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헬라어 공부 이야기
이것은 나의 헬라어 문법 교재다. 이 교재는 본래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한 A New Introduction to Greek(Chase & Phillips)이라는 헬라어 문법책이다. 나는 이 교재로 1987년 9월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대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당시에 고려대학교 철학과의 권창은 교수가 고전 희랍어를 가르쳤는데, 권 교수는 아테네에서 철학을 수학한 분이었다. 나의 전공은 화학공학이었지만, 나중에 목회자가 되려면 희랍어(헬라어)를 미리 공부해 두는 것이 좋을 거라는 교회 전도사님의 제안에 따라 수강 신청을 했다.
나의 학점은 아마 겨우 과락을 면할 정도였고, 나에게 그 과목은 버거웠다. 수업이 연이어 있었기에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공대 건물에서 문과대 강의실까지 뛰어가노라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룩한 사명감’으로 끝까지 수강을 마쳤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여름방학 특강을 들으러 갔다. 거기서도 바로 이 교재로 공부하고 있었다. 철학과 학생들은 문법책에 나오는 예문들의 출전과 배경을 거침없이 소개하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권창은 교수는 몇 년 후 헬라어 교재를 바꿔 가르쳤는데, 그것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출간된 아테나제(Athenaze)였다. 쉬운 문장에서 시작해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가는 헬라어 교재였다. 나는 다른 두 명의 학생과 함께 헬라어 중급반 수업을 들었다. 소수로 운영되는 강의라 그런지 더욱 열심히 수업을 따라갔고, 비로소 헬라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테나제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학교에서 1권을 배웠고 2권은 별도로 주문해 혼자서 조금씩 공부해 나갔다. 때는 1994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1997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다시 헬라어를 기초부터 배웠다. 이미 공부해 둔 터라 신대원 수업은 한결 쉽게 다가왔다. 나는 동기 두 명과 함께 헬라어와 라틴어를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교재는 아테나제와 Latin for Americans였다. 둘 다 쉽게 읽히는 문장들로 구성된 문법책이라 재미있게 공부를 마쳤다. 그 교재들은 모두 내가 고려대학교에서 접했던 것들이었기에, 내가 그 스터디 모임의 인도자 역할을 맡았다.
시간이 흘러 신대원을 졸업하고 2005년에 목사 임직을 받았으며, 2012년에는 옹달샘교회를 개척했고, 2015년부터는 상왕십리의 새소망교회에서 10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그리고 2025년 부활절, 나는 교회를 사임했다. 내 나이 57세, 조금은 이른 은퇴라 할 수도 있겠다.
목회 현장을 떠나 아내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독서, 필사, 성경 암송, 유튜브 촬영 등을 하며 지내다가, 2026년 3월부터 한 어린이집의 차량 기사로 일을 시작했다. 오전 2시간, 오후 1시간 반 운전을 하고 그 사이의 남는 시간에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주로 독서를 하다가 문득, 은퇴 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학창 시절 그토록 고전했던 하버드 대학교 출판사의 헬라어 문법책을 제대로 끝까지 공부해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2026년 4월 24일부터 노트에 헬라어 교재를 필사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7월 14일, 이 교재를 정리한 나의 헬라어 문법 필사 노트는 어느덧 네 권이 되었다. 39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제미나이)이라는 친절한 조력자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필사를 마치고 그것을 스캔한 뒤,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디지털 작업으로 기록을 남겼다.
앞으로도 이 교재를 다시 복습하면서 내용을 더욱 알차게 채워 나갈 계획이다. 이미 이 교재에는 고전 헬라어의 명문장들이 많이 담겨 있지만, 충분히 익히고 나면 1년 후쯤에는 플라톤이나 크세노폰의 원문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렇게 헬라어를 충분히 익혀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성경 저자들이 그 글을 기록했던 방식과 시대적 배경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희랍 철학 문화와 헬라어 성경이라는 두 진영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또 다른지를 명확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2026년 7월 25일 조해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