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한 편, 노래 한 곡] 경암응윤의 선시 <두 절의 스님이 소송을 화해한 것을 축하하며>,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
두 절의 스님이 소송을 화해한 것을 축하하며(奉賀兩寺僧和訟押前韵)
경암응윤(鏡巖應允, 1743~1804)
겨울엔 햇빛, 여름엔 그늘 좋아하니
못이 깊어야 고기가 모이는 법
밝은 태수 이미 백성 뜻 이해했고
효자도 이제 부모의 마음 알았네
마른 물의 물고기, 바다에 같이 살게 했고
싸움하는 호랑이, 숲으로 돌려보냈네
산승도 다 편안할 계책 드리고자 하나
다만 곧은 말 알지 못할까 저어하네
冬日愛陽暑愛陰 欲令魚聚在淵深 明侯已達生民意 孝子方知父母心
將使涸鱗同處海 解來鬪虎各歸林 山僧欲效俱安策 只恐讜言不直金
(<경암집(鏡巖集)>에서)
[감상]
우리는 한쪽은 절대적으로 옳고 한쪽은 절대적으로 그른 것으로 생각하고 이판사판 싸우지만, 세간의 일이란 백퍼센트 한쪽만이 옳고, 한쪽만이 그르지는 않습니다. 절집안의 일도 분쟁이 일어나면 세속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중흥사에서 합판으로 공양간을 짓고 살 때의 일입니다. 창문을 아예 만들지 않고 지었더니 여름이 되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인부를 불러 창문을 내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새겨들을 만했습니다.
“사람은 겨울에는 여름 생각 못하고, 여름에는 겨울 생각 못하는 법입니다.”
찬바람 불 때 공양간을 짓다보니, 여름에 더워질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은 겨울만을 대비하고, 한 사람은 여름만을 대비했다면, 둘 다 그르지 않지만, 둘 다 그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서로 옳다고 싸우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앞에 놓고 다투기도 합니다. 경암응윤 선사가 알고 계시는 두 절의 스님이 이해관계를 앞에 놓고 소송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서로가 양보하여 화해하게 되었지요. 이에 선사는 두 절의 스님이 화해한 것을 축하하며 시를 썼습니다.
두 스님의 화해는 실로 마른 물의 물고기를 바다에 살게 한 것이었고, 싸움하는 호랑이를 숲으로 돌려보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밝은 태수가 백성의 뜻을 이해한 것과 같고, 효자가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 것과 같습니다.
못이 깊어야 많은 물고기가 모이는 법이거늘, 얕은 개울에 모인 물고기를 서로 잡겠다고 다투어서는 안 되겠지요. 선사는 모두가 편안할 방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편을 쉽게 꺼내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바른 말일지라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의미 없어질 테니까요. 그 곧은 말은 아마도 시절인연을 충분히 기다린 후에야 발설될 것입니다.
[노래 한 곡] 양희은의 노래 <작은 연못>
https://youtu.be/laHBdYpIo98
경암 응윤鏡巖應允(1743~1804) 속성은 민閔, 본관은 여흥驪興, 영남의 거족 출신. 처음 법명은 관식慣拭. 여러 산문의 스님들을 두루 참배하고 추파 홍유秋波 泓宥의 문하로 들어갔다. 28세에 개당開堂하여 20여 년 대중을 교화한 후 환암喚庵 화상을 좇아 선지禪旨를 받았다. 이에 사방의 학자가 양종兩宗의 대종사大宗師로 칭송하였다.
<경암집(鏡巖集)>의 구성과 내용
서序가 있고, 끝에 팔관八關이 쓴 대사의 행장과 목만중의 영찬影贊, 이재기李在璣의 발跋이 있다. 권상에는 오언절구 19편, 오언사운五言四韻 11편, 칠언절구 29편, 칠언사운 15편, 고시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중에는 서書 23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하에는 서序 4편, 기記 25편, 잡저雜著 9편, 소疏 5편, 「한화록문답閑話錄問答」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상에 실린 시들은 형식별로 편집되어 있는데, 선미禪味를 담은 것보다는 사답祀畓 소송이나 일부 승려들의 일탈 행위 등 일상의 모습을 시화詩化한 것들이 많다. 권중에 실린 편지들에는 스승인 추파와 교유한 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스승의 장례나 문집에 필요한 글을 청하는 것들이 많다.
권하에 실린 산문들 가운데는 승려 문집에서 보기 드문 인물전 〈오효자전吳孝子傳〉과 〈박열부전朴烈婦傳〉이 있다. 두 글에는 불교적 요소가 삽화 형태로 들어가 있을 뿐 글 전체의 의미는 효와 열의 찬양이라는 유가적 윤리관을 표방하고 있다. 〈박열부전〉은 박지원朴趾源의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과 동일한 인물에 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