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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31편14-24)
성경본문; 시편31:14-24
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15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악인들을 부끄럽게 하사 스올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이 말 못하는 자 되게 하소서
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20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24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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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박사는 시편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편은 논리적인 논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들이 시편을 바로 이해하려면 시편기자의 입장이 되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 시편의 표제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도”를 통하여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위대한 신앙의 체험을 고백합니다.
다윗은
☞첫째로, “하나님 당신은 나의 역사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역사적인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교리서를 통해서가 아니라 행위와 삶을 통하여 역사적 사건들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배우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역사는 바로 하나님의 활동하시는 현장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과 함께하십니다.
현대 소망의 신학자들은 역사를 앞장서 가시는 하나님으로, 역사의 목적과 종국의 가치로서 하나님을 Ω point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Ω point로서 앞장서서 가시는 역사의 주인공이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활동하시는 무대이며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그 목적을 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현실 역사 가운데서 일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갑니다.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 10:29)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본문 14, 15절을 보세요. 다윗이 외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바로 나의 역사요 내 삶의 목적입니다”
다윗이 기도 가운데 그의 눈길을 사람에게서, 또는 원수에게서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했을 때 그의 중심에는 놀라운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의 주위 상황에 의해 하나님을 보아서는 안 되겠구나. 오히려 나의 주위를 둘러싼 하나님의 임재에 의하여 주위 상황을 보아야겠구나. 내 역사가, 내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구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27-30)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다윗은 현실 역사 속에 자기가 있음보다 오히려 먼저 하나님의 손 안에 자기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시대, 내 역사, 나의 생애를 온전히 주장하시고 계시니 나는 안심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리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관하고 계실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하여 모든 자원을 예비하시는 은총을 느끼며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현실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둘째로, “하나님 당신은 나의 축복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19절을 보세요.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그는 자신의 신앙 체험과 현실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기에게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예비되었는데 그 범위와 한계가 무한한 데 대해서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고전 2:9에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사 64:4, 65:17)고 했고,
요 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풍성하고 영원한 생명과 용서와 사랑과 평안과 안식을 주시며,
또한 주실 것을 생각하고 무한히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제를 돌아보세요.
오늘을 누가 준비했습니까?
내일을 바라보세요.
누가 여러분을 위해서 내일을 예비하실 것입니까?
사람은 처음에 좋았다가 점점 나빠지며 뒤에는 그 도움과 사랑이 문득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영원한 첫 사랑이시오 불변하시는 반석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외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탐험가들은 극지 여행에서 후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자기들의 귀로를 위해 도표 속에 식량을 저장하여 둡니다.
그와 같이 측량할 수 없는 부가 그리스도 안에 보관되어 있어 우리들이 자기의 것으로 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산들이 내 앞에 첩첩히 쌓여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땅 속에 석탄, 광석, 석유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영적으로 주 예수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감추어두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 곧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나라를 잇게 하시는 것입니다(벧전 1:4). 할렐루야!
다윗은
☞셋째로, “하나님 당신은 나의 친구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20절을 보세요.
“주께서 그들을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회담을 할 때 Countparter, 대화 상대자란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직급 수준의 사람이라야 이야기가 잘 통하고, 쉽게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뢰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의 C. P가 바로 하나님이란 것을 깨닫고 기절초풍할 만큼 놀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은밀한 곳에서 어떤 사람의 구설수도 새어나가지 않는 완전 방음장치가 된 밀실에서 하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때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최상급 환대와 포옹과 청취에 대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21-24절 본문에서 다윗은 소리쳐 감사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C. P는 누구입니까?
사람은 그 누구도 여러분의 온전한 C. P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소리를 합니다.
언젠가는 배신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의 C. P가 되어주십니다.
시 91:1~3에 “지손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생명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그 위대한 잠재력의 일부를 엿보게 합니다.
♣첫째, 이 생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으로 해서 그 잠재성이 확실하고, 그 가능성이 무궁합니다.
이 생명은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끝까지 지키십니다.
아비가일의 입을 빌려 성령께서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삼상 25:29).
♣둘째, 이 생명은 곧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므로 그 질적인 가치가 영원합니다.
이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이 쌓아두신 은혜, 이 땅에서 베푸시고 하늘나라에서 베푸실 은혜가 얼마나 큰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언
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집니까?
우리가 힘이 없어서 쓰러집니까?
병을 이기지 못해서, 면역이 떨어져서 죽습니까?
그것도 맞지만 더 정확한 해석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비해 놓은 은혜가 마감되었기 때문에 무너집니다(시 77:5-9, 애 3:19-23).
오늘 본문 19절입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그렇습니다. 죽을 사람은 접시 물에도 빠져 죽고, 살 사람은 어떤 중병에서도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는 약해서 죽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약하고 힘이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주보다 크고 사망의 권세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서 천국으로 옮겨가시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위하여 이 땅에 쌓아놓은 은혜는 365년까지였고, 엘리야를 위해 이 세상에 예비해두신 은혜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할 때까지였습니다(07. 4.. 8 ; 죽음과 부활의 현장에서 생기는 일).
♣셋째, 이 생명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생명이므로 그 차원과 수준이 가장 높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생명이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명입니다. 이 세상 사람의 생명은 그 코 끝에 있는데 이미 그 생명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으므로 그 잠재력은 제로입니다.
70-80년 후에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질 비극적인 운명 속에 있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무가치합니다. 이미 죽은 생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저 주신 생명은 그 가능성과 질적 가치와 수준이 얼마나 높습니까?
본문 14-16입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그 잠재적 가능성이 확실하고 무궁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시 93:5).
그 질적인 가치가 영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명이므로 그 차원과 수준이 가장 높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3-15).
우리는 이 친구로 인하여 생명을 얻었고, 이 친구를 위하여 살다가 이 친구와 함께 살기 위하여 돌아갑니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영국 작가 C. S. 루이스는 ‘바다의 파도 끝에 물이 잠깐 멈추는 순간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죽는다면 오늘이 세상을 떠날 완벽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시 48:14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