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우리 나라나 중국인들은 태어난 날을 보통 생일이라고 한다. 성자,위대한 인물이나 지명인사들의 생일은 펑민들과 구분하여 탄생(誕生) 이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한문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생일을 일률적으로 탄생이라고 한다. 갓난애의 생일을 탄생이라 부르면 우리는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것이 맞고 틀린지 헷갈린다. 미국의 헌법에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대로라면 일본인들이 모든 사람의 생일을 탄생이라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관습에 젖어 모든 사람들의 생일을 탄생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내일은 딸의 생일이다. 비가 오는데도 마누라는 딸의 생일을 챙겨주겠다고 시장에 가서 삼겹살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식품을 사왔다.
오후 다섯시에 일봉산에 산책을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렀다. 마침 생일케익이 있어서 한개 샀다.
가격은 일률적이었는데 빵집에서 보다 훨씬 저렴했다. 나는 카운터 여직원에게 비닐봉투를 청구하여 담아오려고 했지만 싸이즈가 맞지 않았다. 다행히 점원이 밖에 나가면 박스가 있으니 박스에 담아가시라고 친절하게 안내 했다. 박스 보관대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접힌 골판지 박스가 질서 있게 꽂혀 있었다.
나는 눈짐작으로 박스 한개를 끄집어 내어 담아 보았다. 어림도 없었다. 나는 좀더 큰 것을 골랐다. 역시 싸이즈가 맞지 않았다. 이 작은 일도 세번만에 비로소 성공했다. 큰 박스를 그대로 들고 오자니 불편해서 손가락으로 양쪽 면을 쿡쿡 찔러 구멍을 냈다. 골판지라 구멍을 내기가 쉬웠다. 구멍에 손가락을 넣으니 들고 오기에 편했다. 나는 인도를 건너 국민은행 앞 버스정류장에 왔다. 저녁시간대라 손님들이 붐볐다. 1번 버스가 금방 도착했다. 약삭바른 사람들은 먼저 버스에 오르겠다고 다투어 앞에 섰다. 나는 제일 마지막에 올랐다. 먼저 오른 사람이나 나중에 오른 사람이나 자리가 없기는 매 마찬가지 였다.
왼쪽 창가 좌석에 V넥티셔츠를 입은 아가씨가 큰 가슴을 한껏 자랑하며 앉아 있었다. 보기에 야하고 민망스러웠다. 그런데 나를 보더니 그 아가씨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 모습을 본 주변 승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에게나 전혀 양보할 아가씨가 아닌 것 같은데 내게 선선히 자리를 내주니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했던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 올랐다.
몇년 전 까지 나에게는 큰 보물이 있었다. 그것은 딸이 소녀시절에 마누라가 가위로 잘라 놓은 딸의 머리다발이다. 그 머리다발을
언제까지 내가 갖고 있을 수는 없어서 몇년 전 딸에게 건넸다. 혼돈의 세월에 거의 모든 물건을 소실했지만 딸의 머리다발만은
용케 지켜냈다. 딸은 추억이 듬뿍 담긴 그 머리다발을 보관하고 있는지 몹시 궁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