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가 내게 자랑했다. 복지관에 나가서 탁구도 치고 서예도 배운다며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평소에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길을 걸을 때면 남들보다 항상 뒤처지던 그가 어떻게 그런 격한 운동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의 탁구 실력과 함께 복지관도 구경할 요량으로 약속을 하고 찾아가보기로 했다. 서호노인복지관은 권선구 구운로 4번 길34 (구운동 501번지) 구운동 사거리에서 도보로 멀지 않았다.
노익장 열기 가득..'노인천국' 수원 서호복지관 _1
지하에는 수영장과 헬스장, 사우나장이 있었다. 1층에는 식당과 휴게실이 있고, 2층에는 물리치료실과 장기바둑 실, 3층에는 탁구와 라인댄스교실이 있었다. 그러나 요일과 시간대별로 교실은 프로그램에 따라 병용된다고 했다. 내가 3층에 도착했을 때는 탁구 초급반 시간이었다. 약속했던 그는 중급반이라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복지관 시설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하에 있는 수영장은 창문을 통해 수영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시설이 크지 않아서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헬스장에서는 근력을 키우며 몸만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자리가 모자라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1층의 식당에는 점심식사가 끝난 뒤라 한가해 보였고, 자원봉사자들이 일손을 돕는다고도 했다. 식대 또한 일반인은 2천500원이며,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는 1천500원으로 마치 별천지에 온 기분이 들었다.
2층으로 올라오자 장기바둑실은 빈틈없이 빼곡했다. 장기와 바둑판을 서로 마주보고 앉아, 구경꾼들과 함께 장기 바둑알 굴리는 소리가 개구리울음을 내며 압도하는 가운데 긴장감마저 들었다.
노익장 열기 가득..'노인천국' 수원 서호복지관 _2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이곳 복지관만의 풍경은 아닐 것 같았다. 우리나라 노인들 대다수의 취미활동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좀더 넓고 밝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이 뿌리를 내렸기에 다행이지 만약 옛날처럼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면 이 자리는 어떠했을까. 생각만 하여도 눈이 따갑고, 목이 막힐 듯 컬컬해오며 아찔했다.
3층에 다시 올라와 기다리고 있으려니 여자 노인들이 속속 올라왔다. 이들은 운동화를 갈아 신고, 복장도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뒤 저마다 굴뚝 모자를 썼다. 그리고 '어울림 마당'으로 들어가 음악에 맞춰 라인댄스를 배웠다. 문이 닫혀 있었고, 방해가 될 것만 같아 들어갈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까치발만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다가 허락도 없이 창문 밖에서 그만 슬쩍 한 컷 찍었다.
노익장 열기 가득..'노인천국' 수원 서호복지관 _3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기다릴 때 약속했던 이가 도착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강당에서 하는 '탁구교실 중급반' 시간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하여 50분간 이라고 했다. 이들 중에는 부부가 함께 온 분들도 있었다. 금슬이 좋아 보여 나이를 여쭤보니 일흔네 살, 동갑이라고 했다. 열 살은 덜 들어 보인다고 하니 남들이 그렇게들 본다며, 운동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되자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이 강당 안으로 들어가기에 나도 따라 들어갔다. 강사님께 미리 사진 몇 장 찍겠다며 허락을 받았다. 초상권 침해라 하여 사람들 앞에 카메라를 내미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궁금했던 그의 탁구 실력과 함께 멋진 포즈를 담아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둔해 보이는 평소의 몸짓이며,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걷기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이렇듯 즐거워하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신보다 젊은 사람을 상대로 하여 함께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노익장 열기 가득..'노인천국' 수원 서호복지관 _4
핑 퐁 핑퐁! 날렵한 동작들이 하얀 탁구공을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나는 어릴 적 고향에서 치던 탁구 판의 소나무 공이가 황소 눈알처럼 빠진 진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탁구채를 잡는 방법도 지금은 달라져있었고,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생각도 그렇게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그는 이른바 '독거노인'이었다. 복지관에 오면 이렇듯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점심과 저녁식사까지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어 좋다며 환한 얼굴로 소녀처럼 웃어보였다. '이런 좋은 세상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그러나 불만 속에 투덜대는 사람들을 보면 속을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이곳 서호복지관은 올해로 개관 한지 14 년 차가 된다고 했다. 수영과 헬스, 노래교실 등 지역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과목과 60세 이상 복지관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과목으로 나뉘어 모두 60여 과목이 운영된다고 했다. 식당 이용료뿐만 아니라 이미용실 이용료(파마:8천원, 컷트: 남자3천원, 여자4천원) 등 모든 시설 이용료가 저렴했다.
현담스님께서 이곳 관장님으로 계신 점에 비추어 알 수 있듯이 '수원사'라고 하는 사찰에서 운영한다고 했다. 예산의 일부는 행정기관의 지원금과 나머지는 사회단체와 개인들로부터 답지한 성금이라고 했다. 연꽃 향기와 같은 우리 사회의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래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살아갈 만 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뜨거운 열기로 채워진 서호복지관은 노익장을 과시하는 천국 같았고,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가라는 그의 권유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뒤돌아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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