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좀...]
이지은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라는 생각을 오랜 시간 해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유난히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기였다. 기저귀가 조금만 축축해도 금방 “앙~”하고 울어대는 아기였다. 그리고 유달리 자주 아프기도 했던 아이였다. 우리 집 현관 서랍장 젤 위 칸에는 항상 비상금이 들어있었다. 내가 열이 펄펄 나고 아프기 시작하면 그 돈을 가지고 바로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만 했었다.
어릴 때 열이 자주 나서 정신이 희미해지는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걸리버 여행기> 속 주인공처럼 누워있는 나 자신만 작아지고, 가구 및 내 방이 엄청나게 커져 버린 생경한 기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고열에 해롱거리던 나, 어느 날은 응급실에 자리가 없어 복도 침대에 누워 있던 나에게 엄마가 해열제 알약 같은 것을 직접 넣어주는 그 불편하면서도 어질한 기억의 단상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의 실제 사건을 각색한 프로그램이던지, ‘전설의 고향’ 등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밤이면 나는 무서움에 짓눌러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을 수 없었고, 내 방에서 화장실조차 가는 게 무서워 엄마를 매번 깨우곤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 아빠는 이게 다 기가 허해서 그런 거라고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 등을 사 오셨다.
직접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메기를 사 오시고, 펄떡펄떡 움직이는 메기를 큰 통에 쑤셔 넣느라 고군분투하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 벌써 수십 년 전 일지만.
엄마가 나에게 “너한테는 세상에서 몸에 좋다고 하는 거 다 먹였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게 먹었던 각종 약재 및 좋은 음식들이 돈값들을 했던 건지, 나는 커가면서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 건강한 청소년 그리고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신체적으로 약할 뿐 아니라 나는 심리적으로도 심약한 아이기도 했다. 유리 멘탈인 나 자신을 너무 싫어해 왔다. 사소한 일에도 긴장하고 주위의 작은 변화에도 난 쉬이 흔들렸고 무너져 버렸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 내내 나는 패닉 그 상태였다. 오늘 안에 시험 범위를 다 보지 못해 다음날 시험을 망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공부도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울기만 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가 시험지 초반에 나오면 나는 또 패닉에 빠진다. 이번 시험을 망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매번 집어삼켰다. 학교 내신 물론 각종 자격증, 어학 시험, 면접 등 모든 종류의 시험 앞에 나는 극심한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시험 보기 직전까지 화장실만 들락날락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솔직히 지금도 자주 그런 꿈을 꾼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시험 범위조차 몰라 패닉에 빠져버린 나.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걸 제출 당일까지 전혀 모르다 있다가 절망에 빠진 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는데 몇 개월 학교 수업에 참석하지 않아 필기한 것조차 없어 공황에 빠진 나.
대학 졸업을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과목을 듣지 않아 졸업이 취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막 발견한 나.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이 꿈이라는 게 얼떨떨하다. 잠에서 깨서도 그 두려움과 공포, 걱정 등 감정의 잔향이 내 마음에 머무른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해준다. ‘나는 더 이상 시험을 앞둔 학생이 아니다. 나는 무사히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시험 걱정이 없는 직장인이다.’
또한, 나는 200퍼센트를 준비하면 70퍼센트밖에 실전에서 발휘하지 못하는 무척이나 효율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실전에서 떨려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한다는 걸 잘 아는 나는 그래서 미리 과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결국 70퍼센트 정도밖에 실력 발휘하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감과 자책감을 감출 수 없다.
장난 반, 진담 반 내가 가족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런 나를 데리고 사는데 몹시 피곤하고 힘들다고.” 그렇다. 너무 고되다.
가족들에게는 항상 까칠하고 예민한 딸, 누나, 언니이다. 나도 내가 예민해지고 싶지 않은데, 예민하게 내 신경들이 곤두서는 걸 어쩌라는 건지. 이럴 때면 나를 임신하던 기간에 고된 시집살이로 스트레스가 많았던 엄마한테 그 원망의 화살을 돌린다. 그때 좀 더 엄마가 편안했다면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을까. 아! 쓰고 보니 천하의 불효녀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만약에….’ 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기도 하지 않는가.
나는 쓸데없이 눈치 빠르고, 감정 이입 잘하고, 마음도 여리다. 누군가는 이런 점들이 살면서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글쎄 지금까지는 없는 것 같다. 아직은 남보다 내가 어깨 위에 짐을 배로 얹고 힘들게 걸음을 내딛는 사람인 것 같다. 숨이 차다. 무겁다. 그 발걸음이.
나도 명확히 안다. 이런 나의 성향과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다만 내가 좀 더 담대하고 그랬으면.’ 하는 심정은 엄마가 자신의 아이에게 바라는 심정일까. 아이가 바르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너무 착하기만 하면 세상 살아가는데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안타까움과 비슷한 마음일까.
아직 나는 나 자신과 가까워지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어차피 이렇게 태어났으니 데리고 잘 살아야지.’ 하는 포기, 측은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이런 내가 너무 싫다!’에서 ‘그래도 좀 마음에 안 든다….’ 정도랄까.
첫댓글 자신을 100% 잘 알고, 좋아만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이라면 세상을 살아가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은님의 글을 보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토록 깊이있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저도 늘 긴장하고 떨리고, 걱정하다 일이 잘 안돼는 꿈을 꾸곤 합니다. 지은님도 저도 잘해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틀리고 싶지 않고, 더 잘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끝나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렇기도 하지요. 아기 적 일들까지 모두 기억하실 정도로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지은님에게 더 좋은 일들이 가득하시길 바라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한 글입니다. 아무나 나를 알고 반성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아마 모두들 살면서 계속 자기를 발견해나가고 있을거에요.
아주 솔직하고 담담하게 또 세심하게 쓴 글 잘 읽었습니다. 자신을 알고 성찰하기가 가장 어렵고 먼저 해야 할 일인거 같아요. 나를 알아야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알아서 다른 사람과 나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