서 한 말이기도 한데 벌이를 ‘맞’한다면 가사와 육아도 ‘맞’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맞벌이 가정에서 남자(라고 쓰고 ‘아빠’로 읽는다.)도 육아와 가사를 일과 병행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하다.
얼마 전 내 라디오 프로에 여자요리연구가가 출연했다. 요리사 치고 집에서 요리하는 요리사 없다던데 당신도 그러냐며 농담식 질문을 던졌다.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자신은 요리사 이전에 한 집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며느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으며 특히 명절 땐 ‘요리가 직업인 며느리’이기 때문에 기대치가 더 커서 더 일을 많이 한다는 황망한 대답이 돌아온다. 이해할 수 없는 가치관이다.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는 것이 스스로 기쁘기 그지 없다면 모르겠다. 대부분의 맞벌이 여성들이 수퍼우먼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을 버거워하면서도 가사와 육아일에 등한시 하는 것에 죄의식을 갖는다. 남자요리전문가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 요리사 이전에 한 집의 남편이자 아빠이고 사위이기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퇴근해서도 요리를 해야하고 특히 명절 땐 ‘요리가 직업인 사위’이기 때문에 차례상 음식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한다,는 대답을 하는 남자가 이 땅에 과연 몇 명이 있을까? 있기나 할까?
청취자들 문자에도 가장 많이 오는 이야기들은 소위 ‘직장맘’들이 육아와 가사 그리고 거기다 며느리 노릇까지 하느라 지치고 힘들다는 얘기들이다. 당당하고 싶어도 사회의 시선이 그렇지 못해서 안된다는 말들이 너무 많다. 그건 가방끈이 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이 배운 여자들도 일하느라 집안일을 소흘히 하는 걸 그렇게 죄송해 할 수가 없다. <빅이슈>잡지는 젊은 여자들이 주로 보는 잡지고 미혼 여성 기자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잡지에서 어떤 갓 결혼한 여자 아나운서를 인터뷰한 기사를 봤는데 “아나운서일을 계속 하시겠지만 이제 주부가 되셨는데 요리는 잘 하시나요?” 따위의 질문이 있는 걸 보고 절망했던 기억이 있다. 배울대로 배웠다는 여자들부터가 ‘알아서 기는’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성평등, 여성인력개발, 이런 말들은 다 헛공약이 된다.
결혼 초. 남편과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장을 함께 봐서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집도 ‘일터’로 받아들여져 머릿 속엔 사온 채소들을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는 것이 주욱 그려져 손이 바빠졌드랬다. 반면 신랑은 ‘아, 집이다.’하며 소파에 털썩 눕는 게 아닌가. 바로 “일어나.”했다. 나도 쉬고 싶다. 장 봐온 것들 같이 정리하고 저녁 준비 같이 하고 같이 쉬자. 했다. 신랑은 미안해하며 기꺼이 그리고 당연히 함께 했다. 요즘은 내가 일이 많아져서 신랑이 거의 전업주부에 가깝게 집안 일을 하고 아이를 맡는다.
맞벌이 부부인가? 이미 수십년을 살아온 부부라면 바꾸기 힘들겠지만 젊은 연인과 젋은 부부라면 지금부터 ‘똑같이’ 일하고 ‘함께’ 쉬는 걸 실천하자. 결혼은 ‘서로’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다.
오지혜님을 바로 알아보는 분들이 적어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꽤 많더라구요.
배우 오현경님과 윤소정님의 따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