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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아프리카의 스위스 스와질랜드
2012.3.30.금.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지금시간은 05시40분.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네덜란드인은 밤 늦게 놀다가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어제 저녁 잠깐 대화를 나누었는데, 자기랑 같이 클럽에 놀러 가자고 했다. 이곳 여자들 하고 놀고 오자고 하길래 나는 웃으며 ‘I am an old man(나 나이 많은 사람이야)’라면서 홀로 보냈는데 무사히 돌아와 자고 있다. 이곳은 독일 계통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마 친구가 있는 모양이다. 젊은 배낭여행객들은 간혹 현지에서 밤문화를 즐기는 모양이다. 외국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겁 없이 밤에 돌아 다니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인지, 그리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이젠 그런 것이 번거럽고 별로 감흥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포도주나 한병 사들고 와서 음악을 들으며 한잔하는 것이 훨씬 즐겁다.
사실, 어제 저녁 무렵에는 갑자기 외로움과 쓸쓸함이 뼈속깊이 찾아 듬을 느꼈다. 이 먼 곳에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과 온통 나와는 상관 없는 이방인들 속에 버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나이에 홀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무슨 주책일까라는 생각이 몰려 들었다.
밤새 이곳 숙소를 지키고 있는 종업원에게 9시에 떠날 것이니 택시를 불러 달라고 요청을 했다. 현재 생각은 원래 계획대로 스와질랜드 손젤라 백패커스로 숙소를 정하려고 하는데 어제 중국인 앤디가 주고간 주소의 숙소로 찾아 갈까 잠시 고민 중이다. 현재 까지는 무사히 잘 다니고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희망봉 투어시 가이드가 한 말에 많은 의미가 있는듯 하다. 그는 왜 이곳에서 총기를 밀수(smugling)하느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This is Africa (여긴 아프리카야!)"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제 저녁은 누룽지를 끓여 멸치와 야채샐러드와 요거트 그리고 포도주로 식사를 했다. 순간 고추장이 다 떨어 지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프 타운 숙소에서 만난 한국 여자 두명에게 튜브고추장을 하나씩 줘 버렸으니 이제 남은게 3개 밖에 없다. 하긴 지금껏 3년여 동안 배낭여행을 다니며 음식에 대해 별로 고민한 적이 없는 내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스와질랜드를 가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9시가 훨씬 지난 9시20분 경에 왔다. '프린스루'에 있는 미니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60랜드를 달라기에 50랜드를 주었다. 버스는 작은 미니버스(약간 큰 봉고버스)인데 승객을 약 20명 넘게 가득 태운다. 큰 짐은 뒤에 별도의 트레일을 달고 다니는데 그곳에 올려 놓는다. 여권을 거둬가고 뭔가를 적고는 돌려 준다. 요금은 1인당 180랜드를 받는다. 10시40분경에 출발한 버스는 3시경에 스와질랜드 국경에 도착했다.
프레토리아에서 스와질랜드 까지 오는 동안의 풍경은 넓은 초원에 소들이 방목되고 있고, 한없이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고, 제법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바다근처에 있는 척박한 토양의 케이프타운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케이프타운에도 나무가 있지만, 그곳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곳은 초목이 풍부하고 푸르르다.
스와질랜드 입국장에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아마 세관 여 직원이 초보 인것 같았다. 내 여권에 입국 스탬프까지 찍고 나서 걸어가고 있는데 다시 부르더니, 나는 입국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유는 '비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스탬프 찍은 곳을 볼펜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어이없어서 나는 무슨 소리냐? 어제도 한국인 내 친구가 무비자로 이곳에 입국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약간 큰 소리로 떠들었더니 옆에 있던 고참 여자가 남한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신참여자에게 사우스코리아는 ‘무비자 입국’이라고 설명을 하고 신참은 내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북한'이라는 못난 아우를 둔 덕에 괜한 고생을 한 셈이었다.
음바바네(Mbabane)는 스와질랜드의 수도이지만, 큰 빌딩도 거의 없고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 보다 못하다. 더구나, 버스정류장은 온통 시끄럽고 난장판이다. 손젤라백패커스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려고 하니 작은 봉고차가 버스인 모양인데 인파로 뒤죽박죽이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타니 150랜드를 달라고 한다. 너무 지치고, 황당한 경험도 한터라 어서 숙소로 가서 씻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어 130랜드에 흥정을 하고 손젤라백패커스에 5시경에 도착을 했다.
음바바네에서도 한참을 달려온 이곳은 큰 도로에서도 흙길을 다시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곳으로 운전기사도 잘 찾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숙소자체가 밀와네 야생국립공원내에 있다. 이곳은 차가 없으면 들어오기 어려운 곳으로서 대부분 자가용으로 이곳에 들어오는 것 같다.
미국 달러는 있는데,남아공지폐인 랜드가 부족하다(스와질랜드에서는 남아공화폐가 그냥 통용됨).필요한 금액(랜드)은 있는데, 혹시 부족할까봐, 달러를 받느냐고 물으니 안된다고 한다. 대신 카드는 된다고 해서 더블룸을 1박 190랜드로 계산해서 2박 380랜드, 공원 이용료 35랜드, 첫날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52랜드, 합계 467랜드를 카드로 결제를 했다. 도미토리는 100랜드인데 젊은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왔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남아공일대에 있는 단체 여행객이 숙소를 점령하고 있다.
이곳은 음식물을 사러 나가기도 차가 없으면 전혀 불가한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샤워를 하고 이곳에서 맥주를 비싸게 주고 사서 저녁 내내 5병이나 마셨다. 바깥에 앉아 있으니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근처에 살고 있다는 커플이 반겨 준다. 한국에서 1년간 살았다고 하며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며 살갑게 대해 준다. 그는 한국은 매우 안전한 곳이라고 자기 여자친구에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대화속에 끼어든 프랑스 커플은 남자는 다이버(Diver)라고 하고 여자는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하였다. 다이버라는 직업이 부러운 직업중 하나라고 하니 여자는 겨울 한참 동안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별로라고 한다.
맥주를 마시고 얘기를 하고, 잠시 방으로 돌아온 내게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해서 주방으로 가니 바깥으로 나오라고 한다. 바깥에 캠프화이어 모닥불을 지펴 놓고 흑인 여자 요리사 두명이 음식을 떠 주는데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곳 공원 관리인도 와서 같이 밥을 먹는데 갑자기 번개가 치며 비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양해를 구하고 음식물을 들고 방으로 돌아 왔다.
더블룸인데, 나혼자 쓰고 있다. 밥을 먹으며, 맥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음악을 듣는등 모처럼 편안하게 홀로 있다. 집으로 문자를 보내니, 연결이 안된다는(네트웍연결불가)메세지가 뜬다. 러시아 바이칼호수에서 며칠동안 한국에 연락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곳도 통화가 불가능한 지역인것 같다. 바지랑,양말,속옷을 빨아 늘어 놓았더니 금방 마른다. 선풍기가 돌아 가고는 있지만,전혀 덥지가 않다. 오히려 겨울 윗옷을 입고 있다.
지금 시간은 밤 11시 5분. 잠이 오질 않는다.원래는 이곳에 3일 있으려고 했는데 이틀만 있기로 했다. 75일간의 여행계획을 전면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바깥에 비는 오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동물들과 지금 같은 야생지역에서 오늘밤을 보내는 것 같다.
2012.3.31.토.
밤새 잠을 설쳤다. 모기도 몇 마리 엥엥거렸다. 어제 입국장에서 본 표어가 생각이 났다. ‘말라리아 완전 퇴치를 위해 매일 말라리아 약을 먹자.’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1주일에 한번 먹는 약을 가져 왔는데 이곳에서 들으니 매일 먹는 약이 있는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본 정치인의 구호 중에 ‘HIV(에이즈)를 완전히 몰아 내는데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였다. 이곳도 에이즈가 극성인 모양이다. 흑인들은 에이즈를 백인들의 음모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와질랜드는 1969년 영국으로 독립한 작은 나라로서 현재 국왕이 다스리는 왕정국가이다.
남아공 공화국과 모잠비크를 국경으로 두고 있다. 이곳도 민주화열풍이 불어 현재 민주화 운동을 하는 진영에서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부르 짖고 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고 각종 과일이나 쌀 등 곡류가 풍족한 나라라고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5시 반 경에 일어났다. 아침을 김치,토마토 스프 에다 고추장을 풀고 누룽지를 끓이니 훌륭한 김치국이 된다. 아침을 먹고 바깥을 보니 갑자기 비가 내린다. 정말 비가 많은 나라인것 같다. 지금은 7시가 다되어 간다. 여행객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비가 그칠때 까지는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마침 이곳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긴 총을 메고 들어 왔다. 양해를 구하고 같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TV에서 많이 본 그런 사람이라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고 이야기 했다.
비가 그칠 기미가 없다. 오늘 하루를 이곳 실내에서 보내야 하는지 난감하다. 비교적 비싼 요금을 주고 택시까지 대절해서 찾아온 이곳에서 야생을 보지 못한다면 낭패다. 테라스를 통해 본 비오는 풍경이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여기온 목적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를 한잔 끓여 왔다. 단체로 온 학생들은 아침에 떠들썩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 졌다. 뚱뚱한(정말 너무 뚱뚱해서 걸을때 뒤뚱거린다) 메니져 여자가 “Mr.Park, How are you?"라고 웃으며 닥아 온다. 어제 등록을 하면서 내 이름이 Park 이니 이 공원(Park)은 내거라는 농담을 했더니 기억을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젊잖빼기를 좋아 하는 내가 여행을 나오면 나도 모르는 넉살이 나오는 것 같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녀석이 비옷을 입고 들어 서며 다짜고짜 나를 보고 “훈쟌”이라고 한다. 내가 무슨 말이냐 했더니 'How are you'라는 이곳 말이라고 한다. 나도 웃으며 “훈쟌”이라고 해 줬다. 스와질랜드 말과 남아공 말도 서로 다르다고 한다. 물론 영어를 쓰기는 하지만, 흔히 외국인들이 중국,일본,한국은 같은 언어를 쓰는 것으로 착각하듯이 우리는 아프리카가 같은 언어로 다들 통하는 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인것 같다.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카메라 삼각대와 음료수를 가방에 메고 길을 나섰다. 밀와네 동물보호구역(Milwane Wild Sactuary)내에 숙소(손젤라 백패커스)가 있어서 야생동물들이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이곳은 가이드 없이도 걸어서 다닐 수 있어 좋다. 길을 따라 초원에는 얼룩말,캄팔라(사슴종류?),멧돼지(콧 뿔이 있다),큰 사슴종류,들소와 수많은 꿩들이 있다. 악어와 하마(Hippo)가 있다는데 보질 못했다. 멀리 구름에 가린 산들과 주변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듯 하다.
다시 숙소쪽으로 걸어와 큰길까지 걸어갔다. 비옥한 땅에서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있다. 작물이 정말 잘 자랄것 같다. 혹시 가게나 은행이라도 있을것 같아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도 아무 것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11시가 되었다. 한 3시간을 걸었으니 아침 운동을 잘 한셈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할 일이 없다. 어제 이곳에 머물었던 남아공 커플과 프랑스 커플은 떠나고 없고, 단체로 온 학생들과 손님들이 사라져 버리고 텅텅빈 곳에 혼자 있다. 주변 경관은 한 없이 아름다운데 외로움이 몰려 온다. 영화를 한편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는 안 될것 같다. 이집트까지 가는 일정도 이디오피아에서 마치는 것으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다.
혼자 다니는 외로움이 이번에는 너무 크게 닥아온다. 사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그 곳의 유적지나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 여행의 또 한가지 주요 포인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여러 여행객과 대화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소중히 했는데, 지금 이곳은 오히려 외로움을 더 느끼는 여행이 되어 가고 있는것 같다.
맥주를 3캔을 사서 마시고 있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케이프타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미국인 남자한명과 여자둘이 들어 왔다. 남자는 캔사스에 살고 있다는데 나도 예전에 그곳에 다녀 왔다니 반가워 한다. 혼자 아프리카 여행을 하고 있다는 핀란드 여자를 만나 사진을 찍어 주고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젊고 예쁘고 자그마한 여자인데 용감한 것 같다. 그 무섭다는 요하네스버그에서도 혼자 다녀 왔다고 해서 매우 용감하다고 해 줬다. 날이 어둡기 전에 야생동물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메고 들판으로 나가며 '대화해 줘서 고맙다(Thank you for Nice Talking).'고 인사를 한다. 그녀도 아마 나처럼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그리웠을 것 같다. 또 비가 온다. 방으로 들어와 맥주를 홀짝 거리며 마시면서 이글을 쓰고 있다. 낮에는 할 일이 없어 샤워도 하고 가방 정리도 다시 했다.
2012.4.1.일.
어김없이 오늘도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어제 아침에 끓여 놓은 김치국을 먹고, 말라리아약을 먹었다. 7시에 손젤라 백패커스를 나왔다. 가지고 있던 동전을 여자 종업원 두명에게 나눠주고 숙소로부터 거리 까지 약 25분을 걸어 나왔다. 과거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각났다. 그때도 새벽 6시면 일어나 배낭을 메고 하루 7~8시간을 걸은 생각을 하니 이정도는 아침 운동삼아 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나와 조금 안 있으니 미니 버스가 왔다. ‘만지니’까진 10랜드를 달라고 한다. 만약 택시를 탔다면 130~150랜드를 주었을 것이다.
‘만지니’버스 정류소는 혼잡스러웠다. 제대로 된 시설물이 있는것도 아니고 허름한 가건물과 길거리 노점상, 그리고 수많은 미니버스와 기타 차량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프레토리아로 가는 버스가 있는곳에 도착하니 8시경이다. 여권을 맡기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무려 4시간을 기다려 12시가 다 되어 22명 정원이 다 차니 버스가 출발한다.
다들 가난하지만, 불평없이 살아 가는 것 같았고, 흔히 보던 거지도 없다. 스와질랜드 돈은 남아공에는 통용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빵,콜라,그리고 쇠고기(17랜드/약 2천4백원)와 생선 통조림도 샀다. 그래도 남은 돈은 노점상으로부터 사과(알이 작다)한봉지 5랜드, 귤 한봉지(5랜드), 그리고 모처럼 마늘 두쪽(8랜드)을 샀다.
국경신고를 마치고, 약 5시간이 걸려 프레토리아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어 프레토리아로 들어오는 도로가에 있는 표지판이 무시무시하다. ‘Crime Alert. Do not Stop' 이라고 서있다. 즉 ’범죄경고.절대 멈추지 말고 갈것‘이라는 말이다.
프레토리아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온통 흑인들 뿐이고, 주변이 산만하다. 역시 택시는 없다. 그때 한녀석이 닥아와 택시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따라 나섰다. 이 일대는 매우 낙후된 지역같았다. 얼른 벗어 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래도 ATM이 있는 곳에 들러 돈을 600랜드를 뽑았다. 지금 생각하면 가지 말았어야 할 지역을 겁도 없이 간 것 같다. 너무 방심을 한 것인지...다행히 아무일이 없었음을 감사할 따름이다.
10여분을 걸어가니 택시(흔히 한국에서 말하는 택시/이곳의 일반적인 택시는 봉고차형태로 일정한 도로 까지만 승객을 내려주는 일종의 버스이다)들이 모여 있다. 안내해준 녀석이 돈을 요구해 잔돈 10랜드를 주었더니 불만스런 표정이다. 내가 전부 100랜드짜리 밖에 없고 잔돈은 10랜드 밖에 없다고 해도 버티고 서 있었지만, 그냥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기사가 100랜드를 요구한다. 거리도 얼마되지 않는데...흥정 끝에 70랜드를 주었다. 50랜드도 아까운 거리인데도 오늘 너무 지쳤고 달리 방법도 없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곳이나 택시가 문제이다. 정확한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은한 늘 속이는 게임에 빠져들게 되고, 여행 기분을 망치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듯 하다.
며칠전에 머물렀던 프레토리아 백패커스에 가니 빈방이 없다고 한다. 참 황당한 순간이다. 며칠전에 많은 방이 비어 있었길래 예약을 하지 않고 왔는데...미국인 단체 손님이 들어 왔다고 종업원녀석이 말한다. ‘양키 두들(Yankee Doodle)이 들어왔어’라고...날은 어두워 졌는데 어떻게 하나 난감하다. 사정을 하니 메니져가 몇 몇곳을 전화를 하더니 이곳 숙소 운전수가 데려 주겠다고 한다. 7시가 다되어 이곳 ‘인터네셔날 게스트하우스.International Guest House)에 도착했다. 도미토리 침대 하나가 남아 있단다(110랜드).
2층 침대를 배정받고 가방을 던져 놓고 씻을 생각도 안하고 이곳 바(Bar)에 가서 맥주 두병을 들고 마당에 앉아 마셨다. 참으로 긴 하루였고 일정이 온통 꼬인 피곤한 날이 었다. 스와질랜드에서 지루하게 4시간을 기다렸고, 5시간동안 좁은 버스속에서 종일 기사가 틀어대는 음악소리에 짜증스러웠고, 아기를 안고탄 옆좌석의 여자와 아이 때문에 불편한 여정이었다. 택시기사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에다가 숙소마저 찾아 헤메였으니....
이곳 숙소는 마당이 꽤 넓고, 손님도 많다. 영국 에딘버르에서 온 젊은이 두명과 맥주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오나 가나 못난 아우 ‘북한’이 문제다. 맥주 두병을 더 마시고 가져온 쇠고기를 스테이크로 해서 토마토와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이곳 식당은 음식을 너무 푸짐하게 줘서 나같은 사람은 괜한 낭비가 되는 것 같다. 가급적 음식물을 사다가 간단히 요리를 해서 맥주나 포도주를 한잔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것을 즐기는 편이다.
케이프타운에서 식구들과 같이 여행온 나와 동갑인 여자를 만났는데 술이 많이 취한것 같고, 무척 늙어 보였다. 나는 처음에 60대 후반인줄 알았는데.... 자기는 전생에 인도인 이었을 거라며, 집에서도 인도풍의 ‘사리’같은 옷을 즐겨 입는다고 한다. 같이 대화를 좀 나누다가 너무 피곤해서 ‘Excuse me..'하고 자리를 떳다. 밤 10시가 되었다. 가방은 풀지도 않고 옷은 입은채로 꿈나라로 접어 들었다. 밤에는 매우 춥다.
이곳에 오니 전화가 개통되어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었다. 며칠동안 집에서는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어딘가 소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홀로 다니는 여행객으로서는 그나마 위안이 되고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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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청 고생 하셨네요
모기 택시 외로움 ~~
근데 매일 맥주를 드시네~~
60일 동안 매일 맥주를 마신것 같네요....
복귀했구먼.
장하고 부럽네. 계속 연재하소.
5번째 사진을 편집하여 타이틀 사진으로 올렸습니다.
저작권 사용료는 얼마입니까?
정말 백팩커로써 부족함이 없는 여행일기입니다.
엄청 고생했음이 나타나고 부럽기도 하네요.
그런 용기가 이젠 사라져가는 듯해서....
멋진 재균이 덕분에 집안에 가만히 앉아서 아프리카를 현장감있게 구경하고 있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