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伊尹) - (BC 1649년 ~ BC 1550년. 중국 Baidu 백과)은 하나라 말기부터 상(商)나라 초기까지 살았다고 알려진 인물로, 상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재상이다. 상(商, BC 1600년경 ~ BC 1046년경)은 역사적으로 실제 했다고 여기는 최초 중국 왕조다. 반경(盤庚)이 마지막으로 옮긴 수도가 은(殷)이기 때문에 은나라로 부르기도 한다.
붉은 색 은 초기 청동기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유적의 분포, 녹색 은 《죽서기년 (竹書紀年)》 연구에 따라 중국 학계에서 비정된 영토이다.
주 문왕 - (周 文王, BC 1152년~1056년)은 중국 상나라 말기 주(周) 씨족의 수령이다.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이다. 둘째 아들인 서주 무왕이 주나라를 세운 후 문왕으로 추존했다. 후세에선 도통(道統)의 전인(傳人)들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주(周, BC 1046년 ~ BC 256년)는 상나라를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이며, 790년간 왕조를 이어갔다.
'이윤과 문왕의 도수'라는 이유 때문에, 대부분 이윤이 문왕을 왕위에 앉힌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과 문왕은 약 500년 시차의 인물들이다. 이윤과 문왕은 하나의 왕조를 세우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윤 - 하(夏) 나라의 신하로서 주군 걸왕(桀王)의 폭정을 무너뜨리고 탕(湯)을 도와 상(商) 나라를 세운 공신이다.
문왕 - 상(商) 나라 말기 주(周) 씨족의 수령으로 아들인 무왕이 상(商) 나라를 멸하고 주(周)를 건국하도록 기초를 놓았다.
이윤과 문왕은 후천을 여는 '공통의 도수'에서 두개의 역할을 위해 차용된 인물들로 이해된다. 즉 이윤의 도수와 문왕의 도수는 하나의 공사 안에 역할만 각각 다르게 설정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윤'과 '문왕' 도수는 문공신이 모두 맡게된다. 그럼에도 이윤과 문왕을 대상으로 한 증산 공사는, 현 증산 계열 각 종단에서 여러가지 설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이 2개의 도수는 문공신 종도가 맡아 여러 공사에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행하였으나 마치 별개의 공사를 행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공신 도수에 등장하는 문왕은 후천을 암시하는 여러 공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었고 이윤도 후천 도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천지공사의 맨 마지막 공사가 “옛 사람 이윤이 오십 살에 49년의 그름을 깨닫고 탕을 도와서 대업을 이룬 도수”로 대미(大尾)를 장식하며, 50은 후천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요한 징검다리다. 따라서 이윤과 문왕 도수를 이해하려면 먼저 문공신(文公信) 종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1] 문공신(文公信) 종도
[1879년(기묘년) 음력 7月 13日 ~ 1954년( 갑오년) 음력 5月 7日], 전북 정읍시 태인면 궁사리 강삼마을에서 출생
1. 문공신이 증산 성사로부터 받은 도수
이윤 도수 / 문왕 도수 / 오선위기 진주 도수
3개월 법사공부 도수 / 끈 도수 / 천지대팔문 도수
정음정양 도수 / 성골 되찾는 도수 / 독조사 도수
말복운 막둥이 결인 도수 / 숙구지 도수
일편단심 충언 도수 / 7년 천지공사 도수
은두장미 도수 / 천상계 체험 도수 / 무근목 도수
연원을 바로잡는 도수
2. 관련구절
「어느 날 하루는 상제님께서 후천(後天) 음양도수(陰陽度數)를 보시기 위해 종도들에게 원하는 숫자대로 종이에 점(點)을 찍게 하셨다. 이때 황응종은 두 점을, 신경수는 세 점을, 안내성은 여덟 점을, 차경석은 열두 점을 찍었는데, 유독 문공신만은 한 점을 찍었다. 이에 대해 상제님께서 그 연유를 물으시니 그는 “건곤(乾坤)이 있을 따름이오 이곤(二坤)이 있을 수 없사오니 일음일양이 원리인줄 아나이다.”라고 아뢰었다. 공신이 이같이 대답하자 상제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말이 옳도다”라고 말씀하시며 공우가 정음 정양의 도수니 그 기운을 잘 견디어 받고 정심으로 수련하라 하시고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렵다고 일러주셨다.」 - 『전경, 공사 2장 16절』
「공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음정양 도수니 네가 온전히 잘 이기어 받겠느냐 정심(正心)으로 잘 수련하라 문왕(文王)의 도수와 이윤(伊尹)의 도수가 있으니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 미물(微物) 곤충(昆蟲)이라도 원망(怨望)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 - 『천지개벽경 정미편 12장』 『도전 5: 207』
[2] 후천음양(後天陰陽) 공사
1. 음양(陰陽) 짝을 이룬 후천 공사
이 공사(이윤, 문왕)를 이해하는 키 포인트는 '후천 음양(後天 陰陽) 도수(度數)' 공사라는 점에 있다. 이윤은 탕을 도와 상(商) 나라를 창업하고, 문왕은 강태공의 보필을 받아 주(周) 나라 창업의 기반을 세운다. 이윤은 탕왕과 짝을 이루고, 문왕은 강태공과 짝을 이뤄 음양 짝을 이뤘다.
그렇다면 왜 짝을 이뤄 대업을 이룬 이윤과 문왕을 동시에 공사에 등장시켰을까? 그 이유는 증산께서는 '세상에 있는' 것을 소재로 사용하여 공사를 시행했기 때문인데, 이윤으로부터는 49와 50을 차용하기 위함이고, 문왕은 문공신으로부터는 '문(文)'이라는 글자를 통해 '문왕(文王)의 역할을 맡기기 위함인데, '문(文)'은 인덕(人德)의 후천 세상을 여는 '문(門)'이다.
이윤 - 49 50
문왕 - 문(文) 문(門)
2. 49와 50 수
이윤 도수는 ‘걸지망(桀之亡)과 탕지흥(湯之興)이 재이윤(在伊尹)이니라’01는 말처럼 선천(桀之亡)에서 후천(湯之興)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윤같은 누군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증산께서는 이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마치신 뒤에, 布敎五十年工夫終筆 (포교오십년공부종필)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옛사람 이윤(伊尹)이 50세에 49년 동안의 그름을 깨닫고 드디어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내가 천지운로를 뜯어고쳐 물샐틈없이 도수를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너희들은 삼가 타락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믿어 나가라.」02
이윤의 도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50세에 49년간의 그름을 깨닫는'다는 구절이다. 그래서 증산 공사는 "布敎五十年工夫終筆 (포교오십년공부종필)"로 끝을 맺는다. 이윤과 문왕 도수는 50을 위해 49를 거친다는 것이고,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과정에 대해 "그 도수를 맡으려면 극히 어려우리라"고 언질을 하신다. 50과 49는 무엇을 상징할까?
3. 20년 말점도 공사(?)
이윤 도수를 증산의 말점도 20년 귀양 도수와 결부시켜, 증산께서 화천한 기유년(1909)으로부터 20년 뒤인 기사년(1929)에 이상호 종도에 의해 대순전경이 성찬되게 함으로서, 증산 자신이 법신(法身)으로 출세하는 도수를 확정한 공사라는 견해가 있다. 법신(法身)이란, 인간 증산께서 '진리(眞理)의 본체'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말점도 공사에는 문공신 종도가 역할을 맡지 않았다. 말점도 공사에도 49라는 수와 음양(陰陽)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도수의 끝판에 벌어질 일을 예시한다.
「상제께서 정미년 三월 초에 광찬을 대동하고 말점도(末店島)에 들어가시려고 (광찬의 재종이 말점도에서 어업을 경영하고 있었음) 갑칠과 형렬을 만경 남포(南浦)에 불러 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지금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천지공사로 인하여 정배됨이니 너희들은 성백(成伯)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四十九일 동안 하루에 짚신 한 켤레와 종이등 한 개씩을 만들라. 그 신을 천하 사람에게 신게 하고 그 등으로 천하 사람의 어둠을 밝히리라” 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받들어 성백의 집에 가서 그대로 시행하였도다. 그 후 상제께서 말점도로부터 나오셔서 그 짚신을 원평 시장에 가서 팔게 하시고 그 종이등에는 각기 “음양(陰陽)”두 글자를 쓰셔서 불사르시니라.」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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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신을 통해 보신 이윤과 문왕 도수는, 선천에서 후천으로 가기위한 특별한 절차를 예시한 것입니다. 이는 반드시49를 거쳐50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2편에서 다루기로 함) 그런데 증산도에서는 이윤이 등장하는 부분에서 '이윤'을 빼고 대신에, "옛 사람 거백옥(蘧伯玉)이 50세에 49년 동안의 그름을 깨달았다 하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썼노라." 라고 대체합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이 또한 다음 2편에서 함께 다루기로 합니다. (2편에 계속)
잘 읽어 보세요 도주님 탄강부터 1944 년 까지 50 년 됩니다. 그때 이윤의 도수라 합니다. 50 세가 되는 해 죠 공자 가 지천명 하는 해 라 한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즉 쉽게 말해 이윤의 도수는 50 세때 에 이러르 풀어야 하는 도수 이고 50 년 공부종필은 문왕의 도수의 다른 말로 치세50 년 이나 대업이 나에게 있지 않고 후인 즉 무왕에 있음을 알고 대업을 넘기는 도수 입니다.
도주님 께서 1944년까지 헛도수에 시달렸었다 하심은 감오득도 하신 1917년 부터 오십이 되는 갑진년 1944년 이고 그로 부터 실지공부로 전환하여 13 년 이 지났다고 하시며 오십년 공부종필 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고 이는 도주님이 화천하심을 둘러 말씀 하신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첫댓글 내용을 일부 수정함 --- 이윤과 문왕은 별개의 공사라는 관점에서, 동일한 공사 속의 역할 분담이란 것으로 바꿔 기술함.
또한 '회원보기' ---> '모두보기'로 전환함
2편이 기대 됩니다.
19. 도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제께서 헛도수를 짜놓으셨으므로 내가 五十평생을 헛도수 헛공부에 시달렸으나 갑신년(一九四四)에 시지사십구년지비(始知四十九年之非)도수로 인덕도수(人德度數)의 실공부(實工夫)로 전환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이제 十三년이니라。 이 역시 상제께서 짜 놓으신 이윤(伊尹)의 도수였으며 또 공부종필(工夫終畢)의 도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은 명심할지어다。」 하시니라。
오봉산에서 스님과 많은 토론이 있었던 주제라 특히 기대 됩니다.
😀😃😄 이야~! 내가 찾고 싶었던 건데 백의 아우님이 이렇게 자료를 올려주니 땡큐
신명의 도움같아요 ㅎㅎ
😀😃😄
(1) 근데 상도 교화집에는 50수에 대해
도주 - 만주 봉천명부터 화천시까지
우당 - 입도로부터 화천시까지
라고 했는데 윗글은 혼란을 주는군요
(2) 오십 년 공부 종필(五十年工夫終畢)
도주 조정산께서 1909년 만주에서 봉천명하신 해부터 1958년 화천(化天)하실 때까지 오십 년 공부 종필
도전 박우당께서는 1946년 1월 15일 태극도 입문하신 해부터 1995년 12월 4일 화천하실 때까지가 오십 년 공부 종필
잘 읽어 보세요 도주님 탄강부터 1944 년 까지 50 년 됩니다.
그때 이윤의 도수라 합니다.
50 세가 되는 해 죠 공자 가 지천명 하는 해 라 한것과 같은 이치 입니다.
즉
쉽게 말해 이윤의 도수는 50 세때 에 이러르 풀어야 하는 도수 이고 50 년 공부종필은 문왕의 도수의 다른 말로 치세50 년 이나 대업이 나에게 있지 않고 후인 즉 무왕에 있음을 알고 대업을 넘기는 도수 입니다.
😀😃😄
오호라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군요
그니까 태어나서 화천까지와
입도해서 화천까지를 이중으로 적용한거군요. 음~~!!!
@혜공[蕙孔] 태어나서 갑신년 까지 와 봉천명 에서 화천 하시기 까지 입니다.
갑신년 1944년 에 13년이 흘렀다 했으니 화천하시기 일년전이죠
도주님 께서 1944년까지 헛도수에 시달렸었다 하심은 감오득도 하신 1917년 부터 오십이 되는 갑진년 1944년 이고 그로 부터 실지공부로 전환하여 13 년 이 지났다고 하시며 오십년 공부종필 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고 이는 도주님이 화천하심을 둘러 말씀 하신 것이 되는 것 입니다.
😀😃😄
알았슈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