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 남공 묘지명 [參奉南公墓誌銘]
공은 휘가 필대必大이고 자가 여경餘慶이고 성이 남씨南氏이다. 증조 휘 시준時俊은 통정대부通 政大夫이고 조고 휘 정국貞國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이고 선고 휘 율慄은 무과 출신으로 축산진 만호丑山鎭萬戶이다. 선비는 재령 이씨와 무안 박씨인데, 공은 박씨의 소생이다. 공은 만력 무신년(1608, 선조41) 모월 모일에 출생하여 병오년(1666, 현종7) 5월 23일에 별세하니, 향년이 59세이다. 공은 처음 한양 조씨漢陽趙氏에게 장가들고 다시 영천 이씨永川李氏 에게 장가들었다. 조씨는 2남 · 2녀를 낳았다. 아들은 모두 요절하였고 장녀는 백리장白履章에게 출가하여 아들 황㫛을 두었고 작은 딸은 이정일李靖逸에게 시집가서 두 자식을 두었는데, 어리다. 이씨는 1남·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중혁仲赫이고 딸은 아직 시집가지 않고 집에 있다. 공은 하담荷潭 김시양金時讓에게 수학하였는데 하담공이 가장 사랑하였고, 그의 아들 휘徽와 또한 서로 마음이 맞아 매우 좋아하였다. 공이 이미 하담 부자에게 인정을 받아 명성이 더욱 드러나서 갑진년(1664, 현종5)에 고을의 인재로 추천되어 태릉 참봉泰陵參奉에 제수되었다. 공은 이미 노쇠하고 병들었으나 부임하였는데, 얼마 안 되어 곧 사직하고 돌아와서 집을 수리하고 전원을 다스려서 크게 후손에게 물려줄 계책을 하였다. 공은 일찍이 말씀하기를, “우리 남씨 3대가 오직 나와 아들과 손자뿐이니, 다행히 병이 없고 수나 누리면 만족스럽겠다. 다른 것을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런데 병오년(1666, 현종7) 여름에 손자가 요절하자, 공은 크게 애통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이로부터 낙심하여 즐거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영해부에 가서 태수太守(부사)를 배알하였는데 몇 말씀을 나누기도 전에 기운이 갑자기 평안하지 못하므로 부축하여 공청公廳을 나왔으나 얼마 안 있다가 별세하였다. 태수인 김옥현金玉鉉 공은 평소 공을 존경하였고 자기를 만나보려고 왔다가 갑자기 죽은 것을 슬퍼하여 직접 상가를 찾아가서 매우 슬프게 통곡하였고 병졸을 내어 상을 치르게 하였으며, 빈소를 차리자 다시 와서 곡하고 또 장례 일을 주선하였다. 장례할 때에 아들 중혁이 생질인 백황白㫛을 시켜서 나에게 말을 전하기를, “장차 모월 모일에 선인을 영해부 남쪽 웅창산熊倉山 모좌某坐에 있는 조부모 선영 아래에 장례하려 하는데 묘지명을 아직 맡기지 못했으므로 감히 청합니다” 하였다. 나는 공과 두터운 정분이 있고 중혁과는 종유從遊한 우호가 있으니, 의리상 문장을 못한다 하여 사양할 수가 없었다. 삼가 그 세계世系와 행적을 차례로 엮고 명문을 붙인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에 신하가 있었으니 惟唐有臣 성은 김씨 이름은 충이었네38) 金姓忠名 일본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다가 奉使日本 풍랑을 만나 영해에 정박하였다오 風泊于寧 여남에서 왔으므로 至自汝南 남씨 성을 하사하고 賜南爲氏 이름을 민이라 하여 名之曰敏 영의공으로 봉하였네 封以英毅 처음 영양에 살아 始家英陽 대대로 공로가 빛나니 世赫勳庸 영양의 남씨가 惟英之南 이에 동방에 번성하였네 式蕃于東 휘 수는 有諱曰須 용궁현龍宮縣의 관리가 되었는데 龍縣作吏 스스로 뗏목을 타고 단양으로 옮겨와서 自槎移丹 인아리仁雅里에 거주하였네 居仁之里 신과 적 曰莀曰 그리고 휘 세우는 曰諱世虞 무예로 가문을 계승하였는데 武克厥世 공이 처음으로 유학자가 되어 公始爲儒 온화하고 유순하고 공손하고 은혜로워 溫柔遜惠 남과 다툼이 없었다오 與物無忤 지방으로부터 국도國都에 이르기까지 自鄕而國 칭찬이 막 성하였는데 稱譽方耀 어찌 갑자기 별세한단 말인가 沒何云遽 계획이 끝내 허사로 돌아갔네 計竟歸虛 아침에는 안장을 타고 저녁에는 상여를 타니 朝鞍暮輀 인간 세상이 어떠한가 人世何如 외로운 그 아들 有孑其孤 효심이 지극하네 烝烝孝思 제사를 이을 이가 없어서 奉奠無繼 후손 노릇 못할까 두려워하였네 懼不克嗣 근원이 깊으면 흐름이 멀고 源遠者流 덕이 후하면 면면히 이어간다오 德厚則綿 공의 세덕은 惟公世德 마땅히 하늘에게 보답을 받으리니 宜報于天 울창한 저 웅창산에 蔚彼熊原 서리를 밟으며39) 제사하리라 霜露所履 받들어 장례하여 부장祔葬하니 奉窆以祔 아! 천백 년을 이어 가리로다 於千百祀 |
첫댓글 참봉공은 영양관15세로 송정공(諱 須)의 7대주손이며 나의 12대조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