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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적 딜레마 - 야곱은 왜 두려워했는가?]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언약의 전승자입니다. 과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기근 때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아내를 빼앗길 뻔했고(창 12장), 아버지 이삭이 흉년 때 애굽으로 가려 하자 하나님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창 26:2)"고 엄히 막으셨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멈춤은 불신앙이 아니라, "내 혈육의 정(요셉)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가나안 땅)을 저버리는 죄를 짓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영적 가장으로서의 거룩한 두려움(Fear)이었습니다.
[원어 깊이 읽기: 알 티라 레드 미츠라예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Al-tira mered Mitzrayema, אַל־תִּירָא מֵרְדָה מִצְרַיְמָה): 직역하면 **"애굽으로 하강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큰 민족'으로 만들기 위해, 좁고 척박한 가나안 땅 대신 대제국 애굽의 풍요로운 시스템을 '인큐베이터'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세속의 한복판(애굽)으로 내려가는 험난한 길조차 거룩한 사명의 길이 됩니다.
(4절)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임마누엘의 절정):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짐을 싸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그 고난의 풀무불(애굽) 속으로 동행하시겠다는 위대한 언약의 선포입니다!
II. 70명의 족보: 초라한 시작, 창대한 끝 (46:8-27)
성경은 20절에 걸쳐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 가족의 족보를 아주 지루할 정도로 상세히 기록하며, 그 숫자가 70명임을 강조합니다.
(창 46:27, 개역개정)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신학적 주해 - 70이라는 숫자의 의미]
70(שִׁבְעִים, Shib'im)은 성경에서 '전체, 완전함,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창 10장의 열방의 민족 수도 70개입니다).
당시 애굽의 인구는 수백만 명이었고, 야곱의 가족 70명은 애굽의 한 성읍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하고 연약한 난민 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초라한 70명의 '씨앗'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430년 후 장정만 60만 명(총인구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거대한 여호와의 군대(출애굽기)**로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생명이 있는 복음의 씨앗은 그 시작이 아무리 미약해도 반드시 온 땅을 덮는 기적을 낳습니다!
III. 앞서가는 유다와 눈물의 재회 (46:28-30)
야곱은 수많은 아들 중 하필이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길을 안내하게 합니다.
(창 46:28-30, 개역개정)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며 그의 목을 어긋맞추어 안고 얼마 동안 울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원어 깊이 읽기: 레호롯(인도하게 하고)]
인도하게 하고 (Lehorot, לְהוֹרֹת): 본래 뜻은 '가르치다, 방향을 지시하다(토라 Torah의 어원)'입니다.
과거 동생을 구덩이에 던졌던 주동자 유다가(창 37장), 십자가 대속의 연단(창 44장)을 통과한 후 이제는 야곱 가문 전체를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는 **'영적 방향타(실질적 장자)'**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Amutah happa'am, אָמוּתָה הַפָּעַם):] 22년 전 짐승에게 찢긴 줄 알았던 피 묻은 채색옷을 안고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리라" 통곡했던 야곱입니다. 그 끊어졌던 창자가 애굽 총리의 수레에서 내린 요셉을 껴안는 순간 완벽하게 치유됩니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이것은 모든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의 거룩한 찬양입니다.
IV. 고센 땅의 전략: '가증함'을 십자가의 방패로 삼다 (46:31-34)
감격의 상봉 직후, 요셉은 바로 왕을 만나기 전 가족들에게 매우 치밀하고 기이한 '면접 전략'을 지시합니다.
(창 46:33-34, 개역개정)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원어 깊이 읽기: 토아바(가증히 여김)]
가증히 여기나니 (To'abath, תּוֹעֲבַת): '역겹다, 혐오스럽다, 종교적인 혐오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애굽인들은 농경과 세련된 도시 문화를 자랑했기에, 짐승과 함께 뒹구는 유목민(목자)들을 더러운 야만인으로 취급하여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적 절정 - 세상과 동화되지 않는 거룩한 분리]
만약 요셉이 가족들을 '애굽 총리의 친척'이라는 화려한 스펙으로 포장하여 왕궁 한복판(수도)에 살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70명의 가족은 순식간에 화려한 애굽의 다신교 문화와 쾌락에 젖어 통혼하고 동화되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영원히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일부러 **'애굽인들이 역겨워하는 목자(Shepherds)'**라는 직업을 가장 전면에 내세웁니다! 세상 사람들(애굽)이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멀리하게 만들고, 애굽의 문화가 미치지 않는 변두리 **'고센 땅'**에 그들만의 완벽한 영적 울타리를 친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체성을 숨기는 자가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이 십자가의 복음을 역겨워하고 조롱할지라도(고전 1:18), 그 **거룩한 촌스러움(목자)**을 떳떳하게 고백할 때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진짜 그리스도인(고센의 백성)으로 보존될 수 있습니다!
[설교 구성을 위한 제언: "내 인생의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으라!"]
목사님, 오직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로 이 이주의 대서사시를 강해하실 때 **<세상 한복판에 세우는 고센의 거룩함>**이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제안합니다.
서론: 인생의 중대한 결정 앞에서 브엘세바에 멈추라 (1-4절)
아무리 요셉이 보고 싶고 환경이 급박해도(기근), 야곱은 언약의 경계선(브엘세바)에서 멈춰 예배하며 하나님의 결재를 구했습니다. 당신도 이직, 이사, 결혼 등 인생의 큰 결정 앞에서 내 감정과 합리성에 치우치지 않고 먼저 제단을 쌓고 주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까?
본론 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리라! (3-4절, 8-27절)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세상의 한복판(애굽)이나 고난의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임마누엘)"고 약속하셨습니다. 70명의 초라한 난민을 200만의 군대로 만드시는 주님의 능력이 그 척박한 땅에서 폭발할 것입니다.
본론 2: 통곡의 22년,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28-30절)
야곱이 요셉을 끌어안고 22년의 피눈물을 씻어낸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걸어갈 때 우리 인생의 모든 억울함과 고통을 단숨에 치유하시는 영광의 상봉(응답)이 반드시 기다리고 있음을 뜨겁게 위로하십시오.
결론: 세상의 가증함(십자가)을 방패 삼아 고센에 머물라 (31-34절)
세련된 애굽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당신의 직업(그리스도인, 십자가의 목자)을 속이고 왕궁으로 들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우리를 미련하고 가증하게 여길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당당히 자랑하십시오. 그 거룩한 분리가 당신의 영혼과 가정을 지켜내는 '고센의 방패'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