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리움, 그 향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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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라는 주제는 내 온 생애를 통하여 가장 길고 진하고 따뜻하면서도 슬프게 다가오는 온전한 정서였다. 누가 만든 말일까. 그리움이라는 말은 참 아름답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무엔지 모르게 간절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름답고 섬세한 우리 말 중에서도 그리움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였고 즐겨 썼다.
나는 또 왜 그렇게 그리운 것들이 많았던 것일까. 돌이켜보니 나는 온 생애를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산 것 같았다. 어디 나만 그렇겠는가. 다른 사람도 그러하리라. 나를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는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 그 짧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 늘 그리웠다. 불과 12~13년 밖에 살지 못했던 어릴 적 그 고향이 나는 늘 그리웠다. 생각해보면 아득하고, 가난하고, 배고프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고향과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그러나 내 가슴 속에 깊이 남아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눈을 뜨면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아름답고 가슴 벅차게 가슴으로 다가와서 주체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뜨면 보이는 푸른 하늘, 살갗에 느껴지는 바람,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온갖 꽃들, 바람결에 흔들리는 들풀, 새소리, 풀벌레 소리, 밤하늘의 별들, 그 모든 것들이 경이롭고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짧은 어린 시절에 본 보리밭, 호밀밭, 상수리나무가 서 있던 조그맣고 푸른 언덕과 멀리 보이던 철둑길은 고향의 풍경화가 되어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곳에는 늘 하얀 수건을 쓰고 밭에서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계셨고, 정답던 누나와 동생도 있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또 어떠했던가. 어린 나이에 서울에 와서 밤을 새워 공장생활을 하던 시절도 있었고, 배우고 싶어 몸부림치며 학원 급사노릇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마침내 누나의 도움으로 야간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 꿈같이 아련하고 경이롭고 설레던 마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나는 그 때의 심정을 군 시절 일기에 이렇게 써놓았다.
< 비가 내렸다. 차갑기만 한 가을비가. 겨울을 재촉하는 것일까, 이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꽃잎들은 얼마나 떨어지고, 날씨는 또 얼마나 추워질 것인가. 비바람 속에서 판초우의를 천막처럼 치고 그 속에 들어앉아서 어둠 속으로 전방을 살폈다. 이따금씩 번갯불이 번쩍했다가는 사라지고 빗방울은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졌다가 수시로 변했다.
진도에서 이곳까지 온 박상병. 지루함을 이기려고 이야기를 청하기에 내 소년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하기 싫어했을 텐데 오늘은 왠지 들려주고 싶었다. 아니 그저 지껄이고 싶었다.
열여섯 살 때 일하던 어두운 공장 안. 언 손을 비벼가며 기름칠을 하다가 고개를 들면 문득 작은 구멍사이로 눈부신 분수의 물줄기가 보였었다. 찬란하게 솟아오르던 그 물줄기. 그때부터 나는 분수를 좋아했다. 점심을 한 달간 굶기로 작정한 것은 ‘중간치기’의 결과였다. 옥상 위에서 분수를 바라보며 배고픔을 참던 시절, 그때 그 하얀 물줄기가 나는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해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어봤으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다.
박상병이 나의 분수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녀석은 잠이 들어있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판초우의 속에서 웅크린 채 떨면서도 잠이 오는가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숨만 쉬고 있음 되는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나의 열여섯 시절에는
무엇이 가장 그리웠던가
아카시아, 분수(噴水), 바다...
그리고 네루다 詩의 저녁놀이 그리웠지만
그 무엇보다도 교복이 그리웠었다.
턱 밑에까지 후크를 채우던 까만 학생복과 까만 학생모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던 평범한 학생들
나도 배우고 싶었다. 그들처럼
눈빛을 빛내며 수업을 받고
푸른 내일을 꿈꾸고 싶었다.
5년의 세월 동안 겨울은 깊어 갔고
5년의 겨울 동안 나의 소년시절은 몹시 추웠다.
드디어 열아홉 살 되던 해 봄
내 꿈이 이루어지던 날
처음으로 핫바지 같이 큰 교복을 입고
해질녘 누룽지를 먹으며
논둑길을 걸어서 허둥지둥 정희학교에 갔다.
눈꽃처럼 희게 웃던 여학생들
영원히 머무르고 싶던 봄날의 화원
꿈속에서도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날마다 환희의 날이 계속 되었다.
그 시절... 구로동의 밤길을 걸으며
입술이 들뜬 채 골목길을 뛰던 나날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기였다.
배우고 싶어 몸부림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생각나는 것들이 참 많다.
튀김집이 늘어서 있던 구로동의 골목길
두 가지 영화를 상영하던 국일극장
교회의 종소리가 정다웠던 정희학교.
그 해 가을 달빛이 환하던 저녁
이슬 내리던 들녘을 걸으며 설레던 가슴의 북소리
모닥불을 피워놓고 춤추던 겨울 밤
하늘높이 빛나던 별들
그 시절 나는 머리를 땋은 여학생을 다 사랑했었다. 그들의 옷과 머리카락과 들여다 볼 수 없는 마음까지를 막연히 사랑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그녀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얗게 웃던 그녀, 따뜻하던 눈동자, 스커트 자락에 머물던 황홀한 그리움.
너무도 좋았다, 그녀의 옆에만 있으면. 나는 마구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녀의 앞에만 서면. 그녀의 눈 속에서 마냥 행복하고 싶었다. 그녀는 머리를 땋고 학생복을 입으면 가장 예뻤다. 하얀 얼굴, 조그만 손, 그래서 그녀를 사랑했다. 분수보다 더 열렬한 열정으로. 그녀가 웃어주면... 나는 울고 싶도록 행복했다.
아, 지금도 맑은 영혼 한가운데 늘 빛으로 다가와
가슴 가득 그리움을 안겨주는 이름이여.
(1978. 10. 22.)
절대라고 믿는 그 외로운 신앙
사랑은 가장 고독한 종교다
우수와 연민과 희구속의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사랑은 갈망이다
한 모금만 얻어 마시면 죽어도 좋다고 여기는 참혹한 갈증이다
아아, 이 측은함
사랑해 주리라. 어떤 서약이라도 바쳐줄 수 있다
영원의 이름으로 겁 없이 서약할 수 있다.
안심시키고 행복하게 하면서 지친 영혼에 기름을 입히고
언제까지라도 공손히 품어주고만 싶다
(김남조 사랑의 定說)
지난 가을은 들국화와 코스모스와 갈대꽃과 북녘하늘을 물들게 하는 황혼을 보며 살았다. 내 마음이 어둡고 고단한 날에도 꽃잎은 아름답게 피고 있었고 갈대숲은 황금빛으로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잿빛하늘에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는가 싶더니 가랑잎은 떨어져 뒹굴고 있다.
어디로 떠나는가 나의 영혼은.
기다리는 시간들은 아득하고 서러운데
들리는 것은 너의 음성, 보이는 것은 너의 얼굴.
어서 눈이 내렸으면. 돌아갈 수 있었으면...
오늘 같이 찬비가 내리는 날은 고요히 눈을 감고
섬세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우리 가곡의 선율을 듣고 싶다.
붉은 연정의 「석류」
타는 듯 하늘마다 아롱지던 「그리움」
바다만 보아도 떠오르던 「떠나가는 배」
언제나 내 맘속엔 봄, 눈부시게 피어나던 나의 사랑 「목련화」
춥고 고단한 밤에도 꿈길에서는 나의 신(信)을 만났으리니
그녀는 언제나 나를 보면 웃는다.
사랑해다오. 신아, 나의 사랑아.
(1978. 11. 6.)
어디 정희학교 뿐이겠는가. 그 후에도 나는 늘 그리움에 목이 말랐다. 참혹하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슴에 품고 한 평생을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살았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아이들이 어쩌다 며칠 집을 떠나도 아이들이 그리웠다.
큰 딸아이가 강원도 산속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녀석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으면 아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고, 고속버스를 타고 휴게소에 내려 가파른 산길을 올라 찾아갔다.
오죽하면 내가 군 시절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신(信)이 이제 내 아내가 되어 내 옆에 있는데도 나는 늘 그녀가 그리웠다.
그리운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 어느 날엔가 나는 이런 글을 써놓은 적도 있었다.
이제 가을인가,
아침에 집을 나서며 보니 하늘이 높고 푸르다.
문득 서정주 시인의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그리운 것이 어디 사람뿐이랴만은
그래도 또한 가장 그리운 것이 사람인 것을.
미당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나는 어떤가, 나를 키운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리움’ 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가슴에 피어나고 지고 또 피어나던 그 진한 그리움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랴.
나는 늘 무엇인가, 누군가가 그리웠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내 가슴은 늘 텅 빈 가을 들녘 같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립고, 눈부신 하늘이 그립고,
그 언덕 너머 고향과, 보리밭과, 어머니와
아카시아 꽃과 푸른 들녘과 저녁놀과 초저녁별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사랑하라고 했던가,
어디 그리운 것을 다 적을 수 있으랴.
밤이 새도록 헤아려도 모자랄 것 같은 이 땅의 많은 생명들
그리운 모습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 제목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 시는 그래서 이 한 줄로 족하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고 정지용 시인은 노래했지만
또한 그 고향 언덕에 올라 불던 풀피리 소리를 그리워하던
시인의 마음은 어찌할 것인가.
남현동에 이사 와서 관악산에 오르다가
우연히 서정주 시인이 사셨다는 생가(生家)를 보았다.
시인이 떠난 집은 폐가가 되어 잡초가 무성하였다.
시인은 관악산에 오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바람이 옷깃을 스민다.
내게 그리운 모든 것들이 내 곁에 없을지라도
나는 그리워함으로 하여 더욱 행복하다
그리운 이여, 안녕,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고 그리움을 토로하던 유치환시인은
어느 작은 우체국에서 편지를 띄울 그리운 이가 있어 행복하였으리라.
나는 돌아가고 싶다.
우리가 가장 그리워하던 그 소년시절로...
누룽지를 먹으며 논둑길을 달리고
별과 달을 보며 이슬내린 들판을 걸어 집으로 가던 그 시절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 시절
나는 언제까지나 과거속의 사진첩만 뒤적이며 살 것인가
그래도 좋다.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의 가을은 얼마나 삭막했을 것인가.
푸르디푸른 하늘을 보면
눈이 부시다. 눈이 시리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다보면
가슴속 어딘가에 서늘한 한 줄기 바람이 스치고 간다.
라일락 향기인가, 들국화 향기인가
오, 그대 그리운 날은
눈이 부시도록 하늘을 보리라.
(2006.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