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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나는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영화를 기다렸다.
그간 본 영화들, <파괴된 사나이>,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죽이고 싶어> 등에서
뭔가 부족한 것에 따른 아쉬움을 가졌던 나이기에
<시네마 천국>이나 <더 리더>처럼 은근한 여운이 있는 영화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일본 에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4년짜리 작은 아들의 추천과 부탁으로
보게 된 영화 <마루 밑 아리에티>,
주 관객이 아이들 탓이어서 그런지 극장 분위기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작들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만큼은 아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시선을 잡아 둘만큼은 되었다.
2.
일본, 시골 교외의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
14세 소인 소녀 아리에티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인간들의 물건을 몰래 빌려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인간의 눈에 띄면 즉시 그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호기심 많고 용감한 14세 소인 소녀 아리에티는 생전 처음으로 아빠를 따라 각설탕과 티슈 등 인간의 물건을 빌리러 나갔다가
심장병 치료를 위해 시골집을 찾은 소년 쇼우의 눈에 띄고 만다.
인간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엄마, 아빠에게 발각돼 당장 이 집을 떠나야 하지만 아리에티의 마음은 자꾸 쇼우를 향하고,
쇼우 또한 이들 소인 가족을 인간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소인 가족을 보호하려는 쇼우와 달리 이들을 노리는 가정부 아줌마가
쥐를 잡는 회사에 소인들을 잡아 달라고 연락을 취하면서 아리에티 가족은 큰 위험에 빠진다.
쇼우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 아리에티 가족이 결국 안전한 곳을 찾아
이사를 하게 되면서 쇼우와 아리에티의 우정은 끝이나게 된다.쇼우는 마지막으로 아리에티가 빌리려다가 실패한 각설탕을 주고
아리에티는 처음 쇼우를 만나러 갈 때 착용햇던 머리찌깨를 건네준다.
3.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일본 에니메이션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의 새 작품으로.
영국의 동화작가 메리 노튼의 '바로워즈'를 원작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과 각본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첫 연출에 나섰다.
극의 재미는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인간에게서 빌리면서(?) 살아온 小人의 설정에서 이미 시작되며,
각설탕, 쿠키 부스러기, 빨래집게, 못 등 인간에게는 사소한 물건들이
소인들의 일상에서는 아주 중요한,
그러면서도 전혀 새로운 물건으로 사용되는 아기자기함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인간 세상에 물건을 빌리러 갈 때 촘촘히 이어진 못을 계단처럼 이용하고,
양면테이프를 손발에 붙이고 식탁 위로 등산하듯 오르는 장면에서는
그 아이디어의 참신함에 저절로 잔잔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반면 참신한 발상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면서도 밋밋한
내용은 극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킨다.
상상력 또한 하야오 감독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표노>보다 많이 부족하며, 캐릭터 설정이나 구조적인 측면에서
기존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러한 문제점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과
세밀한 묘사, 예를 들어 집 앞 정원의 풀잎과 물방울 등과 아리에티네 주방기기 등,
그리고 인간의 물건을 빌리려고 길을 나서는 부녀가
귀걸이를 갈고리 삼아 줄을 매달고, 클라이밍 도구로 사용하고,
테이프를 이용해 식탁의 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장면도 흥미를 유발한다.
4. 영화 <마루밑 아리에티>는 3D 애니메이션이 범람하는 시대에
2D만의 감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꼭 새로운 것, 발전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오래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가끔은 CD의 맑고 깨끗한 소리보다는 오래된 레코드판의
슬쩍 긁히는 소리가 더 정겨운 것처럼......
묵은 된장처럼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
익숙함과 정겨움의 향을 내는 오래된 사람처럼...... |
첫댓글 쌤 덕분에 도서관에서 봤습니다 에니의 진수란 이런 것? 하면서 봤어요. 소재도 너무 참신햇고요 사랑스러움이 듬뿍서린 영화 그리고 쌤의 해설을 보니 더욱 좋은 영화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