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것이 좋아 최의상
옛날 노인들은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쓰잘데 없는 한담으로 웃으며 세월을 여유롭게 지내던 모습을 학동인 내 눈으로 볼 때 노인이 되면 공부도 안 하고 한가하게 노는구나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은 어른을 존경하면서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빈대떡을 부쳐서 막걸리를 대접하면 노인들은 회색이 만면하여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며느리들을 칭찬하는 소리가 동구밖까지 들렸다.
청년들은 공손한 태도로 손을 모으고 어른들의 경륜을 들으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순종을 보이는 아름다움은 바로 그 마을의 아름다움이며 공동체의 질서였던 것이다.
변화란 무서운 것이다. 옛날에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이 변한다. 인간이 이루는 변화를 그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자나무 아래 앉아 <청산리 벽계수야 ~~>하며 창이나 읊고 있으면 당장 미친 노인네라고 소리칠 것이다. 이 바쁜 세상에 꼰데짓 한다고 비웃을 것이다. 버스킹 할만한 재주가 있는 노인이 음향기 설치하고 제대로 부른다면 박수는 받을 것이지만 심심풀이 놀아리 창을 부르며 한가롭게 세월을 낚고 있다면 이상한 노인이라고 비웃을 것이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라졌다는 것이다. 노령사회의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젊은이들에게 짐이 되고 있고, 노인복지에 내가 내는 세금을 써야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래서 전철 노인무료승차로 인하여 적자가 많이 생긴다고 심통을 부리고 있다. 나는 65세 이후에 전철 무료 카드 사용한 횟수를 본다면 열 손가락 안일 것아다.
퇴임하면 제도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고, 가고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할 것이라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처음 6개월 동안이나 1년 내는 그런대로 즐거운 생활을 할 수가 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의 달팽이 생활로 굳혀가고 있다. 점점 병원 문턱을 드나들어야 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으로 나도 모르게 잠식되어 간다.
자식들은 다 제 살길 따라 나가고 두 늙은이만 남아서 생활을 해야 한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환자가 되면 다른 한 사람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 병원에 다니며 가정을 돌보고 자식들까지 살펴 주어야 한다. 늙어서도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그들을 살펴 줄 때 약간의 부모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늙어갈수록 바쁘다. 건강이 허락되는 늙은이들은 다행이지만 건강이 허락되지 않으면 바쁘면서도 고닲으다. 그래도 바쁜 생활을 할 수 있는 늙은이는 행복하다.
아침 기상을 하며 커튼을 제치면 태양은 동녁하늘 높이 솟아 올랐다. 아침 7시반이 넘어서야 기상하기 때문이다. 세수 하고 아침 준비를 한다. 콩나물국에 계란후라이가 특식이다. 식사후 따끈한 커피를 같아 마시고 설거지를 한다. 거실과 안방, 건너방, 내 서재 청소를 마치고 화분에 골고루 물을 주며 꽃나무들의 상태를 살피며 피어난 꽃에 코를 대고 향기도 느끼며 식물과 친해 본다. 꽃나무나 화초들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의 기쁨을 돌려주고 있다. 젊은날에 돌밭을 헤매며 수석이라고 모아둔 수십점을 어루만지며 돌과 대화를 한다. 너는 정선에서 왔고, 너는 동강에서 왔고, 너는 소야도에서 왔지, 너는 대청도에서, 너는 소청도 청석이구나. 하면서 어루만져 준다.
노트북도 친구여서 열고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러 곳의 문학카페를 방문하여 졸시도 올리고, 댓글도 달고, 시원치 않은 작문도 쓴다.
서재에 들어가 많은 책장의 책을 살펴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꺼내었다. <역사 속의 시간, 시간 속의 역사>였다. 역사는 시간을 어떻게 다루었고 시간은 어떤 역사를 만들어 냈을까? 하는 흥미가 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환자가 병원 가는 날은 바쁘다.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 가서 투석을 한다 . 운전수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 하루를 봉사해야 한다.
잠시 시간을 틈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 보는 눈은 슬그머니 감기며 꿈을 꾸고 있다. 이 잠깐의 시간이 나의 휴식시간이된다. 그래도 바쁜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