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 김주원 교무의 정전 강의 47--- 사대강령(四大綱領) 1
원광 원기96년(2011년) 11월호
사대강령(四大綱領)은
정각정행(正覺正行), 지은보은(知恩報恩), 불법활용(佛法活用), 무아봉공(無我奉公)이다.
이는 교리에 입각해서 살아가야 할 네 가지 실천강령으로
우리 인생의 목표와 교단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지 강령적으로 밝혀준 것이다.
이를 대산 종사는 ‘교단이 실천해야 할 네 가지 목표’라고 했다.
첫 번째 ‘정각정행(正覺正行)’이다.
<정전>에 ‘일원의 진리 곧 불조정전(佛祖正傳)의 심인을 오득(悟得)하여 그 진리를 체받아서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불의(不偏不倚)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고 했다.
정각은 일원의 진리, 불조정전의 심인을 오득하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는 대종사가 깨달은 진리를 표현코자 ‘일원’이라고 했고,
진리는 모든 선각자들이 깨달은 참된 이치이다.
심인은 언어나 문자로써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호리도 틀림이 없는 그 마음을 말한다.
정각정행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마음을 쓰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마음을 정전에 밝혀 놓았다 할지라도
그건 안내서일 뿐 부처님을 나타내는 자체가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부처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쓰고 있는 마음자리라고 했다.
그 마음은 원래의 마음, 순수한 상태의 마음, 참다운 마음이다.
이것이 정각이다.
각자가 온전한 마음자리에 발현이 잘 되는지 점검하여
불편불의하고 과불급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
그러면 정각이 되고 정행이 된다. 간혹 정각은 하지 못해도 정행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활을 쏜다고 할 때, 과녁이 어딘지 모르고 쐈지만 요행으로 중앙에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원만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
정각’은 부처의 마음인지 중생의 마음인지 아는 것이고,
그 중생의 마음을 놓고 부처의 마음을 쓰는 것이 ‘정행’이다.
작은 일 하나라도 늘 그 마음을 챙겨 옳음과 바름을 찾고,
아닌 것을 놓고 바른 것을 행하면 정각정행을 하는 것이니, 이것을 표준해서 살도록 하자.
두 번째는 ‘지은보은(知恩報恩)’이다.
<정전>에 ‘우리가 천지와 부모와 동포와 법률에서 은혜 입은 내역을
깊이 느끼고 알아서 그 피은의 도를 체 받아 보은행을 하는 동시에,
원망할 일이 있더라도 먼저 모든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여 원망할 일을 감사함으로써
그 은혜를 보답하자.’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면 상당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지은(知恩)의 의미보다 더 깊은 의미로
대종사는 모든 은혜의 소종래(所從來)를 발견하라고 했다.
일반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수 있다.
불교에서 ‘일체가 공(空)이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은혜의 개념도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이 안 되지만,
유무의 개념이 아닌 진리적 입장에서 사유하면 충분히 맞는 소리이고 해득이 된다.
다시 말하면 지은은 현실적으로 말하는 은(恩)일 수 있지만
대은(大恩)까지를 발견해 내는 것인데 대산 종사는 이를‘견성’이라고 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은혜 아님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견성한 것이고,
근원적인 마음자리에서 지혜의 눈으로 밖을 보면
우주 전체는 그대로 우리를 살려주는 은혜의 덩치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보지 못한 사람은 ‘너는 너고, 나는 나다.’란 생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여긴다.
그러나 진리를 깨달아 가는 사람은 가족이 내가 되고 국가가 내가 된다.
그렇게 서서히 촌수(寸數)를 알아가게 된다.
보은이란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해(害)를 주면 원망한다.
그러나 원망할 일에 은혜를 발견하여 보은감사를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아 진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해를 어떻게 은혜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눈보라 위를 걷다 쓰러져 지나가던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런데 누가 구해주었는지 모른 채 살다 어느 주막에서 누군가와 죽일 듯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 뒤 둘은 술 한 잔을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방금 싸운 사람이 자신을 구해 준 그 사람이었음을 알게되었다.
미워했던 마음이 일시에 녹아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섬겼다고 한다.
사은을 알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
사은의 한량없는 은혜를 알고 보면 은이다, 해다 할 것 없이 녹아버린다.
정산 종사는 ‘사은을 원망하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다가 뉘가 하나 나오자
밥 전체를 안 먹겠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은혜의 소종래(所從來)라 했다.
은혜는 내가 씨앗을 심었기에 온다. 원인과 행위는 나에게 있다.
두 가지 원리를 알면 내 마음이 무엇을 향해서 원망하는지 알게 된다.
대산 종사는 은혜를 알고 갚아 가면 천생만생 복록의 문로가 열리지만,
배은을 하면 천사만사의 화문이 열린다고 했다.
은혜의 소종래를 발견하는 속 깊은 공부인이 되자.
정각정행과 지은보은의 관계에서 정각정행은 각자의 마음을 성찰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면,
지은보은은 우리가 관계를 맺어가며 밖의 사물을 적응할 때
어떤 표준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각정행(正覺正行)의 표준을 지은보은(知恩報恩)으로 하여 신앙과 수행을 함께 하자.
그래서 지혜와 복록을 열어가는 산 공부가 되도록 하자. < 교정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