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저자 마카벨리는,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양자택일을 하게 된다면 “사랑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It is far safer to be feared than loved)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태어난 피렌체를 살리고 이탈리아를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군주는 만인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돼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군주론>을 저술하고 꼭 50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그 동안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는 모조리 권좌에서 밀려나 한심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카벨리의 주장대로, ‘공포’라는 무기만을 들고 인민을 무자비하게 통치하는 폭군을 아마도 휴전선 이북의 김정은 한 사람 뿐일 겁니다.
그러나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김정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담 후세인이나 카다피 같은 절대의 권력자들도 일단 권좌에서 밀려나니 그 누구보다도 비겁하고 비굴한 ‘건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돈이나 권력을 탐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헨리 8세에게 올바른 충고를 하다가 미움을 사서 마침내 57세에 단두대에서 처형된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야 말로 진정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동양의 평화를 교란하는 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한국의 청년 안중근은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소신 때문에, 단두대나 교수대 앞에 태연하게 서서 처형되는 그런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일본 가나자와 형무소 근처 야산에서 일본 놈들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고 총에 맞는 장면이 찍힌 사진을 오래 전에 보고 울었습니다. 그를 생각하며 이 새벽에도 눈물이 흐릅니다. 윤봉길과 같은 한국인임이 나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서! 죽음 앞에 태연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사람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