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코스 : 평택항 마린 센터 - > 화성 이화리 정류장
경기 둘레길 46코스는 아산 국가 산업단지 포승지구와 원정지구를 걸어가 수도사에서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남양만 방조제를 건너 화성시 이화리에서 끝을 맺는다.
국가의 역동적인 산업현장이 밀집한 곳일지라도 도보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산업단지의 도로변을 걷는 길은 도시의 외곽지역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있어 어쩌면 단조로운 길이 되어 걸어가는데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 시대에는 이 길이 당나라와 무역의 통로였기에 고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구법을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고자 걸어갔던 길이 되어 평택시에서 섶 길을 조성하면서 원효길로 이름한 뜻 있는 길이다.
원효대사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誰許沒柯斧) 하늘을 바칠 기둥을 찍으련다(我斫支天柱)”고 스스로 계율을 깨트리고 소성 거사를 자처하며 대립과 분열을 종식하고 화합을 실천(十門化爭)한 시대를 앞서간 위대한 선각자이시다.
마린 항 센터에서 첫발자국을 띠려니 길바닥에는 철새들이 전깃줄에 앉아 내갈긴 배설물이 가득하다. 다행히 볕에 말라 걸어가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 않았으나 지저분한 길이 되어 미간을 찌푸리게 하였다.
도로에서 마을길로 돌아설때 원효길을 알리는 둥근 돌의 표석이 독특하였고. 경기 둘레길 표지기는 늘 그렇듯이 전봇대에 매달려 편안하게 길을 인도하는데 서해랑 길을 알리는 표지기도 나풀거리고 있었다.
경기 둘레길, 평택 섶 길, 서해랑 길로 지정된 3관왕의 길인데 섶길을 걸을 때 다녀간 길이 되어 거침없이 진행한다. 잠시 마을 길로 진입하였다가 평택항로를 알리는 도로에 진입하여 평택항 홍보관에 이른다.
홍보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산길을 내려서니 신당 근린공원이었다. 공원을 돌아보고 도로에 진입하여 원정 산업단지를 향하여 걸어갈 때 동행한 김 총무의 등산화의 밑창이 떨어져 나갔다.
길을 걷는 사람의 신발이 망가진 것이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 오는데 김 총무는 침착하게 노끈을 꺼내어 밑바닥을 신발에 묶어 응급조치하고 주위를 살펴보니 24시 편의점이 있어 테이프를 사서 동여매고 계속 걸어갔다.
불안한 생각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지어 딱딱한 도로를 걷는 지루함도 잊고 잡다한 상념을 하나로 모으고자 원효대사의 일화를 떠 올리며 걸어간다.
백고좌 법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금강삼매경론’의 강설을 통해 불경의 힘으로 왕비의 병을 고치려 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해설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원효가 들어가 강설을 하고 그곳에 모인 스님을 향해 일갈한다.
“예전에 백 개의 서까래를 고를 때에는 비록 그 모임[百高座]에 참석하지 못했으나,“昔日採百椽時, 雖不預會.”오늘 아침 한 개의 들보를 놓는 곳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구나.”今朝橫一棟處, 唯我獨能 라고 질타하니 모든 고명을 자처하는 고승들이 얼굴을 부끄러워하고 참회하였다. 고 하니 얼마 통쾌한 일인가!
이촌교를 지나 원덕초교에 이를 때 원효길을 함께 걸었던 조용원 회장님이 생각났다. 일찍이 산을 사랑하시어 백두대간을 왕복 종주하시고 9정맥 마저 완주하신 자타가 공인하는 영원한 산 사나이시다.
항시 “육체적인 산행(걷기) 아니라 정신적인 산행(걷기)이 되어야 한다” 고 강조하시는 우리 땅 걷기의 홍보대사(?)이신데 세월의 무게 앞에 오늘 경기 둘레길 걷기에 참석하지 못하셨으니 얼마나 걷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실까?
원효길을 걸으며 원덕초교에 이를 때 더위에 지쳐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음료수와 과일을 먹으며 피로를 달래면서 함께 걸었던 길인데 경기 둘레길을 걷는 오늘은 곁에 계시지 않으니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산지구 원정산업 단지를 지나 마을 길을 걸어가다가 원정초교를 지나며 이제 비산 비야 지대를 걸어간다. 산길로 진입하니 철조망이 쳐있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숲길이 되어 군부대의 울타리를 띠리 기분 좋게 걸었지만 아쉽게도 너무나 빨리 수도사가 나타났다.
수도사는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원효대사가 수도사 인근 토굴에서 해골 물을 마시고 득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당으로 가는 신라인의 교통로에 있는 사찰이었기에 원효대사 깨달음의 성지로 추정한다.”(경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 퍼옴) 고 적고 있다.
심산유곡이 아닌 그은한 산속에 고요함이 흐른다. 원효대사 깨달음의 성지인 대웅전의 부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실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숙인 고개를 드니 둥구스란 통나무에 주련이 걸려 있다.
佛身普遍十方中 : 부처님께서 시방세계에 두루 하시어
普現一切衆生前 : 널리 일체중생 앞에 나타나신다.
隨緣赴感靡不周 : 인연 따라 감응하여 온 세상 두루 하시고
而恒處此菩提座 : 항상 보리(진리)의 이 자리에 머무시네.
廣大願雲恒不盡 : 광대한 서원은 다함이 없어라
汪洋覺海妙難窮 : 망망한 깨달음의 바다여 그 뜻 오묘하여 알기 어렵네
내 마음속에 계신 부처님은 원효 성사의 깨달음에서 극치를 이룬다. “ 원효가 당나라에 가서 도를 구하려고 여러 곳으로 다니다가 어느 날 밤에 무덤이 많은 데서 잤다.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찼다가 어떤 구멍에서 물을 얻어 먹었더니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아침에 잠이 깨어본즉 해골 바가지에 있는 물이었다. 매스꺼워서 구토질을 하고 깨달은 바 있었다.
”마음이 나면 여러 가지 법이 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여러 가지 법이 없어진다 하더니 마음이 없으면 해골 물도 없는 것이로구나 부처님 말씀에 삼계가 마음뿐이랴 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였으랴! 하고 당나라의 구법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한다.” <.동국역경원 간행 불교 대사전에서 퍼옴>
원효 깨달음의 성지 수도사에서 천 년 전의 원효대사의 득도 설화를 떠올리며 아쉬운 발걸음을 남양호를 향하여 걷는다. 골목길에는 농촌 지역 답지 않게 단정하게 지어진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남양호 건너 마을이 눈에 띈다. 아마도 오늘의 종착지 이화리 라고 동행한 김 총무가 이야기 한다. 백두대간의 사나이 김헌영씨는 1대 간 9정맥을 완주하였고 20년 넘게 전국의 산하를 두루 섭력하고 둘레길 걷기에 열중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 독도의 달인으로 불리었는데 둘레길을 걸으면서 모두가 지도 앱을 사용하여 길을 걷고 있지만 오로지 지도를 이용하여 둘레길을 걷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한다고 비판하였지만, 지형과 지물을 지도와 대조 확인하며 길을 걸었을 때 그 길에 대한 전부를 세삼하게 파악할 수가 있지만 지도 앱을 이용할 때는 길 찾기는 편할지라도 가던 길을 다시 갈 때는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농로를 지나 남양호 둑에 이르렀다. “남양호는 화성시 우정읍과 평택시 포승읍을 연결한 남양만 방조제 건설로 만들어진 인공저수지이다. 본래는 발안천이었는데 남양만 방조제 축조와 함께 남양호를 조성하여 새롭게 등장한 화성시의 관광지가 되었다.
연중 낚시꾼이 즐겨 찾는 곳으로 겨울철에는 얼음 낚시로 붕어가 유명하다는 남양호 둑길을 따라 걸어가노라니 낚시를 위한 좌대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남양호에서 방조제 이르렀다. 일지로 뻗어간 직선의 길을 대하니 기운이 솟아 방조제 둑에 올라 바닷물을 바라보며 걷고자 하였으나 둑에 오르는 길이 눈에 띠지 않는다.
종착지는 가까워져 오는데 망망대해를 바라볼 수 없어 애를 태울때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경기 둘레길 표지기가 방조제 둑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남양호가 펼쳐있고 왼쪽은 서해다.
썰물 때가 되어 검은색인지 푸른색인지 단정을 지어 이야기할 수 없는 거무스레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거센 파도가 용솟음치는 듯한 동해, 청정한 남해바다. 그리고 은은한 끝없이 펼쳐있는 서해로 둘러싸인 한반도는 금수강산임이 다시금 느껴진다.
해풍을 가슴에 안고 방조제를 건너니 화성시를 알리는 교통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남양 방조제가 평택시와 화성시의 경계였고 방조제의 끝자락에 마을이 있었는데 오늘의 종착지 이화리 버스 정류장이었다.
● 일 시 : 2024년 2월3일 토요일 흐림
● 동 행 : 김헌영 총무
● 행선지
- 10시25분 : 평택한 마린센타
- 11시45분 : 도곡초등학교
- 12시00분 : 원정 초등학교
- 12시40분 : 수도사
- 13시40분 : 이화리 정류장
● 도상거리 및 소요시간
◆총거리 : 13.9km
◆ 총시간 ; 3시간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