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수요일
성동구청 신우회 설교
제목: 성경의 메타내러티브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1~2
https://youtu.be/87IqjXQ6IQs?feature=shared
설교를 위한 묵상
성경 이야기가 결국 말하려는 주제는 무엇일까? 성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며 그것을 담고 있는 책도 66권이나 된다. 그 이야기들이 사실은 하나의 큰 이야기로 종합된다.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거대한 이야기 또는 거대서사를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라고 부른다.
메타내러티브는 성경의 작은 이야기들을 종합하는 것이므로 성경을 읽고 이해할 때 기준이 되며 가이드가 된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그 거대서사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본문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거대서사 즉, 성경의 메타내러티브를 어떤 것으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경의 해석과 이해는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지게 된다.
성경 이야기의 뼈대는 창조-타락-구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구원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이 설교에서 나는 구원을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냐를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단순히 복을 받는 길을 알려주는 지침이나 비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성경을 영적인 세계에 대한 암시라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성경을 인간의 참된 도리에 대한 규범이라고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성경 이야기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본다면 그 이야기는 결국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이 설교는 성경의 메타포(metaphor, 은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1.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2. 천성을 향하여 가는 여정인가?
3. 하늘이 내려오는 이야기인가?
4. 성경의 메타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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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진 책들의 모음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수많은 인물들과 민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성경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사람들은 이미 성경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성경을 읽는다. 그것을 신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성경을 처음 읽을 때 우리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들과 규범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다가 성경을 전반적으로 읽고 듣고 하다 보면 성경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다시 인용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성경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앞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의미를 드러낸다.
사실 이야기가 그런 식이다. 소설의 진행방식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고 하는데, 발단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의 복선이 되고 배경이 된다. 그렇게 해서 전체 이야기는 하나로 묶여져서 종합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성경도 그런 식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다. 그것을 가리켜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라고 한다. 거대 서사 또는 거대 담론으로 표현되는 이 말은 성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이 설교에서 나는 성경에 대한 여러가지 서사 중에서 두 가지를 비교하여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성경읽기를 반성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결국 절대반지로 표현된 인간의 탐욕을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에 대한 메타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메타내러티브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궁극적인 은유(metaphor)라고 할 수 있다. 메타포(은유)는 문학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결국 그 이야기를 찾으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경이 무슨 이야기인가에 대한 공통된 관점이 있다. 그것은 창조-타락-구원이라는 도식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여기서 구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 구원에 대한 이해가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내가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들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의미를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께 가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즉,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고 본다. 그들은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없다면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다리가 된다고 이해한다. 이런 관점으로 구원을 이해하면 구원은 결국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을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것이 톰 라이트가 주장하는 것이다.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은 죽음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다. 즉, 죽어서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말은 죽음 그 자체를 설명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구원은 죽음과 썩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몸이 다시 사는 부활을 의미한다. 그리고 구원은 이 세상과 함께 인간이 썩음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여기서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 드러난다. 하나는 구원을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그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 21장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의 이야기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이야기로부터 출발했다면, 성경의 마지막 장면은 하나님이 낡은 세상 대신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으로 그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완성은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땅으로 내려온다. 그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그 도시가 통째로 땅으로 내려오면 땅과 하늘이 마침내 하나가 되어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야기의 마지막 대단원이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땅을 벗어나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는 천로역정의 과정을 들려주는 은유로 이해할 것이냐, 아니면 성경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시고 그 대리인인 인간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셔서 그들과 함께 하시려고 장소를 예비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제공하심으로써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으로 충만한 곳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냐 하는 것은 매우 다른 관점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후에 에덴에 동산을 만드셨다. 그리고 사람을 거기로 들이셨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동행하셨고 사람은 그곳을 경작하고 지키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다. 그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이 그 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일어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죄로 가득하게 하여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게 했다. 그 때가 노아의 시절이며 바벨탑의 시절이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자신의 계획을 보여주셨다. 그 계획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의 날에 하나님이 온 세상에 복을 명하신 것과 같은 메시지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땅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다. 가나안 땅은 에덴동산과 같은 곳이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을 통하여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려는 계획을 이루실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온 세상에 빛을 비추는 민족으로 일으키실 것을 계시하셨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 언약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온 세상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그들은 믿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하시며 그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분이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새 에덴이며, 새 이스라엘이며, 새 시온의 땅이 되는 것이다. 사실 히브리서 12장 22~24절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구절은 교회의 영적인 실존과 위치가 어디인지를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23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24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2:22~24, 공동번역개정판
이처럼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를 드라마틱하게 들려준다. 그것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더 강력하고 분명하게 들려준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노라면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이 일관성 있는 주제와 완성을 향하여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들도 구조선의 탑승객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일에 동역자로 부름받았음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메타네러티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을 불러내어 도피성으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사람들 가운데서 진리와 화평의 길을 소개하고 더불어 상생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표지판이 될 것이냐 하는 이 두가지의 방식으로 삶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의 생각은 이 악한 세상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생각은 이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과 더불어 새롭게 지음을 받는 것을 구원이라고 이해한다. 성경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를 묵상하는 것은 모든 구도자들이 평생의 과제로 삼고 탐구하고 실천할 주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