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리:2008.2.25(일)
11:30벽송사-12:20낙엽비트-13:00산죽비트-13:40바위비트-14:00상내봉-중식-14:30출발-15:30베틀재-16:05오봉마을
오랜만에 지리에 듭니다. 어제는 광주에 내려와 담양에 있는 병풍산과 투구봉을 올랐고 처남과 만나 술잔을 밤늦게까지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남원으로 향합니다. 친구 남원O적과 남원시청에서 만나 방곡리에 나의 세컨 애마 마티즈를 주차하고 남원O적의 차량을 이용하여 추성리로 향합니다. 추성리로 오르는 찻길은 계곡 반대편 쪽으로 새로 만들어져 일방통행입니다. 오르는 길 곳곳에는 지리산 칠선계곡 2027년까지 휴식년제에 묶는 국립 관리공단의 독단적인 행정에 반대하는 추성리 주민들의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어 이곳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국립공원의 휴식년제 대책은 크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중산리와 천왕봉 직등 구간인데 그곳을 휴식년제로 묶는다면 중산리 주민들의 폭발적인 반대를 막아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추성리 주민들은 얼마나 억울할 것입니까. 1999년부터 휴식년제에 걸려 2002년까지. 2002년에는 다시 또 2007년까지 5년간 연장한다 했고, 2008년에 들어서니 2027년까지 재연장한다고 합니다. 누구를 호구로 알고 장난하는 겁니까? 추성리 주민들은 절대 봉이 아닙니다.
벽송사 주차장에 주차하고 오른쪽에 있는 빨치산 루트를 따라 발길을 옮깁니다. 벽송사는 요즘 새로운 불사가 한창입니다. 그런데 헐. 이곳에 출입금지 경고판이 붙어 있군요. 이곳 코스를 폐쇄한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엄중한 안내문이 있습니다. 가슴이 뜨끔 하나 슬쩍 지나칩니다. 지방 자치 단체인 함양군은 이곳을 빨치산 루트로 관광 상품화하여 탐방객을 많이 찾게 한때가 엊그제 같은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폐쇄를 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어리둥절합니다.
상내봉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 쉽습니다. 약간의 고도를 서서히 올리니 지리산에서는 드물게 널널한 코스입니다. 빨치산 능선은 광점동 계곡을 따라 평행하게 이어지며 길에는 눈과 낙엽이 범벅이 되어 있으며 진행할수록 곳곳엔 많은 잔설이 있습니다. 특히 능선의 응달 북쪽과 양지 남쪽이 잔설로 있고 없음이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마치 반세기 전 좌우 이데올로기처럼 말입니다.
벽송사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되었을까요. 낙엽 비트를 만납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깔끔하게 보존이 되어 있었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조치 이후 관리가 되지 않아 이제는 폐물이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예산 낭비라고 하나요.
곧 나타나는 산죽 비트와 바위 비트도 말이 필요 없군요. 저도 깨끗하게 청소될 날을 기다립니다. 상내봉이 가까워질수록 제법 눈이 많아집니다. 눈이 과자처럼 바삭바삭 부스러지는 등로를 따라 느긋한 산행은 계속됩니다. 이 길을 여러 차례 다녀보았지만 역시 익숙하지 않군요. 지리산의 산길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지리산은 많이 올라도 알 수가 없는 산입니다. 다니고 다녀도 늘 처녀성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며 새롭기만 합니다. 이것이 지리산이 갖는 매력일 겁니다.
어제 병풍산을 오를 때는 강한 바람에 질렸는데 오늘은 거짓말처럼 바람 한 점 없습니다. 따뜻한 햇볕에 졸음도 간간이 찾아옵니다. 어디 양지바른 곳에서 한숨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상내봉에 오르니 커다란 배낭이 놓여 있고 잠시 후 홀로 산행의 젊은 주인공이 지도를 들고 나타납니다. 오늘 주능에서 비박을 한다고 합니다. 늠름한 자세라 보기가 좋습니다. 지리산에 미쳤던 저의 젊은 날의 모습과 오버랩 되는군요.
상내봉에서 군 경계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햇살은 이미 주능 뒤편으로 기울어져 숨어들기 시작하였고 땀이 식었는지 추위도 밀려옵니다. 점심은 컵라면과 김밥으로 해결합니다. 손이 얼어붙기 시작하여 잽싸게 장갑을 끼고 배낭을 들쳐 맵니다. 이제 하산은 오봉리로 합니다. 군계 능선은 말 그대로 경남 함양군의 휴천면과 산청군의 금서면을 가르는 능선이며 베틀재에서 오봉마을로 내려서기로 합니다.
적설량이 많지 않아 아이젠과 스패치를 생략한 채 그대로 하산을 진행합니다. 베틀재 근처에서 직진 길을 버리고 우측의 길을 선택합니다. 고도를 급격히 낮추며 오봉마을로 떨어지는 데는 불과 30여 분만입니다. 여름철 휴가 때면 붐비는 오봉마을이지만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오봉마을은 을씨년스럽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낯선 객을 무관하게 바라보고 짖지 않는 늙은 견공의 거드름이 눈에 띕니다. 귀염둥이 애마 황금 마티즈는 우리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네요.
그런데 귀염둥이가 토라졌는지 사고를 쳤습니다. 포장된 도로를 잘 내려가다가 길 가운데 낙석된 크지 않은 돌을 부주의로 튀겼는데 그만 미션 오일 팬이 터졌지 뭡니까. 가까스로 벽송사까지 이동하여 남원O적 차를 타고 산내까지 나갑니다. 덕분에 남원O적의 집에서 하루를 더 보내다가 다음날 차량을 수리한 다음 집으로 떠납니다.
첫댓글 초보산꾼 면하고보니 좀 더 일찍 산을 알지 못한것이 한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랬다면 몸과마음이 덜 방황하지 않았을까......
나를 구원해주는 그 무언가는 결국에는 나 자신이였다는것을 알려주심은 나의교주님(산)이였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