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 개설 이것은 모차르트의 모든 협주곡을 통틀어 가장 진지하고 독특하며 드라마틱한 작품이다.모차르트의 단 두 곡뿐인 단조 협주곡 가운데 하나(다른 하나는<피아노 협주곡 제20번d단조>)인 이 곡은c단조를 주조성으로 취하고 있다. ‘c단조’라면 대다수의 애호가들은 반사적으로 베토벤을 떠올릴 것이다.하지만 베토벤이<운명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제3번>등을 쓰기 이전에 이미 이 곡이 존재했고,베토벤은 이 곡에 깊은 존경과 감탄,면밀한 연구를 바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협주곡적이라기보다는‘교향곡적’이다.특히 목관 파트의 규모와 독립성에 있어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앞선 두 곡(<제22번E♭장조>와<제23번A장조>)에서 오보에 대신 클라리넷을 사용했던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두 악기를 동시에 사용하여 오케스트라의 표현력을 더욱 강화했다.아울러 한두 마디로 예단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악상,전편을 긴밀하게 아우르는 유기적인 구성,독주자의 가장 높은 능력을 요구하는 즉흥성 등 고도의 가치와 풍부한 매력을 지닌 이 작품은 많은 이들로부터 모차르트의 최고 걸작 피아노 협주곡으로 추앙되고 있기도 하다.
■ 작곡과 초연 모차르트 자신이 작성한 작품목록에 따르면,이 협주곡은 1786년3월24일에 완성되었다.이 때는 한창 오페라<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매달려 있던 무렵인데,아마도 그 해4월7일 부르크 극장에서 열린 예약연주회를 위해서 잠시 짬을 냈던 것 같다.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이 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조성이다. c단조는 모차르트가 자주 썼던 조성은 아니다.모차르트가c단조로 쓴 작품은 이 협주곡 외에<세레나데 제12번(K.388)>, <피아노 소나타 제14번(K.457)>, <피아노 환상곡(K.396, K.475)>, <프리메이슨 장송음악(K.477)>, <아다지오와 푸가(K.546)>정도가 있다.그런데 이런 곡들은 하나같이 심오한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모차르트가 이 조성을 선택함에 있어서 특별히 신중을 기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다.특히 이‘c단조 협주곡’에 담긴 정서의 깊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곡 구성 비창적 정서를 내포한 협주곡 시종 어두운 열정으로 일관하는 이 협주곡은 듣는 이에게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을 안겨준다.흔히 이 곡을 가리켜‘베토벤적’이라고 규정하기도 하지만,보통‘베토벤의c단조’는C장조에 의한 해방을 겨냥하고 있다.그러나 이 곡은c단조의 그림자 속에서 막을 내리며,이런 면에서1년 전에 작곡된 ‘d단조 협주곡(제20번)’과 궤를 달리한다.굳이 베토벤에 견주자면, <운명 교향곡>이나<피아노 협주곡 제3번>보다는<비창 소나타>쪽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어쩌면‘비창(悲愴)’이야말로 이 곡의 전반적인 정조를 가장 효과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첫 악장에서 감7도의 도약음정을 포함한 주제가 거칠게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상처가 그러하고,다정하면서도 안타까운 탄식이 서린 완서악장에서 떠오르는 정서가 그러하며,탈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가 다시금 어둠의 뒤안길로 말려들며 마무리되는 피날레가 던져주는 막막함이 그러하다. 이와 관련,프랑스의 모차르트 연구가인 마생 부부는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c단조 협주곡은 분명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 맞닥뜨려야 하며,그러한 삶에 감성을 부여하기 위한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험과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 제1악장:알레그로, c단조, 3/4박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지배적인 첫 악장으로,협주곡풍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다.처음에 유니슨(unison,많은 악기가 동시에 같은 선율을 연주)으로 제시되는 제1주제는 일종의 숙명적인 기운을 느끼게 하며,이후 거칠게 터져 나오는 총주는 무척 위협적이다.피아노는 변화무쌍한 관현악 사이를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사색하듯 누비며,음악은 피아노와 관현악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견지하며 진행된다.
▲ 제2악장:라르게토, E♭장조, 2/2박자 론도 형식으로,서정적인 노래가 면면히 흐르며 은은한 빛과 애틋한 그림자가 교차하는 완서악장이다.아름다운 시절을 향한 동경과 정한을 담은 듯한 그 흐름은<피가로의 결혼>중에서 백작 부인이 부르는 카바티나‘Porgi, amor(주소서,사랑의 신이여)’를 환기시킨다.
▲ 제3악장:알레그레토, c단조, 2/2박자 모차르트가[피아노 협주곡 제17번]이후 오랜만에 쓴 변주곡 피날레이다.먼저 관현악이 반음계를 포함한 주제를 차분하게,하지만 은근한 긴장감을 머금은 채 꺼내놓은 다음8개의 변주가 이어진다.새로운 선율이 도입되는 제4변주는A♭장조로 진행되어 밝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c단조로 복귀한 제5변주에서는 대위법적인 전개가 두드러진다.제6변주에서는 조성이C장조로 바뀐 가운데 오보에가 감미로운 선율을 낭랑하게 노래하여 희망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제7변주로 넘어가면 다시c단조로 복귀한다.이후 카덴차(주로 곡의 끝부분에 사용되는 무반주 솔로 연주)가 나온 다음 다소 쫓기는 듯한 마지막 변주로 넘어가고,결국에는 격렬한 어둠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마무리된다.
<출처:클래식 명곡 명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