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석: 질의와 응답 2552번. 예수의 증언 = 성령의 대언(예언) /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란 말씀의 의미. 2011-12-25. 계19:10, 요15:26, 계22:17
제목을 보면 계19:10절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사나 사람은 오직 종들로서 말씀을 받은 자의 직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10절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렇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교회는 직위체제가 아주 선명하단 생각이 됩니다.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감독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전달된다는 말이지요.
이것이 성경 전체의 흐름과 일치되지 않는듯 한데요? 이전에 질문했던 신부가 성도가 아니라 교회라고 하신 말씀의 설명이 빠진듯 합니다.
<응 답>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란 말씀의 의미.
계시를 받고 있는 요한은 자기에게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한 천사의 말을 듣고 그 천사에게 경배 하려 할때, 그 천사는 요한의 경배 받기를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하면서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는 말들 들려주었습니다.
이 천사가 전한 말의 뜻은 자기가 요한에게 보여준 모든 계시는 오직 성령이 대언해 주신 계시일 뿐 자신이 경배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에 관한 증거는 오직 성령의 사역이십니다. 주님이 "그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종말에 되어질 사건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셨지만 그 계시는 그 천사가 임의로 보여준 계시인 것이 아니라 성령의 대언이란 뜻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계시는 계시의 영에 의해 전달됩니다. 계시의 영은 곧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곧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모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이 주십니다. 비록 신분이 천사요 또 아무리 높은 천사라 할지라도 자기 임의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계시여야만 나타내 보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26). 천사나 선지자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은 성령이 주시는 예언과 계시의 전달자로서의 사명일 뿐입니다. 어떤 선지자나 교회의 목사가 하나님이 주시는 직접적인 계시를 받았다 해도 그 계시는 성령이 주시는 계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경배는 성삼위 하나님께만 드릴 뿐, 아무리 요한에게 놀라운 계시를 준 천사라도 경배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 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만 계시를 주시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이 교회나 주의 일을 위해 해야할 일에 대한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다 성령의 감동이나 역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만 계시록에 있는 일곱교회의 경우, "그 천사"가 그 교회 사자의 위치에 있는 종에게 계시의 내용을 써서 보내라는 명령을 받고 보냈으며 그 편지를 받은 대상이 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 있는 종이란 사실을 밝혀준 것이지 하나님의 명령의 직위체계가 반드시 교회의 종들을 통해서만 일률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계22:17절의 "성령과 신부"가 인류를 초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초대는 생명수 샘으로 오라고 하는 초대로 세상을 향해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성령과 신부의 초청으로 지금도 이 초청이 복음으로 온 세상에 전해지고 았는 것입니다. 형제는 여기 나오는 신부를 성도들과 연계시키려 하는데 성도들은 초청 받은 개별적인 존재요 교회는 주님이 몸과 머리를 이루고 있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성령과 신부가 초청자로써 목마른 인생들에게 "와서 값 없이 생명수를 마시라"고 목메어 외치는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모체는 성도들인 것이 아니라 교회입니다.
형제님, 이 문제는 이쯤 마감하는 것이 좋을듯 싶습니다. 형제가 이해하기 어려우시면 형제의 생각대로 믿으셔도 됩니다. 응답자의 견해나 형제의 견해나 별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문제 삼을만한 해석도 아닙니다.
2011년12월25일 민 병 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