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 타고 잉태된 꿈
지금이 최악의 사태라고 말할수 있는 동안은 아직도 최악의 사태는 아니다.
-쉐익스피어
<<벌써 아홉시가 되였네요…빨리 수영이 저녁 공부 마중 가세요!>>
벌써 두번째로 되는, 이젠 명령조가 조금 섞인 안해의 악의 없는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때까지 침실에서 캠까지 켜놓고 메신저로
이국땅에 시집간 여동생과 대화하기에 한창 여념없던 나다.
예전에 안해가 이국땅에서 <<리산가족>>의 그리움에 절은 눈물을
휘뿌리면서 아글타글할때 겨우 한달에 한번 정도되는 전화통화보다는
이런 방식의 감정교류가 조금이나마 서로의 고독을 달랠수는 있었겠는데
하고 저도 몰래 지난 추억속에 빠져 주절거려보기도 한다. 하긴 그때
형편에 이런 삶의 여유가 있었을까?…은근히 알알해지기만 하는
애잔한 감정을 어쩔수가 없는 나다.
옷장문을 제끼고 부랴부랴 겉옷을
걸친 나, 객실로 나오면서 마침 주방에서 여러가지 과일을 옹기종기
잘게 썰어서 쟁반에 한벌 담아 손에 받쳐들고 나오는 안해와 마주친다.
그냥 저녁마다 갖춰지는, 룡정2중에서 공부때문에 분망한 딸애 수영이의
밤참이다. 역시 한국나들이 후에 생겨난 안해의 저녁 일거리의 마지막 걸작이다.
<<차운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그러면서 참대가지로 된 가느다란 이쑤시개로
빨갛게 익은 딸기 한쪼각을 살짝 찍어서 내 입에 넣어준다. 그리고 이 저녁까지도
립스틱 진한 자기 입에도 한쪼각 넣고 곱게 오물거린다. 어린애를 보듬을듯한
안해의 정에 겨운 뜨거운 눈길이 등뒤에 와닿음을 진하게 감촉하면서 나는
기분좋게 문밖을 나선다. 하지만, 이날 저녁. 2006년12월25일이 나한테
불운을 가져다주는 전주곡이 될줄 누가 알았으랴!
때는 한겨울인지라 엄습해오는 싸늘한 찬 기운에 전신의 육체가 옹송그려진다.
밖에서 그냥 얼으든 차안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에어콘을 틀어놓았지만.
그냥 오싹하기만 하다. 하지만 핸들을 부여잡고 은은한 달빛속에 얌전히
묻혀있는 신작로를 사르르 미끌어져갈때 얼마간 배포유한 기분이다.
출근족으로서의 나한테는별로 사용가치가 적은 자가용이였지만 하나둘씩 갖고
다니는 동료들축에 빠질수는 없었다. 어쩌면 안해의 몇년간의 한아름 되는
고생끝의 락을 내가 지금 향수하고 있다해도 과언은 아니니깐. 지금 이 시각,
안해가 그렇게도 유난히 돋보이는것을 어쩔수가 없다…학교교문앞, 조금은
구석진, 그냥 지정된 곳에서 벌써 대기하고 있는 다른집 차들사이에 삐집고
들어가 정차시킨후 사방을 둘러보았다. 벌써 두터운 겨울무장의 옷차림을 한
학부모들이 강하게 파고드는 추위속에 이따금씩 얼어든 신발을 동동이며 서있었다.
학부모라야 거개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역시 우리 조선족사회 현황을 심심찮게
보여주는 력력한 축도였다. 택시, 심지어 삼륜차까지 언녕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종소리와 함께 저녁공부를 끝마친 학생들이 교문앞에 꾸역꾸역 밀물처럼 나타난다.
교문앞은 한동안 도로가 차단되다싶이 거의 수라장을 이룬다. 느닷없이 차문이
열리더니 어느결에 수영이가 옆좌석에 기여들어와 앉는다. 그것도 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중인채로.
<<네리(메리) 크리스마스!>> 폰에서 새여나오는 한 남자애의 낯선 목소리다.
<<웬 남자앤데?, 네리(래일에) 어쩐다는거냐?>> 공연히 신경 도사려진 나다.
<<아버지두 참, 오늘 성탄절임다…저 앞에 있는 피자점에 잠간 들리기쇼!>>
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딸애가 그렇게도 례사롭게 한 말이다.
(오늘 성탄절인데 우리하고 아니, 너희들하고 므슨 상관인데?
그리고 아버지는 학교때 일어를 배웠으니깐!)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면서 아니꼬운 눈길로 딸애를 일별하고 나서, 나는 결국
피자점으로 향한다. 오늘 또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할가부다!
하지만 엄마가 곁에 없었던 이 몇년간의 나날들을 거칠고 결여된
정감속에 모대기던 딸애가 가끔은 가엾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아니다! 하면서도 목구먹까지 치밀어오르는
그 어떤 못마땅함들을 묵과해버릴때가 많았다.
결국, 내가 결산을 끝내고 피자점 문앞에 나섰을때 분명 딸애
목소리가 아닌 <<아버지~>>하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근처에서 맵짜게 들려온다.
<<저 애가 우리 학년에서 1등을 하는 김화영이란 학생임다.
그런데 저 옷맵씨랑 보쇼…>>딸애가 벌써 알아보고
나의 호기심이라도 풀어주듯이 퉁명스레 말한다.
그와 동시에 한 삼륜차가 화영이쪽으로 다가선다. 이윽고 <<화영아!>>
하는 석쉼하면서도 자부심에 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영이 아버지가 틀림없다.
멀리서 바라보노라니 두터운 장갑을 벗고 품속에 손을 넣더니 비닐주머니에
싼 조그마한 물건을 꺼내 화영한테 넘겨준다. 화영이가 기꺼이 손에 받아들고
삼륜차에 스스럼없이 뛰여 올라 앉는다. 그리고 비닐주머리를 풀어 헤치고
뭔가를 입가에 가져간다. 구운 고구마였다. 뜨거운 열기가 배인 고구마, 아직도
피여오르는 그 흰김은 화영이의 입김과 교차되면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을 타고
차거운 저 밤하늘의 공기속에, 삼륜차와 함께, 화영이와 함께 나의 시야에서,
어둠속으로 표연히 사라지고 있었다. 딸애는 피자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벌써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화영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딸애였지만 이름모를 그 무엇이
자꾸만 내 마음을 아프게 찔러준다.
집근처에 당도했을때 갑자기 폰이 울린다. 한 직장에 있는 동사자 최미화가 걸어온 전화다.
<<수영아, 너 먼저 내려서 집에 가거라! 아버지가 잠간 볼일있다…>>
<<우리반 애들은 이젠 용량이 더 큰 mp4를 갖고 다니는데…>>
<<공부나 열심히 하거라! 그따위 물건들은 나중에 보자!>>
<<술적게 마이쇼! 또 엄마한테 꾸지람 듣겠슴다.>>
<<이뤈!…>> 뒤말을 잇지 못하고 흘겨보는 나한테 딸애가 놀리듯이
혀를 홀라당 내밀어 보이고는 집을 향해 줄달음친다. 하긴 이 한밤중에
볼일이라야 취기오른 술장소의 부름밖에 뭐가 더 있을까! 나의 볼 일에
이젠 너무나 습관된 딸애였다.
전화를 걸어온 최미화라는 여자는 나의 고중때 동창이기도 하다. 룡정시
개산툰진의 모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룡정에 전근해온것이 공교롭게도 내가
있는 직장 한 사무실이다. 바야흐로 중년을 노크하는 세련되고 깔끔하면서도
손끝이 영글어진 여느집 여인들과는 달리 소박하면서도 아무런 구애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렇다고 <<과부>>행렬에 끼여 궤도를
마구 벗어나는 여자는 아니였다. 그래서 가끔은 단지 친구라는 각도에서
술장소에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팽창된 뽀얀 담배연기가 무겁게 드리운 <<지구촌스탠드바>>다. 조금은
구석진 곳에서 어느새 나를 알아본 미화가 손짓한다.
<<늦은밤에 므슨놈의 전화질이냐…>>
<<왜, 안해가 귀국하더니 이젠 술장소와 결렬했어?>>
<<남편을 일본에 보낸 넌, 자유의 몸이여 이렇게 맘대로 방황하는거냐?>>
<<너 나의 대리남편 돼주면 나 조용히 살껀데…>>
<<내가 기껏해서 대리남편밖에 안되냐?>>
그리고는 서로가 피씩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딘가 체면에 어울리지 않지만 반말로
오가는 걸직한 롱담이 곧 우리의 인사다.
<<근데 넌 동창생보고도 인사없니?>>
미화가 맞은쪽에 앉은, 여직껏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우리 대화만 엿듣고 있던
한 여인을 가리키면서 급기야 화제를 돌린다. 그와 동시에 나와 그녀의 눈길이 마주친다.
<<안녕하세요? 정수씨 맞죠?>>
그녀가 먼저 곱게 인사하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얼결에 나도 손을
내밀며 그녀를 한동안 정시한다. 순간,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 나다! 굵직한
쌍가풀눈에 까많고 커다란 눈동자, 항상 부드러움을 조용히 발산하는 바로 20여년전의
여전한 그 눈길이다! 고중시절에 내가 짝사랑했던 그녀다…
<<누구더라…옥란이 아니오?>>
<<맞어요. 정말 오래만이네요, 학창시절의 얌전하던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다분하게 남아있네요…호호호>> 옥란이가 새물거리면서 말한다.
<<너 학교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옥란이만 따라다녔지?>> 미화가 한마디
끼여들면서 입안의 목젖까지 다 드러놓은채 제멋에 좋아 깔깔거린다.
그것도 두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는 나를 무시한채. 암튼 오래만에 만난
옥란이가 반가왔다… 이윽고 맥주잔도 쉴새없이 꺼꾸로 쳐들린다. 그만큼
우리셋의 대화도 시간의 공간을 넘다들며 술기운을 급상승시킨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 온몸을 예리한 조각칼로 마구 저미는듯한 극통이
잇따라 마구 들이닥친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보니 햐얀 천정만이 낯설게 안겨온다.
(내가 왜 이런곳에 누워있담? 여기가 도대체 어딜까?) 일어나려 해도 웬일인지
사지가 좀처럼 움직여지질 않는다.
<< 여보세요, 정신차리세요!>>
<<내가 왜 이런곳에…>> 귀에 익숙한 안해의 목소리에 이발을 사려물고 겨우
한마디 번지는 내 입에서 아직도 지독한 술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여긴 병원이얘요…이 정도로 다친거…흑흑~ 그래도 다행이네요.>> 안해가
울음섞인 소리로 나지막히, 김빠져 말한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끊어진 필림을 억지로 하나하나 이어보았다.
엊저녁에 아니, 셋이서 함께 새벽까지 돌아다녔으니깐 분명히 오늘 아침,
그녀들을 바램해주고 귀가하는중 차 앞바퀴가 신작로에 있는 뚜껑을 도적맞힌
배수구 구멍에 빠지면서 차체가 갑자기 좌측으로 가로 기울어지는 순간 면바로
마주오던 트럭이 있었다. 그담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불행중다행으로 허벅다리가 심한 타박상을 입고 그담
오른팔이 골절되였다. 그담, 내가 아끼던 자가용은 페물로 되였단다.
엄청난 가격의 브랜드차가 아니였지만 우리 가정에선 물심 량면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셈이다. 그로부터 화기애애하던 우리 가정에 가끔은
먹장구름이 찜찜하게 뒤덮이기도 한다. 그날저녁 최미화가 아니였어도…
저도 모르게 그녀가 원망되기도 했지만 병문안 와서 못내 안쓰러워하던
모습을 돌이키느라면 어느때부터 내가 이런 차원의 사내가 됐나 하면서
그만 허구픈 웃음을 짓고 만다.
안해의 지성어린 간호에 병세가 쾌나 호전되고 출원까지 한 나, 이제는
옆사람들이 곁들어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립할수 있었다. 그사이 축해진
안해의 얼굴에는 보일락말락 띄염띄염 잠까지 돋았다. 그런 모습의 안해앞에
그냥 민망스럽기 그지없는 나였다.
그래서 어느날, 세 식구가 아침 밥상에 마주 앉았을때 목소리를 가다듬고 무겁게
말머리를 뗀다.
<<여보, 그동안 수고 많았소! 그리고 미안하오! 이제 내가 미국 가면…>>
<<아버지, 이제 미국가면 나한테 핸드폰 부쳐 보내주쇼! 우리 반 어떤
애들은 3천원 넘는걸 사용함다. 내 폰은 이젠 땅츠 낮아서…그리고 요즘
개학이여서 또 학잡비 거의 천원 내야 함다…>>딸애가 철딱서니 없이
나의 말을 중도에서 가로챈다.
<<이뤈…>> 딸애한테 눈총을 쏘면서 눈치를 살피는 나한테 예전답지
않게 과묵해진 안해가 조용히 입을 연다.
<<아니얘요, 제가 다시 출국해야겠어요…>>
<<당치 않는 소릴, 그럼 나하고 수영이는 또 어떡하구?>>
<<당신이야 뭘 근심할꺼 있어요? 제가 부쳐주는 생활비에 월급까지
하면 밤 늦게까지 술장소에서 보내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수영이야
뭐 그냥 예전처럼 혼자서 라면만 새나게 끓여먹고…>>
<<므슨 뜻인데? 당신 혼자 외국에서 고생하고 나는 집에서 호강을 부렸소?
그리고 당신 번 돈이 아니면 내가 뭐 혼자서 못살 같아서?…>> 결국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마는 나다.
<<그럼 혼자 싫컷 잘 살아보세요! 누군 혼자 살줄 몰라서…>>
샘솟듯 흐르는 눈물이 미처 안해의 야윈 볼을 따라 흐를사이 없이
앙상하게 돋아진 관골에서 방울방울 처량하게만 떨어진다.
여직껏 고개 숙이고 저가락 끝에 밥알을 묻혀서 홀짝홀짝 헤여먹듯
하던 수영이가 아예 수저를 놓아버리고 말없이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버린다.
우리 부부사이에 한 순간 지리한 침묵이 흐른다.
이윽고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수영이가 신을 신고 출입문을 연채로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한마디 던지고 간다.
<<전…오늘부터 학교 기숙사에 가 있겠슴다!>> 이어서
<<쾅>>하고 문 닫는 소리가 머리칼까지 오싹해나게 진동한다.
<<젠장, 가겠으면 모두 콱 가거라!>> 안해가 몸을 흠칫 떤다…
나는 옷장에서 손에 닿이는대로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밖에 떨쳐나섰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깻을때 머리가 빠개지듯 한다. 팬티바람으로
객실에 나와서 물 한컵을 단숨에 마이고 나니 정신이 좀 드는상 싶다.
습관대로 담배 한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평시에 여기저기 널려있던
라이타들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주방에 달려가서 가스레인지를 켰다.
파아란 불길이 나를 골리듯이 혀를 날름거리며 건방지게 피여오른다.
담배를 붙여 물고 한모금 길게 들이켠다. <<왝~>>속이 뒤집히게 메쓰꺼워 난다.
해장국이 그립다! 그런데 안해도, 수영이도 보이질 않는다. 달랑 외홀로
되는 현실이 다가설까봐 못내 저어된다.
(사내자식이 뭐가 두려워서, 참.) 억지로 자신을 태연하게 위안 하면서
눈을 감고 쏘파에 앉는다. 끈끈했던 우리 가정이 왜 이 지경일까?
조용히 사색을 굴린다. 안해와 나, 예전에 서로가 좋아할때 고작해야
호주머니에 해바라기씨를 넣고 영화를 관람하면서도 철석같은 맹세
다지지 않았던가! 순정에만 매여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단지 마음과
마음의 잇닿음으로 맺어지는 순결한 사랑은 이젠 사라진걸까? 이젠
사랑도 돈으로 팔고 사야 하는가? 그리고 약한 여자에 비해 그렇게도
강하다는 엄마의 모성애도 이젠 색바램하고 있는거 아닌가? 아니면 나
자신의 맘가짐에도? 감안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럭저럭 한달이 지난다. 2007년3월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누구한테서도
련락이 없다. 그렇다고 전화라도 걸어볼 흉금을 지닌 내가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날 밥상에 난데없는 엽서 한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딸애가 집이 빈 틈을 찾아 남긴거였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기숙사 생활을 한지 벌써 한달이 됨다. 그동안 얼마나 집에 가고팠는지 모름다.
내가 기숙사에 와서 며칠 아니면 아버지 어머니중 누구던지 날 꼭 데리러 올것이라고
생각했는데…왜 누구도 데리러 안옵니까? 공부 못하지만 내가 그래도 자식인데…
밤이 되면 이불속에서 다른 애들 모르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름다. 그렇지만
어떤때는 또 집에 들어가기 싫슴다. 어머니가 없을땐, 아버진 나를 관계치 않고
쩍하면 취해서 한밤중에 집에 돌아오고 또 어머니가 귀국해 돌아오니깐 요즘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꾸 옥식각신하면서 쩍하면 또 외국간다, 갈라져서 혼자
살자하는 그런 모습들이 정말 싫슴다.
부모가 갈라진 우리반의 일부 불쌍한 애들을 보면서 어떤때는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슴다. 이제 나도 그런애들
신세가 되겠구나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나옴다…그리고 공부할 생각이 전혀
나지 않슴다…아버지 어머니 제발 갈라지지 마쇼! 우리 함께 살기쇼!
나두 이젠 컸슴다. 그리고 숙사생활하면서 평시 저금했던 돈을 써보니
어떻게 아껴써야 한다는것도, 부모가 번 돈이 쉽지 않게 온것이란것도
알았슴다. 소학교때, 어머니가 한국가고 없을때, 6.1절날아침 내가 저절로
머리를 다듬지 못해서 아버지가 해준다는것이 자꾸 비뚤게 머리금을 내면서
신경쓰는통에 울면서 혼자서 학교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함다.
그리고 누구던지 외국가지 말아주쇼!…내 빔다! 나도 이제는 소비돈도 적게
쓰고 열심히 공부하겠슴다! 조금만 참아주쇼. 이제 좋은 대학을 나와서 내가
사는 고장을 잘 가꾸어 아버지 어머니가 외국 가지 않아도 잘 살게 하겠슴다.
두고보쇼! 화이팅!…
천근되는 그 무엇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지지누른다. 머리가 뗑해난다. 근년에
저도 모르게 비뚤어진 삶의 자세를 이제야 똑바로 보아낼것만 같다. 너무나
소홀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때마침, 초인종소리가 울린다. 수영이겠구나 하면서 달려나가 문을 열던 나,
그만 아연지고 말았다. 동시에 얼어들었던 가슴이 한순간에 녹아버린 나다!
안해였다! 손에 뭔가 한꾸럭 들고 들어선다.
<<수영이가 그냥 집에 안들어왔어요?>>
<<여보, 그동안 어디 가있었소?>>
각기 나름대로 묻는 말이다. 안해가 내손에 여직 쥐여진 엽서를 바라본다.
나는 말없이 안해한테 엽서를 건네준다.엽서를 읽어내려가던 안해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집에 들어선 그대로 그냥 한 손에 들려있던 꾸럭이 맥없이 떨어진다.
바르르 떨리는 엽서우에 흘러내린 눈물이 소리없이 스며든다.
<<여보, 당신을 힘들게 고달픔만 가져다 준 이 못 난 남편을 욕해주오…>>
<<나쁜 사람!…>>
안해가 종주먹을 쥐고 내 가슴을 콩콩 두드린다. 그런채로 나는 안해를 와락
감싸안는다. 향긋한 안해의 체취가 진하게 풍겨온다. 안해가 내 품에 얼굴을
부비며 어깨를 가냘프게 들먹거린다. 이윽고 고개를 살며시 들고 말한다.
<<여보세요, 우리 이젠 수영이 여린 가슴에 더는 상처를 주지 말고. 부모답게
충실하게 살아가요!>> 나는 두 팔에 더욱더 억센 힘을 주었다. 상한 오른팔이
아직 아프긴 했지만…
며칠후, 우리 세식구가 단란하게 모여앉은 식탁에는 색다른 음식들이 풍요롭게
갖춰졌다. 맑고 명랑한 가정 분위기를 만끽하는 환한 얼굴들이다. 고중생이라는
수영이가 아직도 가끔 엄마 목을 끌어안고 좋아서 귀에 대고 뭐라 속삭인다.
그러는사이 투박한 손으로 슬그머니 와사비를 넣고 상추쌈 두개를 싸서 안해와
수영이 입에 넣어주고 능청스레 앉아있는다. 이윽고 안해와 수영이가 강한 매운
맛에 취해 눈물까지 찔끔 흘린다. 그리고는 나한테 복수한다고 야단이다.
하긴 오늘이 또 2007년4월1일 <만우절>이였으니깐.
이날 밤, 홀가분해진 나, 여느때보다 남자의 강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눈치빠른 안해가 말한다.
<<여보세요, 제가 잠시 집 떠난 원인중의 하나가 골절에 상극인 그것때문인데요.
당신 아직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요…>>
<<이뤈…>>억이 막힌다.
<<미안… 편히 주무세요.!>>안해가 곱게 눈을 흘기면서 말을 마치고는 베개을
안고 수영이 침실로 향한다.
그런 안해의 뒤모습에 그냥 맹랑한 웃음만 던져버리고 만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으로
뜨거운 난류가 굽이치는것을 어쩔수가 없는 나다. 그런데 오늘 밤 또 달랑 외홀로다!
하지만 고독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한것은 내가 사랑스런 안해와 딸애를 곁에
둔 맘의 부자이기때문이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봄내음 짙어가는 화사한
이 계절, 나 한 가정의 세대주로서, 완벽하고 조화로운 가정을 구축하는 성스러운
꿈을 잉태하고 그것을 무르익히기 위해 자신있게 하루 하루를 열어가면서 이 사회에
유익한 일원으로 부단히 자신을 충전해 가리라!
본문은 <<청년생활>>2007 . 7 기에 수록되였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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