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전화 번호.
초등학생들까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입니다.
단순한 전화가 아닙니다.
카메라, 플래시, 녹음기, MP3 플레이어, 돋보기, 화상 전화 등등 기능에 별의별 기능을 다 갖추었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전화기를 보니 예전에 만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일수록 새로운 첨단 기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들이 자라서 세상의 주인이 될 때가 되면 이 조막만한 기계 장치 하나로 그야말로 유비쿼터스 시대가 올 것은 분명한 예상입니다.
처음 이 전화기를 사용하던 때의 그 짜릿한 기억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일상화 된 물건이지요.
내가 핸드폰을 사용한 지는 10년이 좀 넘었을 겁니다.
그 동안 서너 개의 기계를 바꾸었습니다.
오래 쓰다 보니 고장이 나서 바꾼 것이 대부분이고 최근에 쓰던 전화기는 거의 한계 수명에 다다랐는데 마침 전화 회사에서 자기네 전화 오래 써 주었다고 새 전화기로 바꿔 주었습니다.
그 새 전화기가 만족도가 높습니다.
일명 ‘효도폰’ 이라는 전화기인데 글씨가 굵어서 돋보기를 쓰지 않아도 기능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아마 우수 고객을 다른 전화 회사로 빼앗기지 않으려는 판촉용이었을 겁니다.
전화기를 바꾸던 날 예전에 쓰던 전화기에 내장 된 전화번호들을 손쉽게 새 전화기로 옮겨 주어서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을 넘게 쓴 내 전화기 속에는 1천개 이상의 전화번호가 저장 되어 있습니다.
앞에 지역번호가 붙은 유선 전화번호도 더러 있지만 점차 01로 시작하는 핸드폰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몇 년을 지난 지금은 대부분은 핸드폰 번호입니다.
지금은 모두들 핸드폰을 쓰는 시대니까요.
문제는 그 번호들 중에는 틀린 번화가 많다는 점입니다.
핸드폰 전화번호는 새 전화기로 바꿀 때, 또는 다른 전화 회사로 옮길 때 등등의 이유로 자주 바뀌더군요.
오래 전화 하지 않고 지낸 사람들의 번호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어 있습니다.
더러 친절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의 번호가 바뀌었노라고 안내가 오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소원하게 지낸 사람은 그냥 바꾸어 버려서 맞지 않는 번호가 남아있는 거지요.
처음 핸드폰이 나왔을 때 쓰던 011, 016, 018, 019 로 시작하는 번호들은 거의 없어집니다. 대신 010으로 시작되고 가운데가 네 자리 숫자로 된 번호로 바뀌는 중입니다.
나는 고집스럽게 처음부터 쓰던 10년도 더 넘은 이 번호를 그냥 씁니다.
더 좋은 혜택을 제시하면서 010으로 시작하는 새 번호로 바꾸기를 은근짜 권유 받지만 016으로 시작되는 구닥다리 번호를 그냥 씁니다.
천성이 오래 된 것을 좋아하는 습성도 있지요.
그것 말고도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는 속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깊은 밤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눅눅한 목소리로 전해 오는 첫 마디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 시간대에 걸려오는 전화가 유쾌한 내용을 담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에 알지요.
“목사님, 전화 번호 안 바꾸셔서 다행이네요. 하도 옛날 번호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걸었어요. 이렇게 연결 되리라는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연결이 되었어요. 하나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잊지는 않으셨는가 봐요”
오래 전에 헤어진 사람입니다.
목소리가 많이 지쳐 있습니다.
대화에 깊은 절망감이 배어 있습니다.
다들 겪는 경제적 고난에다가 가정적인 어려움이 겹쳐서 못내 마음고생을 하다가 하다가 옛날 목사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더랍니다.
다행이 연결 되고 보니 하나님이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습니다.
주섬 주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전화로 기도도 나누고 끊었습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흐르겠지요.
또 다른 어느 밤에 여전히 그 번호를 갖고 있다가 또 그렇게 전화를 걸었는데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없는 국번이오니 번호를 확인하시고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예쁘고 낭랑한 목소리만 남기고 목사가 사라졌다면 그 절망감을 어쩌겠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을 어쩌겠느냐구요.
아! 내가 쓰는 전화는 개인 이재정의 전화번호가 아닙니다.
어느 곤고한 사람이 삶의 막장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걸어보는 ‘목자의 호출 부호’입니다.
그걸 어떻게 바꿔요.
누군가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번호여서, 그 속에 누군가의 생명을 향한 따듯한 위로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하는 ‘목자의 호출 부호’여서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첫댓글 저도 엊그제 번호를 바꿨는데 좀 찔리네요. ㅋㅋㅋ 근데 번호이동을 해야만 혜택을 주기 땜에 어쩔수없이 바꿨답니다. 그래서 저는 안내서비스를 2년으로 했어요 옛날분들이 혹시나 전화하실까봐요 목사님,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진실함이 마음 가슴깊이 전해집니다. 좋으글 감사해요
파란 님 이거 이번 주 우리 교회 주보에 사용할테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100번이라도 쓰세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안 바꿨습니다. 주변에서 계속해서 유혹의 손길이 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새 폰이 공짜인데...
목사님의 깊은 마음이 느껴지는 너무 좋은 글입니다. 저 역시 핸드폰에 관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