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어디 있었느냐?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
욥기 38:1-24 / 찬송 40장
1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6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8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9 그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10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12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13 그것으로 땅 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14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같이 나타나되
15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 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16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17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18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20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21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
22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24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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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어디 있었느냐(38:1-24)
계속된 지리한 논쟁은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번영이 공존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의 안목을 넓힐 것을 요구하는 힘겨운 과정이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우리는 답답하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세상 지을 때를 보았느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은 ‘의인의 고난’이라는 문제의 핵심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4절)
마치 엘리후의 말을 이어받듯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당신께서 지으셨음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도량’, ‘준승’ 등의 단어를 통해 그 창조가 정확한 계획으로 이루어졌음을 말씀하십니다(5절). 그리고 그 창조가 ‘보시기에 좋았던’(창 1장) 기쁜 일이었고(7절),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계심을 표현하고 계십니다(8-11절).
이 이야기가 엘리후의 말과는 질적으로 다른 권위를 갖는 것은 창조주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창조주와 피조물’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들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예로 드시며 창조주의 권위와 피조물인 인간의 유한성을 강조하십니다. 혹자는 과학적 지식을 갖고 이 대답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지구와 태양계의 운동, 지구의 자전으로 생기는 낮과 밤, 기상 위성을 통해 관찰하는 대기의 움직임. 하지만 이런 지식들은 단지 자연계가 움직이는 모습들을 관찰하는 단계에 머무를 뿐 여전히 그 현상과 법칙이 어떤 철학적인 형이상학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묵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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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성경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책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는 제작자와 제작품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만약 제작품이라면 잘못된 것이라면 싹 다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자식은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식이 부패했다고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자식은 아버지가 전능하다고 해서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식을 바라보며 짝사랑하며 마음을 태우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은 어쩌면 전능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사랑 속에 갇혀 있는 분이십니다.
이는 마치 남자가 힘이 쎄지만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에 갖혀 꼼짝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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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하나님은 무엇을 주제로 대화를 시작하십니까? 하나님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해 보십시오.
2. ‘허리를 묶고’(3절) 대답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개념 가운데는 현대 과학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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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의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인삼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인 삼아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부족하여,,,
언제나 우리의 의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많은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내가 무엇인가를 했으면 왠지 떳떳한 것 같고,,,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바로 하지 못했다고 여겼을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나아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함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심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바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준으로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살게 하옵소서.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며,,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로 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합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함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날마다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 ~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