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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존재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왜 이름을 바꾸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본인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름 때문에 상처 받아서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법원에 가서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이름을 지어줄 때 좋은 이름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생각하면서 지어줍니다.
물론 안 그런 부모도 있습니다만. 성경에 ‘갈렙’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갈렙의 뜻이 ‘개’입니다.
갈렙의 아비는 무슨 생각으로 자식의 이름을 ‘개’라는 뜻으로 지어 좋을까요.
성경에 대표적으로 이름이 바뀐 두 사람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한 사람, 신약에서 한 사람입니다.
이름이 바뀌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 스스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자신의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유명한 사람의 이름으로 바꾼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다윗, 여자는 사라 그래서 이사라, 정사라, 무슨 사라 이렇게 불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또 어떤 목사들은 ‘권능’을 좋아해서 박권능, 변권능, 이권능 등등등 어떤 기독교 신문을 보니까 한 광고면에 권능이란 이름을 가진 목사들 여러 명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이 분들은 자신이 이름을 바꾸었겠지요.
그러나 성경에 이름이 바뀐 사람은 본인 스스로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꾸어주셨습니다.
둘째는 바뀐 이름에 ‘하나님’이 들어갑니다.
원래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에는 하나님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이름을 바꿔 주시면서 거기에 ‘하나님’을 더한 이름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1. 이름을 바꾼 것은 존재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하심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이 구절 안에 참 많은 하나님의 일하심, 경륜이 담겨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에 속한 모든 사람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한 사람, 첫 사람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이 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한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
아담에게 주신 계명은 많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계명, 동산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선악과는 먹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은 것은 결과이고 계명을 어긴 것이 먼저이기 때문에 죄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명을 어긴 것이 죄이고 죄가 아담에게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으로부터 때어난 모든 사람도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었고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망이 왕노릇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존재를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망이 주장하는 존재를 전혀 새로운 존재로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가 바로 ‘새 사람’입니다.
첫 사람이나 새 사람이나 사람으로서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첫 사람도 ‘흙’으로 지음 받았고 새 사람도 본질은 ‘흙’입니다.
새 사람이라 하니까 흙이 아닌 다른 물질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차이점은 첫 사람 아담의 속 생명은 죄로 가득 찬 반면에 새 사람은 의. 진리, 거룩으로 속 생명이 바뀐 것입니다.
의, 진리, 거룩은 첫 사람 아담의 성분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성분, 즉 하나님의 생명을 말합니다.
따라서 첫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성분, 생명이 하나도 없었는데 존재가 바뀐 새 사람 속에는 전에 없던 하나님의 성분이 들어왔습니다.
2. 새 사람으로 존재가 바뀌었으니 이름도 바뀝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2:17)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새 이름은 이기는 자만 받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이기는 것입니까.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 옛 사람이 바로 존재가 바뀌기 전의 ‘나’입니다.
혹 “교회 다니기 전의 사람이 옛 사람이고 지금은 교회를 다니니까 새 사람인가”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없으시길.
교회 다닌다고 새 사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생명을 얻는 자가 새 사람입니다.
3. 새 생명을 얻는 자가 새 사람이고 새 이름을 받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새 생명, 새 사람, 새 이름은 각각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의 뜻으로 통일되는데 첫 사람 아담에게는 전혀 없던 것,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들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옛 생명입니다.
죄가 주관하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 가지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닌다고 새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없던 생명을 받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이 말씀 안에 들어간 자만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가 영으로 내 안에 들어오셔야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복음이라고 전하여 지는 말씀들은 하나같이 “그리스도가 곧 오신다”입니다.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만 다니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설교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고, 오시고 계시고, 계속 오십니다. 믿는 각 사람 안으로 오십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만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입니다.
4. 구약에서 이름이 바뀐 사람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었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4-28)
구약성경에서 이름이 바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의 뜻은 ‘사기꾼’, ‘발 뒤꿈치를 잡은 자’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다 아시는 것처럼 속고 속이는 삶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속이고 삼촌도 속이고 부인도 속이고 이처럼 야곱의 삶 자체를 보면 우리 ‘옛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옛 사람의 삶이 바로 야곱의 삶입니다.
이유는 옛 사람의 아비가 거짓말쟁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8:44)
마귀가 옛 사람의 아비이므로 자연스럽게 거짓이 나오고 악이 나옵니다.
이런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름이 바뀌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야곱이 진짜 하나님과 싸울 수도 없지만 싸운다고 해서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름이 바뀌기 위해서는 침노해야 합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 존재가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옛 사람 야곱에서 하나님을 소유한 이스라엘로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표입니다.
이름이 바뀐 후 야곱의 삶은 바뀌기 전의 야곱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삽니다.
전에 살던 생명이 아니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했기 때문에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5. 신약에서 이름이 바뀐 사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7-18)
신약성경에서 이름이 바뀐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시몬은 ‘요나’의 아들(마16:17) 혹은 ‘요한’의 아들(요1:42)입니다.
시몬은 존재가 바뀌기 전 옛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 시몬을 예수님께서 바꿔주시는데 ‘게바’, ‘베드로’로 개명해 주십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1:41-42)
시몬이 장차 ‘반석’인 베드로가 됩니다.
지금은 여전히 시몬이지만 앞으로 베드로가 될 것을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시몬 스스로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꿔주시고 이름이 ‘반석’으로 바뀌는 것은 시몬의 삶이 옛 사람이 삶이 아니라 반석의 신앙을 소유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시몬으로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 다닐 때와 베드로가 되어 사도로서 행했던 삶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시몬이고 말썽피우고 그 말썽을 해결해주신 분도 예수님이었습니다. 시몬의 마지막 삶은 예수님을 저주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26:31-35)
호언장담한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라 시몬입니다.
시몬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언제든지 배반하고 배신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오니까 자기 목숨 아까워 예수님을 저주하고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시몬이 베드로가 된 이 후의 그 신앙을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똑같은 사람인데 왜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정답은 존재가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고 신약의 시몬이 베드로가 된 것은 이들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하나님’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에 ‘엘’은 하나님을 뜻하고 반석은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시18:2)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시라”(고전10:4)
이들의 바뀐 이름에 ‘하나님’이 들어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옛 사람, 첫 사람 아담에서 존재가 바뀌어 ‘하나님’이 되었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즉 하나님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빌2:13)
믿는 자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어 사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으로 존재가 바뀐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4-35)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소유해서 하나님이 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첫 사람 아담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 사람으로 신앙생활하게 설교하는 목사들도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첫 사람 아담을 죽이고 존재가 하나님으로 바뀐 사람으로 신앙생활 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시몬에서 존재가 하나님으로 바뀐 베드로를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배신의 아이콘이 순교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에게 이루게 하는 일을 존재가 바뀐 베드로가 했습니다.
잘 믿어보려고 열심히 하는 교인들에게 의문이 듭니다.
“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변화가 없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전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고, 무엇이 문제일까?
기도가 부족해서 그럴까?”
그래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기도를 더 많이 하자”입니다.
기도 많이 한다고 변화가 있을까요?
더 오래 참는다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현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정답을 찾지 못하는 현실. 예수님과 부자청년(관원)의 대화에서 답을 찾기 바랍니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자신 있게 “내가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당당한 질문입니까.
다 아시는 주님이 “여러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이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예수님에게 칭찬 받을 줄 알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예수님은 이 청년의 급소, 지킬 수 없는 부분을 너무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답입니다.
이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을 보십시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느니라” 기독교인들이 정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재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재물 많이 것이 죄인가! 그렇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소유가 많으면 죄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가 첫 사람 아담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소유)를 다 팔아야 진주(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 시몬으로 있으면 보화를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되고 베드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래 이름(생명)을 버리고 보화(새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6. 존재가 바뀌기 위해서 팔아야 할 것
첫 사람 아담이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야 합니다.
“아무개는 너무 착해서 법 없이도 살 수 있어, 너무 착해서 그것이 흠이야!”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듣고 산다고 합시다. 세상에서는 참 좋은 말입니다만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착함으로 사는 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본래 부모로부터 물려받음 착함으로 산다면 이것이 그 사람에게는 팔아야 될 소유입니다.
혹 오해하지 마시길. “그럼 악하게 살아야 되는가!”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23:25-26)
사람의 착함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심 같이 ‘그 안을’ 비워야 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면서 마치 하나님의 착함을 흉내 내는 기독교인들이 마치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만나 주시고 죄인이 예수님을 담아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 안에 있는 옛 사람의 생명이 선이든 악이든 이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새 생명으로 채우는 것이 자기 소유를 팔아 보화를 사는 것입니다.(롬6:3-11)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7-49)
땅에 속한 자의 모든 것을 하늘에 속한 자의 모든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언제 이 일이 이루어집니까.
장차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지금, 현재,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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