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無門關) 사십삼(四十三)
수산죽비(首山竹篦) 수산의 죽비,
본칙(本則) 역(譯)
수산 화상이 죽비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죽비라고 부른다면 (법에) 저촉되는 것이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사물에) 위배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라.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首山和尚, 拈竹篦示眾云, 汝等諸人, 若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汝諸人, 且道. 喚作甚麼.
평창(評唱) 역(譯)
무문이 말했다. 죽비라고 부르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위배되니, 말을 해도 안 되고 말을 안 해도 안 된다. 빨리 말해 보라! 빨리! 無門曰 喚作竹篦則觸, 不喚作竹篦則背, 不得有語, 不得無語. 速道, 速道.
송(頌) 역(譯)
게송으로 읊다. 죽비를 들어 올려 죽이고 살리는 명령을 행하도다! 위배와 저촉이 번갈아 쫓으니 부처와 조사도 목숨을 비는구나! 【頌曰】拈起竹篦, 行殺活令. 背觸交馳, 佛祖乞命.
사족(蛇足)
수산성념(首山省念) 선사(禪師)는 임제의현(臨濟義玄) 선사(禪師)의 사대법손(四代法孫)이다. 풍혈선사(風穴禪師)의 법을, 이은, 고승(高僧)이다. 하루는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죽비(竹篦)를 들고 대중들에게 물었다. 이 죽비(竹篦)를 죽비(竹篦)라고 해도 법(法)에 저촉(抵觸)이 되어서 안되고, 죽비(竹篦)가 아니라고 해도 사물(事物)에 위배(違背)가 되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죽비(竹篦)를 뭣이라고 부르겠느냐고? 다구쳐 물었다. 이런 공안화두(公案話頭)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을 몽땅 차단(遮斷)시키는 진퇴양난(進退兩難)으로 몰고 가는 선사(禪師) 선지식(善知識)의 특유(特有) 선교방편(善巧方便) 참구문(參究門)이다. 여기서 답(答)을 내는 사람이 출격장부(出格丈夫)가 된다. 그렇지 않고 선사들이 던져놓은 언구(言句)에 걸려들면 살아있는 산송장이 된다. 조사어록(祖師語錄) 천칠백공안화두(千七百公案話頭)가 다 이렇게 관문(關門)이다. 화두공안(話頭公案)은 조사(祖師)들이 빗장을 걸어놓은 말, 관문(關門)이다. 이 관문(關門) 말속의 말을 찾아내야 선문답(禪問答)이 가능하다. 수산선사(首山禪師)의 죽비(竹篦) 관문(關門)은 입 갖고 말하지 말라다. 입을 열어도 틀린 것이고, 입을 닫고 있어도 틀린 것이 된다. 어떻게 해야될까? 세상 만물은 다 이름이 있다. 죽비도 사물의 이름이다. 죽비라는 이름도 알고보면 우리가 지어놓은 가명(假名)이다. 대나무로 만든 죽비면 본체(本體)는 대나무다. 용도(用度)가 죽비라는 이름이지 원래 죽비는 임시로 붙여놓은 가짜 이름이다. 따지고 따져본들 뾰쪽한 방법이 없다. 이름에 팔려 사는 것이, 중생(衆生)의 속성(屬性)이다. 그 속성을 차단(遮斷)하는 방법은 말속에 말을 찾게 하는 방법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선지식들이 오직, 답답했으면 비싼 밥 자시고 이런 공안들을 만들었을까? 싶다. 모르겠으면 화두로 참구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진퇴양난 외통수로 몰아붙여야 본정신 제정신이 번쩍 든다.
화옹송평(和翁頌評) 역(譯),
수산죽비 공안화두는 죽비라고 해도 법에 저촉이 되어 오답이고, 죽비가 아니라고 하면 사물을 등진 오답이네, 눈 밝은 납승(衲僧)은 속히 속히 일러라! 首山竹篦公案話 喚作竹篦法觸答 不喚竹篦物背答 明眼衲僧速速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