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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갑자(신금)
1990년 10월3일 독일통일
1월 22일 - 3당합당을 발표하다.
2월 9일 -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다.
3월 21일 - 나미비아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하다.4월 23일 - 나미비아, 유엔에 가입하다.
4월 24일 - 미국 허블 우주 망원경을 발사하다
케플러죽고360년만
5월 22일 - 예멘의 통일, 북예멘과 남예멘이 하나의 예멘으로 통일되다.6월 23일 - 몰도바가 독립을 선언하다.
벨라루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다.
8월 2일 - 걸프 전쟁: 이라크 쿠웨이트침공
60년전 조선.일본 대풍년으로 쌀값 폭락.
, 미국의 뉴욕 증권 거래소의 주식 가격 폭락과 함께 세계 대공황이 시작됐다.
대량생산된 제품 팔곳이 없는것.
이후 1930년대 내내 전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길고 혹독한 경기 침체 속으로 빠져든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
이정숙의 오빠생각이 공전의 히트를 친다.
남만주에서의 전해
조선혁명군 조직 남만주 일대의 군정부인 국민부를 지지 육성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이진탁, 양세봉)
-항일전는 중국 의용군과 연합함.
북만주에서의 전해 한국독립군조직 : 혁신의회 계열의 인사들이(김좌진, 지청천) 조직하여 중국 호로군과 연합하게됨.
김구.조소앙.이동녕 한국독립당을 설립하여 임시정부의 여당이 됨
미주 한인협회 조용하 등이 설립.
아나키즘 유자명.정화암 등은 상해에 남화한인청년동맹 설립.
50년전 일본 제국의 중화민국 침공은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 반면 지배하의 한반도는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 모진 수난과 고통을 당해왔던 해이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잇따라 조선총독부의 폐간명령에 따라 강제폐간되었고 모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앞으로는 창씨개명제도를 도입하여 일본인들이 쓰던 성씨와 이름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라는 훈령이 내려지는 등 민족말살 정책이 마수를 드러내었던 때였다.
1940년 9월 17일 중국의 임시 수도였던 충칭에 정착하면서 광복군 총사령부의 성립을 보게 되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하여 총사령에 지청천[池靑天, 본명: 지대형(池大亨)], 참모장에 이범석(李範奭), 총무 처장에 최용덕(崔用德), 참모 처장에 채원개(蔡元凱), 부관 처장에 황학수(黃學秀), 경리 처장 겸 정훈처장에 안훈(安勳, 본명 趙擎韓), 훈련 처장에 송호(宋虎, 본명 宋虎聲), 군무 처장에 유진동(劉振東) 등이 각각 임명되었다.
김책은 1940년 봄에 있은 수룡현 전투에서 일본 관동군을 대파하여 명성을 얻었다. 1940년 11월부터 일본 관동군의 만주 항일군대 대토벌로 상당수가 소련으로 피신함
40년전.6.25터짐
30년전 4.19의거
30년후
1630년엔 조선의 인조의 셋째 아들 이요가 인평대군에 봉해지다.
59세 케플러사망.30년전쟁으로 무덤소실
그가 죽던 때 하늘에서 유성우가 내렸다고 한다. 천체물리학의 기초를 연 학자의 죽음다운 사건. 케플러가 죽은 날짜는 황소자리 유성우와 사자자리 유성우가 관측될 무렵이므로, 아마 그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였음직하다.
명숭정제 2년명나라의 마지막 불꽃, 그러나 독단적이고 의심많은 성격으로 인해 끝내 비극을 맞이한 인물
누르하치를 죽게한 영원성의 원숭환 억울한 사망.
1630년에 700명을 태운 아르벨라호를 탄 리더 존 위스롭 지도하 메사츄세츠에 정착한다
영국령 뉴 잉글랜드의 항구도시 보스턴이 건설되었다
찰스2세 즉위
케플러가 잠들다.60년후엔 뉴턴이 활약.
1547년 이반4세 짜르
60년전 이듬해 케플러탄생.
이황사망(양력)
일본에서 이시야마 전투가 발발하였다.
한라산이 마지막으로 분화하였다
53년전
50년전 포르투갈이 일본 나가사키에 거점 (상관) 을 개설하였다.
포르투갈 왕통의 단절로 이베리아 연합이 결성되었다
40년전 네덜란드에서 여러 선박 회사들이 세워졌다.
30년전 -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발발하였다.
조선은 여진족을 처절하게 정벌함.
- 영국에서 동인도 회사 (EIC)가 설립되었다
지동설의 부르노 화형됨.
20년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목성의 갈릴레이 위성을 발견하였다.
- 조선의 한의사 허준이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10년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코드에 상륙하여 플리머스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10년후 찰스 1세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신자들이 화의를 맺으면서 주교 전쟁이 일단락.
- 포르투갈 왕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반란을 일으키다
20년후 시계공 스테판 파플러가 뉘른베르크에서 삼륜 휠체어를 발명하였다.
30년후 훅의 법칙이 정의되었다.
잉글랜드에서 찰스2세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잉글랜드에서 왕립학회가 창립되었다.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 스페인 공주 마리 테레즈와 결혼.
40년후
조선에서 경신대기근이 발발하였다.
50년후 경신환국이 일어나 남인 일파가 대거 실각하였다.
60년후 장희빈이 중전의 자리에 오른다.
조선 숙종이 아들 윤을 왕세자로 책봉한다.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명명.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 동부 콜카타 (캘커타) 지역을 받았다.
보인 강 전투 발발
1270년.고려의 서북면에 최탄이 귀부한 동녕부가 설치.
고려왕실의 무인에 대한 반격으로
삼별초의 난 일어나나 원종은 해산을 지시한다.삼별초와 홍규.송송례의 연합으로
임유무를 제거하여 무신정권 종결,경인년 발생한 무신정변 결국 100년 지나 경오년 끝난다.
개경으로 천도.
8차십자군. 토마스아퀴나스 신학대전 집필
교황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폐지하고 파리 대학을 규탄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예쿠노 알마크가 자그위 왕조를 무너뜨리고 1974년까지 지속되는 솔로몬 왕조를 개창하였다
루이9세죽고 필리프 3세가 카페 왕조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69년전 영국리처드왕 사망
60년전 스웨덴의 이전 왕인 스베르케르 2세가 스웨덴의 왕 에리크 10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조치가 이끈 몽골 제국 군대가 키르기스를 정복했다.
몽골 제국이 금나라에 대한 복속을 철회하였다
1210년 서하의 항복으로 마무리
50년전1220년 가을 몽고는 콰레즘제국을 멸망시키고 아무-다리야강 이북의 모든 지역을 석권해버렸다
- 스웨덴, 리훌라 전투에서 에스토니아에 패전.
40년전 튜튼 기사단과 콘라드 1세 간 크루슈비츠 조약 체결, 이로써 독일 기사단국 (~1525) 이 성립.
- 카이쿠바드 1세가 이끄는 룸 술탄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연합군이 잘랄 웃딘이 이끄는 호라즘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고, 이듬해 호라즘 왕조는 멸망하였다.
페르난도 3세의 카스티야 왕국이 레온 왕국, 갈리시아 왕국의 왕위도 차지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레온 - 카스티야)
서아프리카에서 순디아타가 말리 제국을 세웠다
30년전 - 바투의 몽골 서정군이 키예프를 함락하였다.
노르웨이의 내전이 끝났다.
포르투갈 국왕 산초 2세가 아야몬테를 함락하여 남부 해안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아랍인 투안 마쉬카가 필리핀 남서부의 술루 제도로 항해하여 이슬람을 전파하였다.
20년전 바투 칸이 시베리아에서 쿠릴타이를 열어 구유크 칸의 후계 문제를 논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사망하여 롬바르디아 지방의 군사 동맹인 롬바르디아 도시동맹이 해산하였다.
이집트에 맘루크 왕조가 수립되었다.
중세 온난 기후가 끝나고 소빙하기가 시작되었다
10년전 쿠빌라이 칸이 몽골 제국의 칸이 되었다.
- 쿠빌라이 칸이 남송의 재상 가사도에게 사신을 보냈으나 그에 의해 구금되었다.
- 크레센브렌 전투에서 보헤미아의 왕 오토카르 2세가 헝가리의 왕 벨라 4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스트리아를 정복하엿다.
바이바르스가 사이프 앗 딘 쿠투즈를 암살하고 스스로 맘루크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 일 칸국의 군대가 알레포를 함락하고 남진했으나 1차 홈스 전투에서 맘루크 왕조에 패하여 후퇴하였다.
9월 3일 -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바이바르스가 지휘한 맘루크 왕조군이 몽골 제국군을 격파하였다
맘루크 왕조가 시리아의 아이유브 왕조도 멸하고 시리아를 제국에 편입하였다.
프랑스의 사르트르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10년후 원나라 군대가 미얀마 북부의 미엔 왕국에 대한 침공을 시작하였다. (~1284년)
뉴질랜드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다.
링컨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원나라가 일본 원정을 위하여 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다.
불가리아 제2제국의 차르 아센 3세가 투르노보에서 도주하여 아센 왕조가 끝났다.
20년후 카다안의 침입을 받은 고려에 원나라의 진압군이 파견되었다.
- 베르게르가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고려 충렬왕이 강화도로 피신하였다.
잘랄 웃 딘 피루즈가 노예 왕조를 끝내고 킬지 왕조를 개창하였다. (델리 술탄 왕조)
알 아슈라프 칼릴이 맘루크 왕조의 술탄이 되었다.
포르투갈 국왕 데니스가 고전 라티어를 내치고 포르투갈 어를 정식 공용어로 지정하였다.
30년후 다마스쿠스가 일 칸국에 항복하였다. 시타델의 맘루크 왕조 수비대는 계속 저항하였다.
- 키프로스, 아르메니아 군대와 시리아를 제패한 일 칸국의 가잔 칸이 동쪽의 차가타이 칸국의 침공에 대비하러 11월 복귀 약속 후 주력군과 후퇴하였다.
40년후 차파르가 원나라에 투항하며 오고타이 칸국이 멸망하였다.
킵차크 칸국의 침공을 격퇴해 낸 바사랍 1세가 왈라키아의 대공이 되었다.
50년후 블라디스와프 1세가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 아르브로아스 선언과 함께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하였다.
- 원영종이 5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양치기 청년이 레콘키스타를 도우라는 신령을 접하였다 하며 2차 목동 십자군을 일으켰다. 필리프 5세가 파리 진입을 거부
60년후 벨버즈드 전투에서 스테판 우로시 3세와 스테판 두샨이 이끈 세르비아 군대가 차르 미카일 3세를 전사시키며 제2 불가리아 제국군을 격파하고 마케도니아에 대한 패권을 확립하였다.
원나라문종 원나라에서 가장 학문을 사랑한 호학 군주. 1331년에 대법전 (경세대전) 남김
70년 백년전쟁 초기 1340년 6월 23일 필리프6세의 함대는 슬로이스 해전에서 잉글랜드에게 패배했다
100년후 모스크바대공 돈스토이대골 쿨리코보전투에서 몽고에 승히
910년 당은 망했고 이존욱은 힘을 기른다.
909년부터 910년까지 견훤은 나주를 놓고 마진(摩震)과 육지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왕건의 입지가 확실해지며 이후 궁예는 왕건을 너무 의식한다.
이듬해 수덕만세로 태봉으로 국호를 고친다.화덕인 신라를 이기기 위해서
60년전 라미로1세 죽고 오르도뇨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문성왕은 대사면을 하고 이듬해 851년엔 청해진(淸海鎭)에 토벌군을 보내 청해진을 완전히 없앴으며 청해진에 살던 주민들은 현 전라북도 김제시인 벽골군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50년전
김응렴 (훗날경문왕) 헌안왕의 사위가 되다.
애설버트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카스티야 왕국 성립 (아스투리아스 왕국으로부터 자치 획득)
40년전 - 루트비히 2세와 카를 2세가 메르센에서 로타링기아 지역을 분할하는 국경확정조약인 메르센 조약을 맺었다.
- 웨식스군이 데인족 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당나라의 반란군 지도자인 황소가 동관, 낙양, 장안 등을 점령하였다.
최치원이 전해 회남절도사 고병추천으로 등용.
황소의 난토벌을 고병이 맡게 되자 최치원도 함께 참전하였다. 이러한 고병의 덕으로 최치원은 도통순관 승무랑 전중시어사 내공봉의 직책을 받아 4년간 종군했다
20년전 전해
889년 결국 사벌주(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원종·애노의 난이 일어나고 국내의 여러 주군이 공물을 바치지 않아 재정이 궁핍했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군벌의 시대가 온것이다.
10년전 견훤이 후백제 건국을 선포하였다.이듬해 궁예가 후고구려세움
베네벤토를 점령한 카푸아 공작 아테눌프가 카푸아-베네벤토 공국의 연합을 선언하였다
10년후 독일왕 하인리히 1세가 이끄는 군대가 위트레흐트를 정복하였다.
후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함락시켰다
20년후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이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로 인해서 후삼국의 판도가 바뀌었고, 후백제는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 중 하나인 아이슬란드 의회가 설립되었다.
3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가 레온 왕국으로부터 마드리드 일대를 수복하였다.
: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40년후 로타리오 2세 :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사망.전해 서경천도 주장하던 정종.왕식렴사망.
50년후 광종은 수도를 황도로 칭하고
관복을 제정하여 진정한 황제국이 된다.
송나라 조광윤건국.
60년후 알아즈하르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고려광종. 송태조 국가기초를 다짐
550년 남인도에 카루카아 왕조 일어남,
토틸라 왕이 이끄는 동고트 왕국군이 로마를 재정복하였다.
고양이 동위의 마지막 황제 효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북제를 건국하고, 동위는 멸망하였다.
60년전 동고트 테오도리크 대왕과 알라리크 2세가 밀란 근교에서 오도아케르군을 섬멸하였다.
북위 효문제 백제 동성왕 모두를 공격했다는 기록다수. 백제대륙설의 근거
고구려 문자명왕 등극.
50년전 아서 왕이 이끄는 브리튼군이 앵글로 색슨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지증왕이 신라 22대 왕이 되었다
백제.북위.왜에도 정권교체 1~2년새.
40년전 일본 오진천황후손을 주장하는 게이타이덴노로 바뀌고 현재까지유지.
30년전 신라의 왕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관리들의 공복을 정하였다.
이제야 귀족위주에서 벗어남.
20년전 다라와 사탈라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사산조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겔리메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촌 힐데릭을 폐위시키고 반달 왕국의 군주가 되었다
10년전비잔티움 제국의 장군 벨리사리우스가 동고트 왕국의 수도 라벤나에 입성하고 국왕 비티게스를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하였다.
일디바드가 동고트 왕국의 5대 국왕이 되었다.
-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무너진 성벽 뒤에서 저항하던 안티오크를 점령하고 도시를 파괴하였다.
진흥왕이 신라 제 24대 국왕이 되었다
10년후 우문옹이 북주 3대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진백종 : 진(육조)의 3대 황제사망
30년후 우문윤 : 북주 4대 황제사망.1년후 양견 외손자 우문천사망.수건국
40년후 고구려의 장군 온달이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유역 탈환을 위한 군사의 출정에 자원해서 참전했으나 아차산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군이 이탈리아로 진격하여 밀란과 베로나를 함락시켰으나 전염병 창궐로 인하여 퇴각하였다.
50년후 법왕 : 백제 29대 국왕사망하고 무왕즉위.
60년후 비잔티움 제국령 카르타고의 총독 헤라클리우스가 2년간의 내전을 치르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입성해 폭군 포카스를 처단하고 황제가 되었다. 그는 제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변경하였다
190년 어비류 · 좌가려의 난.
음력 8월, 백제가 신라의 서쪽 경계 원산향(圓山鄕)에 들이닥치고, 또한, 다가와 부곡성(缶谷城)을 에워싸자, 신라에서는 구도가 굳센 기병 5백명을 이끌어 이를 쳐냈다. 백제의 병사가 거짓으로 달아나자, 구도가 쫓아가 와산(蛙山)에 이르렀으나, 백제에게 패한 바가 되었다. 왕은 구도의 실책(失策)으로 인하여, 그를 낮추어 부곡성주로 삼았고, 설지(薛支)를 좌군주로 삼았다
일본서기 기준점.13대 세이무덴노 아들이 없어 178년 봄 3월 1일에 조카 타라시나카츠히코미코토를 황태자로 삼았으며, 190년 여름 6월 11일에 사망해 이 때 나이가 107세였다.
85년전 기루왕 신라와 105년에 조약을 맺고 사이좋게 지냈다. 이 조약의 결과물이 바로 신라를 침공한 말갈을 저지하기 위해 보낸 다섯 명의 장군들과 지원군이다
60년전 로마 제국에서 노예를 재판 없이 처형시킬 수 있는 법이 통과되었다.지마왕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삼다.
그 유명한 전설의 공주인 카구야 공주의 사촌 케이코 천황 : 일본 제 12대 천황사망
50년전 볼로가세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35년전 길선의 반란으로 나제평화 깨짐
24년전 초고왕원년.신대왕2년차
17년전 일본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낸 기록이 있다
10년전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빈도보나에서 전쟁을 준비하던 도중 지병의 악화로 병사하였다. 이후 그의 아들 콤모두스가 단독 황제가 되고 오현제 시대가 막을 내렸다.
10년후 관도 대전에서 조조군이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30년후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가 조조의 아들인 위문제 조비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한나라가 멸망하였다.구품관인법시행
40년후 내례이사금죽고 조분 이사금이 신라 제11대 왕이 되었다.
중국의 장읍이 광아를 지었다.
50년후 샤푸르 1세가 아버지안 아르다시르 1세와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백제군이 신라의 서쪽 변경 지역을 공격하였다.
스리 굽타가 굽타 왕조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일본의 고훈 시대가 개막하였다
고이왕대 태백성이 달을 덮다
bc171년 테살리아에서 페르세우스 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군이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전한 문경치지
60년전 로마에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와의 협상을 위하여 대사를 보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데메트리우스 2세가 아이톨리아를 상대하기 위하여 일리리아의 왕 아그론에게 군사 원조를 받았고, 일리리아군은 아이톨리아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조나라 이목은 기원전 232년에 진의 대군을 업과 번오에서 막아낸다
진시황 전쟁준비
50년전 진시황 10년만에 전국통일
40년전 진시황 죽기1년전
30년전
20년전
20년후
30년후
40년후
50년후
60년후 전한이 번우(현재의 광동)에 도읍한 남월을 멸망시키고 이 곳에 9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좀다른 하원갑자(인목)
181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조제핀 드 보아르네, 이혼
콜롬비아,아르헨티나,칠레 독립
멕시코의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가 독립전쟁을 선언하였다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 혁명군이 중무장한 스페인군에 대패하였다
60년전 영국이 철 조례를 제정하여 북미 식민지인들이 철을 주조하는 것을 금지하다
- 청나라에 대항하여 티베트 라싸에서 민중 봉기가 발발. 균역법실시
50년전 7년전쟁: 러시아군이 베를린을 점령하였다.
- 조지 3세가 영국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40년전 항해사 제임스 쿡이 호주대륙의 동부지역에 도달하였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부르봉 왕조의 국왕 루이 16세와 결혼하였다.
제임스 쿡이 대보초를 발견하였다
보스턴대학살
30년전 초기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 베네딕트 아놀드가 영국측으로 탈주하다.
- 요제프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로 등극.
- 제4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
미독립전쟁 프랑스참전
20년전 바티칸에서 동북아시아 신자들에게 제사를 금하는 칙령을 내리다.
-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가 국민공회에게 헌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다. 이로써 프랑스에 입헌군주제가 도입되기 시작하다
10년전 순조가 조선의 23번째 왕으로 즉위. 정순왕후 김씨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다.
- 정순왕후 김씨가 김조순을 병조판서에 임명.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막을 올리다. 이후 조선은 개판 5분전에 가까운 내리막길을 간다.
- 미국 대통령 선거가 열리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다.
- 천연두 백신이 처음으로 개발되다
영국 아일랜드 합병
10년후 조선에 전국에 걸친 수해가 발발.
청도광제즉위.
카디스 반란 발발.
- 조지 4세가 영국왕으로 즉위.
20년후 조지 4세 사망. 윌리엄 4세 즉위.
7월 5일 - 프랑스 왕국의 알제리 침공.
7월 혁명 발발. 샤를 10세 퇴위. 루이 19세 즉위.앙리 5세 즉위.
- 앙리 5세 퇴위. 루이 필리프 1세 즉위. 7월 왕정의 시작.
- 벨기에 혁명 발발.
- 세계 최초의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부설.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철도 건설]
30년후 와이탕기 조약을 통해서 영국인들이 마오리 족으로부터 뉴질랜드를 매입한다.
-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공과 결혼식을 올리다.
- 일식이 있었다.
40년후아일랜드 대기근
- 헨리 클레이가 북위 36도 30분을 기준으로 노예제의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소위 '1850년의 타협안'을 미국 의회에서 제시하다
소독일주의 실패
50년후 - 사우스캐롤라이나가 남부에서 최초로 연방 탈퇴를 선언하다. 남북전쟁의 시작.
- 최제우가 경주에서 동학을 창시하다.
스페인 군대가 모로코 북부를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다.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단이 시칠리아를 점령하다.
- 찰스 다윈이 발간한 <종의 기원>의 내용을 둘러싸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토마스 헉슬리와 로버트 피츠로이 사이의 찬반토론이 펼쳐지다
60년후 : 프랑스 제2제국이 북독일 연방에게 선전포고. 보불전쟁의 발발.
스당 전투의 참패에 분노한 파리 시민들이 나폴레옹을 퇴위시킨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선포되다
통일 이탈리아 왕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하다.
1450년은 조선 5대 국왕 문종이 즉위함.아즈텍의 지독한 가뭄으로 제국이 흔들린다
Formigny 전투: 백년 전쟁이 끝날 무렵, 프랑스가 영국 군대를 물리친 북부 프랑스 영어 지배를 종식시키다.
100년전 프랑스 필립6세 흑사병까지 번지게 되었으며 그야말로 프랑스 전체가 백년전쟁 수세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던 1350년 죽게 된다.장2세즉위
70년전 프랑스는 샤를 5세(재위 1364~1380)의 아들인 샤를 6세(재위 1380~1422, 친애왕)가 돈키호테급이었다.
옆나라들 전쟁으로 벤체슬라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의 후임으로 긴 치세를 보냈으나 벤체슬라스의 지배력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로젠베르크 가문이 이끄는 보헤미아 귀족들과 다시 대립하게 되었다.
60년전
고려의 무신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의 홍무제에게 가서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무고하였는데, 이것이 종계변무 사건의 발단이 된다
50년전 수감된 폐주 리처드 2세가 옥사하였다.
- 희안대군 등이 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 이방원이 왕세제가 되었다.
- 호꾸이리가 진소제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대월의 황제가 되며 쩐왕조가 망하고 호왕조가 세워졌다.
40년전올제이테무르 칸이 복속을 거부하자 50만에 이르는 영락제의 1차 몽골 원정군이 베이징을 떠났다.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폴란드 (브와디스와프 2세 요가일라)와 리투아니아 (비타우타스)의 연합군이 튜튼 기사단을 대파하였다.
- 흑양 왕조의 카라 유수프가 잘라이르 왕조를 격파하고 바그다드에 입성, 술탄 아흐마드를 살해하였다.
30년전 세종대왕이 2년차집현전의 기능을 확대하고 개편하였다.
예조판서 허조 등의 건의에 따라 부민고소금지법이 제정되었다.
포르투갈 왕국이 대서양의 마데이라 제도를 점령하였다
20년전 오스만 제국의 무라트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도시 테살로니키를 점령하였다.
- 잔 다르크가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군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10년전 이튼 칼리지가 설립되었다.
10년후 신개척의 선두 인판트 동 엔히크 : 포르투갈의 왕자사망
20년후 성종원년경국대전을 검토하기 위해 교정청이 설치되었다.
문헌에 하프시코드가 처음 언급되었다
30년후 오스만 제국의 함대가 이탈리아의 오트란토에 도착하여 오트란토 전투가 발발하였다.
몽골의 러시아 지배가 완전히 끝났다
40년후 찰스 2세가 1살의 나이로 사보이 공작에 즉위하였다.
50년후 - 조선의 도적 홍길동이 체포되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하고 이 곳을 포르투갈 왕국의 땅으로 선포하였다
1세대인 바르톨로뮤 디아스 : 포르투갈의 탐험가는 사망
60년후 삼포왜란이 발생하였다
포르투갈이 인도 서해안의 고아를 점령하였다
1090년도 고려 선종 불교가 가장 화려한 시기이다
이때만 해도 카페왕조 필립1세하 프랑스 황제가는 러시아에게도 무시당할정도로 비루했다.
60년전 헝가리 왕국의 스테판 1세가 왕국으로 쳐들어온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콘라트 2세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발해후신 1년만에 흥요국멸망
50년전 하레크누드가 샌드위치에 상륙한 후 해럴드 1세를 꺾고 잉글랜드의 왕으로 복위하였다.
삼천구 전투에서 서하 군대가 송나라를 격파하였다. 이에 송 조정은 범중엄과 한기를 파견하였다
40년전노인왕 에먼드가 스웨덴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스웨덴 군대가 핀란드를 공격하였다.
노르웨이 왕 해럴드 할드랄데와 덴마크의 스벤 2세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번져 노르웨이 군대가 덴마크의 헤데비를 공격하였다
30년전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 군대가 타란토를 점령하였다.
- 필리프 1세가 7세의 나이로 카페 왕조의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 비잔틴 군대가 노르만 군대를 격파하고 타란토를 수복하였다.
- 헝가리의 왕 벨라 1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20년전 비잔틴 제국군의 반격이 성공을 거두어 셀주크 제국의 강역은 유프라테스 강 너머로 축소되었다.그러나 1년후엔...
셀주크 제국군이 베로에아(현 시리아의 알레포)를 포위하였다.
송나라의 재상 사마광이 사직하고 왕안석이 재상이 되었다. 보갑법, 모역법이 시행되었다.
윌리엄 1세의 북부 약탈이 계속되는 가운데, 동 잉글랜드에서 헤레워드의 반란이 일어났고, 그와 동맹한 덴마크의 스벤 2세 군대가 엘리 섬에 상륙하였다
10년전 정복왕 윌리엄의 아들 로버트가 이끄는 군대가 스코틀랜드를 침공, 폴커크 일대까지 진군한다.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의 모체인 루벤 가문의 아르메니아 공국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셀주크 제국의 조지아 왕국에 대한 침공이 시작되었다.
셀주크 제국의 신하국인 우카일 왕조가 미르다스 왕조를 멸망시키며 시리아를 정복하였다
10년후 송휘종이 북송의 제 8대 황제로 즉위하였고 상태후가 섭정을 맡았다.
- 말라티아에서 다니슈멘드 왕조군이 안티오키아 공국의 공작 보에몽 1세가 이끄는 십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잉글랜드의 왕 윌리엄 2세가 뉴포레스트 사냥터에서 의문사하였다.
- 헨리 1세가 새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십자군이 시돈을 정복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5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셀주크 제국에 대한 전쟁을 재개하였다.
30년후 방랍의 반란군이 항주를 점령하였다.
금나라 군대가 요나라의 수도인 상경 임황부를 함락시키고 만주를 평정하였다.
송나라 천주의 인구가 50만을 돌파하였다.
금나라의 여진 문자가 창제되었다.
40년후 장기 왕조의 아미드 앗 딘 장기가 부리 왕조의 시리아를 침공, 하마를 점령하고 홈스는 포위공격 후 철수하였다. 그 와중에 포로가 된 부리의 아들은 5만 디나르를 받고 풀어주었다.
금나라가 화북 정복 이후 한단 대명부를 수도로 하는 괴뢰 국가인 제나라를 세우고 북송의 신하였던 유예를 황제로 옹립하였다.
남송의 신하 종상이 혼란을 틈타 초나라를 건국하였다. (종초)
50년후언성 전투에서 악비의 남송 군대가 금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 호엔슈타우펜 가문 출신의 독일왕 콘라트 3세가 벨프 가의 요새인 바인스베르크를 포위하였다
60년후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와트가 완공되었다
파리 대학 (후의 소르본 대학) 이 설립되었다
십자군 대비 파티마 왕조가 아스칼론에 53개의 탑을 세워 방어력을 보강하였다.
730년엔 비잔틴 제국의 레오 3세의 성상 숭배 금지령이 내려졌다.
옴미아드 왕조의 이슬람 세력은 북아프리카를 넘어 서남부 유럽 쪽으로 확장되고 있었는데 이슬람 세력은 스페인 지방을 정복하고 서유럽을 노렸다. 서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에서는 재상 카를 마르텔이 권력을 장악하고 기병을 활발히 훈련시켰다.
자신을 도운 이복 형제 힐데브란트를 비롯한 부하 관료들에게 공작, 백작, 기사 등의 칭호를 부여해주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봉건 제도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발해 무왕이 730년 당나라의 간섭을 받던 거란이 당나라와 대립하던 유목제국인 돌궐 편에 서서 당나라에 맞서게 되었다.
60년전 신라의 장군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군의 장군 고연무가 각각 군사 1만명씩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서 당나라를 공격하면서 나당전쟁이 개전되었다
고구려 부흥 운동 : 한성(현재의 황해도 재령)을 근거로 한 검모잠이 이끄는 고구려 부흥군은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옹립하였다
대비천 전투 : 당나라군이 대비천에 포위된 채 가르친링이 이끄는 토번군의 공격을 받아 대패하였다
50년전 아스파루흐가 발칸 반도에서 비잔티움 제국 세력을 몰아낸 후 발칸 반도 동북부에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건국하였다
후세인이 쿠파를 향해 메카를 떠났다.
40년전 측천무후가 당나라의 황제가 된 뒤 국호를 무주로 변경하였다.
- 불굴사가 창건되었다
30년전 아바르족, 슬라브족이 비잔티움 제국의 발칸 반도 영토 일부를 점령하였다. 당적인걸 사망
20년전 당예종의 3남인 임치왕, 이융기와 측천무후의 딸인 태평공주 등이 금군을 이끌고 정변을 일으켜 위황후와 안락공주를 비롯한 위씨 일족을 살해하였다.
- 이중무가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예종 이단에게 양위를 하고 원래의 온왕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다.
일본의 수도가 헤이조쿄가 되면서 아스카 시대가 끝나고 나라 시대가 시작되었다
10년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하고 셉티마니아를 침공, 나르본을 점령하였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 중 하나인 일본서기가 완성되었다.
10년후 신라에서 파진찬 영종이 반란을 모의하다 처형당했다.
- 일본에서 후지와라노 히로츠구(藤原廣繼)가 다자이후의 쇼니로 좌천된 것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하였다
20년후 아바스 왕조가 자브 강에서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였다.
인도의 팔라 왕조가 성립되었다.
30년후 월명사가 4구체 향가인 도솔가를 지었다
이보국은 760년 현종의 남아있는 강한 영향력을 두려워하던 숙종 주위의 분위기를 이용해 흥경궁의 현종을 감로전에 유폐시키고, 고력사 등을 귀양, 안진경을 좌천시켰다. 숙종이 현종의 유폐를 반대해도 이미 막을 수 없었고, 현종의 알현마저 불가능했다.
40년후카롤루스 대제가 롬바르디아의 공주인 데시데라타와 결혼하여 롬바르디아 왕국과의 동맹을 견고히 하였다. 교황 스테파노 3세는 이 동맹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묵살되었다.
카롤루스 대제가 바이에른의 공작 타실로 3세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50년후 신라의 이찬 김지정이 왕의 실정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과정에서 혜공왕과 그의 어머니 만월부인과 비빈 그리고 혜공왕의 어린 자식들 등 일가가 모조리 살해당하였다. 이후 내물왕계인 상대등 김양상이 스스로 왕위에 올라 선덕왕이 되었다.
당나라의 재상 양염의 건의로 당나라의 새로운 조세법인 양세법이 실시되었다.
60년후 오스트리아가 프랑크 동쪽 경계가 되다.
370년 선비의 일부인 전연 내분으로 멸망.
전진이 화북 대부분을 지배하에 두었다.
훈족은 370년 경 흑해 북부에 나타나면서 처음 유럽 무대 진출을 하게 된다. 이들은 볼가 강을 건너 동고비트족과 서고트비족을 공격하여 유럽대륙에서 민족대이동을 초래하였다. 공포에 질린 게르만 민족은 밀물처럼 로마국경으로 쫓겨 간다. 이를 막아내지 못한 서로마제국은 결국 종말을 고하고 만다. 게르만족의 이동은 신의 채찍이라 불리며 서양역사에서 고대의 종말을 가져온 사건으로 기록된다.
60년전 콘스탄티누스 1세가 휘하 부대를 이끌고 프랑크족을 토벌하기 위한 원정을 떠나 있는 동안 막시미아누스가 이 틈을 이용해 퇴위를 번복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곧 콘스탄티누스가 이 소식을 듣고 회군하는 바람에 막시미아누스는 곧바로 궁정을 빠져나와 마르세유로 도피했다. 하지만 곧 사로잡혔고 얼마 안 가 죽는다.
흘해 이사금이 신라 16대 왕이 되었다
50년전 인도에서 찬드라굽타 1세가 굽타 왕조를 창건하였다.
전량 제 2대 국왕 장식이 유홍의 사주를 받은 염섭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이후 장무가 전량 제 3대 국왕이 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아들 크리스푸스가 로마군을 이끌고 프랑크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40년전 콘스탄티노플이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30년전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가 그의 동생인 콘스탄스가 이끌던 군대와 싸우던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제국은 콘스탄스가 통치하는 서방과 콘스탄티우스 2세가 통치하는 동방으로 양분된다
20년전 흉노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인도 지방을 공격하였다.
후조의 무장 석민이 염위를 건국한 뒤 스스로 염위의 황제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기존의 황제인 석감을 폐위하고 살해하였다. 이후 석지가 후조 7대 황제가 되었다. 석지는 석민을 반대하는 이민족 세력들과 함께 석민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0년전 모용준이 주고 모용위가 전연 3대 황제가 되었다.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10년후 테오도시우스 1세가 로마의 모든 시민들은 기독교로 개종해야 함을 규정한 칙령을 발표했다.
테살로니카 근처에서 테오도리우스 1세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백제의 달솔 진가모가 고구려의 도곤성을 함락시키고 200명을 포로로 삼았다. 그러나 상대는 광개토왕,2년후 개박살.
- 테오도시우스 1세가 테살로니키에서 일어난 주민 폭동을 강경 진압하면서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30년후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광개토대왕이 5만의 군사를 보내 왜군을 물리치고 신라를 구원하였다.
후연의 왕 모용성이 고구려의 남소성과 신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영토 700여 리를 빼앗았다.
모용오흘제가 토욕혼의 가한으로 즉위했다
40년후 알라리크 1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였다.그후 사망
50년후 동진의 황제 사마덕문이 유유에게 선양하고 영릉왕으로 봉해졌다. 이렇게 동진이 멸망하고 유유가 유송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백제 전지왕 사망으로 구이신왕등극
바흐람 5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서량의 황제 이흠이 북량 원정에 나섰다가 전사하였다
60년후 풍발이 죽고 풍홍이 북연 3대 황제가 되나 6년후 멸망.
백제 비유왕이 해씨세력 후원받고 송으로부터 진동대장군 백제왕에 책봉됨. 이즈음 왜왕들이 받는 안동대장군보다 2단계높음.
10년 백제다루(多婁)를 태자로 삼고 내외병사를 맡김
신라, 석탈해를 좌보(左輔)로 삼아 군국정사를 맡김.
왕망은 고구려의 군사들을 징발해 흉노를 치려했지만, 고구려가 거부하였고 이에 엄우로 하여금 그 수장인 구려후(句驪侯) 추(騶)를 죽였다. 또한 고구려의 이름을 고쳐 "하구려"라 칭했으며, 그 우두머리 또한 하구려후로 낮추었다. 그러자 고구려인들은 이에 반발하여 변방을 약탈함이 더욱 심해졌다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에 상응하는 무공을 세우고자 했다.
60년전
기원전 51년에는 동흉노 호안나,직접 한나라로 와 감천궁에서 선제에게서 칭신.기원전 50년에 호한야는 사자를 보내 조헌했고 서흉노 질지골도후 선우도 한나라에 사자를 보냈지만 호한야가 보낸 사자가 더 우대받았다.
클레오파트라와 그의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끝났다
50년전 신라의 혁거세 거서간이 왕비 알영과 함께 6부를 순행하면서 신라 백성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였다
40년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의 군대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20년전게르마니아 지방에서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드루수스는 라인 강을 방비하면서 이곳에 몇 개의 요새를 구축하였다
10년전로마 제국의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그의 양자 가이우스 카이사르를 보내어 파르티아의 왕 프라아테스 5세와 평화 조약을 맺게 했다.
평제가 전한 제14대 황제가 되었다. 평제 즉위 이후 효원황후는 대사마 동현을 파직시키고 조카 왕망을 대사마에 임명하였다
10년후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는 게르마니쿠스의 암살과 관련한 조사와 공공 재판을 원로원과 함께 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와 관련한 죄에 대한 여파가 불어닥칠까봐 시리아 총독 피소는 자살한다.
30년후바르다네스 1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베트남의 쯩 자매가 후한의 지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40년후 네로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양자가 되었다.
위트레흐트에 로마 제국의 방어시설이 건설되었다
50년후 도나우 강에서 로마 제국군이 록솔라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브리타니아 속주에서 로마에 복속된 이케니족의 여왕 부디카가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다
60년후 로마 제국군이 예루살렘에 진입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운 뒤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사로잡거나 살해하였다
기원전 351년 데모스테네스는 지불 용병에 따라 중단하고 시민군대의 오래된 개념으로 돌아 아테네를 얻기 위해 시도합니다
에트루리아 심하게 로마인에 의해 망함
60년전 아테네의 민주정이 과두파에 의해 전복되고, 400인회가 세워졌다. 이후 권력의 집중도를 두고 과두파 내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하여, 소수에 의한 통치를 고집하는 급진파와 대중의 정치 참여 확대를 원하는 중도파로 분열되었다. 과두정은 중도파로 인해 몰락
50년전 키루스는 사망
아게실라오스 2세가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소포클레스의 비극인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가 상연되었다.
주나라의 왕 위열왕이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인 희교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40년전 코린토스 근처의 레카이움에서 이피크라테스가 이끄는 아테네군이 스파르타 주둔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이피크라테스군은 아르카디아로 가서 이들 영토 곳곳을 약탈하였다.
티브론이 이끄는 스파르타군이 페르시아 제국군에게 패배하였고 이들 대부분이 살해당했다.
부레누스가 이끄는 켈트족이 에트루리아근처에 나타남.로마의 패배
30년전 페르시아가 키프로스를 공격하자 에바고라스 왕은 공급로를 차단해서 페르시아군이 굶주리게 해 퇴각시켰지만 또다른 전쟁에서 패하면서 살라미스로 피신했다. 그는 페르시아와 평화를 약속하게 되었으나 사실상 그의 국가는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었다.
터스쿨룸이 일으킨 로마에 대한 반란이 진압되었다
20년전 스파르타와 테베는 결국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욱트라 전투에서 스파르타는 에파미논다스와 펠로피다스가 이끄는 테베군에 의해서 쉽사리 무너지게 되었고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왕이 죽게 된다
10년전 칼리스트라토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으로 도망갔고, 카브리아스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집트와 스파르타, 그리고 아테네의 용병들이 페르시아를 공격하였으나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퇴각하였으며, 스파르타가 이집트의 반란에 가담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의 국력이 약해지자 여러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10년후 데모스테네스가 아테네 해군력을 장악하고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에 대항하여 테베, 비잔티움과 동맹을 맺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트라키아 합병에 성공하였다. 이에 아테네는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제1차 삼니움 전쟁이 끝났다
20년후 가우가멜라 전투 : 메소포타미아 아르벨라 근교의 가우가멜라 평원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왕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이 패배로 다리우스 3세는 동쪽으로 피신하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수사에 입성하게 된다.
진혜문왕 공손연이 위나라를 공격하여, 위나라 장수 용가(龍賈)를 사로잡고, 병사 8만 명을 참수하였다.
30년후 제2차 삼니움 전쟁 - 로마군의 공세로 인해 삼니움은 로마와 평화 협상을 하려 하였으나 로마가 제시한 조건이 너무도 터무니없어 삼니움은 전쟁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삼니움은 로마의 집정관인 스푸리우스와 티투스가 이끄는 군대를 베네벤툼 근처의 카우디움에서 항복시켰다.
주나라 왕 주현왕 사후 아들 희정이 그의 뒤를 이었다.
찬드라굽타가 마우리아 제국을 건국하고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바빌로니아를 차지한 셀레우코스는 동쪽으로 계속해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안티고노스는 이에 위기감을 느껴 군대를 이끌고 바빌로니아를 공격하였다.
진 혜문왕 14년(기원전 311년), 초나라를 공격하여 소릉(召陵)땅을 차지하였다. 촉의 상국 장(壯)이 촉나라의 군주 촉후(蜀侯)를 죽이고, 진나라로 투항하였다. 같은 해에 진 혜문왕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영탕(嬴蕩)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진무왕(秦武王)이다
50년후 조나라의 군대가 중산국의 수도 영수(靈壽)를 공격하자 중산국의 절차왕은 제나라로 피신하였다.
진 소양왕 6년(기원전 301년), 촉후 휘(蜀侯 煇)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조(司馬錯)가 평정했다. 서장 환(奐)이 초나라를 정벌하고 수급 2만 명을 베었다. 경양군(涇陽君)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안티고노스 1세는 이프소스전쟁에서 전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국을, 셀레우코스 1세는 시리아와 시리아 동부를,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이집트를, 리시마코스는 트라키아와 소아시아를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게 되어 알렉산드로스 제국이 완전히 분열되었다
60년후 삼니움 전쟁 - 로마군이 삼니움의 도시 중 하나인 베누시아를 점령
마케도니아 데메트리오스 1세가 큰 희생을 감수하고 그의 군대를 밀어붙이고 공성 장비를 십분 활용하면서 테베를 점령하였다
진 소양왕 16년(기원전 291년), 사마조가 지성(軹城)과 등성(鄧城)을 빼앗았다. 위염이 승상에서 면직되었고, 공자 불(公子 市)을 완 땅의 후로 봉하고, 공자 회(公子 悝)를 등성의 후로 봉하였다. 그리고 위염을 도(陶) 땅의 후로 봉하였다
64년후 진나라 백기는 최초 정벌.
70년후 진 소양왕 26년(기원전 281년), 죄수들을 사면하고 양(穰) 땅으로 이주시켰다. 위염이 다시 승상에 임명되었다
80년후
진 소양왕 36년(기원전 271년), 조(竈)가 제나라의 강(剛), 수(壽) 땅을 빼앗았고, 그 땅을 위염에게 하사했다.
91년후 장평대전
100년후 진 소양왕 56년(기원전 251년), 진 소양왕이 사망하자, 모든 나라의 승상들과 장군들이 상복을 입고서 진나라를 방문해서 조문을 하였고, 한나라는 왕이 소복을 입고서 진나라로 직접 와서 조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