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쿠 조선학교와 후쿠시마 조선학교의 피해가 가장 컸습니다. 트위터를 통하여 전해진 동포들의 움직임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로가 끊어지고 기차가 멈추었던 당시의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지에서 동포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과 지원물자가 피해지역의 조선학교(피난생활을 하던 동포들의 집결지였던)에 속속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 오사카, 고베, 가나가와, 교토 등의 동포들은 저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식량과 경유, 등유, 휘발유 등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모인 물자를 트럭에 한 가득 실고 피해 지역을 향해 달려갔다고 합니다. 일례로 혹가이도 하코다테의 동포들은 유람선에 트럭을 실고 현지에 가야했는데, 당시 그 유람선에는 자위대 이외에 민간인은 재일동포 지원대 뿐이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한 두시간이면 도착했을 거리인데, 당시에는 도로가 통제되고 유실된 곳이 많아 밤을 세워서 달려가야 했다고 합니다(몽땅연필자료실에서)
그들의 이런 힘은 어디서 오는걸까 어떠한 마음에서 일까? 같은 가족이기에 같은 동포로서 같은 길을 걸었기에..
“학교를 세우고 조선어 교과서를 만들고 재일조선인 교사가 가르치고 그 부모가 학교를 운영하였다. 재일조선인은 그 모든 것을 본국정부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이루어냈다. 이는 조선민족의 높은 교육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민족교육사에 재외편(在外編)을 둔다면, 제1항에 기록되어야 할 창조적인 운영이다.”
-오자와 유사쿠(小澤有作), 재일조선인교육의 역사
어제 김선영선생님이 "글로컬"이란 단어를 썼다 - 글로벌과 로컬의 만남이다
내교실에서 학생만 내 제자가 아니라
내집안의 자식만 내 자식이 아니라
내옆집 아래집 윗집만 내 이웃이 아니라
좀더 오래 좀더 멀리 있는 제자 가족 이웃이 마음은 더 가까울수 있다
만약 나라가 없다면 나는 미국인으로? 중국인으로? 일본인으로?
그렇게 살아 가겠지만 나는 항상 그리움과 외로움이 더 할 것이다
첫댓글 그렇지 않아도 이사님의 열정과 말씀이 생각나서 오늘 무지개 청소년센터 다문화 영어교재 집필 첫 미팅, 그리고 잛은 시간동안 해가 나 가족들과 시간보낸 후 컴을 열자 마자 들어와 보았네요. 제 조부조모님께서 일본에서 지내시며 아버지와 고모들을 낳아 기르던 곳이 오사카입니다. 염려와 생각이 가 닿지 않을 수 없네요. 어딘가 방법이 있겠지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선영샘의 마음이 언젠가는 힘으로 떨림으로 전해 질 겁니다 ^^^
인연줄이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한번 만나 구체적인 일정을 잡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