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양대의 묘
영광 길용리 교당에서 법성포로 흐르는 선진강 물굽이를 따라 산간 협로로 북쪽 칠산바다를 향하고 한 십 리쯤 가면 조그마한 해변 동리에 이르나니
여기가 곧 이야기의 발원지인 구수미라는 동리입니다.
이 동리는 오래된 옛터로 뒷산 태산준령이 병풍처럼 보기 좋게 둘러있고
앞은 창파 만경의 무변대해로서 경치가 매우 좋은 곳입니다.
한 200년 전, 이 동리에 최일양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남편도 없이 홀로 여관업을 경영하여 살림이 매우 요족하였더랍니다.
그런데 이 일양대는 항상 무슨 일을 힘써 하였느냐 하면 오고 가는 행인들의 감발과 버선을 빨아주고 기워 주기와 때 묻은 의복을 씻겨주며 떨어진 의복을 기워 주기와 발 벗은 행인에게 신 사주기와 집도 없고 처자도 없이 돌아다니는 못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데려다가 목욕시키고 의복을 해 입히고 음식을 먹여 잘 쉬여가도록 하며 무의무탁한 노인과 자력 없는 불쌍한 어린 아이들을 음식과 의복을 주어 보호하는 등 이러한 일을 자기의 일생 사업으로 알고 이 세상 떠날 때까지 게으르지 않고 하였다 합니다.
그 중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혹 산간 걸승이 동량을 오면 공경히 대접하고
동량도 후히 주며 혹 노잣돈도 주고 의복 음식 등도 공양하였더랍니다.
그런데 하루는 험하게 생긴 중이 한 명 와서 동량을 달라 함으로 일양대는 조금도 불쾌한 생각이 없이 그 중을 흔연히 맞아 목욕을 시키고 새 의복을 입히고 음식을 공양하고 새 신과 노잣돈까지 주었더랍니다. 그런데 그 중은 떠나면서 노비를 받지 아니하고 사양하며 도리어 음식값과 옷값을 내며 받기를 청하더랍니다. 일양대는 깜짝 놀라며 ‘내가 스님께 돈을 받자고 공양한 것이 아니거늘 이는 저의 정성이 부족하여 스님께서 그러시는 듯하오니
마음에 불안합니다.’라고 하였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 중은 묵묵하더니 무명색한 중에게 이렇게 후히 하니
대단히 감사하다 하고 작별을 짓고 길을 떠나니 일양대는 문 밖을 나서 전송차로 동리 모퉁이 산 밑까지 갔었는데,
그 중은 일양대를 돌아보며 '너는 이생에 아무 상 없는 보시로 적선을 많이 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생을 통하여 선도에 환생하여 무한한 복락을 수용하리라 '하고 그 중은 인홀부견因忽不見이더랍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해를 지나서 일양대의 늙은 몸이 이 세상을 마지막 떠나게 되었는데 재산은 전부 촌중에 희사喜捨하면서 자기의 생전 뜻과 같이 남을 이롭게 하는 공중 사업에 써달라는 유언 한마디를 부탁하고 섭섭하게도 황천객이 되니 동리 사람들은 주인 없는 일양대를 불상히 여기어
그 시체를 동리 산 모퉁이 따뜻한 곳에 묻어 성분하고 연연히 별초를 하며 제사를 정성으로 지내 왔더랍니다.
그 후 어언간 40여년의 세월이 흐름을 따라 일양대란 이름도 차차 세상 사람의 기억에 사라지고 다만 짐의 흑무덤 하나가 고독하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도 이 허물어져가는 무덤을 다시 찾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시의 영광 군수의 정실 부인으로서
세력이 당당한 귀부인이더랍니다.
그래 이 무덤을 찾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군수의 부인이 뱃속에서부터 왼손 주먹을 쥐고 나와서 펴지를 못하고 사십여세가 되도록 불구자 같이 쥐고 다녔는데, 남편이 영광군수로 임명되어 영광에 부임하여 온 후에
그 쥐었던 주먹이 펴졌더랍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펴진 그 손바닥에는 전세에 구수미 살던 최일양대」라고 정자로 분명히 새겨졌랍니다.
그래 그것을 본 군수 내외는 하도 괴이하여 곧 사람을 시켜 구수미에 최일양대란 사람이 산 일이 있느냐고 조사하였던바 한 사십여년 전에 살다 죽은 사실이 분명하다 한지라 군수 부인은 자기의 전신임을 확실히 깨닫고
바로 군수 내외가 동행하여 구수미를 찾아와서 묵어가는 일양대의 무덤을 파 헤치고 보니 옛날의 자기 얼굴과 살은 어딜가고 백골만 말없이 대하는지라 군수 부인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뿌리면서 자기 전신 백골을 마디마디 만져 본 후 그 자리에 다시 분묘를 크게 짓고 돌아가서 묘답을 더 장만하여 영원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더랍니다.
그래 그 부탁을 받은 동리 사람들은 대대전손하면서 벌초도 잘하고 제사도 지내왔는데 연구 세심하여짐을 따라 자연히 묘답도 없어지고 근래에 와서는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아이들이 일양대의 무덤이라면 다 알고 일년에 몇 번이든지 풀만 자라면 누구나 선후를 다투면서 벌초를 한다 합니다.
이 실화를 듣고 나는 호기심에 구수미를 가서 동리 사람에게 물어 일양대의 무덤을 찾아가 보았지요. 200여년 풍상을 겪고 그 말 없이 누워있는 일양대의 무덤은 오히려 옛 모양을 그대로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설이 널리 알려졌는지 무덤을 찾아 구경 오는 사람이 많다 합니다.
그 얼마나 확실한 실화입니까?
전생에 천하던 일양대가 남에게 적선을 많이 한 공덕으로
후생에 귀하게 되어 안락을 보지 아니 하였습니까?
이렇게 보면 전 후생이 분명히 있으며
빈부 귀천을 자기가 지어 자기가 받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번에 일양대의 사실로 인하여
더욱 인과의 묘한 이치를 한층 더 간절히 느꼈습니다.
***대종사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소소영령한 인과 이야기라 하셨다고 합니다.