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쉰일곱 번째
발리에서 생긴 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른 아침 산책에 나섰다가 뜻밖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줄지어 가는 아낙네들이 우리네 옛 농촌에서 새참을 머리에 이고 일터로 가던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아낙네들이 아침 장사를 하러 나가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들의 머리에는 신에게 바칠 헌물들이 바구니에 담겨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매일 아침 그렇게 신에게 기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사원만 찾는 게 아니라, 집집마다 자기들이 신앙하는 제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힌두교인이라고 들었지만, 그들을 따라간 사원에는 다양한 신들이 있고 공식적으로는 힌두교가 맞지만, 정작 그들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발리 템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발리의 독특한 사원이고 신앙이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모시는 신 가운데는 힌두교에서는 볼 수 없는 신들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힌두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그들이 모시던 신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네 절에 가면 본디 불교와는 관계없는 산신각이라든가 칠성각이 대웅전 곁에 있는 것과 비슷한 전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이란 확신과 증거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어떤 확신과 증거가 있어 그들만의 신을 모시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어려운 생활 환경 속에서도 그 믿음으로 인해 희망이 있고 안락한 삶을 이어간다고 느꼈습니다. 막연한 기대로 무병장수하고 만사형통하며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모든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게 부족한 삶이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친절한 행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