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종장 첫마디 3자와 통사적 언어 사용에 대하여
통사적 언어란 단어의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통사적 합성어와 문장 구조에서 본 구를 이루는 방식을 말한다. 통사(統辭)란 사고나 감정을 말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 단위이다.
통사적 합성어는 예를 들어 ‘먹다+ 거리=먹을거리’, ‘산+나물=산나물’, 뛰다+가다=뛰어가다‘처럼 하나의 낱말이 되는 것을 통사적 합성어라 한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통사적 언어라 한다.
시조 창작시 종장 첫마디 3자는 독립적인 말이어야 한다는 이론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다. 이 3자는 절대적으로 시조의 중요한 정체성 중의 하나이다.
시조 종장 첫마디는 어떤 문장 성분이 되든 간에 3자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두개의 말이 겹합되는 ⓵~지(보이지 않는 정신), ⓶-수(먹을 수 없는 음식), ⓷-의(철수의 책가방) 등 세 가지 경우가 늘 문제이다. 두개의 낱말이 모여 구(句)를 이루게 되는 경우는 늘 통사적언어인가, 아닌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⓵
먼저 ‘-지’는 다음에 반드시 부정어가 따라오는 연결어미이다. 예를 들면 ‘먹지 못하다’, ‘보이지 않는다’ 등과 같은 말이다.
종장 첫마디를 '보이지/ 않는 영혼이'를 3.5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5.3이 통사적 언어라 볼 수 있다.
⓶
다음, ‘-수’는 의존명사로 이 말은 앞의 말이 없이는 혼자 설 수 없는 말이다. ‘먹을 수 없는(있는) 과일로’, 같은 말은 띄어쓰기는 하지만 앞말에 붙어 다니는 말이다. 그러므로 음수는 3.5가 아니라 5.3이 된다.
⓷
셋째는 관형격 조사 ‘–의’이다. ‘철수의 책가방’ 할 때 얼핏 보기에 관형어로 3자가 될 것 같지만, 이는 통사적 언어로 보아야 하므로 3자가 될 수 없다. 통사적 언어이므로 6자가 된다.
‘헌 옷에’처럼 ‘헌’ 자체는 관형사로 뒤에 오는 말과 붙어 다니는 말이다. 관형사는 반드시 관형사+명사의 형태를 취한다.
이 때 관형사+명사까지 해서 3자를 만들어야 한다. 관형사는 뒤에오는 체언과 결합되어야 의미의 단락이 생기는 특성이 있다. 쉽게 말해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두 개의 낱말이 결합되어 의미를 만들어내는 구(句)가 된다.
‘나의 책’ 또는 ‘내 가방’이라 할 때 ‘나의’나 ‘내’는 관형사 이다. 즉 관형사+명사로 독립적인 의미를 만든 3자로 본다.
마찬가지로 ‘철수의’ 역시, 뒤에 오는 ‘책가방’과 결합되어야 하는 하나의 관형사가 되므로 3자가 아니라 6자가 되어야 독립적인 의미가 생기는 말이 된다.
즉, 명사(철수)+관형격 조사(의)+명사=전체가 통사적 언어가 된다.
시조 종장 첫마디 3자는 살펴본 바와 같이 독립적인 3자로 불변의 음수이다. 절대불변의 시조 정체성이다.
물론 이 이론과 다른 주장은 있을 수 있다, 언어 예술이라는 측면만 고려하면.
그러나 시조의 정체성은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마음대로 바꾸어도 되는 문화유산이 아니다.
고시조에서 흔히 사용하던 ‘어즈버, 두어라, 아희야’같은 말은 현대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사장(死藏)된 말이다.
그 옛말을 현대어로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시조 형식의 틀(정체성)을 깨뜨리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또 고시조에서 종장 첫마디에 관형어를 둔 경우는 아주 제한 적이다.
‘무심한, 임 향한, 임 계신’같이 몇 개의 통사적 언어에 국한되어 있다. 이러한 말은 용언의 어미변화를 통하여(무심하다-→무심한), 또는 두 말의 겹합(임+향하다→ 임 향한, 임+계시다→ 임 계신)이라 하더라도 종장 첫마디에서는 3자를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어에서는 용언을 활용한 관형어를 3자로 쓰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시조 종장 첫마디는 통사적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종장 첫마디 3자는 어떤 문장 성분도 가능하나, 통사적 언어라도 의미의 단락이 생기는 3자를 만들어야 한다.
첫댓글 통사적 언어 사용에
관하여 잘 이해 하였습니다.
고문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