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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음으로 복등화(覆燈火)이니 복사열의 반대로 내리비치는 화기운이다. 앞서 계묘,임인이 내리는 눈비라면 해가 비추니
만물이 만발한 모습이다.그러나 금여록이면서 백호이다.아마도 첨 개화의 어려움인가 한다.
독립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다.인묘공망으로 선친의 도움이 적다
영조임금.아나운서 이보경,나꼼수 김용민, 박하선, 백진희 ,오현경, 송혜교 등이 갑진일주이다.
남자는 무신,기유,임자생 여인이 좋고 여자는 임인,경자,정유,병신생 남자랑 결혼한다,
허리 디스크, 관절염증 ,뇌졸중, 피부병을 조심해야 한다
무극의 모습으로 개고,입고가 뒤섞힌 모습이다.
하원갑자(유금)
2024년 구괘 10년
2012년에 이어서 12년만에, 세계 정치를 갈아엎을 선거가 몰려있는 해이다.
중화민국(대만): 제16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대선) + 제11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총선) (1월 13일)
러시아: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3월 17일)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4월 10일)
유럽연합: 유럽의회 총선거 (5월)
미국: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11월 5일)
60년전 한일국교 협상에 반대하는 6·3 항쟁 발발하여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 통킹 만 사건: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미국 구축함을 공격하다.
- 한국군의 월남 파병안 국회 통과.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은 도예종, 양춘우 ,김세화 ,배재현 등과 언론인, 학생 41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통상 '제1차 인혁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중앙정보부는 "이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노동당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반(反)정부 조직인 인민혁명당(인혁당)을 결성하여 각계 인사를 모으면서 국가 사변(事變)을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1664년 유럽에 큰 혜성이 나타나다
프랑스 서인도 회사 설립 (동인도 회사 : - 1769년, 서인도 회사 : - 1674년)
프랑스령 기아나 프랑스인의 본격적인 정착이 시작된다.
네덜란드 식민지 뉴암스테르담, 영국에 빼앗기고, 뉴욕으로 개명
60년전 이탈리아에서 케플러 초신성이 관측되었다.
프랑스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였다
잉글랜드 - 스페인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합스부르크령 헝가리 (슬로바키아)에서 보츠카이가 이끄는 프로테스탄트 반란군이 오스만 제국의 후원 하에 봉기하였다
1604년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펀디 만 일대를 탐험하고 원주민과 모피를 교환하였으며 이를 통해 겨울을 나는 법을 배운 샹플랭 일행은 그 일대에 일시적으로 정착을 하였다. 하지만 남쪽의 영국인들의 북상에 위협을 느낀 샹플랭은 원주민들의 도움으로 세인트로렌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1608년 모피 교역소를 세웠는데 이 교역소가 퀘벡 시의 시초가 된다.
50년전 광해군 영창대군사사
40년전 인조반정2년차
30년전 갑술년 영국령 아메리카에서 메릴랜드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이원익사망
20년전 갑신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10년전 1차 나선정벌
20년후 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신성 동맹을 창설하였다.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테티스를 발견하였다.
아이작 뉴턴이 고전물리의 집대성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제원리를 발표하였다
30년후 숙종 다시 이이와 성혼을 문묘에 종향하고 반교문을 내리다.갑술환국
40년후 벨레즈-말라가 해전이 일어났다
50년후 영국에서 앤 여왕이 서거하고 조지 1세가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가 끝나고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 바르셀로나 공방전이 끝났다.
60년후 영조가 조선의 21번째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칸트탄생
1304년 충렬왕국학에 대성전이 완성되다.
왕정의 농서집필 교서 내려지니 나중에 정화의 군대에 의해 유럽에 동양의 과학이 전해진다.
충선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1303∼1304년 광양군(光陽君)최성지(崔誠之)를 데리고 원나라 북경에 가서, 돈 100근을 주고 스승을 구하여 수시력술을 배웠다. 충선왕이 귀국하여 곧 즉위하였는데, 그가 배워온 역수
(曆數)는 그 뒤 고려 학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60년전 아이유브 왕조가 불러들인 호라즘 왕조의 잔당에게 다윗 탑의 십자군 수비대가 항복하며 예루살렘이 다시 이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50년전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콘라딘이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30년전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전함 900척과 병사 3만 5천으로 구성된 여몽연합군이 합포를 출항하며 제 1차 일본 원정이 시작되었다
20년전 나폴리 만 전투에서 앙주 가문의 카를로 2세가 아라곤 왕국 해군에 사로잡혔다.
- 원나라의 안남 원정군이 호남의 형산을 출발하였다.사할린 원정
10년전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간의 동맹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서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20년후 일본에서 쇼추의 변이 일어났다. (고다이고 덴노의 가마쿠라 막부 타도 계획이 호조씨에게 들통나 덴노의 측근이 사도 섬으로 유배되었다.)
남아시아 일대에 흑사병이 유행하였다.
30년후 피렌체 주교가 피렌체 대성당의 초석을 놓아 공사가 시작되었다.
아드라미티온 해전에서 베네치아 - 로도스 기사단의 함대가 터키의 카라스 토후국 함대를 격파하였다
원나라의 하북 지방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40년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플로린, 레오파드, 헬름의 세 종류의 금화를 도입하였으나 기존의 실링, 펜니와의 금 함유량이 맞지 않아 8월 내로 폐기되었다
50년후 요안니스 5세가 콘스탄티노플에 입성, 비잔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갈리폴리 (겔리볼루) 를 점령하며, 유럽 대륙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60년후 고려의 시문집인 가정집이 간행되었다.
노국공주 이듬해사망, 공민왕고립무원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야기에우워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944년 광평시랑 한현규와 예빈경 김염을 진(晋)나라에 보내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리고 거란족을 쳐부순 것을 하례하였다.
그러나 2년만에 진의 수도가 함락된다.
이복 동생 왕요와 왕소가 왕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규(王規)는 945년(혜종 2) 이 사실을 알렸으나 혜종은 둘을 벌하지 않았다. 혜종이 이 둘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불만을 품은 왕규는 자신의 외손자인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다.
60년전- 카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황소의 난, 끝남
50년전 궁예가 명주에 들어가 농민군을 규합해 장군에 추대 됨
30년전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갈리시아의 오르도뇨 2세가 레온 왕국의 왕도 겸하게 되며, 레온 - 갈리시아 왕국의 판도는 코임브라 백작령, 포르투 백작령,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을 포함하게 된다. 이 동군연합은 10여년간 지속된다
20년전 마자르족들이 이탈리아의 도시 파비아를 불태웠다.
기나라가 멸망하였다
10년전 맹지상이 후촉을 건국하고 후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의 맹활약으로 고려가 또다시 후백제에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감으로써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의 우위가 굳어지다. 이후 후백제는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20년후 베네딕토 5세가 폐위되고 레오 8세가 132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3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마그라와 부족 동맹군과 모로코의 이드리시 왕조를 멸망시키고 페스 일대 점령.
세비야에서 일어난 반 우마이야 봉기가 진압되었다
40년후 알 만수르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이 바르셀로나를 습격하고 레온 인근의 아스토르가를 공격하였다.
50년후 파티마 왕조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요나라군이 송나라로 진격하였다.
거란이 몽골에 친 톨고이 (진주) 성을 쌓고 건안군 절도사사를 배치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가 폴란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584년 진평왕 584년까지 조모(할머니)인 사도왕후 박씨가 섭정을 맡았다.
영양왕 돌궐을 점령하였으나 거란 6개부족이 수나라로 이탈하자 압박을 가한다.
진평왕 584년 2월에는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바꾸고 3월에는 국가의 공부(貢賦)를 관장하는 조부(調府)를 설치하고 또 거승(車乘)을 관장하는 승부(乘府)를 설치하는 등 각종 국가 기관을 설치하고 심지어 연호까지 독자적으로 수립하는 등 왕권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60년전 성왕 524년 양나라(梁)와 국교를 강화하여 양무제로부터 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수동 장군 백제 왕에 책봉되었다
북위6진의난 524년 4월에 고평진에서 혁련은이 반란을 일으켜 파육한발릉에게 협력하였고 토벌군을 지휘하던 임회왕 원욱이 참패하면서 이 반란세력은 동으로는 요서, 서로는 감숙에 이르는 북변 전역을 장악하였고 북위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변방의 여러 주에서 호응하는 반란이 일어난다.
북위는 이들에 대해 토벌을 시도했고, 유연에게도 협력을 구했다.
50년전 534년 파푸아 산에서 저항하던 겔리메르가 비잔틴 제국에게 항복하며 반달 왕국이 멸망하였다.
북위의 황제인 효무제가 실권자 고환을 피하여 장안의 우문태에게 간 이후, 고환은 효정제를 옹립하고 수도를 업으로 옮겼다. 이후 우문태는 여자 문제로 효무제와 사이가 벌어져 그를 살해하고 문제를 즉위시켰다. 이렇게 북위는 동위와 서위로 분열되었다.
테오다하드가 동고트 왕국의 제 3대 국왕이 되었다.
톨레도가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40년전 544년 다라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사산조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베트남에서 이남제에 의해서 전 레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티움 제국의 베살리우스 장군이 오트란토를 공격하던 토틸라 왕의 동고트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30년전 백제 위덕왕 성왕이 관산성전투에서 죽고
신라와의 120년 평화가 끝남.
국정을 맡고 몇개월 후 554년 9월 신라 변경 진성을 공격해 상당수의 백성과 말을 탈취했지만 중요한 영토 확장은 실패한 소극적 성과였다.
그리고 이어 귀신 같이 고구려가 쳐들어왔다. 성왕이 전사한지 불과 3개월 만에 쳐들어 온 것이다.고구려가 금강 유역 일대인 웅천성(혹은 안성천 일대로 비정된다)까지 단숨에 밀고 들어오자 위덕왕은 이를 방어해냈다
20년전 564년 사다함죽고 김서현 : 수로왕의 12대손, 김유신의 아버지탄생
20년후 604년 수나라의 태자 양광이 장안 인수궁 대보전에서 부황 수문제 양견을 시해하였다. 뒤이어, 형인 양용에게 조작된 유언장을 보내어 자결하라 일렀으나 겁을 먹고 자결하지 않자, 자신의 근위장 우문지급을 보내 살해했다. 이후 태자 양광은 수나라의 제 2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30년후 샤흐르바라즈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예루살렘을 약탈하였다.
40년후 624년바드르 전투에서 무함마드의 메디나 무슬림군이 메카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문수사가 창건되었다.
서고트 왕국, 이베리아 동남 해안의 비잔틴 세력 일소하고 이베리아 반도 통일
60년후
이슬람의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가 페르시아계 노예인 피루즈 나하반디에게 암살당했다. 66년후 사산조멸망
224년 삼국지 손권,제갈량만 남다
파르티야 망하고 사산조페르시아가 건국된다.
427년간 유지됨.
224년 내해이사금무렵 연진은 음력 7월 봉산(烽山) 아래에서 백제와 싸워 승리하고 1천기를 죽이고 사로잡은 뒤 음력 8월 봉산에 성을 쌓았다
60년전 로마 제국의 총독인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파르티아를 공격하였다.
신라백제간 60년 마지막 평화의 해,
50년전 후한말기,기후가 한랭해지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
30년전 조조가 서주를 다시 공격하여 서주의 여러 마을들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하고 있던 도중 장막, 진궁 등이 조조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들은 여포를 끌여들여 조조의 근거지를 공격하도록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여포를 치기 위해 군사를 돌렸다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제2차 이소스 전투 : 이소스 평원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전 조조가 업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10년전 구수왕이 백제 6대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헌제황후 복씨와 그 일가를 모두 처형하였다
20년후 244년낙곡대전 : 위나라의 조상이 촉나라 한중을 공격했으나 왕평, 비의의 반격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위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로마군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를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서 살해하고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로마 제국의 새 황제로 옹립시켰다. 황제가 된 필리푸스는 즉시 사푸르1세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30년후 254년조예 사후 황제 조방이 사마사에게 폐위된 후, 공경들과 상의한 사마사에 의해 마지막왕 조모가 옹립되었다
40년후 강유와 종회가 촉한을 부흥시키고자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손호가 오나라 4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로마 제국이 갈리아 제국, 팔미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60년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기독교 박해로 유명한 황제라 그런지, 이집트의 기독교 분파인 콥트 정교회에서는, 이 해에 박해정책이 시작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해를 순교력 원년으로 한다.
유례 이사금이 신라 14대 국왕이 되었다
bc137년 남월 국내에서는 황제 무제(武帝) 칭호를 그대로 쓴다. 조타 (趙陀)는 BC 137년 죽는데 나이가 무려 101세 였다. 군주치고 이렇게 장수한 예가 드물다.
bc497년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소포클레스
bc858년 아라무 또는 아라메는 우라르투의 최초의 왕이다
하원갑자(묘목) 선천역 바뀐 100년
1844년 나폴레옹하 장군이었던 칼 14세 요한 사망하여 아들이 스웨덴왕 즉위
왕샤 조약을 통해 미국과 청나라가 국교를 맺다.
-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만나다
5월 24일 - 새뮤얼 핀리 브리즈 모스, 모스 전신기로 전신에 성공.
6월 6일 - 런던에서 조지 윌리엄스에 의해 YMCA설립.
60년전 이승훈이 이벽의 집에서 김범우에게 세례를 주었다. -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이벽, 이가환, 이승훈과 권일신 등은, 신자가 늘어나 이벽의 집으로는 비좁아지자, 한성부 명례방에 있는 좀더 넓은 김범우의 집에서 이어서, 정기적으로 모여 미사를 집전하고 교리 공부 등을 시작하였다. 이로서 명례방공동체가 생겨났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유명한 등차수열의 합 공식, (n(n+1))/2를 7세 때 생각해 냄.
조선의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에 관한 역사서인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함
50년전 테르미도르 반동: 공포정치를 일삼던 로베스피에르가 국민공회에 의하여 체포. 다음날 곧바로 처형된다.
청나라의 주문모 신부가 한국에 입국
30년전 루이 16세의 동생이 왕위에 추대되면서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다.
-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를 떠나다
미영전쟁: 영국군이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함락하다.
유럽의 신질서를 세우기 위한 빈 회의가 개최되었다.
10년전 영국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시초인 구빈법(Poor Law)이 발효되다.
-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화재로 피해를 입다.
헌종이 조선의 24대 국왕으로 즉위하다
20년후 고종즉위
슐레스비히-홀스타인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이 승리했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협상에 따라 양국이 이 지역을 분할 점령
30년후 고종이 흥선 대원군의 섭정에서 벗어나 친정 선포.
50년후 베트남을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 제3공화국 사이에푸저우 전투를 시작으로 청불전쟁이 발발했다.갑신정변
50년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악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는 갑오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에 청나라와 일본이 개입하면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나마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중심 국가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일본 제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여 주변국에 대한 공격적인 침략 정책에 열을 올리게 된다
60년후 - 대한제국 영세 중립국가 선언. 그 사실이 청나라의 치푸에서 신문에 발신. - 러일 전쟁: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 포고.
- 한일 의정서 체결.
1484년 소금 전쟁이 바뇰로 조약으로 종료되었다.
포르투갈에서 지원을 끌어내는 데에 실패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에스파냐로의 여정을 떠나 이듬해에 도달한다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되었으며, 1484년 8월 29일에는 그의 뒤를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어 인노첸시오 8세로서 즉위하게 되었다
60년전 명3대 영락제 1424년 5번째 몽골 원정에 직접 나섰다가 병을 얻었고 결국 진중에서 죽음을 맞았다. 향년 65세. 영락제가 죽자 국정의 혼란을 우려한 신하들은 마치 황제가 살아 있는 것처럼 식사를 올리기도 했다
50년전 -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
체코 내전 - 리판 전투에서 온건파인 양형영성체파가 강경파인 타보르파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 사령관 프로코프 벨리키를 전사시켰다
30년전 로디 조약이 체결되어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 간의 분쟁이 종식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되었다.
20년전 정통제 : 명 제 6대 황제사망
- 코시모 데 메디치 : 피렌체의 군주 사망
10년전 부르고뉴 공작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였다.
서거정이 시화집 동인시화를 간행하였다.
20년후-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콜럼버스의 마지막 항해인 4차 항해가 종결되었다
30년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 사이에서 찰디란 전투가 발발하였다.
- 오르샤 전투가 발발하였다
40년후 독일 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
50년후 퀴벡은 소수의 원주민들이 살던 곳으로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이 지역을 발견하여 이 일대를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하였다
60년후 로마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60년후 중종사망.인종 즉위. 사림진출증가
1124년 고려 인종 이자겸은 다른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될 경우 외척 세력이 자신에게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하여 1124년에는 셋째 딸을, 이듬해에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비로 삼게 했다.
1124년 음력 1월 모친상을 당해 표면적으로는 관직에서 물러났으나, 실제로는 최홍재가 자신을 해칠 것을 우려하여 욕지도로 귀양보내는 등 여전히 권세를 부렸다
60년전 아라곤 북쪽 지방에 위치한 사라고사 토후국의 에브로 강 이북 방어요새 바르바스트로 공성전에 교황 알렉산데르 2세의 허가를 받은 프랑스 일대 영주들이 아라곤 왕국을 도우러 간다. 아키텐 공이 주도한 작전으로 요새가 40여일 후에 함락되었다. 이는 역사가들에게 십자군 이전의 십자군이라 불린다
. 잉글랜드의 왕이되는 해럴드 고드윈슨의 배가 노르망디에 난파하였고, 공작 기욤 (윌리엄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한 후 풀려났다. 이는 이후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의 명분 중 하나가
몽골 최초칸 카불칸탄생
50년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일 7세가 정교와 가톨릭 간의 통합을 약속하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요나라 황제가 모든 거란인이 가문 명을 이름에 덧붙이자는 제안을 각하하였다
30년전 송철종이 신법을 전면 부활시켰다.
20년전 톡테킨이 다마스쿠스의 에미르가 되어 부리 왕조가 세워졌다. (셀주크 제국의 봉신)
룸 셀주크의 킬리지 아르슬란이 다니슈멘드 왕조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10년전 여진족 연맹장 완안아구타가 거란에 선전포고 하였다.
출하점 전투에서 아골타의 여진 군대가 요나라의 거란 군대를 대파하고 영강주(송원)을 점령하였다.
20년후장기 왕조의 아미드 앗 딘 장기에 의하여 에데사가 함락되며 에데사 백국이 멸망하였다.
무라비트 왕조의 모로코 방면 사령관이자 카탈루냐출신의 용병인 로베르테르가 사망하여 무와히드 왕조의 마그레브 정복이 가속화된다.
30년후 장기 왕조 제 2대 술탄 누르 앗 딘이 다마스쿠스를 장악하였다.
- 스티븐 1세의 사망으로 잉글랜드 왕위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앙주 백작 헨리에게 돌아갔다.
40년후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성직자를 교회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재판할 수 있도록 한 클라렌든 칙령을 통과시켰다.
50년후 고려 조위총이 무신정권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튤레스 전투에서 아일랜드 인들이 앵글로 - 노르만 군대를 패배시켰다.
마지막 왕이 자살하며 톨텍이 멸망하였다.
6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6차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하였다. (~1186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가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에게 세금 징수를 보조할 것을 요구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의 명으로 파리의 도로가 정비되었다
테무진 일가에 다시 고난이 닥친 것은 1184년이었다. 예수게이는 후엘룬을 메르키트로부터 약탈하여 결혼했는데, 이 일 이후로 메르키트는 예수게이의 일족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1184년, 메르키트는 테무진 일가를 습격하여 그의 아내 보르테를 약탈한다.
아직도 이렇다 할 지지 세력이 없던 테무진은 토그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때 테무진은 혼수품으로 받았던 모피 외투를 옹 칸에게 바치며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토그릴은 테무진에게 2만의 병력을 주었으며, 자무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자무카는 테무진과 어릴 적 안다를 맺은 사이로, 당시 막 자지라트 (쟈다란이라고도 불림)의 군주로 올라선 상태였다. 자무카는 흔쾌히 테무진을 도와 메르키트를 공격했다. 토그릴과 자무카의 협력으로 테무진은 보르테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763년 당은 토번의 왕이던 치쏭데찬(赤松德贊)의 분노를 이끌어내 763년,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함
60년전 안록산.사사명탄생
50년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20년전 네 칼리파의 해
위구르족이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건국하였다.
20년후 간무 천황이 일본의 수도를 나가오카로 천도하였다.
30년후 교토가 일본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나라 시대가 끝나고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카롤루스 대제가 독일 북서부의 아헨에 궁정과 왕실 교회를 짓고,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사실상의 수도로 정했다.
바이킹이 잉글랜드 동북부 노섬브리아 왕국의 재로를 습격하였다.
40년후 카롤루스 대제가 작센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크라소스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아바스 왕조군의 급습으로 대패하였다
60년후 당목종사망.큰형 이녕이 요절하고, 헌종이 왕수징에게 독살된 후 옹립되었다. 작은형 이운은 제거되었으며 4년 동안 철저히 왕수징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약(금단)을 섭취하다 사망하였다.
404년
고구려가 후연을 쳐서 유주(허베이)를 함락시켰다. 이때 왜군이 수륙 양면으로 고구려의 대방(황해도) 지역을 침공하자, 광개토왕이 직접 군사를 일으켜 평양에서 왜를 무찔렀다.
동진(東晉)의 유유(劉裕)가 거병하여 환현(桓玄)을 격파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60년전 사마담이 동진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비류왕죽고 계왕등극
344년, 왜왕이 다시 공주와 혼례를 요청해오나 공주가 이미 결혼했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사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라는 석우로가 왜인들에 의해 끔찍하게 화형당해 죽었던 걸 생각해보면 흘해 이사금은 일본이 죽도록 싫었을 것이다
이후 왜국과 전쟁
전연이 고구려를 침입한시절
콘스탄티우스 2세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샤푸르 2세가 이끄는 사산조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전 훈족과 알란족의 전쟁이 종료되었다.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20년전 고국양왕이 고구려 제18대 국왕이 되었다.
침류왕이 백제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다.
20년후 유송의 황제 유의부가 서선지와 단도제 등에 의하여 폐위되었다. 유의부는 폐위된 이후 오군(呉郡)의 금창정(金昌亭)에 유폐되고 영양왕으로 봉해졌다.
30년후 비잔티움 제국이 훈족에게 공물을 바쳤다
40년후 444년에는 서라벌까지 쳐들어와 10일간 포위했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퇴각하는데,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눌지 마립간은 군사를 이끌고 왜군의 뒤를 무리하게 쫓았다가 대패한다. 절반의 군사를 잃고 산으로 도망갔으나 왜군들에게 포위당하는데, 다행히도 짙은 안개가 끼어 포위망을 탈출하고 왜군들은 물러간다
50년후 454년 7월 장수왕이 신라의 북쪽 변방을 공격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있다
60년후 유자업이 유송 5대 황제가 되었다
왜군이 전해까지 강성 신라침입
44년 고구려(高句麗) 대무신왕(大武神王) 27년 / 민중왕(閔中王) 원년
44년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다시 낙랑을 정복하여 살수(薩水) 이남을 한나라 영토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측 기록에 따르면 광무제가 낙랑을 회복하였던 것은 30년의 일로, 이 시기에는 군사 활동이 없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기록이 오기(誤記)이며 살수가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확정되었던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멸망한 낙랑의 유민 5000명은 신라로 투항하였다.
60년전 아르미니우스 : 게르만족 지도자 탄생
서기9년 게르만을 로마군으로부터 구함
60년후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트라야누스 다리가 건설되었다.
로마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운석이 비처럼 쏟아지다 실직의 반란을 평정하다
BC 317년경 마우리아왕조를 창건한 찬드라굽타 BC 31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동방원정 시작
Agathokles는 BC 317년 용병을 거느리고 다시 시라쿠사로 귀환하여 참주가 되었다
혜왕 원년(기원전 676년)에 즉위했다. 할아버지 주 장왕의 애첩 왕요의 아들로 장왕에게 사랑을 받은 작은아버지 자퇴(子頹)의 일파를 탄압하여, 자퇴의 스승 위국 등 대신들의 장원을 빼앗아 유(짐승을 기르는 곳)로 만들었다. 또 대부 자금(子禽), 변백(邊伯), 축궤(祝?), 첨보(詹父)의 재산을 침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