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 : 정도제, 공희원, 김태현, 황다경, 허신
이번 시간에는 미국의 대표적 단편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많은 멤버들이 정해진 작품들을 다 읽지 못하고 왔어요. 기말 시험 때문이기도 했지만, 작품이 좀 어려운 느낌도 있었다고 하네요. 사실 에드거 앨런 포의 문체가 쉬운 편은 아니에요. 설정도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헷갈리는 면이 있어서 읽기에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도 메인 작품인 <어셔가의 몰락>과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나름 인기가 있었어요.
도제는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몇 편 읽어봤는데, 나름 흥미롭게 읽혔다고 해요. 다경이는 <도둑맞은 편지>에 최초의 탐정 ‘뒤팽’이 등장한다고 했더니 못 읽고 온 것을 아쉬워했어요. ‘뒤팽’은 ‘셜록 홈즈’의 큰삼촌 쯤 되는 탐정이죠.
에드거 앨런 포는 세 가지 정도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어요.
1.환상 문학의 거장
2.최초의 탐정 뒤팽의 창조자
3.논리와 환상(공포)=현실과 초현실을 뒤섞음
‘환상’을 영어로 뭐라고 하죠? 네, 모두들 대답했듯이 ‘판타지’라고 하죠. 그러니까 포의 소설은 판타지 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 등이 이 판타지에 해당하죠. 물론 포의 소설들은 대부분 짧은 단편들이고 공포의 요소가 강해서 해리 포터 시리즈와는 느낌이 사뭇 달라요. 하지만 같은 계열에 속하는 먼 선배...고조할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환상 문학 작가가 최초의 탐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하니 좀 신기하기도 하죠? 왜냐면 탐정은 굉장히 논리적인 캐릭터니까요. 언뜻 생각할 때 환상이나 판타지는 논리나 이성과는 좀 떨어져 있죠. 그런데 포는 환상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을 쓰면서, 동시에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도 썼어요. 말하자면 포는 판타지 문학의 선구자이면서 탐정 소설의 선구자이기도 한 셈이죠. 한 영역에서 선구자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포는 두 영역에서 선구자가 되었던 셈이예요.
게다가 포 소설을 보면 논리와 환상이 뒤섞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 이야기는 작품 이야기를 함께 나눠본 후에 정리를 또 해보았어요.
<어셔가의 몰락>은 여름에 읽으면 딱 좋은 분위기의 소설이에요. 이 작품을 두고서는 우리가 지난 시간에 다룬 오스카 와일드 <캔터빌의 유령>과 차이점을 이야기해봤어요.
-<어셔가의 몰락> 꽤 무서웠다. <캔터빌의 유령>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어셔가의 몰락>은 무섭지만 <캔터빌의 유령>은 코믹하다.
-이야기 자체가 완전히 다르지 않나? <캔터빌의 유령>은 유령 이야기지만, <어셔가의 몰락>은 유령 이야기가 아니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맞다. <어셔가의 몰락>에 나오는 여자는 유령이 아니다. 하지만 초현실적 분위기를 띠고 있어서 그 부분은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소설은 시점이 다른 것 같다. <어셔가의 몰락>은 유령(정확히 말하면 '무서운 초현실적 존재’)을 목격하는 사람(어셔의 친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된다. 근데 <캔터빌의 유령>은 유령 시점에서 진행된다.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
-바다에 발생한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간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정신을 잃지 않고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것들을 관찰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구덩이와 추>
-종교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인데, 이 사람이 감옥 속에서 받는 고문들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 주인공은 완전히 캄캄한 어둠 속에서 보폭으로 감옥의 크기를 재려한다. 근데 그러다 중간에 한 번 넘어지는 바람에 반대쪽으로 걷게 되고 결국 감옥 크기를 실제 크기의 두 배로 재게 된다. 이런 게 재미있었다.
-줄에 묶여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끝에 칼이 달린 추가 좌우로 흔들리며 내려온다는 설정도 긴장감 넘치고 무서웠다.
-그 와중에 쥐를 이용해서 묶인 줄을 푸는 주인공의 행동도 인상적이었다.
<검은 고양이>
-예전에 읽었을 때 무서웠는데, 이번에도 역시 무서웠다.
-주인공이 어째서 고양이도 죽이고 아내까지 죽일 정도로 포악해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콜 중독이 되는 바람에 성격이 잔인해졌다는 설정인데, 이 알콜 중독자의 시점에서 소설이 쓰여졌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왜 알콜 중독자의 말은 믿을 수 없지 않나.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인지도 불확실하고. 이런 점에서 이 <검은 고양이> 소설은 똑똑하고 논리적인 탐정 주인공이 나오는 <도둑맞은 편지>와 정반대인 것 같다.
<도둑맞은 편지>
-소설 읽을 때 되게 어려웠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읽었다. 누가 굉장히 중요한 편지를 숨겼고, 탐정이 그 편지를 찾는 이야기인데, 구석구석 다 뒤졌지만 못 찾았던 편지가 편지 보관함에 놓여 있었다는 줄거리다. 줄거리만 들으면 간단하고 재밌을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니 탐정이 막 늘어놓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친구가 탐정 ‘뒤팽’이 나오는 다른 소설 소개해준 적이 있다.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인데, 이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뒤팽’이라는 이름을 보고 ‘뤼팽’이 떠올랐다.
-그건 둘 다 프랑스 사람이라서 그렇다. 포는 미국 작가인데, 몇몇 소설들은 영국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 등 유럽을 배경으로 해서 썼다.
작품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특히 ‘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등장 인물 중 누구의 시점으로 서술하느냐, 인물의 시점으로 서술하느냐 아니면 작가의 시점으로 서술하느냐에 따라 작품 분위기, 작품 주제까지 달라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주인공들은 굉장히 이상한 사건, 기이한 사건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든지 완전히 캄캄한 지하 감옥에 갇힌다든지 하는 게 일상적으로 겪을 만한 사건은 아니죠. 이건 정말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이상한, 기이한 일들, 극단적인 상황들이에요.
그런데 우리 독자 입장에서는 포 소설의 주인공들 본인들이 이상한 인물로 보이기도 하죠.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이 사람들이 무척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정신줄을 놓지 않기 때문이에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정신을 잃고, 그냥 포기할 만한 상황인데도 계속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서 주변을 관찰해요. 심지어 관찰한 것을 토대로 분석도 하고 어떤 법칙을 발견해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의 주인공은 가볍고 원통형의 물체가 무겁고 원형의 물체보다 물에 천천히 가라앉는다는 법칙을 발견하죠. 그래서 처음에는 배에 꼭 매달려 있었지만, 나중에는 통을 하나 끌어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하죠. <구덩이와 추>의 주인공도 좀 비슷하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감옥의 크기를 재려한다든가, 칼이 달린 추가 내려오는 상황 속에서도 쥐를 이용해서 줄을 끊으려 한다든가 하는 노력을 해요.
요약하면 ‘포 소설 주인공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 자신이 겪고 있는 것들을 끝까지 관찰하고 감각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요? 사람은 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는 어떤 이상한 것, 기괴한 것, 무시무시한 것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반응을 해요. 일단은 끔찍하고 무섭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외면을 하려는 반응이 있어요. ‘뭐야 몰라 무서워’라는 반응이죠. 근데 또 다른 하나는 무서워하면서도 ‘저게 뭐지?’하면서 보려고 한다는 거예요. 두려움과 호기심, 이 두 가지 모순된 반응을 동시에 하게 된다는 거죠. 포의 소설은 이 중에서 후자, 즉 호기심에 좀더 초점을 맞춘 소설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호기심을 갖게 되면 무서움은 많이 사라지게 되죠. 그리고 호기심은 관찰과 분석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법칙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말하자면 에드거 앨런 포는 ‘환상(공포)에 대한 논리적 탐구를 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어요.
다음 시간에는 SF와 환상문학을 쓴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들 <안개 고동> <저 너머의 드넓은 세계> <태양의 황금 사과>를 읽을 차례네요. <날틀>, <금빛 연, 은빛 바람>도 추천해요. 소설집에 실린 다른 소설들도 재밌는 게 많으니 한번 읽어보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