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에서 SRT 기차를 타고 채진석 동기와 대구에 갔다. 행사날이라 바쁜 와중에도 종부 동기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곧장 회사로 향했다. 잘 정리된 금호강 지류를 바라보고 길목 좋은 곳에 위치한 NUC 전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NUC는 NEO (새로운) UNIC (유일한) CONPIDENCE (신뢰)라는 의미다.
NUC 전자는 1978년 창립이래 원액기, 믹서기 등 생활 주방가전을 생산하는 업체로 회장인 김종부 동기가 맨손으로 43년 피땀 흘려 이뤼낸 곳이다. 일관되게 주서기와 블랜더에 집중한 결과, 현재 회사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생활가전 브랜드 기업이 되었다. 임직원이 400명에 이르는 명실공히 탄탄한 중견기업이다.
오늘 대구과학기념관에서 4인이 상을 받았다.
김종부 회장, 오 명 전부총리, 윤종용 삼성 전부회장, 권욱현 서울대 교수 등 대한민국 가전제품 혁신을 이룬 분들의 공로을 인정하는 큰 상이다.
그 자체만도 대단하지만 타지 출신이 대구과학관에서 인정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대구는 호남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곳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을 딛고 대구 과학인들 사이에 최고 경영인으로 자랑스럽게 우뚝 섰다. 처음 친인척도, 학연도 없는 대구에 왔고 그동안 숱한 좌절과 홀대를 감내하며 살아왔는데 그는 힘든 일과가 끝나면 야간에 높은 산 중턱으로 차를 몰고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종부 동기는 춘포면 석탄리가 고향이다. 동산동 동산국민학교를 다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생활가전제품을 영업한 게 창업의 동기라고 한다. 경제학도인 그는 알바를 하면서도 특유의 탐구열을 발휘했다. 왜 이렇게 만든 걸까,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무얼까? 그는 사업가 기질대로, 궁리하는 데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대학을 졸업하자 곧바로 창업을 하고 매달 도쿄 아키하바로 신상품 조사를 다니며 새로운 기술과 품질을 어떻게 우리 것으로 만들 것인지 연구했다.
나는 소시적 관상을 조금 공부했는데 그의 관상은 재복이 코와 눈에 몰려있다. 눈이 길게 쳐지면 재물을 잃지 않는 재주가 뛰어나다. 코는 그가 자수성가형이고 추진력과 사회적 인간관계의 형성이 탁월함을 보여준다. 관상은 수상과 연결되어 논하는데 손금을 보지못해 좀 아쉽지만 관상을 좌지하는 그의 심상만은 온전히 읽을 수 있었다.
과학관 부스에는 NUC 전자의 kuvings 원액기가 진열되어 있다. 세계 각국에 최고 매출을 올리는 이 회사 주력상품이다. 일반 주스기보다 넓은 투입구로 과일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착즙하기 때문에 맛과 풍부한 영양분의 주스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모터로 저소음을 장착했고 블랜더에 진공기능을 추가하여 재료의 산화를 지연시켜 더욱 신선한 주스를 마실 수 있게 했다. 국내와 중국의 동종 제품보다 열배 고가임에도 잘 팔리는 이유이다. 무려 매출의 90%이상 해외 판매인 것도 이러한 독보적 성능때문이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에 해외지사를 포함하여 전세계 약 87개국 대리점과 주스기 관련 특허 출원되어 상위 매출을 점유하고 특히 미국에서 2014년도 10월부터 소비자 리포트(Consumer Report)에서 매년 저속원액기 부문에 최고의 평가를 받아 명품 가전 백화점에 입점되어 쿠빙스 브랜드가 소형 가전부문 판매 최상위 품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이미 2014년 국내 300개 월드 클래스기업으로 선정되어 수출 5천만불탑 수상, 37회 발명의 날 발명진흥유공자 대통령 표창과 기술부분 은탑산업훈장 수상, 대한민국 디자인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주력상품은 믹서기만 아니다. 요구르트 청국장 제조기는 우리나라 시장 점유율 85%를 형성했으며 홍삼제조기또한 그 못지 않은 주력상품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엔유씨를 끝없이 자랑하는 이유는 그가 한 일이 전부 대견하기 때문이다. 전공도 아닌 분야에서 더더욱 대구라는 도시에서 자수성가 창업자로 임직원 400명을 거느린 전자회사로 성장했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나는 오늘 그가 이룬 기적을 얼핏 접할 수 있었다. 산을 움직이고 강을 가르는 기적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암튼 그가 이뤄낸 기적은 너무나 많다. 창업이래 특허 출원과 등록 건수가 1천 400 건이라고 한다. 청춘을 다바쳐 오로지 기술개발에만 매진한 것이다. 기술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하나, 작은 기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생존전략이기때문이다. 즉 큰 기업에 잠식 당하지 않기위해 원천기술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버텨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눈앞의 이익을 쫒지않고 디자인 연구소, 기술 연구소, 바이오 연구소 등을 운영하며 회사 매출의 7%를 매년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아니 43년 자체가 끝없는 기술개발의 역사이다.
과학관에서 나오면서 NUC 전자의 차세대를 이어갈 김지태 사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사장은 종부 동기 아들로 경영학을 전공한 장래가 촉망되는 전문 경영인이다.
해가 설핏 저물 무렵, 과학관을 나와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간단히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면서 그날의 대미를 마무리했다. 우여곡절? 여름 양복을 입고 코트도 없이 강추위에 덜덜 떨면서 우릴 역까지 배웅해 준 동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위대한 기업보다는 사랑받는 기업에게 미래가 있다. 소비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가 없다.'
NUC 전자의 철학이자 비젼이다. 가슴에 와닿는 따뜻한 문구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 어려운 사랑을 하고 있다.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비젼없인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비젼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30년 후, NUC 전자가 세계유수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큰 기업이 되기를 기원한다. 굳은 악수를 보낸다. 아이러브 엔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