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바뀌어져 있었어."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한국에 다녀온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지않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한다.
한국의 여름 날씨는 너무 더웠고 습도가 높아 거의 집 안에서 지냈는데 아버지가 해주시는 고추무침을 거의 한 달 내내 먹었다고한다.
아버지가 해주시는 고추무침이라고?
그래, 엄마는 거의 거동을 못하시니 집안일 전체를 아버지가 하시는데, 얼마나 깔끔하게 하시던지......
옥상에 아버지가 고추를 심으셨더라구...
고추를 밀가루에 묻힌 다음 쪄내서 갖은 양념으로 무치는거야.
맞다, 맞어.
우리 친정어머니도 텃밭에서 작은 고추들을 따다가 그렇게 쪄서 무쳐주셨었지.
어디 고추 뿐이던가.
텃밭에는 나오는 온갖 재료들이 어머니의 손을 거쳐 많이도 쪄졌었지.
가지, 호박, 호박잎, 감자......
보라색 가지를 밥 위에 찌면 밥에도 보라색이 물들곤 하였다.
통째로 찐 가지를 가늘게 찢어내어 갖은 양념으로 무쳐낸 가지무침, 한여름에도 맛이 좋았지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선선한 초가을에는 더욱 맛이 좋았었다.
텃밭 가장자리에 심어졌던 호박, 노오란 꽃이 지고난 자리에 달리던 싱싱한 초록색의 호박.
아침 이슬에 젖어 반짝반짝 빛나던 호박을 새우젓과 함께 볶아 주시곤 하셨었다.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 오신 아버지의 식성과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신 어머니와는 근본적으로 식성이 다르셨다.
늘 입만 여시면 모든 음식들은 황해도 것들이 최고라고 하셨으니까.
야채도, 생선도.
그런데 아버지도 이 호박새우젓 볶음은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호박도 맛이 좋았지만 호박잎에 싸먹는 된장찌개는 정말 일품이었다.
평상시에 먹는 국물있는 된장찌개가 아니고 강된장이라하여 물기가 거의 없는 된장에 갖은 양념을 넣어 빡빡하게 끓인 된장을 호박잎에 넣어 쌈으로 먹는 맛은 정말 그리운 고향의 맛이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강화에 사는 친구집을 방문하게 되었었다.
아직도 시골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는 친구의 집 마당에서 그 호박잎을 보게되었었다.
염치 불구하고 저 호박잎이 먹고 싶다고...
바쁘시게 일하시는 아주머니를 재촉하여 결국 호박잎을 쌈으로 먹고 남은 것은 얻어오기까지 하였었다.
텃밭에는 감자도 심으셨는데......
감자꽃이 흰색, 보라색으로 피어날 때, 꽃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아버지, 어머니 뒤를 따라다니며 떨어진 감자를 줍는 일도 참으로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렇게 수확한 감자들을 광에 넣어두고 여름내 꺼내먹곤 하였었다.
특히, 비오는 날 쪄먹는 감자의 맛이란!
간식거리가 별로없던 그 시절, 감자를 구어먹고 쪄먹고 ......
부모님 뒤를 따라다니며 내가 주워온 자그마한 감자들은 따로 골라내어 양념간장에 졸여주시기도 하셨었다.
비오는 날, 쪄먹는 감자도 좋았고 밀대로 밀어서 해주시던 칼국수도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맛은
어머니의 밀가루 부침개였다.
"얘야, 기름 반병만 사오너라!."
비오는 날 무료하게 방에서 이리저리 구르고있으면 영락없이 어머니의 부르는 그 소리.
기름 한 병도 아니고 반 병.
신작로를 한 걸음에 달려가 상이군인 아저씨가 하는 기름집에 들어가면 문 앞에서부터 퍼져오던 그 고소한 콩기름냄새.
밀가루에 소금 조금, 그리고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들, 호박 깻잎등.
밀가루 반죽에 섞인 야채들이 숨이 죽어 기름과 함께 넙적하게 부침이되고 얄팍하게 구워져 나오면
침을 삼키며 첫 장이 나오기를 쭈그리며 앉아서 기다리던 그 비 내리던 추녀 끝의 여름날은 어디로 간 것일까?
친구 집에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한국식품점을 향하고 있다.
"저기요, 쪄먹는 고추 있나요?"
첫댓글 이글은 영애가 한국에서 아버지가 해준 고추무침 맛있게 먹고왔다고하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