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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
성경본문|사도행전 17: 28~34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32.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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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의 소생이다.
지난주에는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행한 설교 중에 22절에서 28절 상반절까지의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첫째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주를 통치하시는 섭리의 주인이시다.
특히 인간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인간 세계를 철저하게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이어서 세 번째 주제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바로 전 인류를 심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심판하십니다. 심판을 얘기한 것은 구원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우선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부터 말씀합니다.
인간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알아야만 왜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을 하시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28)
바울은 이 구절에서 유명한 그리스 시인 아라투스의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라투스는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 출신으로 제우스 신을 위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우리 모두 제우스와 함께 시작합시다.
오, 인간들이여, 결코 그를 언급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길에는 제우스로 충만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모임에, 바다에나 항구에나 제우스로 충만합니다. 모든 방면에 우리는 제우스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소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싯귀 중에 인간은 신의 소생이라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리스 사람들의 인간관을 그대로 채용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인간은 신의 소생이라는 생각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성경의 인간관은 창세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형상”(!l,x,)이란 말은 어떤 幻影이나 대리적 형태를 의미하는 말로, 흔히 image란 말로 번역합니다. “모양”(tWmD_)이란 말은 유사성, 즉 닮았다는 뜻으로 likeness란 말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어떤 점이 하나님을 닮았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격체라는 점,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라는 점, 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도덕적 존재라는 점 등입니다. 이 중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영적 존재, 특히 도덕성을 지닌 영적 존재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접촉점이 생깁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목표를 이렇게 설정합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인간의 인격성이나 도덕성은 인간의 위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에 위치합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계를 관리하는 위치에 놓여졌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우두머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땅과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외에 어떤 존재도 숭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에덴 동산의 약속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아테네 사람들을 생각해 봅시다.
자신들을 신의 소생이라고 하면서 신과의 교제는 없고, 오직 돌이나 조각물 앞에 굴복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입니까? 신의 소생이면 신의 소생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창조주와의 교통 없이 피조물 형상을 숭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29)
모든 우상 숭배를 보세요. 거기에 하나님은 빠지고 오직 우상만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은 다 짐승의 형상을 갖고 있습니다. 태양신 라를 비롯하여, 호르스, 오시리스, 토트, 이시스 등등의 신들은 항상 독수리, 자칼, 코브라, 황소, 개구리와 같은 짐승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도 대개는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 사람들이 섬기는 용은 여러 짐승을 집합해 놓은 가상의 동물입니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들이 신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범죄행위입니다.
성경은 우상에 대해서 이렇게 조롱합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
어떤 사람들은 반박합니다. 우상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신전에 만들어 놓은 신상들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닌가?
그것이 스토아 학자들이나, 현대 이성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성경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사44:10)
“철공은 철을 숯불에 불리고 메로 치고 강한 팔로 괄리므로 심지어 주려서 기력이 진하며 물을 마시지 아니하여 곤비하며,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사44:12-14)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얼마는 고기를 삶아 먹기도 하며 고기를 구워 배불리기도 하며 또 몸을 더웁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그 나머지도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15-17)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사44:18-19)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단순히 우상숭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형상이 바로 도덕적인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우상과 미신은 인간의 이기적 마음을 부추기는 방편들입니다. 도둑놈, 깡패, 사기꾼, 난봉꾼도 다 섬기는 미신이 있어요.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대상은 도덕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경고하신 내용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이고,
둘째는 도덕적 타락,
그 중에서도 간음죄, 성적인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타락에 대해서 참고 견디십니다. 그러나 무한정 참으시지는 않으십니다. 여기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심판의 문제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천하를 심판하신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바울은 오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인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즘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강조하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은 벌도 주시지 않고 마냥 죄를 눈감아 주시는 하나님으로 잘못 가르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세요.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심판의 결정판은 세상 종말의 심판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31)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역사 심판과 관련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로, 역사의 종말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세상에는 두 가지 역사관이 있습니다.
▷ 첫째는 순환적 역사관이고,
▶ 둘째는 선형적 역사관입니다.
▷ 순환적 역사관이란 불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입니다.
우주 만물이나 인간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는 생각입니다.
▶ 선형적 역사관이란 성경의 역사관입니다.
우주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하나님의 창조로 세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는 우주의 심판과 종말로 이 세상은 끝이 나고 하나님이 재창조하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됩니다.
인류 역사의 총체적인 심판은 바로 이 종말에 집행됩니다. 현재에도 심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이지 않을 뿐입니다. 개인의 범죄나 민족과 국가의 범죄나 반드시 처벌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에 하나님은 계약대로 아담을 에덴에서 추방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영적 사망이라고 합니다. 노아 시대 인류는 전 지구적인 홍수로 거의 전멸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패륜으로 말미암아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했습니다. 바벨탑 시대 사람들은 언어 혼잡과 인간 상호간의 소통의 단절이라는 원천적인 벌을 받았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세계대전이 일어난 것도 일종의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유럽 인구 중에 전사자가 9천만 명이나 되는 대살상이 일어났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의 3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전쟁이고, 둘째는 기근이고, 셋째는 전염병입니다. 어쩌면 현 세대 인류는 이미 이런 심판을 이미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세 페스트나, 천연두, 혹은 암을 고치면 다른 병은 없습니까? 에이즈가 생겨나고, 신종 플루가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됩니다.
그러면 언제가 종말입니까?
열두 제자들도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행1:7)
그러나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아주 확고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1)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2:4,9)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롬2:5,16)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2-3)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4:17)
현재 종말이 더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참고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 뿐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둘째로,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공의롭습니다.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하십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가장 크게 외치는 불평은 바로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점입니다. 정치인,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 모두가 외치는 구호는 평등입니다. 기회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그러나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바로 인간 자신의 죄악성에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반세기 동안 실험한 게 뭡니까? 평등한 사회 만들려고 하다가 망한 거 아닙니까? 차별화 되기를 원하고, 높아지기를 원하고, 남보다 잘나기를 원하는 인간이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 모순입니다. 천하에 인간은 완전한 공평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역사의 종말에 가장 공평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됩니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시9:8)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시96:13, 98:9)
셋째로, 심판자가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류에게 구원자가 정해져 있듯이 심판자가 정해져 있습니다.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심판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심판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신 동시에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의 첫 번째 오심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지만,
두 번째 오심은 심판을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27-30)
회개하라 명령하셨다.
이제는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우상 숭배를 하면서 어영부영 살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앞에 과거의 불신앙과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인지? 저는 지금 철학 강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과거 우리의 죄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 우리는 대개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무신론자, 범신론자, 아니면 불가지론자였습니다. 이것은 다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모욕입니다. 엄연히 살아계신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살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인간들은 무시당했을 때 가장 화를 냅니다. 네가 나를 무시해! 그런데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살았다면 하나님께 벌 받지 않겠습니까? 가만히나 있으면 50점은 됩니다. 우상, 미신, 살인, 간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테네 사람들의 과거는 무식의 시대였다고 선언합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30)
여기 알지 못하던 시대란 말은(crovnou" th'" ajgnoiva") 무식의 시대란 뜻입니다.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과거에 무식의 시대에 살고 있었소!”라고 하면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발할 겁니다.
내가 왜 무식한가?
세상적으로는 유식하시겠지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꼬박 먹었으니 얼마나 유식합니까?
농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다 무식한 시절이었습니다. 세상 지식의 무식이 아니고, 영적인 무식입니다. 대학교를 나와 박사 학위가 여러 개 되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식쟁이들이 지금도 세상에 가득합니다. 오늘 자신을 보세요. 내가 아직도 무식의 시대에 있는지?
무식의 시절에는 하나님이 대하시는 방법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에게는 죄에 대하여 철저하게 간섭하시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죄에 대하여 상당히 관용적으로 대하십니다. 좋게 말하면 관용이고, 나쁘게 말하면 내버려 두는 겁니다. 놔둬도 망할 사람들을 굳이 간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1:26,28)
오늘 말씀에도 보면 무식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십니다.
간과하셨다는 말은(uJperidw;n : 본문, 롬3:25) 못 본척(overlooked) 지나치셨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에는 “눈을 감아 주셨다”고 했고, 표준새번역에는 “그대로 지나치셨다”고 했고,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영문성경에 보면 God winked at(KJV), overlooked(NIV, NASB, RSV, NLT)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영적으로 무식한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잠시 눈 감고 계셨습니다.
묵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행14:16)
“묵인”이란 말이 바로 내버려둔다는 뜻입니다. “ejavw” 영어로 하면 let it be!
그러나 무식이 마냥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식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지식도 그렇잖아요? 세상에서 무식한 것이 남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만, 결코 자랑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영적인 무식도 마찬가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세상에서 수치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인간으로서 자랑스런 것은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창조주를 모르는 것은 무식 중에 상무식이고 인생에 결정적인 불행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영적 무식쟁이들에 대해서 이런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영적으로 무식하면, 반드시 망한다! 영적 무식은 인생 멸망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충만할 때 최고의 축복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을 알고 행한다는 사실입니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31:34)
그러므로 이제는 결단합시다. 영적 무식에서 벗어나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아는 자리로 돌아오세요. 오늘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이 명령(paraggevllw)은 사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다 알도록 내려진 공식적인 명령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회개입니다. 회개하라!(metanoei'n) 돌이키라! 인생의 방향을 바꾸라! “tou;" me;n ou\n crovnou" th'" ajgnoiva" uJperidw;n oJ qeo;" ta; nu'n paraggevllei toi'" ajnqrwvpoi" pavsin pantacou' metanoei'n” 이전의 사상, 가치관, 사고방식을 통째로 버리세요. 무신론, 범신론, 불가지론, 우상숭배, 미신적 사상들, 다 버리세요.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과거에 무신론자였습니다. 우상과 미신을 믿었습니다.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한 무식쟁이였습니다. 내 인생이 내것인 줄 알고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살았습니다. 이제 내가 과거에 하나님 뜻을 거스리고 살았음을 인정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이제 오늘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믿습니다. 주님을 영접합니다. 주여 내 마음에 오셔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내 인생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영적 무식쟁이로 살지 마세요. 하나님 자녀로서 축복된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