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대오(水中大悟)
성당시대(盛唐時代) 청원행사(靑原行思)의 적손(嫡孫)인 약산유엄선사(藥山惟儼禪師) 문하(門下)에 사법(嗣法)한 운암선사(雲岩禪師)와 덕성선사(德誠禪師)가 있었다. 덕성선사는 절조(節操)가 고매(高邁)하고 도량(道量)이 넓어 대중의 추앙을 받는 분이었다. 약산선사(藥山禪師)께서 천화(遷化)하자, 동학(同學)인 운암선사(雲岩禪師)에게 선사(先師)의 유풍(遺風)을 진작(振作)할 것을 부탁하고,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출세(出世)의 뜻이 없네, 그냥 조야(粗野)에 묻혀서 살까 하니, 혹시 쓸만한 후학 수행자가 눈에 띄면 한 사람만 나에게 보내 주구려! 내가 얻는 법을 선사(先師)의 법은(法恩)에 보답코자 하네, 그렇게 부탁하고 떠나서 석중 화정현에가서 스님의 행색(行色)을 버리고 속복(俗服)을 입고 뱃사공 노릇을 하였다. 형색(形色)은 뱃사공이지만 눈빛이 어디 속인과 같겠는가? 말 한마디마다 예사롭지가 않으니, 소문은 바로 나기 마련이다.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도법(道法)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다. 그 당시 호남 예주 땅에 선회(善會)라는 스님이 절 주지(住持)를 하고 있었다. 그는 9살에 출가(出家)하여 제방선지식(諸方善知識)을 다 참례(參禮)하고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에도 해박(該博)한 식견(識見)을 가져서 한 회상을 꾸려서 어느 날 설법을 하고 있었다.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스님이 묻기를 어떤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묻자 선회주지가 답하기를 법신(法身)은 무상(無常)하니라. 승이 또 묻되 어떤 것이 법안(法眼)입니까? 답(答)이 법안(法眼)은 흠이 없느니라. 이같이 문답(問答)을 듣고 있던 어떤 객승(客僧)이 법석(法席) 뒷자리에서 하하~하하~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 법문(法門)하던 선회(善會) 주지(住持)가 곧바로 법좌(法座) 껄껄대고 웃고 있는 객승(客僧)에게 내려와서 큰, 절을 하고 소승(小僧)의 답(答)이 불충분(不充分)한곳이 있으면 소승을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했다.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깨닫지 못했으면 법(法) 앞에는 이렇게 겸손(謙遜) 겸허(謙虛)해야 한다.
객승(客僧)도 설법주(說法主)의 진지(眞摯)한 이런 모습에 감동 감명을 받고 말하기를 화상은 훌륭하게 출세는 하였으나 아직은 훌륭한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애석하오. 스님! 그러면 소승은 어디가 불철저(不徹底)한 곳입니까? 명백(明白)하게 설파(說破)하여 주소서! 하고 간절하게 물었다. 객승이 말하기를 그것은 지금 내가 여기서 설할 수가 없소. 정 그렇게 간절한 뜻이 있다면 화정현에 뱃사공 스님을 찾아가서 참문(參問)하시오. 사공 스님이라니요, 그분은 어떤 분입니까? 그분은 위로는 개와(蓋瓦) 한 조각도 없고, 아래로는 송곳 하나 세울 곳도 없는 보통사람 뱃사공이오. 만약 스님께서 찾아가신다면 변복을 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했다. 이와같이 선회(善會)스님에게 말한 객승(客僧)은 바로 운암선사(雲岩禪師)였다. 운암선사는 동학(同學)이었던 덕성선사(德誠禪師)의 부탁을 받고 몇 년간 약속을 지키려고 제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법기(法器)를 물색 찾으려고 다니다가 선회설법(善會說法)을 듣고 이 사람이로구나 하고 천거(薦擧)하여 가게 한 것이다. 선회주지는 주지직을 내놓고 대중을 해산시키고 걸망을 꾸려 운수행각(雲水行脚) 길에 오른다. 물어 물어서 화정현에 도착을 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뱃 사공스님은 그저 평범한 촌노(村老)의 모습이었다. 선회가 걸망을 지고 배에 올라타니, 뱃사공 스님 힐끗 한번 쳐다보며 말을 걷는다. 스님은 무슨 절에 사십니까? 아무 절에도 살지 않소이다. 산다면 벌써 맞지 않는 소리외다. 첫 대면 선문답(禪問答)이다. 사공스님이 맞지 않는 소리라니? 무엇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오? 그것은 목전(目前)의 법(法)이 아니라는 말씀이외다. 그러면 어느 곳으로부터 얻습니까? 이목(耳目)이 미치는 곳에는 얻지 못하리다. 문답(問)은 팽팽하게 전광석화(電光石) 같이 불꽃이 튄다. 그러나 뱃사공 스님은 벌써 선회(善會)의 심지(心地)를 간파(看破)하고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말하길 일구합두(一句合頭)의 말일지라도 오히려 만겁(萬劫)의 계려궐(繫驢橛)이야! 그렇게 입으로 까불대지만 조사의(祖師意)에 계합(契合)하는 일구(一句)라도 그것은 나귀 잡아매는 말뚝같이 속박(束縛)일 뿐 아무 소용도 없어 영원한 자유는 얻지 못한다고 일침(一針)을 꽂았다.
기고만장했던 기개가 푹 꺾인 선회는 멍청하게 서서뱃사공스님을 보았다. 이를 본 사공스님 숨도 못 쉬게 다구쳐서 몰아세웠다. 천척(千尺)의 낚시줄을 내려두고 뜻은 깊은 못에 두었구나! 세치(三寸)의 낚시를 떠나서는 자네는 무엇을 말하지 못하는고? 진퇴양난(進退兩難)이 된 선회(善會)는 당황(唐惶)한 모습을 보자 사공스님 손에 잡고 노을 젓던 노(櫓)로 선회의 등짝을 사정없이 쳐서 물속에 빠트려 버렸다. 물에 빠져 허구적 되며 강물을 흠뻑 마시고 간신히 뱃머리를 붙잡고 올라오려고 하였다. 올라오려는 선회를 보고 노로 밀치면서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라! 하고 또 물속으로 쳐넣었다. 물속으로 빠지는 찰나에 선회는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수중대오(水中大悟)다. 빨리 말해라는 뱃사공스님을 쳐다보고 선회스님 희색이 만면한 웃음을 짓고 고개를 세 번 끄덕였다. 사공스님 흡족한 마음으로 선회를 배로 올라오게 해서 선회(善會)를 인가(認可)하고 법을 잇게 한 후에 오랜 세월 강물에 낚시줄을 던지니, 오랜만에 금린(錦鱗)을 만났도다. 만족한 마음으로 칭찬(稱讚)하자 선회(善會)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사공스님은 선회에게 법을 부촉하고 선회를 떠나게 하였다. 떠나는 제자를 향해서 내가 있던 곳을 생각하지 말아라. 말을 남기고 배를 훌쩍 뒤집어 물속으로 잠겨버렸다. 스스로 수중다비(水中茶毘)를 한 셈이다. 전법 제자(傳法弟) 하나 두었으니, 사법보은(嗣法報恩)은 갚은 셈이다. 중국 선종의 선화(禪話)는 이렇게 범부(凡夫)는 상상(想像)도, 못하는 기행(奇行)이 많다. 그 후 수법제자(受法弟子) 선회선사(善會禪師)는 예주 협산(夾山)에서 도량을 이루고 덕성선사(德城禪)의 선풍(禪風)으로 법은(法恩)에 보답(報答)하였다는 선화(禪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