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C)
또 어떤 때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 천장은 주홍색과 황금색이고 벽은 황록색 래커 칠이 되어 있으며 긴 격자창이 있는 방에서 기묘한 연주회를 열곤 했다. 제 정신이 아닌 집사들이 작은 치터를 뜯으며 거친 음악을 만들어 내거나, 칙칙한 노란색 숄을 걸친 튀니지인들이 기괴하게 생긴 류트의 팽팽한 현을 튕기는가 하면, 이를 들어내고 히죽거리는 흑인들은 구리로 된 북을 단조롭게 두드렸고, 터번을 두른 호리호리한 인도인들은 주황색 깔개 위에 쭈구리고 앉아 갈대나 황동으로 만든 길쭉한 피리를 불면서 머리에 마치 두건을 쓴 듯한 커다란 뱀과 소름 끼치게 생긴 뿔 달린 살무사들에게 주문을 걸거나 주문을 거는 척 했다.
슈베르트의 우아한 선율과 쇼팽의 아름다운 슬픔, 그리고 베토벤의 힘찬 하모니마저도 귀에 별 감흥을 주지 못할 때면, 야만적인 음악의 거친 음정과 날카로운 불협화음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곤 했다.
그는 멸망한 나라의 무덤이나 서구 문명과 접촉한 후에도 살아남은 소수의 야만인들에게 구할 수 있는 가장 희한한 악기들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서, 그것들을 만져보고 연주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 인디언의 신비한 악기인 주르파리스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원래 여자들에게는 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젊은이들조차 금식을 하거나 징벌을 받은 후에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새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는 흙으로 만든 페루의 단지, 알폰소 데 오발레49 가 칠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는 인간의 뼈로 만든 플루트, 쿠스코 근방에서 발견된 것으로 낭낭한 특유의 감미로운 소리를 내는, 녹색의 벽옥으로 만든 악기들도 소장하고 있었다.
조약돌을 가득 채워 흔들면 달가닥 소리가 나는 채색한 조롱박, 연주자가 숨을 불어넣는 게 아니라 악기를 통해 공기를 들이마셔 소리를 내는 맥시코 악기인 기다란 클라린, 하루 종일 높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파수꾼들이 불면 3리그50 떨어진 곳에서도 들린다는, 귀에 거슬리는 음을 내는 아마존 부족의 악기 튜레, 나무로 만든 진동하는 혀 두개가 있고 식물의 유액에서 추출한 탄성고무를 바른 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테포나스틀리(teponaztli), 포도송이처럼 송이송이 매달린 모양의 아즈텍 악기인 요틀벨, 그리고 베르날 디아스51 가 코르테스52 와 함께 맥시코 사원에 들어갔을 때 보았던 악기로 거대한 뱀 가죽을 씌워 만든 원통 모양의 커다란 북도 소장하고 있었다.
베르날 디아스는 그 북이 내는 애처로운 소리에 관해 생생히 묘사한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악기들의 환상적인 특징이 도리언을 매료시켰고, 그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예술에도 야만적인 형태와 섬뜩한 소리를 지닌 특유의 괴물적인 속성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묘한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악기들에도 싫증이 난 그는 혼자서 혹은 헨리 경과 함께 오페라극장의 특별관람석에 앉아 넋을 잃고 <탄호이저>53 를 들으며 황홀한 기쁨을 느꼈고, 그 위대한 예술 작품의 서곡에서 자기 영혼의 비극이 상연되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그는 보석을 연구하더니, 560개의 진주가 박힌 의상을 입은 프랑스의 제독 안 드 주아예즈(Anne de Joyeuse)의 모습으로 가장무도회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취미는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사실상 그런 취미에서 결코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등불을 비추면 붉은 색으로 변하는 황록색 크리소베릴, 철사처럼 생긴 은색 선이 들어 있는 사이모페인, 담황록색의 감람석(橄欖石), 장미의 연분홍색과 와인의 노란색을 띤 토파즈, 떨리며 반짝이는 네 개의 별이 박힌 불꽃같은 진홍색 홍옥, 불타는 듯한 빨간색 육계석(肉桂石), 주황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진 첨정석(尖晶石) 그리고 루비와 사파이어가 교대로 층을 이룬 자수정 등등. 자신이 수집한 여러가지 보석들을 상자 안에 넣었다가 꺼냈다가 하며 정리하는 일로 하루 온종일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는 일장석(日長石)의 붉은 황금빛과 월장석(月長石)의 진주처럼 새하얀 빛깔, 그리고 유백색 단백석(蛋白石) 속에 산산이 흩어져 있는 무지개 빛을 무척 좋아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엄청나게 크고 색채가 화려한 세 개의 에메랄드를 입수했고, 보석 감정가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유서 깊은 터키옥도 소장했다.
또한 그는 보석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도 찾아냈다. 알폰소의 <<성직자 교육 Clericalis Disciplina>>에는 진짜 히아신스석의눈을 가진 뱀이 언급되어 있고, 알렉산더 대왕의 영웅적인 역사서에는 에마티아(Emathia)54의 정복자가 요르단 계곡에서 '등에 진짜 에메랄드가 칼라처럼 자란' 뱀들을 발견했다고 씌여 있었다.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가 전한 바에 따르면, 뇌에 보석이 박힌 용이 있었는데 이 괴물은 '황금색 글자와 주황색 의복을 보여주면' 마법에 걸려 잠들었기에 그사이에 괴물을 죽일 수 있었다. 그리고 위대한 연금술사 피에르 드 보니파스(Pierre de Boniface)에 따르면, 다이아몬드는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인도의 마노(瑪瑙)는 사람을 웅변가로 만들어주었다. 홍옥수(紅玉髓)는 분노를 달래주고, 히아신스석은 잠이 오게 하며, 자수정은 술독을 없애주었다. 석류석은 악령을 몰아내고, 하이드로피쿠스는 달빛을 빼앗았다. 투명 석고는 달과 함께 찼다 이울었다 했고, 도둑을 찾아내는 멜로세우스는 오직 새끼 염소의 피에만 영향을 받았다.
레오나르두스 카밀루스(Leonardus Camillus)는 방금 죽은 두꺼비의 뇌에서 꺼낸 하얀 돌을 목격했는데, 그 돌은 해독 작용이 있었다. 아라비아 사슴의 심장에서 발견된 베조아르55는 페스트를 치료할 수 있는 부적으로 이용되었다. 아라비아 새들의 둥지 속에는 아스필라테스가 들어 있는데, 데모크리토스56에 따르면 그것을 지닌 사람은 어떠한 불의 위험으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49,알폰소 데 오발레(Alfonso de Ovalle,1603-1651), 칠레의 예수회 신부.
*50, 거리의 단위로, 1리그는 약 3마일.
*51,베르날 티아스텔카스티요(Bernal Diaz del Castillo,1492-1581),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대에 참여한 이후에
<<신(新) 에스파냐 정복의 진상>>을 남겼다.
*52,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는 아즈텍 왕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로 아즈택에 스페인 식민지를 건설하고
총독을 지냈다.
*53, 바그너의 오페라.
*54, 마케돈,테살리아, 파르살리아를 가리키는 말.
*55, 양이나 소 등의 체내 결석.
*56,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B,C. 460년?-370년?).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
대중을 압도시키는 외모의 순수함과
서서히 침몰하는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는 내면을 대비하며 ....
끝없이 흥미꺼리를 찾아내서 몰입하곤 하는데...과연 그 종착역이 어딜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