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일어나 어제 시티투어 때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차창으로 스쳐 가 아쉬웠던 아무르 티무르 좌상 주변을 둘러보러 호텔을 나선다. 레기스탄 광장 뒷길을 걸어 아무르 티무를 좌상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젊은 부부가 흙을 파 무언가를 묻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죽은 새끼 양을 장사지내는지 조그만 무덤을 만들고 있다. 왕좌에 앉아 있는 티무르 좌상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는데 그의 눈은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티무르는 이곳에서 80km 정도 떨어져 있는 Shahrisabz(샤흐리샵스) 출생으로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사람으로 이곳에는 좌상(坐像)이, 샤흐리 샵스에는 입상(立像)이, 타슈켄트에는 기마상(騎馬像)이 있다. 티무르가 제국의 수도를 정할 때 사마르칸트와 샤흐리샵스, 타슈켄트 세 군데를 놓고 고민을 했는데 양고기를 땅에 묻었을 때 가장 부패가 늦게 되는 곳을 정했다는 설도 있다. 티무르는 사마르칸트 부근 몽골족가문에서 태어나 칭기즈칸의 아들 차가타이가 통치하던 차가타이 칸국에서 전사로 성장했다. 대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을 동경하며 마음에 품고 원대한 정복을 꿈꾸던 티무르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1366년 사마라칸트를 비롯한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후계자라 자칭하며, 1405년 죽을 때까지 동쪽으로는 중국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북부, 서쪽으로는 터키의 앙카라,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정복하고 티무르제국을 건설해 몽골 이후 중앙아시아 최대 제국이 되었다. 티무르는 실크로드상인들이 쉴 수 있는 숙박시설과 보호소를 여러 곳에 마련해 교역을 키웠고 중앙아시아에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부하라에 그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만 사마르칸트에도 티무르가 남긴 아름다운 유적들이 가득하다.
오늘 사마르칸트를 떠나 부하라로 출발한다. 사마르칸트를 떠나면서 아쉬운 점은 티무르의 고향인 샤흐리샵스(Shahrisabs)를 못 가 본 것이다. 사마르칸트에서 이틀을 잤지만 샤흐리샵스는 사마르칸트에서 남쪽으로 9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 편도로만 1시간40분 이상 걸리고 그곳의 악사라이궁전과 콕 굼바즈 모스크 등을 보고 오려면 호텔에서 조식을 먹자마자 택시를 타고 다녀와도 6~7시간은 걸릴 것인데 더구나 일행들은 모두 시티투어를 신청한 터라 가려는 혼자 택시로 다녀와야 되는데 교통비도 걱정이 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티무르의 출생지로 알려진 샤흐리샵스는 페르시아어로 녹색(綠色)도시라는 뜻으로 티무르제국 시기에 티무르는 이곳을 수도로 만들고 자신의 무덤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으면서 그의 무덤도 그곳에 있게 되었다. 티무르의 대형 동상과 티무르가 제국을 세운 뒤 그 기념으로 24년에 걸쳐 악사라이 궁전, 티무르의 아들 샤흐루가 아버지를 위해 지었다는 콕 둠바스 모스크 악사라이 궁전 잔해가 남아 있다. 1370년 티무르가 제국을 세운 뒤 그 기념으로 24년에 걸쳐 악사라이 궁전을 건설했는데 티무르는 정복을 벌이는 와중에도 수도는 사마르칸트지만 장차 이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 생각으로 고향인 이곳에 정복지에서 획득한 약탈 자원과 포로들을 투입해 궁전과 성벽, 모스크 등을 지어 티무르의 위대한 야망과 카리스마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로 가는 길은 실크로드의 메인 도로로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다녔으며, 중앙아시아를 제패하기 위해서 또는 침략하기 위해서 수많은 군대들이 지나갔던 도로이다. 사마르칸트에서 부하라까지는 300㎞정도로 M37번 도로를 이용하면 4시간 정도면 갈 수가 있지만 그 옛날 사람들은 낙타와 말을 타고 짐을 싣고 가면 하루에 50㎞를 간다고 하더라도 6일을 가야 하는 거리이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사실은 무척이나 유명한 길이니 감회가 남달라야 하는데 자동차로 가서 그런가 아쉽게도 그런 감동이 없다.
도중에 나보이(Navoiy)라는 도시를 지나는데 이 도시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존경하는 문인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aiy)를 기리기 위해 도시 이름을 지은 것이라 한다. 알리셔 나보이(Alisher Navaiy)는 티무르 왕조 때 차가타이-터키어<지금은 사어(死語)>의 시인이며 정치가이고 화가였다. 러시아의 푸쉬킨과 같은 우즈벡의 민족문화의 아버지로서 우즈벡어로 된 아름다운 시와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나보이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출생으로 헤라트 영주 호사인 바이카라의 궁정에서 여러 관직을 거쳤고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였고 호레이즘 칸국의 장관으로서 학교, 병원 등을 지워서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으며 문학, 예술인 등을 지원하였다. 우즈벡 국민시인으로서 함사(Khamsa)라고 불리는 5편의 시를 남겼다. 우즈벡족의 대표적 지식인 나보이는 단순한 시인이 아닌, 민족 정체성을 고양한 위대한 인물이자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거대한 인물로 우즈벡 국민들은 나보이를 우즈벡 문화의 원류이자 민족 아이덴티의 창시자로 보고 거리, 학교, 도서관 등 많은 시설물에 나보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나보이는 또 타지크어(語)의 저작도 있으며, 문학 이외에 철학, 언어학 등 다방면의 연구를 행하였고, 음악이나 회화에도 능하였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그를 추모해 예술극장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이보다 많은 글을 쓴 사람은 없다’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실제 생애 60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17만 단어에 이른다고 한다. 괴테가 5만 2천 단어, 푸시킨이 6만 4천 단어밖에 되지 않는다고... (인터넷)
나보이를 지나 부하라 쪽으로 좀 더 가면 라바티 말릭 카라반사라이(Rabati Malik Caravanserai)가 있는데 실크로드 50㎞마다 하나씩 있는 대상(隊商)들의 숙소로 이곳에는 물탱크(Cistern)가 별도로 있는 곳이다. 물탱크 옆에는 커다란 물주전자를 만들어 길 가에 세워 놓았고 물탱크 옆에는 사무실 같은 것으로 쓰였을 것 같은 건물이 있고 길 건너편에는 숙소나 마을이 있었던 곳이라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들러서 구경을 하고 간다.
아침 8시에 출발하여 부하라에 도착한 시간이 두 시로 호텔에서 숙소를 정하고 가이드에게서 부하라의 관광지 약도를 하나씩 받고는 각자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부하라(Bukhara)는 제라프샨 강 삼각주 샤흐루트 운하 연변의 부하라 오아시스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란 뜻으로 이슬람시대 이후 줄곧 부하라 샤리프(성스런 부하라)라 불린다. 수·당시대에는 중앙아시아 9개 국가 중 安國으로 불렸다. 텐산산맥 북쪽 기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인 초원로와 파미르 고원을 넘는 실크로드인 육로가 이곳에서 만난 후 다시 키질쿰사막과 카라쿰사막을 뚫고 페르시아와 카스피해로 이어지는 사막 동서교역로에 자리잡고 있어 동서 문명교류의 관문역할을 한 도시였으며, BC 4세기 고대문화에서부터 17세기 중세문화까지 2500년 역사가 쌓여 있는 도시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현재 수도는 타슈켄트지만 부하라는 9세기 사만 왕조가 처음 수도로 정한 곳으로, 사만 왕조에 이어 터키계 왕조인 카라한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교역도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부하라는 실크로드를 통해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번성하고 학문과 과학이 발달하여 당시 세계 문화의 한 축을 이룰 정도였었다고 한다. 1220년 칭기즈칸의 침입을 받았고 당시 호레즘왕조의 도시였던 부하라의 지배자는 “여기는 알라를 모시는 성스러운 왕국이다! 한낱 유목민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라며 칭기즈칸의 지배를 끝까지 거부하고 몽골에 대항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항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본보기로 칭기즈칸은 건물을 모조리 부수고 귀중한 유물을 약탈하고 부하라를 철저하게 파괴해 붉은 사막이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땅 위에 부하라는 폐허만 남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 티무르가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승자로 등장을 하면서 부하라는 다시 재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벽과 요새가 만들어지고, 동서남북으로 곧게 도로가 뚫리면서 화려한 왕궁이 지어지고 이슬람 사원과 학교, 병원, 도서관, 공중목욕탕, 주거지 건물들이 아름답게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성채 바깥에도 시장과 대상들의 숙소인 카라반사라이, 종교학교인 마드라사가 즐비하게 줄지어 세워졌으며, 전성기에는 이슬람사원인 모스크 360여 개, 마드라사 113개가 도시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 보는 건물들은 티무르 제국과 부하라 칸국 시대의 건물이다. 티무르제국이 1506년 우즈베크 샤이반 왕조에게 멸망하면서 부하라는 16세기 중엽부터 그들이 세운 부하라 칸국의 수도가 되었다. 1868년 부하라 칸국이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부하라는 부하라 칸국 대신 세워진 부하라 소비에트 인민공화국의 수도였으나, 1924년 우즈베키스탄에 흡수되면서 타슈켄트에게 수도의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부하라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