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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8일] (일요일) <새재사랑 우정산행> 한북정맥 ♣ 운악산 (2)
* [산행코스] <동서울→포천 화현> ☞ [포천] 운악산 자연휴양림→ 운악사→ 면경대(궁예성터)→ 사부자바위→ (암릉)- 두꺼비바위→ 정상(서봉 : 935.5km)→ 정상(동봉 : 937m)→ (점심식사)→ 전망대(남근석)→ 코끼리바위→ 현등사→ 일주문→ 하판리 <산마을 순두부골>→ 조종천
* [‘사부자(四父子) 바위’의 절경]… 짙은 안개에 싸인 신비스런 소나무
☆… 오전 11시 40분, ‘사부자바위’에 올랐다. 앞서간 대원들이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745m 고지의 암릉이다. 산에는 본격적으로 짙은 산안개 드리워져 있었다. 건너편 산봉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안개였다. 이정표의 오른 쪽으로 나아가니 큰 바위 덩어리를 중심으로 그 아래 각진 덩어리 바위가 장대한 소나무와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부자 바위’이니 아버지와 아들 삼형제가 어우러진 형상을 말하는 것인가. 어떤 사부자 전설이 있는 곳인가. 알 수가 없다. 바위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인데 안개 때문에 아래의 전경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바위 위에 서 있는 소나무의 표상이, 천하의 명승이라는 저 중국 황산의 영객송(迎客松)과 같은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안개는 바람에 실려 산마루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휘몰아 넘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하회탈이 올라왔다. 그 동안 한기가 엄습하여 전진국 사장은 윈드자켓을 꺼내 입기도 했다. 운악산은 주로 암봉으로 이루어진 악산(嶽山)이다. 사람에게는 위험한 산길이어도 그 풍치는 아주 가경일품이다. 오늘은 짙은 안개가 끼어 그 풍경을 선명하게 가슴에 담을 수 없지만, 운무와 어우러진 바위 봉우리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안겨다 주었다.
* [고고하게 솟은 ‘두꺼비바위’]… 그 절벽을 타고 오르는 짜릿함,
☆… 안개가 바람에 실려 능선을 넘고 있지만 다행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산길은 암릉이고 절벽이었다. 안부에 내려가는 곳에는 스테인리스 철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다시 절벽을 올라가는 곳에는 쇠붙이 발판을 박아놓고 그 옆에 철봉이나 밧줄로 안전시설을 해 놓았다. 안개 속에서 앞에 우뚝한 암봉이 솟아 있다. ‘두꺼비바위’이다. 그 절벽의 옆구리, 아주 가파르고 몸을 돌릴 여유조차 없는 공간을 치고 올라가는 코스이다. 그렇게 올라가서 숨을 돌리면 다시 나타나는 절벽 오름길, 암벽에는 철제 발판을 박아놓고 가장자리에 자일을 설치해 놓았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아주 아기자기한 스릴이 있는 벼랑길을 가파르게 타고 오른다. 올라가다 문득 서서 주변을 살펴보면 안개 속에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참으로 우아했다. 바위틈 사이에 피어있는 노란 야생화가 눈길을 끌었다. 척박한 바위 틈 사이에 뿌리를 내고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아, 경이로운 생명의 꽃!
* [가파른 스테인리스 철제 사다리]… 그리고 산봉(山峰)의 벤치
☆… 시야는 온통 자욱한 안개, 아니 바람을 타고 능선을 넘어가는 산안개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뜨거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절벽의 옆구리를 타고 오르는 바윗길이다. 기암과 절벽이 휘어진 소나무 어우러진 모습은 운악산의 비경이다. 거기에다 산안개가 감싸고 있으니 그 색다른 풍치가 아주 환상적이다. 주변의 수목들이 안개에 젖어 있고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이 번들거린다. 산 능선의 어둑한 숲길을 걷노라니, 문득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철제 사다리가 앞에 나타났다. 가파른 오름길 직선으로 40m 정도의 철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널따란 산봉이 나타났다. 긴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는 암봉 위의 광장이다. 벤치에 앉아서 뒤에 따라오는 하회탈을 기다리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산을 넘어가는 짙은 안개바람이 세차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땀에 젖은 몸에 한기가 들기도 했다. 무심코 ‘아이, 추워!’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계 속>
* [운악산 서봉 정상]… 운악산에서 만난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의 한시
☆… 오후 12시 30분, 해발 935.5m의 정상(서봉)에 도착했다. 포천군에서 세운 거대한 정상석이다. 그 뒷면에는 이 포천 지방의 출신으로 이름난 학자인 양사언의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너무 음각의 퇴색이 심하여 그 전문을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양사언(楊士彦, 1517~1584년)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이다. 우리에게는 ‘태산이 높다하되…’라는 시조 작품으로 잘 알려진 문인이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금강산(金剛山)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금강산을 좋아하여 봉래(蓬萊)라는 호를 썼다. 시(詩)와 글씨에 모두 능했는데, 특히 초서(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 불렀다. 안변의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兵亂)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 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해서(海西: 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 4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정이 없었고 유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한편,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워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 그의 한시(漢詩)는 작위적이지 않고 표현이 자연스러워, 더 이상 고칠 데가 없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가사(歌辭)로는「미인별곡(美人別曲)」과 을묘왜란(乙卯倭亂) 때 군(軍)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지은「남정가(南征歌)」가 전한다. 이밖에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미인별곡」은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운악산의 정상석]… 산의 마루금은 포천과 가평을 아우르고
☆… 운악산에는 정상석이 두 군데 있다. 서봉과 동봉에 각각 하나씩 서 있는 것이다. 동봉에는 가평군에서 설치한 자연석 정상석 또 하나 곁들여져 있다. 한북정맥의 산줄기에 솟은 운악산이 포천군과 가평군의 군계능선이므로 각 지자체에서 운악산 관할을 내세우는 지극한 사랑(?)이 빚은 결과이다. 포천군에서는 궁예의 유적지가 있는 유서 깊은 운악산에 국립운악산자연휴양림을 유치하여 도시인의 자연체험장으로 홍보하고 있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든 운악산을 중심으로 지역축제인 운악산 단풍제가 매년 10월 중순 경에 포천시 화현면 운악산 입구에서 산신제 및 사물놀이, 꽃전시회, 특산물 전시 및 판매 등 다양한 내용으로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한편 가평군은 천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조종천과 천 년 고찰 현등사, 그리고 경기의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운악산 만경대를 중심으로 한 기암절경을 내세워 운악산 십경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산의 들머리인 하판리를 중심으로 이 지방 전래의 민속음식인 손두부와 팬션 등 휴양시설을 통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 서봉 정상석 옆에 <한북정맥 개념도>와 <종주 산행>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운악산을 중심으로 한 한북정맥 종주로의 내용을 (하행)코스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포천시과 철원군의 경계인 47번 국도의 광덕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남하하는 여정이다. 광덕산(1,046.3m)-5.8km→ 백운산(903.1m)-8.1km→ 국망봉(1,168.1m)-7.0km→ 강씨봉(830.2m)-6.0km→ 청계산(849.1m)-10.3km→ 운악산(935.5m)-9.3km→ 수원산(709.7m)-5.0km→ 국사봉(547.3m)-7.0km→ 죽엽산(615m)-8.1km→ 축석령(175.0m)으로 이어진다. 축석령은 43번 국도가 지나는 길목으로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 [한북정맥]… 북한강과 임진강의 분수계(分水界)
☆… 한북정맥(漢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져 나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장명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이다.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를 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 현대 지도에서의 산 이름으로 찾아보면, 추가령(楸哥嶺)·백암산(白巖山)·양쌍령(兩雙嶺)·적근산(赤根山)·대성산·수피령(水皮嶺)·광덕산(廣德山)·백운산·국망봉(國望峰)·강씨봉(姜氏峰)·청계산(淸溪山)·운악산(雲嶽山)·죽엽산(竹葉山)·도봉산·노고산·현달산(峴達山)·고봉산·장명산등이다. 한북정맥 또한 백두대간처럼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어서, 남한 구간 종주는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 경계에 있는 수피령(740m)에서부터 가능하다.
『산경표(山經表)』에 근거를 둔 이들 산줄기의 특징은 모두 강을 기준으로 한 분수산맥으로 그 이름도 대부분 강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한강 수계와 임진강 수계를 가름한다. 한북정맥의 서쪽의 물줄기는 임진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의 물줄기는 (북한)한강으로 흐른다.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 회양·화천·가평·남양주, 서쪽으로 평강·철원·포천·양주 등의 경계를 이루는데 자연히 동쪽은 한강 유역이고 서쪽은 임진강 유역이 된다. 이 산맥은 우리나라 중부 지방의 내륙에 위치하여 비교적 높은 해발 1,000m급의 높은 산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의정부 북쪽에 이르고 있어 예로부터 교통과 산업의 발달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동서의 기후 차이에도 관계 깊은 산줄기이다.
* [운악산 동봉(東峯) 정상]… 고인(古人)의 문향(文香)이 흐르는
☆… 오후 1시 정각, 동봉 정상에 도착했다. 오늘 산길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30~40명의 산꾼들이 정상석(동봉) 바로 앞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왁짜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동봉 정상석 뒷면에는 조선 중기의 명유 포천 출신의 오성 이항복의 오언율시를 새겨 놓았다.
雲岳山深洞 운악산 깊은 계곡에
懸燈寺始營 현등사 처음으로 지었네
遊人不道姓 노는 사람들 성(姓)을 말하지 않았는데
怪鳥自呼名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沸白天紳壯 용솟음치는 흰 기운 폭포수 장대하고
橫靑地軸傾 푸른 산 빗긴 곳에 지축이 기우는 듯
慇懃虎溪別 은근히 호계(虎溪)에서 이별하니
西日晩山明 석양 속에 저문 산이 밝아오네
그리고 그 정상석에서 5m 뒤쪽에 가평군에서 세운 장대한 표지석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비석이었다. 이름하여 ‘雲嶽山毗蘆峰 / 937.5m 가평군’을 새겨 놓았다. 이 동봉을 비로봉이라고 칭했다. 어디에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뒷면에는 조선시대 초기 현등사에 주석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 함허대사(涵虛大師)의 칠언절구, <題雲嶽山>(운악산에서)을 새겨 놓았다.
雲嶽山帶懸燈寺 운악산 자락 현등사
落石飛泉上下聲 위로는 돌 구르고 아래엔 물소리
出自千尋與万丈 천 년 전부터 뭇 지식인의 발길 이어져
滄溟未到不曾停 밝고 환한 날에도 오고감이 멈추지 않네
—涵虛得通禪詩 兪衡在 謹書 / 함허득통의 선시를 유형재가 삼가 쓰다.
* [가파른 하산길]… 절고개 능선에서 현등사 계곡으로
☆… 하산은 절고개를 경유하여 현등사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원래 운악산의 절정은 만경대를 거쳐 내려가는 만경로 암릉이다. 장대한 병풍바위를 배경으로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암릉은 금강산의 만물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경이다. 그리고 아찔한 절벽길을 따라가는 산길은 가는 곳마다 그 풍치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명승이다. 사계절 어느 때라도 그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리무중의 안개 속이다.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한 날씨, 그래서 일행은 절고개 능선에서 숲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정상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널따란 목조 전망대에서 이르러 잠시 발길을 멈추었으나 오늘은 짙은 안개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옆에 ‘남근석’을 기라키는 해설판이 있으나 안개 때문에 ‘그 물건’의 기암(奇巖)은 보이지 않았다. 갈림길 절고개에서 급한 경사의 산록을 따라 내려왔다. 길은 각진 돌들이 쌓인 너덜지대, 군데 군데 자연석 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급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는 길이다. 모든 수목에 물기에 젖어 번들거렸고 길은 안개 속이다. 산길의 절벽에 '코끼리바위'가 안개 속에서 그 어렴풋한 형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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