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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지도력을
어떤 집단이 그 집단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활동에 영향을 주는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일반으로는 집단 지도자가 발휘하는 영향력이다.
심리학에서 지도력을 주제로 한 연구는
'특성 접근법',
즉 우수한 통솔자는 일반인보다 우수한 자질이 있다는 점을 전제하는 접근 방법에 따른다.
특성 접근 연구를 보면,
지능, 소양, 책임감, 참가성, 지위에 따라 이루어지며,
'행동 접근법',
즉 통솔자의 행동에 주목하는 연구를 보면,
뛰어난 통솔자를 '전제형', '민주형', '방임형'이라는 세 종류로 분류하였고
우수한 지도력은 두 종류를 혼합했다고 규명됐으며,
그 뒤에 집단 특성이나 상황에도 주목하는 '상황 적응 접근법'를 좇는 연구를 보면,
최적 지도력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집단 훈련도에 따라 구분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규명됐다.
즉 훈련도가 낮은 때는
설득하는 지도력이 적절하고
중간 정도에서는 참가하는 지도력, 훈련도가 높은 때는 위임하는 지도력이 유효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도력의 상대 개념으로 팔로워십(Followership)이 있다.
단순히 지도자를 무조건 따르는 추종자(Follower)로서 개념이 아니라
조직이 공동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관점에서 상대 개념이다.
지도자를 조금 더 지도자답게 할 영향력을 보유한 추종자(Follower)들의 역량이다.
“마음속에 식지 않는 열정을 지녀라. 그러면 인생이 빛을 얻게 될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렇게 설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열정이야말로 인생의 본질”이라고 했으며,
칼릴 지브란은
“열정이란 그 위에서 머뭇거림의 잡초가 결코 자랄 수 없는 화산”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DNA는
바로 열정(passion)이었다.
열정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열정은 모든 분야에서 빛을 발했다.
학창시절에서 외교관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는 열정을 불태운, 열정의 화신이었다.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투혼을 발휘했던 것이다.
학창시절의 열정은 공부로 나타났다.
타고난 승부근성을 가졌던 그는, 공부에서만큼은 친구들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성적이 좀 부지하다싶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에 매달려 만회해야 직성이 풀렸다.
중학교 시절
영어에 대해 천착(穿鑿)해서
영어신동으로 불린 것은 충주에서는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영어선생님은
수업을 마치면 숙제로 알파벳을 스무 번씩 써오라고 했는데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자마자 숙제를 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스무번씩 반복해서 쓰다 보니
나중에는 아예 외워서 쓸 수 있게 되고,
서서히 영어 문장이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누가 영어 단어를 더 많이 외우나 내기를 하는 것도 즐거운 일상이었다.
어떻게 보면 영어와의 만남은
그에게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영어공부를 더욱 부채질해준 것이
고려대 학생으로부터 과외를 받은 것을 들 수 있다.
고려대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고향 충주로 내려온 대학생을 집에 하숙시키면서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이 주효했다.
나중에 그 대학생은 아예 영어학원을 차렸는데,
“영어신동 반기문이 그 학원 출신”이라는 말이 돌면서
학생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모아둔 용돈을 털어《타임Time》을 사서 읽게 된다.
충주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서울 가는 사람 편에 부탁해서 구했다.
사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타임Time》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고등학교 성적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충주고등학교 3년 동안
그의 성적표는 전 과목이 ‘수’였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공부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행동 발달사항에서도 최상의 평점을 받았다.
학생회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성태 선생과의 만남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를 마련해준다.
영어를 가르쳤던 김성태 선생은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작가 김영현의 부친이다.
김성태 선생은
발군의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반기문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으며
“선생님이 가르쳐줄 부분은 남겨두라”고
칭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김성태선생은
그에게 영어 교재를 만들어보라고 했고,
반기문은 외국인들을 찾아가 원어민 발음을 녹음하고 자료를 수집하면서
열정적으로 뛰었다.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귀찮은 면도 없지 않았지만
학생의 열정에 감복해
나중에는 아주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의 열정이 부족했다면 외국인들의 협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당한 영어실력을 쌓게 된 반기문에게
김성태 선생은
‘VISTA(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 프로그램’을 추천했고,
다른 학생 3명과 함께
4주간의 미국어학연수를 가게 됐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면담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역사에 남을 대화를 주고 받게 된다.
"What is your dream?"
"My dream is a foreign service officer."
열아홉살의 소년은
미국 대통령에게 장래에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했고,
40년 후에 그 소년은 ‘지구촌 대통령’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비화가 전해진다.
당초 ‘VISTA’ 프로그램을 위한 영어 웅변대회에서
반기문은 1등으로 합격을 했는데,
당시 이 프로그램을 주관하던 대한적십자사에서
반기문을 보내지 않고,
대회에서 5등을 한 경기고등학교 학생을 보내려고 했다는 것.
그런데 그 이유가
어이없게도 반기문의 얼굴에 점이 있기 때문에
비주얼이 좋은 다른 학생을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아챈 김성태 선생은
대한적십자사 담당자를 찾아갔다.
충무로의 한 선술집에서
자리를 함께 한 두 사람은
소주잔을 주고받았고
김성태선생은 소주를 세병이나 마셔서 대취한 상태로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것.
그런데 마침 그 담당자도 충북 음성 출신이라면서
“저도 반기문을 보내고 싶은데 위에서 틀려고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김성태 선생은
“1등을 한 학생을 보내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결국 반기문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교관이 되고 나서는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는데,
외교부에 ‘반(潘)의 반(半)만 해라’ 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도 그였다.
이를테면
‘외교부의 전설’인 셈인데,
반기문의 반만 해도 일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유엔 본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1983년에
그는 하버드대학 행정대학원엘 들어간다.
그곳에 개설된 케네디스쿨에서 공부를 하게 됐는데,
케네디스쿨은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며
많은 미국 고위관료들을 배출한 곳이었다.
그는 정말 열정적으로 공부에 매달렸는데,
얼마나 공부에 몰두하는지 오죽했으면
부인이 한국에 있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남편 좀 말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케네디스쿨 과정에서 전과목 A+를 받았으며
졸업식에서는 학교설립자 상을 받게 된다.
오스트리아 대사로 재직할 때는
사교를 위해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댄스강습을 받기도 했는데,
지독한 ‘몸치’였던 그로서는 대단한 열정 아니고는 힘든 일이었다.
이처럼 반기문 총장은
무슨 일일 하든 열정적으로 임했고,
그것이 결국 성공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으며
리더십의 근간이 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