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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학교를 꿈꾸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시도
안성균
삶을 위한 교사대학 이사
산마을고등학교 교장
ask0508@naver.com
Ⅰ. 들어가는 말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교육의 일각에서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여 ‘대안교육’, ‘혁신교육’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는 개혁적인 교육판은 퇴조와 약진의 갈림길에서 묘한 대조를 보이는 한편, 그 틈새에서 미래 대안사회를 전망하며 생태적인 철학으로 한 겹 더 무장하고 진일보한 교육과정을 도모하는 일군의 학교와 현장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란 화두를 공통으로 지향하며 교육의 형식과 내용을 재편하는 그들을 나는 ‘전환학교’라 칭한다.
‘전환학교(Transition School)’라는 용어는 ‘전환마을(Transition Town)’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에너지 자립을 추구하고 피크오일에 대처하는 생태주의 마을이 그 과정에서 잃었던 마을의 공동체성까지 회복하며 삶이 향상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학교가 그렇게 변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담아본 나의 신조어이다(다른 출처는 확인한 바 없다). 몇 년 전부터 이러저러한 공적인 발표 자리와 사석에서 입에 담았던 이 용어는 지난해 서울과 경기 교육청에서 시범 운영한 오딧세이학교와 꿈의 학교 등에서 ‘전환(기)학교’라는 표현을 일부 사용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자유학기제의 원조 격인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에서 전환이란 말이 잠시 언급되다가 사장된 바 있다.
지난해 인천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의 교육축제인 ‘2015 세계교육포럼’의 슬로건이 ‘교육을 통한 삶의 변화(Transforming life through education)’였다.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한 핑크빛 포장과 관변행사로 비난을 받기는 했어도 던져진 교육적 화두는 의미심장했다. 과연 어떠한 교육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과 삶을 위한 교육으로의 전환이라는 교육적 명제 앞에, 필자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전환학교’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Ⅱ. 전환학교의 의미와 방향
미국에 ‘Turnaround School’이라는 용어상 전환학교와 유사한 학교실험이 있긴 하다. 2009년경 폐교 위기에 몰린 소외계층이나 낙후된 도심지역의 학교를 재개교한다는 차원으로 일대 손질하여 학교를 탈바꿈시켰던 사례이다. 나름 성공한 모델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성취도가 낮은 학교를 도약시키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도약학교’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교육당국이 4조 5천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학교 당 20억 원 이상의 지원금을 쏟아 부었던 국가적 사업이었다.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최저수준의 학교 현장을 전면적으로 재건하기 위한 관 주도의 맘모스급 학교라는 한계에다가, 당장의 시급한 기초학력 향상과 졸업률 증가를 목표로 삼았던 약방문 처방이었기에 앞으로 개진하고자 하는 전환의 의미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상관관계가 약한 도약학교를 끌어들인 이유는 글의 말미에서 다시 후술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한국의 현 교육지형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목할 만한 두 개의 전환관련 흐름을 짚어 보며 전환학교의 의미와 방향성을 잡도록 한다.
1. 전환학교의 두 가지 트랙
가. 전환학년제와 자유학기제
본격적인 트랙에 올라서기 전에 현 정부가 가장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교육정책의 하나인 자유학기제를 먼저 다루고자 한다. 자유학기제 실시가 공교육 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기제로 작용하리라 기대하고 싶다. 비록 현실적으로 중학교 1, 2학년 과정에서 밖에 할 수없는 절름발이 정책일지라도 중등과정에서 잠시나마 빡빡한 정규트랙으로부터 한 발 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은 십대 청소년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올해 모든 중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자유학기제는 기존 공교육에 숨통을 틔울 만한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그 가치를 높이 살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자유학기제는 서구의 유사제도를 참고한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 덴마크의 가교학년제(Bridge year), 영국의 쉼표학년제(Gap year) 등에서 끌어 온 이 제도는 장차 6-3-3 학제에 유연성을 부여할 소중한 씨앗을 품고 있다. 여기서는 학제에 대한 서술은 다른 기회로 미루고(관련해서 민들레 96호, ‘에프터스콜레 탈주의 서곡’에서 언급한 내용을 참고하시면 좋겠다), 자유학기제가 내포한 전환의 동력을 이야기하려 한다. 자유학기제의 목표대로라면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에서 자유로와져 창의적인 탐구활동을 통해 인성을 함양하고 자신의 장래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6-3-3학제의 단선구조에서 살짝 튕겨져 나온 자유학기제는 학교 내에서 운용하는 별도의 한 학기짜리 트랙이다. 시험이나 정규교과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꿈을 탐색하고 끼를 발산하는 비교적 여유로운 교육과정으로 설정된 이 기간은 학생들에게는 자유로움을 줄 수 있겠지만, 교사에게는 정규교과 +α의 부담스러운 측면이 공존한다. 다양한 체험활동과 특기적성 영역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진행하기 위해 공력을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유학기제 운영에 중요한 요소인 학교 밖 지역의 교육 콘텐츠와의 협치도 원활하지 않아 만족도는 당국의 발표보다 실제는 훨씬 낮다는 것이 현장에 있는 교사 학부모의 반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기적인 포석과 내용 마련 없이 단시간에 밀어붙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어서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정권이 바뀌면 곧 폐지될 지도 모른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교사와 학부모들은 힘은 들지만 그만한 보람과 가치를 느끼고 이것이 활성화되는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경쟁과 상급학교 진학 위주의 교과에 치중하던 기계적인 교육과정 운영에서 한 걸음 벗어난 것만으로도 전향적인 정책임에 틀림없다. 입시와 학업성취에 대한 한 학기 분량의 유예가 지닌 불안의 그늘이 짙고, 더불어 추가된 신설 특별교과영역을 담보해내야 하는 교사의 과중한 업무부담 및 학교 주변의 인프라를 엮어내는 역량의 미흡함을 넘어, 학교 내에서 ‘곁을 볼 수 있는 자유’의 기회를 얻은 학생과 교사에게는 그 주어진 자유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야 할 시행착오와 단련의 시간이 숙제처럼 주어졌다. 혁신학교에 대한 초기의 우려와 문제도 교사와 학교의 노력으로 상당부분 극복되고 공교육의 활로를 개척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비록 자유학기제가 관에 의해 주도된 졸속 시책일지라도 자유학기제가 담고 있는 교육적 의미를 최대한 살려 변화의 가능성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던 견고한 학제에 대한 고정관념이 일말이라도 깨지고 보다 유연한 교육이 정착하기를 소망한다. 앞 뒤 안가리고 입시를 향해 맹렬히 달리는 고속열차에서 잠시 한눈을 팔 수 도 있고, 잠간 하차할 수도 있다는 제도적인 보장은 뜻밖의 선물이다. 당사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십분 활용하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나. 전환기학교 - 오딧세이학교, 꿈의 학교, 인생학교를 중심으로
‘전환기학교’라는 말은 서울시 교육청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오딧세이 학교’나, 경기도 교육청이 시도하고 있는 ‘마을과 함께 꿈을 키우는 꿈의 학교’ 등과 같이 17세 전후의 청소년들에게 삶의 전환기를 제공하고자 만들어진 일련의 학교군을 일컫는 조어이다. 청소년기의 일정 시기(고1)에 삶의 전환을 도모하는 기회를 자신이 다니는 학교 밖 공간에서, 동시에 제도의 울타리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 것이다. 형식은 다소 다르지만 서울과 경기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 시스템은 자유학기제의 확대 변형 판에다 학교 밖 인프라의 협치를 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의 경우, 자유학년제란 형식을 빌려 1년 동안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관협력형 자율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인생학교’, ‘전환학교’를 표방한다. 창의적인 교육과정과 체험활동에 있어서 선경험이 풍부한 비인가 대안교육기관과 협력하여 위탁운영함으로써 공교육의 다양한 혁신모델을 제시한다는 목적도 있다. 경기도의 경우, 학교와 마을의 다양한 기관 단체가 연계하여 문화ㆍ예술ㆍ교육활동을 지원하고 학생 스스로 기획ㆍ운영ㆍ참여하는 꿈의 학교를 통해 학생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직은 시행 초기라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학교 안에서만 머물렀던 공교육의 지평을 학교 밖으로 넓히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의 시발이요, 학생들에게는 철옹성같던 학제와 멈출 수 없었던 단선 정규트랙으로부터 잠시 내려와 자유로운 사고와 체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대 백여 년 한국교육사를 볼 때 획기적인 발상이자 시책이 아닐 수 없다.
한편에선 덴마크 에프터스콜레를 한국적으로 변용한 1년 단기 집중과정의 대안학교가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 상반기 개교 예정인 이들 학교는 ‘인생학교’라는 수식어를 공유한다. 강화도의 꿈틀리 인생학교, 성남과 일산의 ‘17살 인생학교’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알려지지 않은 에프터스콜레 형태의 단기 대안학교는 더 존재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4년 서울에서 ‘삶을 위한 교사대학’ 주관으로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교사 초청 세미나를 개최하여 이를 집중 조명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덴마크 에프터스콜레의 한국적 적용’을 주제로 후속 세미나를 개최한 뒤, 2015년 1월에 교육청 관계자, 대안교육현장 교사 활동가 및 공교육 교사들로 덴마크 교육 기행단을 꾸려서 다양한 형태의 에프터스콜레와 대안학교를 방문한 바 있다. 이후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고민하던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는 전술했듯이 대안교육 현장이나 지역의 교육문화 유관단체 등과 협력하여 정규학교 밖에서 1년 단기 중점 과정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자칫 방과후학교(afterschool)로 오해되기도 하는 에프터스콜레는 정규학교 밖에서 정규학교와 동등한 지위를 갖는 또 다른 형식의 비정규학교이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와 달리, 경기도 교육청에서 방과후, 주말, 계절형으로 운영하는 꿈의 학교는 방과후 학교 개념에 가까운 모델이고,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오딧세이학교는 교육청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비정규학교로서의 에프터스콜레에 조금 더 가까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다. 전환학교
전환학교는 삶과 교육의 전환을 추구한다는 면에서 전환기학교와 비슷하지만, 핵심이 다르다. ‘교육철학을 교육과정에 얼마만큼 반영하는가’와,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상이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한 마디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교육, 생태적 인간을 기르기 위한 교육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생태주의를 교육철학의 기조로 삼는다. 전환마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앞서 밝혔듯이 교육과정이나 교육공간에 있어서 에너지를 비롯한 의식주 자립과 공동체성이 강조된다.
교육생태학의 성립가능성에 대한 초기 연구에 의하면, 교육생태학은 교육의 문제가 비생태학적 요소에서 발생한다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교육생태학의 인식은 감성의 회복, 관계중심적 사고, 삶과 일치된 교육, 살림의 교육, 그리고 열림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데 관심을 둔다. 또한 교육생태학의 실천은 세 가지 방향에서 제시되는데, 그 중 첫째는 교육현상 자체가 생태학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며, 둘째는 커리큘럼을 생태학적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교육을 생태학적 문화운동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생태학의 기본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감성이 살아나려야 살아날 수 없는 척박한 교육여건과, 일상의 삶과 유리된 채 오로지 무한경쟁의 전쟁터로 몰아가는 이 땅의 비인간적인 죽임의 교육상황은 역으로 생명력을 담고자 하는 생태적 교육과정과 공간을 더더욱 필요로 하고 있다. 학교는 생명의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 범교과적인 생태 교육과정,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문화예술 운동 전개까지 아울러야 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인권, 평화, 환경, 식량, 평등, 장애, 공동체, 에너지 등과 관련된 생태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선언적 차원의 소극적인 ‘생태학교(eco school)’에서 머물지 않고, 학교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받쳐주고 구성원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생태학교를 지향하는 ‘전환학교’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인류가 당면한 환경위기와 비인간화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인 방법 중 하나가 감수성이나 상상력과 관련된 미학적 측면의 접근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공간에 대한 경험은 학생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지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의 생태학적 감수성,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달시키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공간에 대한 감각을 경험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공간에 대한 긍정적 경험과 관심은 학생들로 하여금 탐색하고 조작하고 열중하게 만든다. 탐색과 열중을 위한 기회가 막혀 있는 환경에서는 학생들에게서 일어나는 배움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물리적 환경은 그들이 누구이고, 그들이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대한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유의미하다. 학교환경이 따뜻하고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구성된다면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들이 가치 있고 이해받을 수 있으며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 반면, 침체되어 있고 잘 조작되지 않았거나 혹은 지루한 환경, 반생태적 환경은 학생들에게 가치 없고 존중받기 힘들 것이라는 암시를 주게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부모는 아이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을 풍부하게 하고, 그들의 학습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삶의 공간’을 조성해줄 책임이 있다. 학교환경은 안전하고 미학적으로도 좋은 환경을 확보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감각을 길러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경우에 학교의 자연환경이나 건축공간은 잠재적 교육과정으로서 더더욱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를 보살피며 순환되는 생태계의 그물망이 학교 앞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근래 한국의 교육계는 살아 숨 쉬는 교육과정과 교육공간에 대해 늦게나마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전환학교를 지향하는 움직임도 바로 그 연장선에서 비롯되었다.
전환학교의 범주를 넓히면 교육의 새로운 전환을 시도하는 여러 학교들도 포함될 수 있겠다. 생태적 무장뿐만 아니라 대안적 가치를 담보한 다양한 내용을 교육적으로 추구한다면 이 역시 전환학교라고 불러봄직 하다. 전술한 서울의 오딧세이학교나 꿈틀리 인생학교와 같이 진로에 방점을 두고 17살 무렵의 인생 전환기에 다니는 단기중점 학교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급적 필자는 초점과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삶과 세상을 위한 전환과 연대의 배움터'로 성격을 규정하는 쪽으로 좁혀가기를 바란다. 이마저도 광범위하고 타겟이 모호하다면 신기후체제와 반핵의 태도를 견지하며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안적 교육현장으로 국한되어도 괜찮을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환의 의미는 열려있고 다층적인 교육의 지향점들이 따로 또 같이 가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전환의 목표가 반드시 생태가 아니어도 결국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Ⅲ. 전환학교의 실례
1. 산마을고등학교
산마을고등학교의 ‘자연, 평화, 상생’이라는 교육철학에 입각하여 교육과정과 생활도 자립과 전환, 그리고 마을공동체라는 코드로 재편하는 중이다. 4000여 평의 학교 논을 유기농으로 경작하여 쌀만큼은 자급자족을 달성했으며, 기존의 태양광발전과 지열냉난방 덕분에 화석에너지 사용은 50퍼센트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학교 내 적정기술의 보급 및 절전으로 석유 및 원자력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데 박차를 가하려 한다. 2015학년도부터는 산마을학교에는 ‘생활기술’이라는 특성화교과를 개설하였는데, 정규학교로는 적정기술과 수공예적 관점에서 운용하는 최초의 교과라고 짐작된다. 생활기술 수업은 생태전환, 자급자족, 지역순환 사회를 지향하여, 의(衣·醫)·식·주·에너지 분야의 다양한 생활기술을 익히고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누구든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삶의 기술을 익힘으로써 인간을 기계의 노예상태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의 본성과 자연과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생활기술을 배움으로써 아무 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소비자로 전락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기계문명과 자본의 탁류로 말미암아 상실해버린 인간 본래의, 만들고 창조하고 표현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려보자는 것이다. 현재 직조와 대장간수업(철공예)을 중심으로 교과수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특성화교과목 중에도 창작활동(옷 만들기, 목공예, 비누만들기 등) 방과후 야학 프로그램에도 천연 발효 빵 만들기, 서각, 자연건강요법 등 생활기술에 해당되는 내용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산마을특성화교과의 중심축인 생태농업은 생태화장실에서 나온 똥과 오줌을 거름으로 쓰며 순환의 원리를 몸으로 살아내고 있다.
전환학교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한 실무적 기구로서 ‘산마을 협동조합’ 설립을 모색 중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사회에서 일차 거론된 바 있고,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 이사회, 지역인사 등 각 단위가 적극 참여하여 산마을 비전 실현의 모태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려 한다. 협동조합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한국사회의 고무적인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낮은 단계의 협동조합 모델은 이미 산마을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산마을고등학교 학교협동조합’이라는 장(場)으로 펼쳐졌다. 학교 내 문화카페와 매점 운영, 교육사업, 교육문화예술 마을장터(마르쉐: sea market) 기획 운영을 골자로 설립되었다. 설립 주체인 학생들은 장차 협동조합이 산마을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데 기여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다. 그들은 그들대로, 또 산마을의 전체 구성원들 모두는 대안대학이든, 마을기업이든, 그야말로 단순한 협동조합이든 산마을고등학교 주변에서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는 마을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려보고 있다. 지난해 ‘진강산 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산마을학교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던 학교소재 양도면 지역의 교육사업은 올해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로 성장하여 조만간 출범을 앞둔 상태이다.
2. 하자작업장학교, 금산간디학교, 성미산학교
가. 하자작업장학교
하자작업장학교는 하자센터를 기반으로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이라는 심포지움을 통해 전환과 연대에 대한 어젠다를 던져왔다. 특히 2013년부터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라는 주제를 내걸고 해마다 관련 행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며 교육과정과 공간을 재구성했다. 청소년과정과 청년과정에서 적정기술과 생활기술을 교육과정의 핵으로 끌어들여 프로젝트 수업을 운영하였는데, 최근 주목할 만한 행보는 밀양송전탑건설 반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에너지와 핵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지난해에는 생활기술을 전폭적으로 포진시킨 ‘목화학교’라는 직조 위주의 단기과정을 개설했다. 청년과정에서는 실습차원에서 서울시 청년허브와 JP모건의 지원을 받아 하자센터 부지에 적정기술을 접목한 ‘살림집’이라는 근사한 콘테이너하우스 건물을 지어서 게스트하우스 겸 사랑방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외 소규모지만 벼와 목화도 재배하며, 도시농업과 적정기술, 재생가능에너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와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다.
나. 금산간디학교
충남금산에 위치한 금산간디학교는 중학과정과 고등과정이 있는데, 그 중 중학과정은 지난해 말 ‘전환학교’를 선언하며 퍼머컬처를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으로 학교 전체를 재편하는 중이다. 특히 충남에 소재한 ‘작은손적정기술협동조합’과 MOU를 체결하여 상호 교류와 지원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흙 오븐을 만들어 피자를 구워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행사에 나가 판매를 하기도 한다.
다. 성미산학교
마포구의 성미산 인근에서 마을교육공동체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미산마을교육공동체 내의 대안학교이다. 두더지실험실 협동조합(학생카페), 마을식당, 마을카페, 마을서점, 마을되살림가게 등이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있다. 최근 의욕적으로 마을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를 접근하는 중이다. 중등교육 과정에서도 성미산마을과 결합하여 적극적으로 ‘에너지전환마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활동하며 다양한 워크숍을 열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술로 마을에 필요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전부터도 도시농업과 생태수업 등을 통해 전환의 교육과정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장이다. 최근 ‘마을기술연구소(www.facebook.com/comunearte)’라는 생활적정기술을 보급하는 센터를 소박하게 개소해서 도시농업 축제도 개최하고, 직조 수공예 기술을 보급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적정기술로 도시에서 살아남기’라는 학생 동영상(http://cafe.naver.com/earthbaghouse/32757)을 통해 생태단열, 흙미장, 생태단열, 조리용화덕, 우드카빙, 재활용직조, 재활용 목공 등의 적정기술수업을 재미나게 엿볼 수 있다.
Ⅳ. 맺는말
위에서 예시한 대안교육현장 말고도 일반 공교육 내에서나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에서 유사한 프로그램과 교과목을 운영하는 곳이 제법 많아졌다. 3년 전 ‘삶을 위한 교사대학’이 하자센터와 공동주최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세미나 이후, 교사대학의 주력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생활기술교육 교사/활동가 양성과정’은 이런 현장에 생활기술과 적정기술을 보급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임에도 이 연수를 받은 교사와 활동가들에 의해 수업이 신설되고,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학교가 다수 등장했다(꽃피는학교, 맑은샘학교, 볍씨학교, 불이학교, 산어린이학교, 샨티학교 등). 주로 접근이 용이하고 학생들의 흥미와 접목된 분야인 직조나 수공예(천과 실을 이용한 베틀, 툴니팅, 자연물 직조인 바구니 짜기, 빗자루 만들기 등)와 흙 오븐 제작 프로젝트, 재생 에너지 관련 수업 및 프로젝트 등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다. 더하여 이전부터 생태와 자립, 에너지, 마을이라는 코드를 교육의 중심에 두고 있는 학교 현장까지 아우르면 나름의 흐름을 형성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미국의 Turnaround School, 즉 도약학교의 경우, 학교의 시스템을 전폭적으로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비록 국가주도의 거금이 들어간 사업이었지만 그 사례에서 부러운 점은 돈 잔치일망정 국가가 그만한 교육개혁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시도교육청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교육, 행복교육 사업마저도 정부의 방관 아래 학교 구성원의 노고와 소위 진보교육감이 선출된 시도교육청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실시되는 형편이다. 공교육의 정상화와 교육의 위기를 논하는 말의 성찬은 무성해도 실질적인 방책은 나오지 않을뿐더러 교육개혁을 향한 의지의 발목을 잡는 행태도 여전하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경구가 아직도 유효하다면 당장 한 세대 이후를 내다보며 교육과정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며, 미래사회에 필요한 가치 덕목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계의 위기와 원자력발전소 문제 등에 대한 교육적 대비로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개진해야 한다.
의식주의 자립과 삶과 세상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교육적 노력의 장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근래 전환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마을’은 교육운동이나 공동체 운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골목 공동체는 다름아닌 마을공동체에로의 회귀본능을 의미한다. 동떨어졌다 싶은 마을경제공동체나 공공예술 분야, 그리고 최근 삽시간에 불붙은 협동조합운동이나 청년주거공동체‧청년지역커뮤니티 실험도 이에 포함된다. 공동주거를 기반으로 자립과 지지의 관계망 만들기를 정착시키고 있는 김포의 ‘우리동네사람들(우동사)’, 해남의 ‘미세마을’과 같은 움직임도 전환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의 소중한 몸짓이다. 이른바 헬조선, N포 세대로 대변되는 이 땅의 척박하기 그지없는 토양에서 전환과 연대의 삶을 모색하는 작업을 다름 아닌 교육에서 이루어보자는 것이 전환학교운동의 또 다른 지향점이다.
좁게는 침체기에 접어든 대안교육진영이, 거의 모든 대안교육현장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대안적 본질적 가치에 대한 재점검과 대안학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새삼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교육 2.0’에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바램도 강하게 깔려있다. 소위 교육불가능 시대에 지속가능한 대안교육에로의 전환을 위해 대안교육진영이 준비해야 할 콘텐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대안교육현장은 ‘생명, 평화, 공동체, 자립, 사랑, 상생’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교육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 교육철학을 얼마나 교육과정에 녹여내고 살아내느냐의 문제로 끙끙 앓기 일쑤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 현장에서 대안교육의 목표를 보다 분명히 하고 갈 것을 제안한다. 만일 그마저도 이념의 무게로 버겁다면, 보다 교육과정이 가벼우면서도 집중도와 밀도가 높은 교육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전환학교에서 찾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프터스콜레 형태의 대안학교는 우리 대안교육이 담보한 진지함과 무거움을 책가방 분량으로 줄여 준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갈 때 책가방 하나 정도의 무언가를 들고 간다면 학교의 소명을 다한 것이라는 뢰슬링에 에프터스콜레(Ryslinge Efterskole)의 교장 토번(Torben)의 발언은 귀담아 들을만하다. 그는 학교의 정체성을 스스로 ‘Extra’로 규정한다. 어쩌면 진짜 학교는 마을이나 시민사회일지도 모른다. 나는 학교가 모든 것을 다 담고 해결하려던 대안교육의 근대적인 양상은 변화무쌍한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교육철학의 가치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담아 낼 소박한 작은 그릇이 바로 ‘전환’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새로이 옷을 갈아입은 학교(교육)의 이름을 대안학교라 부르든, 혁신학교라 부르든, 또는 전환학교, 인생학교, 행복학교라 이름짓든 상관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학교의 본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배움의 처소는 어딜 가나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교육사적으로 모든 교육개혁운동이 지향하는 바나 한국의 구체적인 혁신교육, 탈학교, 대안교육운동의 목적은 학교없는 사회를 위해 달려가자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다운 학교(교육)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요체이다. 출세와 경쟁의 사다리로 전락한 교육을, 아직도 전근대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공장으로 기능하는 학교를 살려보자는 몸부림이다. 그렇지만 그간의 교육개혁이나 교육운동이 제도나 기관을 바꾸는 쪽으로 집중된 우를 반복하지는 말아야 한다. 사람을 토대로 한 변화여야 생명력을 상실하지 않는다. 아직 온전히 실현된 적은 없지만 아이들이 환대받고, 우정을 나누는 공동체로서의 즐겁고 행복한 학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서로 듣는 관계가 민주주의이며, 서로 경청할 때 상대를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는 사토마나부교수의 간단명료한 정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고전적 교육명제를 펼쳐낼 학교의 갈 길을 일러준다. 탈성장 위험사회의 학교태는 이전의 학교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단촐한 에프터스콜레 형태의 중점학교, 마을학교, 도서관학교, 길 위의 학교, 평생교육기관, MOOC(온라인 공개강좌 시스템) 등 각종의 다양한 유사학교들이 새로운 교육생태계에서 숙주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떠한 형태이든 학교의 존재 이유는 역사적으로 동서양이 유사하다. 학교(school)의 고대 라틴어 어원인 ‘schola’는 한가함, 우정, 여유를 뜻한다. 즉 ‘삶을 즐긴다’고 의역할 수 있겠다. 삶을 재미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라는 것이다. 숲, 혹은 기둥이 있는 공간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서 음악을 즐기며 교양을 습득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학교의 목적이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공자의 ‘흥어시興於詩 입어예立於禮 성어락成於樂’(시로 흥하고 예로 서며 즐거움/음악으로 이룬다)이라는 말씀이나 ‘도서관, 시, 자전거’를 공생공락(共生共樂)의 3가지 도구로 제시했던 이반 일리치의 사상은 일맥상통한다. 즐겁고 우호적이고 여유로운 상태를 의미하는 ‘conviviality’를 경험하고 지향하는 곳이 다름아닌 학교여야 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이기를 바랬던 일리치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땅에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설파한 ‘클리나멘(clinamen)’처럼 주어진 직선 코스나 관성적 운동에서 벗어나려는 힘을 키웠으면 한다. 인공위성이 궤도를 이탈해 우주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속도와 시선, 동선 등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듯이, 교육이든 삶이든 속도를 줄이고 관점을 바꾸어 방향을 달리하는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기존의 궤도를 탈피하여 중력의 대기권을 뚫고 저 광활한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전환학교가 그러한 탈주와 전환의 베이스캠프이면 좋겠다. 애초 피크 오일과 기후변화에 대비하여 마을의 변화를 꾀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전환마을 운동이 인간이 우애롭게 살 만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자연과 벗하는 생태적인 삶으로 전환하여 진화하는 과정은 교육의 장에도 적용할 만하다. 학교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마을과 사회의 생태적 전환은 이 시대의 교육적 의무요 과제이다. 에너지와 식량 자립, 협동과 적정기술 습득, 생태적 감수성 함양,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 인문적 사유와 자연과학적 사고의 조화, 나아가 자연과 공존하고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걸어가야 할 머나먼 길이 ‘전환학교’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지구별과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자급자족과 연대를 꿈꾸는 ‘삶의 기술을 배우는 전환의 현장’들이 이 땅 곳곳에서 만발하기를 고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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