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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문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경인 김종환
재미있는 한자이야기(제45회)-소년문학 2020년 4월호
사면초가(四面楚歌)
3월(月)이지만 코로나19라는 전염병(傳染病)은 정말 착하고 선량(善良)한 사람까지 위협(威脅)하고 있습니다. 전염성(傳染性)을 가진 모든 질병(疾病)은 무서운 것이기에 항상(恒常) 건강(健康)에 유의(留意)해야 합니다. 손과 얼굴을 자주 씻으면 모든 전염병(傳染病)을 두루 예방(豫防)할 수 있으며, 피부(皮膚)에 생기는 피부병(皮膚病)까지 방지(防止)할 수 있습니다. 학생여러분은 반드시 손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얼굴이나 피부(皮膚)가 가려우면 손으로 긁지 말고 손수건을 사용(使用)하여 가볍게 문지르기 바랍니다. 그러면 피부병(皮膚病)도 방지(防止)할 수 있습니다.
3월(月) 23일(日)에는 꼭 개학(開學)하기를 빌었는데 4월(月) 초순(初旬)이 되어야 모든 학교가 개학(開學)을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러한 일을 평생(平生) 처음 경험(經驗)합니다. 그러나 모든 국민(國民)이 정부(政府)의 방침(方針)에 따라 전염병을 예방한다면 ‘코로나19’를 꼭 물리치고 4월(月) 6일(日)에는 여러분이 기다리는 개학(開學)을 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때까지 더욱 건강(健康)에 유의(留意)하고 부모(父母)님 말씀도 잘 듣고 공부(工夫)도 열심(熱心)히 하기 바랍니다.
사면초가 四面楚歌
‘四’자(字)의 ‘훈(訓)과 음(音)’은 ‘넉 사, 네번 사, 사방 사, 성 사’입니다. 부수는 ‘큰입 구(口)’입니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석 삼(三)’자에 한 획을 더 그어서 ‘사(四)’자를 만들었으나 뒤에 지금과 같은 모양인 ‘사(四)’로 변했다고 합니다. 변형(變形)되어 지사문자(指事文字)라 하지만 이를 가차(假借)하여 ‘넷’이란 뜻으로 사용(使用)합니다. ‘사(四)’가 앞에 나와 만드는 단어(單語)는 많으나 몇 개만 소개(紹介)합니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사람의 네 가지 괴로움’을 ‘사고(四苦)’라 하는데 이는 즉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뜻합니다. ‘의지(依支)할 데가 아주 없음을 사고무친(四顧無親)’이라 하고, ‘동서남북(東西南北)’을 ‘사방(四方)’이라 하고,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를 사서(四書)라 하고,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사시(四時), 사계(四季) 또는 사계절(四季節)’이라고 하고,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사주(四柱)’라 합니다.
‘面’자는 ‘낯 면, 얼굴 면, 면 면, 쪽 면, 탈 면, 만날 면, 뵐 면, 향할 면, 등질 면’입니다. 제부수 한자(漢字)입니다. 지사문자(指事文字)라고 하나 선생(先生)님이 생각하기로는 정말 멋진 상형문자(象形文字)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선생님이 알고 있는 한자(漢字)를 모두 지원(支援)하지 못하기에 자세히 설명(說明)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면(面)’자는 자기(自己)를 뜻하는 ‘스스로 자(自)’를 알면서 시작(始作)하면 참으로 좋습니다. ‘자기(自己)’라는 뜻을 가진 ‘스스로 자(自)’는 옛날에는 코를 가르치는 ‘코 비(鼻)’의 원자(原字)입니다. ‘자(自)’의 위에 ‘한 일(一)’을 붙이면 ‘머리 수(首)’의 고자(古字)입니다. 컴퓨터에 없는 한자(漢字)입니다. 위의 두 점을 빼야 됩니다. 그래서 이마위에 머리털이 난 모양이 ‘머리 수(首)’가 되고, 아래쪽에 수염이 난 모양의 한자(漢字)가 ‘머리 혈(頁)’자가 됩니다. 그리고 ‘머리 수’의 고자(古字) 양쪽에 있는 것은 바로 코 옆으로 붙어있는 양쪽 볼의 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완전(完全)한 얼굴모양이 되니 ‘낯 면, 얼굴 면’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면담(面談)’이라 하고, ‘얼굴 바닥이나 얼굴 위를 면상(面上)’, ‘만남이나 대면(對面)함을 면회(面會)’라고 합니다.
‘楚’자는 ‘가시나무 초, 매 초, 매질할 초, 줄지을 초, 아플 초, 고울 초, 우거질 초, 초나라 초, 땅이름 초’입니다. ‘나무 목(木)’이 부수입니다. 위에 있는 한자(漢字)는 ‘나무 목(木)’을 두 자 결합(結合)하여 만든 ‘수풀 림(林)’입니다. 밑에 있는 한자(漢字)는 부수(部首)이름으로는 ‘필 필(疋)’, ‘짝 필(疋)’이지만 ‘훈(訓)과 음(音)’은 사람이나 짐승의 발이라는 ‘발 소(疋)’입니다. 그러므로 ‘초(楚)’자는 많은 나뭇가지로 잘못한 사람의 종아리나 발을 때린다는 뜻을 가진 한자(漢字)입니다. 그래서 ‘매질할 초(楚)’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것을 초달(楚撻)’이라고 합니다. ‘달(撻)’자가 어렵지만 왼쪽에 있는 것은 부수(部首)로 ‘손 수(手, 扌)’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한자(漢字)는 음(音)을 나타내며 ‘훈(訓)과 음(音)’은 ‘통달할 달, 통할 달, 달할 달, 이룰 달, 보낼 달, 올릴 달, 방자할 달, 두루 달, 어진이 달’입니다. 그러니 매질을 하는 것은 선생님이 학생(學生)들에게 공부의 목적(目的)을 달성(達成)시키도록 때리는 ‘사랑의 매’, ‘사랑의 회초리’라고 생각하면 기억(記憶)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생님이 매를 들고 학생(學生)들을 때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세상(世上)이 되어 선생님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歌’자는 ‘노래 가, 노래할 가, 노래지을 가’입니다. 왼쪽에 있는 가(哥)자는 가(可)자를 두 개 포갠 한자(漢字)입니다. 가(可)자는 ‘옳을 가, 들을 가, 가히 가, 쯤 가, 오랑캐임금이름 극’입니다. 위에 있는 ‘정(丁)’자는 우리나라에서는 ‘고무래 정’이라고 하는데 ‘쟁기’의 모양을 뜻합니다. ‘정(丁)’의 ‘훈(訓)과 음(音)’은 ‘성할 정, 장정 정, 일꾼 정, 벌목소리 정’이고, 아래에 있는 ‘입 구(口)’는 말하는 것이나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농사(農事)를 하는 농부(農夫)들이 밭을 갈 때 쟁기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좋다고 하는 마음을 담은 한자(漢字)입니다. 이 한자를 두 개 포개어서 ‘좋다좋다’ 또는 ‘옳다옳다’고 하는 것이 바로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哥)’자는 원래 노래라는 뜻이 있으나 뒷사람들이 ‘하품 흠(欠)’을 붙여서 ‘노래 가(歌)’를 더 만든 것입니다. 하품을 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려서 노래하지요? 노래란 ‘옳다옳다’하면서 함께 긍정적(肯定的)으로 부르는 것이기에 ‘노래 가(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漢字)란 그 의미(意味)를 잘 살피면 그 뜻도 쉽게 이해(理解)할 수 있습니다. 한자가 재미있지요? 이 재미를 조금만 더 느끼면서 공부한다면 학생(學生)여러분도 한자(漢字)의 달인(達人)이 될 수 있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天下)를 다투면서 생겨난 너무나 유명(有名)한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사방(四方)에서 들려오는 초(楚)나라의 노래’란 뜻이지만, 첫째, 적(敵)에게 사방(四方)이 포위(包圍)되어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狀態), 둘째, 주위(周圍)에 반대자(反對者) 또는 적(敵)이 많아 고립(孤立)되어 있는 처지(處地), 셋째, 사방(四方)으로부터 비난(非難)을 받음의 비유(比喩)로 완전(完全)히 적(敵)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적(敵)속에는 과거(過去)에 내 편(便)이었던 사람도 적(敵)에 가담(加擔)하였기에 더욱 비참(悲慘)한 항우(項羽)의 처지(處地)란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항우(項羽)와의 약속(約束)을 배반(背反)한 유방(劉邦)은 해하(垓下)에서 항우(項羽)의 군사(軍士)들을 포위(包圍)하였습니다. 한(漢)나라 군사(軍士)들은 장량(張良)의 꾀로 초(楚)나라 출신(出身)의 항복(降服)한 포로(捕虜)들을 항우(項羽) 진영(陣營)의 사면(四面)에 배치(配置)시켜 밤에 초(楚)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이 초(楚)나라 노래를 들은 항우(項羽)의 군사(軍士)들은 전의(戰意)를 상실(喪失)하고 굶주림과 두려움과 고향(故鄕) 생각으로 밤중에 도망(逃亡)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항우(項羽)도 한밤중에 얼마 남지 않은 부하(部下)들과 함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포위망(包圍網)을 뚫고 탈출(脫出)하여 오강(烏江)까지 갔으나, 그곳에서 31살의 나이로 장열(壯熱)하게 최후(最後)를 마칩니다. 항우(項羽)의 기개(氣槪)를 아끼는 사람들은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에게 패(敗)했지만 초(楚)나라 강동(江東)으로 돌아가서, 다시 국력(國力)을 회복(回復)하여 권토중래(捲土重來)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歷史)에는 가정(假定)은 없고 사실(史實)만 가지고 평가(評價)한다는 냉정(冷情)함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항우(項羽)가 사면초가(四面楚歌)에서 벗어났으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결(自決)을 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의지할 데가 전혀 없다는 사고무친(四顧無親)’,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음의 고립무원(孤立無援)’, ‘외롭고 의지(依支)할 데가 없음의 고립무의(孤立無依)’,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이 꼼짝할 수 없는 궁지(窮地)에 빠짐의 뜻인 진퇴유곡(進退維谷)과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고 물러날 길이 없음의 진퇴무로(進退無路) 등(等)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쓰임의 미묘(微妙)한 차이(差異)가 있으니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가장 적합(適合)한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택(選擇)하여 적절(適切)히 사용(使用)한다면 말과 글의 품위(品位)를 높일 수 있습니다.
3월이 끝나가는 우리나라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傳染病) 때문에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아니라, 오면초가(五面楚歌), 팔면초가(八面楚歌)에 처해 있다고 표현(表現)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알면 변용(變容)하여 사용(使用)하는 이러한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뜻도 더욱 쉽게 알 것입니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 팔면초가(八面楚歌)에 처(處)해 있어도 지혜(智慧)로운 우리 국민(國民)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克服)하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노력(努力)하기에 ‘코로나19’는 반드시 퇴치(退治)할 것이라고 선생님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四面楚歌
일면(一面)도 이면(二面)도 삼면(三面)도 아닌
사면(四面)에서 초나라의 노래 초가(楚歌)가 들려옵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項羽)도
마지막에 대세(大勢)를 깨쳤나 봅니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을 못하기에
고향(故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꿈까지도 접어버리고
역사(歷史)의 한 인물(人物)로 사라졌습니다.
항우(項羽),
당신은 위대(偉大)한 장수(將帥)였습니다.
공부를 더 했으면 당신은 유방(劉邦)을 이기고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學生)은
공부를 열심(熱心)히 한 학생의 영향(影響)을 받는다는데
당신은 공부를 하지 않고,
부하를 믿고 부하를 두루 사랑하지 않아
능력이 있는 많은 신하(臣下)에게 배신(背信)까지 당했으니,
당신은 유방(劉邦)의 적수(敵手)가 아니었습니다.
역사(歷史)란, 힘만 믿는 우직(愚直)함으로
새로운 역사(歷史)를 만들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연민(憐憫)의 정(情)을 담아
그냥 그대로 당신을 생각해 봅니다.(202003)
사람은 살아가면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직면(直面)할 때도 있고, 팔면초가(八面楚歌)에 직면(直面)할 수도 있습니다. 그 ‘초가(楚歌)’라는 것은 자신(自身)을 헐뜯기 위한 적(敵)이나, 다른 사람이 만든 모함(謀陷)이나 악의적(惡意的)으로 만들어낸 유언비어(流言蜚語)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세상(世上)살이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악(惡)한 사람을 악(惡)하다고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理解)가 가고 맞지만, 정말 착하고 정직(正直)한 사람을 모함(謀陷)하는 것은 큰 죄악(罪惡)입니다. 그런데도 그 죄악(罪惡)을 스스로 만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이 선량(善良)하고 정직(正直)한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럴 때는 주로 침묵(沈黙)하였습니다. 변명(辨明)이나 해명(解明)을 하면 나쁜 사람들은 또 새로운 악담(惡談)을 만들어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한다.’라는 속담(俗談)이 있습니다. 정말 더럽지요? 그래서 피(避)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便安)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自身)에 대한 오해(誤解)가 풀리고 사실(事實)이 밝혀지고 드러나면 더욱 남들의 존경(尊敬)을 받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 때를 기다리는 일도 있습니다.
4월(月)에는 꼭 ‘코로나19’가 물러가고 학생(學生)여러분이 정말 전염병(傳染病)과 다른 질병(疾病)이 없는 안전(安全)한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열심(熱心)히 공부(工夫)하기를 선생님은 간절(懇切)하게 기도(祈禱)하겠습니다.
선생(先生)님도 1월(月)부터 시작(始作)된 코로나19로 인하여 생활(生活)하기 너무 답답합니다. 2월(月)부터 시작(始作)하는 강의(講義)도 연기(延期)되었고, 3월(月)부터 예약(豫約)된 특강(特講)도 연기(延期)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강의(講義)를 들으시는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분들은 여가시간(餘暇時間)에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더욱 답답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停止)되어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의 생업(生業)이 정지(停止)되어 있고, 학생(學生)들의 학업(學業)도 정지(停止)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時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여러분은 이러한 어려운 시기(時期)에 공부를 더 열심(熱心)히 하기 바랍니다. 어려운 코로나19의 시절도 곧 끝날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잘 극복(克服)해야만 성공(成功)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생활(生活)을 하는 여러분의 부모(父母)님들은 위해서, 부모(父母)님께 힘을 드리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熱心)히 공부하기를 선생(先生)님은 여러분을 응원(應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