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인가? 3-진짜는 말부터 다르다(약3:1~2)
★이런 말이 있죠.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
몸의 혈이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오죠. 하나님과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오죠.
사람과도 마찬가지죠. 소통되지 않으면 고통이 와요.
가족 간의 소통, 직장 동료와의 소통, 성도들과의 소통이 잘 될 때 행복해요.
그런데 그 소통에서 중요한 것이 말이죠.
남자가 하루에 사용하는 단어의 수가 7천개에서 1만 2천개이고, 여자는 2만개에서 2만 5천개라고 해요.
여자는 하루에 2만개 이상의 단어를 말을 해야만 기분이 원활해져요.
남자는 하루에 7천개 이상의 단어를 말하면 말이 멈추어 버려요.
여자 분들은 남자 분들이 말이 적은 것을 이해하고, 남자 분들은 여자 분들이 말이 많은 것을 이해해야 겠죠. 원래가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말을 적게 하든 많이 하든 중요한 것은 말을 조심히 잘해야 한다는 거지요.
1절에서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기록하면서 2절부터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세요.
선생이 되지 말라는 것은, 선생은 말이 많은 법인데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죠.
말에 대한 심판을 생각하고 말의 실수를 조심하라는 거지요.
그래서 옛날부터 말에 대한 속담, 격언도 많아요.
晝言雀聽 夜言鼠聆(주언작청 야언서령),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이죠.
無足之言 飛于千里 (무족지언 비우천리),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이죠.
去言美來言美(거언미래언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이죠.
一言千兩債蕩減(일언천냥채탕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이죠.
‘말이 씨가 된다.’ ‘침묵은 금이다.’ 라는 속담도 있어요.
★이렇게 세상 지혜자들도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그리고 성경에도 유난히 말에 대한 말씀이 많아요.
★‘왜일까요?’ 그 이유를 잠시 나누고자 해요.
◆첫째,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3절에서 우리의 혀를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으로 비유해요.
재갈은 작은 것이지만 말 입에 물리면, 사나운 야생말도 좌지우지 조종하는 힘이 있죠.
같은 의미로 5절에서는 말을 “숲 전체를 태우는 작은 불씨”로 비유해요.
4절에서는 “큰 배를 조종하는 작은 키”로 비유해요.
아무리 큰 배도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작은 키이죠.
우리의 혀가 인생의 핸들이라는 거지요.
그만큼 우리의 말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5a절에서 “이와 같이, 혀도 몸의 작은 지체이지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새번역) 기록해요.
성경에서는 야고보 말고도 말에 대한 말씀을 많이 기록하는데, 특히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잠 18:21절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말해요.
살고 죽는 것, 생명과 사망, 성공과 실패, 부요함과 가난이 혀의 힘에 달렸다는 거예요.
★때문에 말을 할 때에는 먼저 잘 듣고 해야 해요. 말하기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말을 들을 때, 3F를 체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Fact 듣기(사실 듣기) 에요.
저는 상대가 말하는 팩트가 무엇인지를 정리하면서 들으려고 해요.
장황한 말 속에서 팩트가 무엇인지를 캐치하려고 하죠.
★둘째는 Feeling 듣기(감정듣기) 에요.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정을 파악하고 표정이나 말로 표현하면서 듣는 거예요.
내가 느껴지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알려 주는 것이죠.
‘속상했겠네, 불안했겠네, 불안했겠네, 화났겠네.’ 상대의 감정을 알아주는 표현을 해요.
★셋째는 Focus 듣기(핵심듣기, 진심듣기) 에요.
말하는 사람이 직접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속마음, 핵심 메시지를 찾아내면서 듣는 것이죠.
왜냐면 우리는 대부분 말을 할 때 내가 말하는 것을 숨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대화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기 전에, 불평, 비난, 한탄을 먼저 해요.
때문에 그런 말을 할 때 마음속에 숨겨진 것을 잘 찾아줘야 해요.
이 3F를 체크하면서 들으면, 조금은 말하기에 유익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쪼록 4F를 참고하면서 말함으로 말에 있는 힘이 우리에게 좋은 힘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소망해요.
◆둘째, 하나님께 우리의 말까지도 기도로 받으시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하나님과 나누는 말을 “기도”라고 하고, 사람과의 나누는 말 을 “대화” 라고 하고, 나 자신과 나누는 말을 “생각”이라고 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나누는 말(기도)”뿐 아니라, “사람과 나누는 말(대화)”도 “기도”로 받으시고, “나 자신과 나는 말(생각)”도 “기도”로 받으세요.
★먼저 ‘말의 기도’를 볼까요. 사 57:19절에서 “입술의 열매를 창조(ארב, 바라)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말씀하세요.
“창조”(바라)는 창 1:1절의 창조와 같은 단어이죠. 무에서 유를 만들 때 쓰는 단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입술의 말에 열매를 창조하신다고 하세요.
★나는 입술로 사사로이 말할 뿐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창조 해 주세요.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에, 열매(결과)를 창조해 내신다는 거예요.
★말을 기도로 들으시는 하나님이세요. ★이것을 증명하는 실제 사건이 있었어요.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 열두 명을 가나안 땅으로 정탐을 보내요.
정탐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보고를 하는데,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하고, 10명의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을 할 뿐만 아니라, 가나안은 입성 불가능의 땅이라 했죠.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서로 말해요.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민14:2)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모세와 아론을 향해 말한 것인데, 하나님이 그 말의 열매를 만드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대로 살리셨고, 나머지는 그들의 말대로 죽게 하셨어요.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서로 주고받은 말들이 마치 기도한 것처럼 응답이 되었어요.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나 자신과 나누는 말(생각)도 기도로 받으세요.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말해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 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하나님)에게”(엡3:20)
생각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어요.
★다윗은 이 믿음이 있었어요. 말도 기도로 받으시고, 생각도 기도로 받으시는 하나님을 기대했어요. 그래서 시 19:14절에서 기도해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입술의 말, 내 마음의 생각도 주께 열납 되기를, 기도로 받아 주시기를 기도했어요.
그러니 말도 생각도 조심했음이 분명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듯 다윗과 같이 진짜 신앙인은 기도도 하지만, 우선 말부터가 달라요.
내 입술의 말을 창조하실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해요.
내 대화의 말을 열납하실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해요.
이런 진짜가 되시길 축원 드려요.
◆셋째, 말은 내게로 돌아오는 메아리이기 때문이에요.
시 109:17에서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저주)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말씀해요.
★“말은 메아리”라고 하세요. “말은 돌고 돌아서 돌아온다.”는 것이죠.
★저주를 한 사람에게 저주가 임한다고 말씀해요.
★반대로 좋은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내게 임하고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의 말이 내게 임하게 된다는 것이죠.
잠 18:21절애서도 같은 말씀을 하세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열매를 먹고,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열매를 먹는다는 거예요.
미움의 말을 하면 미움의 열매를 먹고, 사랑의 말을 하면 사랑의 열매를 먹어요.
저주의 말을 하면 저주의 열매를 먹고, 축복의 말을 하면 축복의 열매를 먹어요.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열매를 먹고 있는가?’ 돌아보게 돼요.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열매를 맺게 될 것인가?’ 내다보게 돼요.
그렇다고 나쁜 것도 좋게 포장하거나 거짓말 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베드로 사도가 벧전 3:10절에서 말씀하세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선한 말, 진실 된 말을 하라고 하세요.
선하면서도 진실 된 말을 하라는 것이죠.
★진실 된 말이라고 막하지 않고 선하게 해야 해요.
바른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언어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선하게 말해야 하지만, 거짓으로 포장하지 말고 팩트(진실)를 말해야 해요.
우리의 말이 이런 생명의 언어, 좋은 날을 보게 하는 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요.
◆마쳐요.
야고보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1:26) 말씀하세요.
경건은 입술에서부터, 영성은 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경건과 영성이 결정돼요.
그래서 진짜 그리스도인은 말부터가 달라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은 기도와 같다. 말은 내게로 돌아온다.” 이 세 가지가 우리의 말하기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요.
그래서 “진짜는 말부터 다름을 보여 주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