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 그대!
지온 김인희
직장에서 우연히 들었던 음악이 마음에 안착하고 토닥토닥 위로를 해준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 . . 지나간 것은 자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 . .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분요한 일상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버렸다.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야속하다고 탓할 수는 없다. 팔을 걷어붙이고 의연하게 시간 앞에 선다. 2020년, 그와 행복한 동행을 하리라 다짐한다.
대학생 딸이 2년 전에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휴학하고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응원했다. 대학 졸업을 미루고 취업준비를 하는 신풍속도(?)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처음에 시험 준비를 하면서 딸은 부모에게 자신이 그린 청사진을 의욕에 찬 목소리로 브리핑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1년 만에 목표를 이루겠단다. 그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효도라고 호언장담(豪言壯談)을 했다. 온실안의 화초처럼 자라면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던 딸아이가 처음으로 통과하는 터널을 만난 셈이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밝고 아름다운 딸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두통에 시달리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못해서 체하는 일이 잦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중학교 때 교정했던 치아가 어긋나서 교정을 다시 했다. 독서실을 오가면서 공부에 시달리고 치과에서 다니면서 교정을 하느라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딸이 입는 옷이 헐렁해지면서 살이 쑥쑥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딸이 공부하는 동안 나도 성장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내가 앞서 걸으면서 길을 안내했고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걸을 때도 앞서서 발자국을 새겨두고 따라 걷도록 유도했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극성스러웠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러나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스스로와 했다. 성인이 된 딸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좌표를 설정하고 항해를 시작했으니 묵묵히 응원해주리라 거듭 다짐했다. 날마다 변화무쌍한 딸의 표정을 살피면서 불볕더위아래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가끔 자동차를 운전하여 외곽으로 나가서 차창을 내려주고 소리를 꽉 지르라고 했다. 하늘이 가득 내려앉은 넓은 평원에 앉아서 딸의 넋두리를 들어주면서 노을이 물러가고 별이 빛나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공유했다. 상대의 어려움을 못견뎌하고 미루어 짐작해서 앞서 헤아리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나. 보배처럼 아끼는 자녀의 외로운 걸음을 비켜서서 지켜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자녀를 등에 업고 달려가서 목적지에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서라. 내면에서 강하게 말렸다.
뜨거운 태양의 입김이 찬 기온에 닿아 서리꽃으로 피어난 계절에 궁남지에서 국화축제가 있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국화축제에서 어두운 딸의 얼굴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그날 차가운 딸아이 손을 잡고 축제장을 걸으면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사파이어 빛 하늘을 보고 눈부시게 핀 국화를 보면서도 딸은 끝내 미소를 짓지 않았다. 그날 밤에 옥상에 앉아 별을 헤아리면서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휴~~ 안도했다.
연말로 접어들고 달력이 마지막 한 장 남았을 때 딸에게 천안 충청창의인성교육원에서 독서논술 지도과정 수강을 함께 하자고 프러포즈를 했다. 지친 마음을 추스르고 재미있는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자고 유혹했다. 딸은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그렇게 우리 두 모녀의 천안행 나들이가 시작되었다. 자동차로 80분 소요되는 거리를 오가면서 딸은 예전처럼 밝게 웃으면서 대화를 했다. 독서논술 수업이 재미있고 훌륭하신 교수님 만난 것도 행운이라고 들떠있었다. 두 번째 수업을 다녀온 후에는 주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가서 박물관을 견학하고 수업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선수를 쳤다. 야호~~ 목적달성^^
우리의 처음 견학은 독립기념관으로 정했다. 딸은 천안박물관을 우선 가고 싶다고 했지만, 올해(2019년)가 기미독립선언(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후 백년이라는 내말에 두 손 들고 항복했다. 딸은 독립기념관 관람을 마친 후 학생 때와 감동이 다르다고 말하면서 표정이 의연해졌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뜨겁게 사랑하겠다고 주먹에 힘주고 독립투사처럼 선언하는 모습을 보고 내 가슴에서도 뜨거움이 복받쳤다. 그 순간은 우리도 임시정부요원이었고 독립군이었고 광복군이었다. 딸이 충절의 고장 충청도에서 태어나고 충청도에서 살고 있는 현실이 자랑스럽다고 연단에 선 연사처럼 역설하는 모습은 혼자보기 아까웠다. 천안박물관을 견학했을 때 천안이 우리나라의 요충지라고 우리는 약속한 듯이 똑같이 감동했다. 삼국시대 전성기를 나타내는 영상을 보았다. 고구려 전성기에는 천안이 고구려에 속했고, 백제의 전성기에는 백제에 속했고, 신라의 전성기에는 신라에 속했다. 우리는 동시에 아하! 그래서 천안이 한반도의 중심지이고 하늘아래 평안이 가득한 이름(天安)을 가졌구나하고 탄성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천안이 대한민국이다!’하고 외쳤다. 초등학생 두 아이와 동행하면서 박물관 체험을 하는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우리의 과거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하면서 하하호호 웃었다. 순간 우리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민망해서 도망치듯 박물관을 나왔다. 마지막 주에는 홍대용과학관을 관람했다. 과학관은 외곽에 있었고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충분히 감동할 수 있었다. 우주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호흡조차 멈추고 별을 소제로 한 사진을 관람했다. 나는 마치 은하철도 999를 탑승하고 우주 정거장에 내렸다고 착각을 했다. 사진제목을 메모하는 나를 보고 어른처럼 웃고 있는 딸이 곁에 있어서 행복했다. 딸이 어렸을 때는 전시관을 관람하면서 내가 말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성장한 딸이 시험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라고 덧붙여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할 때 딸의 손을 잡고 전시장을 걸으면서 마냥 행복했다. 관람을 마친 후 병천 아우내장터 맛집을 찾아서 순대볶음을 먹었는데 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 맛을 못 잊어서 이 주후 다시 찾았다는 사실도 우리 추억 속에 덤으로 저장했다. 그렇게 우리는 5주 동안 독서논술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자격검정시험에 합격하여 진로교육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자격증을 받은 날 딸은 ‘야호, 올 해 목표 하나 이루었다~!’하고 함성을 질렀다.
천안 충청창의인성교육원에 오가면서 딸은 밝은 미소를 찾았다. 어깨를 펴고 웃으면서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하는 매력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秀珍, 걱정하지 말고 또박또박 걸어라. 걷다가 터널을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의연하게 전진해라. 앞을 보고 걷다보면 반드시 밝은 빛이 나타나 출구로 인도할 거야. 네가 견디어내야 하는 네 몫을 의젓하게 감당해. 오솔길을 만나거든 잠시 쉬었다 가도 좋겠네. 작은 들꽃을 만져보고 시냇물을 만나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돌에 앉아서 시냇물에 발을 담구고 구름의 유영을 보고 새의 노래를 들어 봐. 햇빛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나뭇잎을 볼 수 있을 거야.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의 가치는 재벌의 자산과 견주어도 결코 초라해지지 않을 거야. 엄마는 장담할 수 있어. 너의 힘찬 전진에 모든 긍정적인 기운을 담아 응원한다. 그리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 언제나 너를 응원할거야. 걱정 말아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