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 「우공」, 『여씨춘추』 「유시람」, 『회남자』 「지형훈」, 『주례』 「직방씨」에 기록된 방위 체계와 물길을 산서성 남부 및 하내 지역을 중심으로 재고찰하여 단군조선의 초기 강역적 배경을 규명.
국사찾기협의회 사무처장 임기추박사
단군조선의 고대 강역에 대한 논의는 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이었는가 혹은 평양이었는가라는 평행선 상의 논쟁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의 전제는 조선과 국경을 맞댔던 고대 중국 왕조(하·상·주 및 연·한)의 지리적 팽창 과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핵심 지명들의 ‘동천(東遷) 현상’을 온전히 추적하지 못했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고대 중국의 천하관과 국경 인식이 수록된 가장 오래된 지리 사서인 『상서(尙書)』 「우공(禹貢)」, 『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람(有始覽)」,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地形訓)」, 『주례(周禮)』 「직방씨(職方氏)」를 정밀 분석하면, 이들이 규정한 기주(冀州), 유주(幽州), 하동(河東) 등 북방·동북방 경계 지명의 시원적 위치가 현재의 요녕성이나 하북성 동부가 아닌, 산서성(山西省) 남부 및 황하 북안의 하내(河內) 지역이었음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